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으로 보는 고구려 여전사 베스트 7 – 벽화 속 전사의 얼굴들고구려는 전사국가로 유명하지만, 그 역사 속에는 여성 전사도 당당히 존재했습니다. 고분 벽화, 사서 기록, 그리고 고대 복원 연구를 통해 살펴본 고구려 여전사 7인의 모습과 그들의 전투 방식, 복장, 역할을 소개합니다.1.옥저 방어전의 여궁수 – ‘벽화의 눈’이라 불리던 궁사옥저 방면 방어 전투에서 등장하는 여궁수는 벽화 속 날렵한 눈매와 날아가는 화살의 궤적으로 유명합니다. 오방색 치마 위에 가죽 흉갑을 입고 있으며, 빠른 기동전에서 활약했습니다.2. 백암성 탈환전의 창술 여성 – 강철의 선봉장기마전 위주의 백암성 탈환 전투에 등장하는 여전사는 길고 얇은 창을 들고 말을 타고 있는 모습으로 복원됩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단단한 갑옷과..
추모왕(주몽)의 고구려 최초 도읍지 졸본성은 환인 오녀산성이 아니라 중국 대륙 산둥성에 있었다! 삼국사기에 최초로 졸본이 등장하는 졸본성은 700년의 장대한 역사를 가진 고구려 왕조의 첫 번째 수도로 시조 동명성왕 고주몽이 북부여에서 남하해 졸본 땅에 고구려를 세웠으며 이후 제2대 유리명왕이 국내성으로 천도하기까지 약 40여 년간 초창기 고구려의 수도였습니다.동명성왕 고주몽은 세 현자를 만나 신하로 삼은 뒤, 아래의 선언을 하며 공식적으로 국가 건설에 나섰지만 북부여에서 도망쳐 나와 궁전을 지을 겨를이 안되어 졸본천 비류수 가에 초가집을 지어 임시로 거주했다고 합니다. "난 경명(景命)①을 받들어 원기(元基)②를 세우고자 한다." 그러나 급하게 궁실(宮室)을 만들지 않고 단지 초가집을 지어 비류수(沸流水..
중국 왕망에게 처형당한 고구려후 추(騊)는 추모왕이었을까?유리왕일까? 고구려 건국시조 고주몽 죽음의 미스터리1.서문-고주몽의 신화와 전설 그리고 죽음의 미스테리맨몸으로 부여를 탈출하고 고구려를 창업한 불세출의 영웅 고주몽은 추모왕이 되어 고구려 700년의 기틀을 다지고 40세의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이합니다.같은 해 부여에서 자신을 찾아온 아들 유리에게 태자의 지위를 준지 5개월만으로 이 급작스러운 추모왕의 죽음은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습니다.추모왕이) 그러다 세위(世位)를 즐기지 않게 되자, (하늘이) 황룡(黃龍)을 내려보내 왕을 맞이하였다. 왕은 홀본 동쪽에서 용의 머리를 밟고 승천(昇天)하셨다(不樂世位因遣黃龍來下迎王王於忽本東履龍頁昇天)/광개토대왕릉비가을 9월에 왕이 하늘에 오르고 내려오지 않으니..
고구려 왕 계보 미스터리 유리왕은 추모왕의 진짜 아들이었을까? 고구려는 기나긴 역사만큼 뛰어난 왕들이 많이 배출된 나라이지만 그만큼 긴 역사 속에 고구려 왕들의 계보에는 수많은 미스터리가 있기도 합니다.특히 고구려를 창업한 주몽 추모왕과 그 뒤를 이은 유리왕은 고구려의 찬란한 역사의 시작점이기도 하지만 추모왕과 유리왕의 혈통에 대한 의문점 역시 존재하기도 합니다.삼국유사 왕력 유리왕 부분에 ‘유리왕의 성은 해씨(解氏)이다.’라는 기록도 있는데 동명성왕은 고씨이고 유리왕은 해씨이므로 동명왕과 유리왕은 혈통이 다르다는 견해가 있습니다.해씨 고구려설과도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지만 반면 동명성왕이 원래 해씨였으나 부여를 탈출하고 고구려를 세우면서 고씨로 성을 바꿨고 아들인 유리왕은 그 사실을 모른 채 부여에 남아..
700년 역사의 고구려가 아닌 900년 역사의 고구려를 발견하다 주몽이 계승한 숨겨진 고구려의 전신 고대국가 구려 동부여서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과 내려온 고주몽은 고구려를 창업한 뒤 강력하게 성장합니다.이런 고구려 성장의 비밀은 기존에 존재했던 고대국가 구려에 있습니다. 고주몽의 고구려는 맨손에서 출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구려의 왕권과 영토를 그대로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고구려의 건국자인 고주몽은 부여의 망명 정치세력의 대표자로 망명한 지 2년 만에 고구려를 건국했습니다. 고주몽이 빠르게 새로운 나라 고구려를 건국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고주몽이 구려왕의 사위가 되어 구려 왕이 죽자 구려의 왕권을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주몽은 구려의 왕을 물려받으면서, 구려라는 나..
추모왕이 국호를 고구려라 이름 지은 의미와 뜻 위대한 태양의 나라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 한국의 고대사를 비롯하여 한국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가장 진취적이면서 대외적으로 가장 활발한 정복 전쟁을 펼쳤던 국가가 고구려입니다.물론 고구려 멸망이후로 한국의 역사는 점차 한반도로 영역이 축소되었고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은 만주 벌판을 내달렸던 고구려인들의 기상을 잃어버린지 오래지만 한류가 전 세계를 휘몰아치는 현상을 목격하는 21세기에 들어서 군사력으로 중국과 동북아 영토 전쟁을 벌였던 고구려인들의 기상이 문화적인 기상으로 부활한듯한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고구려는 기원전 37년, 22세 되던 해에 주몽이 건국한 고대 국가입니다.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졸본 땅은 말갈에게 자주 약탈을 당하고 있..
만리장성보다 실용적이었던 고구려의 네트워크요새 천리장성1.애플의 아이폰처럼 시대를 앞서갔던 고구려의 천리장성 요샌 스마트폰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불과 1년전만해도 데이터 요금때문에 자살했다는 청소년 기사를 본것만 같은데 이젠 단돈 5만원이면 무제한으로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고 길거리마다 와이파이가 설치되어 무선랜이 간섭받아 도리어 수신율이 저하된다는 기사도 있고,암튼 스마트폰에서는 한국의 내노라하는 휴대폰 제조업체를 비웃시라도하듯이 애플의 아이폰이 만리 장성보다 더 견고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IT강국이라고 연신 떠들어대던 말들이 결국은 허세 가득한 남친의 거드름과 같은 꼴이 되었지요.통신 시장을 독점해 오던 거대 공룡 3사는 늘 변화를 모색하기보다는 안주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