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조선의 8조법, 지금 다시 읽기 – 선사시대의 법은 어떻게 공동체를 지켰나? -->고조선은 단군신화로만 기억되기엔 너무도 분명한 법적 문화를 가진 고대국가였습니다. 특히 ‘8조법(八條法)’은 동아시아 최초의 성문법으로 평가되며, 단지 법률을 넘어 고조선 사회의 윤리와 통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결정적 단서입니다. 지금, 이 고대의 8가지 법률을 현대적 시각에서 다시 읽어봅니다.1.⚖️ 8조법 중 현전하는 3조제1조: 사람을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인다 – 생명 존중의 극형 원칙제2조: 남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곡식으로 배상한다 – 실질적 피해 보상제3조: 도둑질한 자는 종으로 삼되, 50만 전을 내면 면죄할 수 있다 – 속전(贖錢) 제도2.📜 유실된 5조는 무엇이었을까? (학계 재구성)제4조 (추..
고-한(漢)전쟁·최후의 왕험(검)성 전투 그리고 고조선의 패망_역사학자들이 비정한 한사군 실제위치와 단군조선를 계승한 부여의 탄생1.서막-전쟁의 시작고-한(漢)전쟁 최후의 왕험(검)성 전투는 한나라와 총 2차례 펼쳐졌습니다.당시 한나라는 정점으로 치닫는 황금기의 한무제 시기였고 인구나 국력이 고조선을 크게 압도했습니다. 또한 한무제는 주변국 정복에 의욕이 넘쳤는데 한나라 건국 시점부터 골칫덩이였던 흉노를 막북전투 끝에 제압하는 데 성공했고 베트남의 남월도 기원전 111년에 멸망시킨 상황이었습니다. 흉노에 복속되어있던 서쪽 실크로드 도시국가들도 한나라의 영향력에 들어왔으니 중국의 서남북이 평정된 상황에서 한무제에게 남은 건 오로지 동쪽의 고조선 뿐이었습니다.고조선에 갔던 사신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자 한무..
일제 어용사가들이 왜곡한 낙랑군 재평양설 낙랑은 고조선 문화이다! 우리 한민족의 고대사는 중국의 동북공정 뿐 아니라 일제에 의해 왜곡되고 일제의 가르침을 신성처럼 떠받드는 일제 어용사가들에 의해 확대되어 현대 국사 교육에 활용되어 오고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낙랑군 재(在)평양설의 경우 일제 때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닙니다. 문제의 발단이 된 것은 중국 한서 지리지에서 부터였는데 한서 지리지 저자 반고(32~92년)가 낙랑군의 위치를 아리송하게 만들어 놓은 데서부터 시작됐지만 결정적으로는 수경주의 저자 역도원(466?~527년, 북위의 지리학자)이 낙랑군이 평양 일대에 있었다고 주장하면서부터였습니다.이후 낙랑군 위치문제에 대한 논쟁이 세기와 세기를 거듭하면서 계속돼 왔으며 조선시대에도 대체로 낙랑군..
기자조선의 허구성과 5천년전 중국의 동북공정 우리 고대사에 기자조선은 없었다! 우리 한민족의 기원이라할 수 있는 단군 조선과 위만조선 사이에 기자조선이 존재했다는 설이 있었습니다.흔히 기자동래설이라 하는데 고대 중국 주나라 초기인 BC 1122년에 은나라 왕족 출신인 기자라는 인물이 주나라 무왕의 책봉을 받고 우리나라에 와서 나라를 세우고 조선을 문명개화하였다는 설이 바로 기자동래설입니다. 사대주의에 물들은 고려와 조선시대 지배층들은 기자동래설을 사실이라 믿고, 기자숭배 사상을 퍼뜨렸습니다. 과연 기자가 우리나라에 와서 중화문물을 전달했고, 그 결과 우리나라가 문명개화했는가?이것은 마치 일제가 조선을 문명개화시키기 위해 조선합병을 한 이유와 무척이나 흡사한데 이 기자동래설이 문제로 되는 것은 중국 역사학..
고조선의 마지막 왕조 만조선 위만은 중국인이 아닌 조선인이었다! 한민족의 고대국가를 형성한 고조선은 단군조선, 후조선, 만조선이라는 세 왕조가 있었는데, 이를 삼조선이라고도 합니다. 기원전 15세기경 단군조선은 내부적 모순의 축적으로 약화 몰락하고, 후조선이 성립하는데 후조선은 단군조선 시기의 영토였던 부여, 구려, 진국 등이 분리 독립해 나가 영토가 축소됐지만, 왕조 성립 이후 신속히 내부 체제를 정비하고, 의무려산맥 서쪽지역(요서지역)으로 광범히 진출해 난하 중류 일대까지 영토를 확장했지만 연나라 소왕 때 장수 진개의 고조선 침략으로 요하 서쪽 지역 2000여리의 땅을 연나라에 빼앗긴 후 나라가 약화됩니다. 후조선 마지막 왕인 준왕 때에 이르러 서변의 제후로 있었던 위만에 의해 멸망했는데 이때가 기원..
고조선의 마지막 수도 왕험(검)성은 북한 평양이 아닌 중국 장단경이다 역사학자들과 사료가 비정한 단군조선의 수도 위치 ▣역사학자들이 말하는 고조선의 수도 위치 오늘은 단군조선 혹은 고조선의 수도라고 알려진 왕험성(왕검성)의 위치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현재 왕험성의 위치는 북한에 위치한 평양이었다는 것이 20세기 근대역사학이 정립된 이래 철벽처럼 군림해온 학설 중 하나로 정확히는 대동강 북쪽 평양 일대에 있다가, 한 제국이 기원전 108년 고조선을 멸망시킨 뒤 강 남쪽으로 거점(낙랑군 치소)을 옮겼다는 식민지 시대 일본 학자들의 추정이 100여년간 건재해왔다는 것입니다. 1960년대 이후 남북한 학계에서는 요동이 중심지였다가 기원전 3세기 연나라 장군 진개의 침공에 따라 평양으로 이동했다는 설도 ..
역사학자들이 바라본 단군조선의 상투와 비파형동검,다뉴세문경에 담긴 초정밀기술 5천년전 고조선은 거대문명국이었다 燕王 盧綰反, 入匈奴, 滿亡命, 聚黨千餘人, 椎結蠻夷服而東走出塞度浿水, 居秦故空地上下障. 연왕 노관이 반란을 일으켜 흉노로 들어가자,위만도 망명하였다. 그는 무리 천여명을 거느렸는데, 상투를 하고 오랑캐 옷을 입었으며, 동쪽으로 도망하여 요새를 나와 패수를 건너 진나라의 옛 공지인 상하장에서 살았다. /한서(漢書) 조선전(朝鮮傳) 고조선(古朝鮮) 상투하면 우리는 보통 100여년전 조선 사람들의 상투를 연상하기 마련이지만 상투는 이미 고조선 시대부터 해오던 우리 한민족 고유의 문화였다는 것입니다.그런데 상투(Sangtu)를 우리 민족만 해왔다고 생각하면 안되는 것이 상투는 한민족 뿐 아니라 고대 ..
역사학자들이 바라본 패수 논쟁 속 패수의 위치를 찾아라! 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 경계선 패수는 어디일까? 패수 또는 패강(浿江), 패하(浿河)는 고대 상고사 고조선부터 한국사 문헌 기록에 자주 등장하는 강의 이름으로 패서 지방이나 패강진 등은 여기서 파생된 지명으로 사기(史記)와 한서(漢書)조선전(朝鮮傳)에 기록된 고유명사로 열수(列水)와 아울러 일찍이 중국에도 그 이름이 알려진 강이기도 합니다.그 위치에 대하여는 학설이 다양하며, 패수를 어디로 비정하느냐에 따라 고조선과 한 나라의 강역이 달라질 수 있어 매우 중요하기도 합니다. 또한 패수라는 이름은 시기별로 그 지칭 대상이 다른데 대략적으로 한반도 서북지역의 강으로 비정되나, 고조선대에는 주로 압록강 또는 청천강으로 삼국시대 이후로는 대동강이나 예성강..
고조선 단군왕검 신화에 대한 역사적이면서 매우 사실적인 해석 우리나라 역사 중 상고사에서 고조선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고조선 특히 단군조선은 신화와 전설로만 접근할 수 밖에 없다는 문제가 있습니다.한민족에게 있어 단군 조선의 건국은 처음으로 계급국가의 탄생이기도 합니다.또한 단군이란 존칭은 후세에 우리 선조들이 한자를 쓰기 시작하면서 민족의 원시조를 가리키던 고유 우리말을 이두식으로 표시한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檀君(단군)의 한자말 뜻으로 단군의 의미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어쩌면 잘못된 것일수도 있습니다. 단군에서 단은 음을 취하고 군은 뜻을 취해 단군이라고 불렀던 것인데 그렇다면 단군이란 원래 우리말로 어떤 의미였을까?단군의 명칭과 관련해 주목을 끄는 것은 ..
역사학자들이 본 고조선과 중국의 경계선 및 최대 영토 고조선의 건국과 탄생 중국 동북공정과 국내 주류사학자들에 의해 지워진 단군조선-신화와 역사의 경계에서 잠든 한민족 고대사에서는 동북공정과 국내 주류 사학자들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지워진 고대의 국가 단군 조선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그렇다면 실제 고조선의 건국과 위치,고조선과 중국의 경계 및 영토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안타깝지만 단군 조선을 지우고 기자 조선을 한민족의 시초라고 단정지은 중국 동북공정 작업은 상당 부분 중국 내에서 통용되고 있는 실정이며 국내 정신 빠진 주류 사학자들의 동조와 방관으로 인해 우리의 상고사는 단군 조선을 잃고 3천년의 역사로 줄어들어 버렸고 그렇게 통용되어온 한민족 고대 상고사 고조선에 시각과 전혀 다른 논리를 전..
중국 동북공정과 국내 주류사학자들에 의해 지워진 단군조선 신화와 역사의 경계에서 잠든 한민족 고대사 고조선 특히 단군조선의 탄생은 우리 한민족의 역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아래로는 부여와 고구려의 선대 문명이며 위로는 환단고기의 환국과 배달국이라는 문명의 하위문명이자 계승자이기 때문입니다.고조선이 요하문명 홍하문화의 계승자이거나 그 주인공이라면 우리 나라의 상고사는 더욱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고조선 자체를 신화 내지는 전설의 영역에 놓아버리면 우리 역사는 영토 뿐 아니라 역사적 시간들도 반토막내기 때문입니다. ▣중국 동북공정으로 지워진 고조선의 존재 우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고조선은 현재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해 존재 자체가 지워진 상태입니다.중국인들은 동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