천재 와이프를 둔 아인슈타인의 비겁한 자기 변명
우리는 연애 공식에서 비록 정답은 없다라는 것이 공통적 결론이라할지라도 아는 것과 아예 모르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다. 만약 당신에게 매력적이지만 보통의 지능과 지식의 수준을 가진 여자와 평균보다는 떨어지는 외모지만 천재적인 지능을 갖춘 여자를 선택할 기로에 놓여 있다면 어찌 할 것인가?
아마도 많은 수의 남자들은 여자가 너무 똑똑하면 피곤하다라는 이유를 근거로 전자의 여자를 선택할 것이다 실제로도 고학력의 여성들은 자아의 성립여부에 관계 없이 지식수준에서 자신보다 떨어지는 남성들에게 모멸감이나 부담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록은 동색이라고 비슷한 고학력의 스펙이라면 어떨까? 일단 이런 경우에는 남녀가 연결된 확률은 저학력 남성과 고학력 여성보단 상대적으로 높다. 암튼 오늘의 주인공은 상대성 이론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토 아인슈타인이다. 아인슈타인은 취리히 공과대학에서 자신보다 네살 많은 한 여학생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그녀가 바로 밀레바 마리치(1875~1948)라는 여성으로 유럽에서는 비교적 비주류 민족이라 할 수 있던 세르비아계였던 밀레바는 선천적 장애로 다리한쪽을 절었지만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밀레바 마리치(1875~1948)
선척적인 장애에도 불구하고 밀레바는 수학,물리학,음악,미술등에 탁월한 재능과 천재적 두뇌로 남성 우월주의가 팽배한 당시에 입학이 어려운 취리히 공과대학 입학에 성공했지만 곧 바로 아인슈타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만다. 여자도 비슷하지만 남자같은 경우 아름다운 외모의 여성과 정비례하여 명석한 두뇌나 커리어우먼같은 스타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다. 이것은 자신이 모자란 부분을 채워줄 반려자를 찾는 보상심리와 자신과 어울릴 상대를 찾는 경우에서도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데 아인슈타인은 시대적으로 드문 여성이었던 인텔리적이고 남성들도 당해내지 못하는 두뇌의 소유자였던 밀레바에게 동질감(결국 아인슈타인도 천재였으니까)에 반하여 서로를 열렬히 사랑하게 된다. 밀레바의 천재성은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과 광양자 이론을 비롯하여 세계사에 아인슈타인의 이름 석자를 각인시키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물리학 논문 3편을 공동 저술한다. 아인슈타인이 뛰어난 천재임은 분명했지만 수학적 재능은 밀레바가 아인슈타인을 능가하였고 부족했던 그 부분을 밀레바가 보충하고 메워주는 학문적인 파트자이자 사랑스런 아내였었다. 파리 소르본 대학의 마리 퀴리 교수는 아인슈타인을 "마리치 아인슈타인"이라 부르며 밀레바의 재능과 업적을 칭송하기도 하였다.
밀레바 마리치와 알베르토 아인슈타인
명성을 얻은 아인슈타인과 밀레바에겐 이제 행복한 날들만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시골 작은 땅을 부쳐먹던 부부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땅이 개발에 의해 천정부지의 금싸라기 땅이 되어 졸부가 되자 젊은 애인을 얻으며 조강지처를 버리듯이 아인슈타인 역시 높아져만 가는 자신의 명성이라는 빛속에 가려진 밀레바라는 그림자를 거북스러워하고 부담스러워했다.
결국 사촌 엘사 아인슈타인과의 재혼을 위해 이혼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당시 아인슈타인과 밀레바 사이에는 2명의 자식이 있었지만 아인슈타인은 개의치 않았다. 유럽에 불어닥친 파시즘의 광풍과 함께 아인슈타인은 자신을 도와 많은 업적을 세운 밀레바와 자식들을 팽개치고 야밤도주하듯이 사촌 엘사와 함께 미국으로 망명하고만다.
아인슈타인과 사촌 엘사
마리 퀴리와 동시대를 살았고 뛰어난 재능을 가졌던 밀레바 마리치의 이 후 삶은 비참함의 연속이었다. 아인슈타인과 밀레바의 공동연구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을즈음, 둘 사이에서 나온 두번째 아들 에두아르트는 지적으로 정신지체아였다. 첫번째 아들에 이어 두번째 아들이 온전치 못하자 밀레바는 아인슈타인과의 연구를 지속적으로 할 수 없었다. 온전치 못한 아들을 돌보기 위해서였다 두 아들의 출생이 전에 딸의 출생도 확인되었으나(라저렐로 알려져 있다)아무도 태어나자 마자 입양된 것 으로 추측된다. 자신과 두 아들을 매몰차게 버리고 미국으로 간 아인슈타인을 원망할 새도 없이 밀레바는 극심한 경제적 고통을 격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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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하게 그림자 삶을 살다간 밀레바와 두 아들
밀레바와 두 아들 한스와 에두아르트
밀레바가 아인슈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두번째 아들 에두아르트는 극심한 정신질환을 앎고 있었고 버림받은 밀레바는 피아노 렛슨과 수학 과외로 근근히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 갔다. 그러던 중 아인슈타인과 공동으로 연구했던 광양자 이론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고 아인슈타인은 상금 전액을 밀레바에게 주었다. 그러나 그 이전까지 양육을 도맡아한건 밀레바였으며 어머니의 고생을 곁에서 지켜본 첫째 아들 한스는 아버지를 지독히도 싫어했다. 둘째 아들 에두아르트의 병의 근원도 아버지 아인슈타인에게서 비롯되었다. 과학자로써는 한시대를 풍미 했지만 가장으로써,아버지로써의 아인슈타인은 낙제점이었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73살의 노파 곁에는 아직도 발작을 일으키는 아들 에두아르트를거정하며 보살피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뇌출혈로 왼편을 못쓰는 반신불수의 몸이 되고 만다. 그렇게 몸을 쓰지 못하게 된지 얼마 후 눈을 감은 밀레바 곁에는 아들밖에는 없었다. 밀레바보다 7년을 더 살다 아인슈타인이 세상을 떠났고 에두아르트는 17년을 더 살다 정신병원에서 쓸쓸히 죽어갔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음울한 가족사를 살아 생전 철저히 은폐하였고 자신이 죽은 뒤로는 비서 뒤카스에게 넘겨줘 아인슈타인의 빛나는 업적은 빛바래지 않고 오래도록 빛났다. 물론 아인슈타인의 첫째 아들 한스가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눈 편지와 여러 자료를 모아 책으로 출판하려 한 적도 있었으나 뒤카스에게 소송으로 중단 당하기도 하였다.
젊은 날,절름발이에 세르비아계라는 신분의 여성을 열렬히 사랑하여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감행했던 아인슈타인,하지만 사랑은 사랑이라는 이름만으로는 너무나 쉽게 변질하고 부폐한다는 것을 이 둘의 삶에서 엿볼 수 있었다. 수없이 많은 커플들이 오늘도 미친 연애를 한다. 그 연애의 종착점은 결혼이러고 믿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연인들이 알아야 할 것은 결혼은 결코 종착이 아닌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 사랑을 끝까지 지키고 변하지 않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곰곰히 생각하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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