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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知識을 낳는 뮤지엄

2009년 장자연 리스트 그리고 1970년 정인숙 사건이 주는 끝나지 않은메세지

by 마음heart 2011.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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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장자연 리스트 

그리고 1970년 정인숙 사건이 주는 끝나지 않은 메세지


故 장자연님의 명복을 빕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그 시대에만 떠도는 괴담이랄까, 백성이나 국민들의 마음이 위정자들을 믿지 못할 때 이 괴담은 커다란 날개를 달고 엄창난 파장을 불러 일으킵니다.요즘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이슈이자 불행한 선이며 국민들이 경찰과 정부 자체를 신뢰하지 못하게큼하는 문제는 단연 장자연의 리스트일겁니다.살아 있다면 올해 서른정도일 장자연은 꽃보다 남자와 영화에도 출연한,그때까진 조연 배우의 길을 걷던 아가씨 였습니다.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2006년도에 어머니조차 세상을 떠나자 그 해 본격적으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녀는 사망 3일전, 평소 일면식도 없던 동료 연예인 김민선과의 연락을 시도했다고 합니다.그러나 연락은 실패하고 성남시 분당구의 자택에서 2009년 3월7일 한많은 세상과의 인연을 끊었습니다.전 그녀를 모릅니다. 그녀가 세상을 뜬 후 우연히  꽃보다 남자를 보기도 했지만 전, 그녀를 릅니다.세상 모두 그녀의 이름을 알지만 전 아직도 그녀를 모릅니다.지금 우리 세상에 괴담처럼 떠도는 장자연 리스트는 한마디로 그녀의 넋처럼 살아 숨쉬고 있음에도 마치 실체조차 없는 것처럼 유령과도 같은 존재입니다.지금 이 사회는 연예인을 꿈꾸던 한 여자가 죽기전 남긴 편지로 인해 극과극의 세상속에 빠져 있습니다.그녀가 편지속에 남긴 글은 저주와 분노를 뛰어 넘는 한이어서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스스로도 모르게 두 주먹이 불끈거리고 눈시울은 붉어 집니다.꿈을 향해 달려 가는 청춘이 이 사회 기득권의 노리개로 전락하고 절망할때 우리는 그들을 향해 무엇이라고 했는가..그런 마음을 생각하면 참 가슴이 먹먹해지기만 합니다.2009년에 장자연의 죽음과 함께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 용의자 12명은 유족 등에 의해 고소된 피고소인 7명과 문건에 거명되는 인물 5명 등 모두 12명으로 경찰이 최종 발표하였습니다.하지만 국가는, 그리고 경찰은 사건을 유야무야식으로 대충 넘기고 말았습니다.이제 일반 서민들은 정치권이나 경찰을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계층간의 괴리와 상실된 믿음을 회복할 기회였을 수도 있었는데 이들은 힘없고 보호해야 할 서민이 아닌 권력층을 비호했다고 일반 서민들은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그리고 2년이 지난 2011년 지금, 그녀에게 성상납을 받았던 31명의 리스트가 있다는 장자연 리스트가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습니다.소위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해이는 악마의 힘보다 더 큰 권력층의 힘으로 이 모든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고 분명 국민들은 믿고 있습니다.미개했다고 믿는 조선 시대에도 백성의 억울함을 들어 주는 신문고라는 것이 있었습니다.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참담하기만 합니다.인터넷이 발달하여 그 어떤 뉴스도 1분이면 전세계로 퍼지고 비밀이 없는 시대에 저잣거리를 떠도는 괴담처럼 일반 국민들은 장자연의 성상납이 그녀에게 죽음을 불러 왔다 여기며 권력의 정점에서 한 아가씨를 유린한 이들을 단죄하여야 믿는데 국가 권력은 그 모든 것이 조작된 것이라 말합니다.하지만 삼척동자도 그런 말을 거짓이라 여기며 믿지 않는 다는 것,그녀를 성상납이라는 늪으로 끌고간 기획사의 사장은 밑에 그녀 이외에도 자살한 여러명의 톱 스타들이 거론되기도 합니다최진실,정다빈.유니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톱스타들이 장자연을 성상납으로 내몬 기획사 사장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두 자살하고 말았지요

장자연의 편지중 일부

솔직히 일반 국민들의 도덕적 해이 역시 심각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돈이면 여자를 살 수 있다 믿는 풍토는 갈수록 확산 되어 많은 남자들이 여러 곳에서 여자를 팔고 삽니다.아마도 장자연 리스트에 언급된 인물들은 자신의 죄과를 뉘우친다기보다 재수 없이 걸린 상황을 모면하고 빨리 기억에서 잊혀지길 바랄 것입니다.그러기에 우리는 결코 잊어선 안됩니다. 역사는 흐르고 흐릅니다.오늘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이보다 더한 사건이 훗날 되풀이 되겠지요. 지금으로부터 약 40여년전에도 한 여인이 비명횡사 했었습니다.

정인숙 ,그녀 역시권력의 비호 아래 의문의 죽음이 묻혀져 버렸다.

 


바로 정인숙 살해사건(鄭仁淑 殺害事件) 혹은 정인숙 암살사건(鄭仁淑 暗殺事件)으로 제3공화국 당시의 의문사입니다. 1970년 3월 17일 밤 11시경, 서울 마포구 합정동 절두산에서 한 살인사건이었으며 피해자 정인숙(본명: 정금지)은 총상으로 사망하였고 그의 차를 운하던 넷째 오빠 정종욱은 넓적다리를 관통당하였으나 목숨에는 이상이 없었습니다.1970년 3월 17일 밤 11시경, 서울 마포구 합정동 절두산 부근의 강변3로에 멈취 서 있는 검정색 코로나 승용차에서 권총에 넓적다리를 관통당해 신음하고 있는 한 사내와, 머리와 가슴에 총을 맞아 이미 숨진 한 젊은 여인이 발견되었다. 부상당한 사내는 정종욱(당시 34세), 숨진 여인은 정인숙(당시 26세)으로 두 사람은 남매 관계로 밝혀졌다.당시 26세였던 정인숙에게는 3살 된 아들이 1명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아이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당시 정부의 한 유력인사가 지목되기도 했다.고위 공무원의 딸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였으며 여러 명의 친오빠가 있었다.그 뒤 정인숙은 당시 한일회담도 이루어진 선운각 등 최고급 요정에서 호스티스로 일하고 있었다.나중에 정인숙의 집에서 발견된 정인숙의 소지품에선 정관계 고위층의 명함 26장이 포함된 33장의 명함이 쏟아져 나왔는데, 명단에는 박정희, 정일권, 이후락, 김형욱 등 대다수 5.16 주체세력들이 포함되어 있었다.이후 경찰 수사는 지지부진해졌고 언론 보도가 수사를 대신하게 되었다. 언론은 정인숙에게 숨겨진 아들(정일성, 정성일, 또는 박승일(68년 3월생)이 하나 있고, 그 아들은 당시 청와대 고위층의 자녀라는 소문과 정인숙이 당시 정관계 고위층 전용이라 할 수 있는 고급 요정 '선운각'을 드나들었다는 것 등을 밝혀냈다.1주일 후에 나온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범인은 오빠인 것으로 밝혀졌다. 정종욱은 정인숙의 운전기사 노릇을 하면서 정인숙의 문란한 행실을 지적했으나, 정인숙이 듣지 않고 자신에게 심한 욕설을 퍼붓자 가문의 명예를 위해 누이동생을 죽이고 강도를 당한 것처럼 위장하려 했다는 것이었다.사건은 권부의 압력에 의해 흐지부지되었다고 하며 사건의 진상은 현재까지도 밝혀진 것이 없다. 정인숙 살해 사건은 넷째 오빠인 정종욱의 범행으로 일단락되었지만, 진범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의혹은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성급히 종결지으려는 수사 태도도 의심을 샀고 정종욱이 사용했다는 권총이 발견되지 않았고, 증거는 오직 정종욱의 자백뿐이라는 점이 의혹을 증폭시켰다. 정종욱에 대해선 '권세가들에게 희생된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인물 중의 한 사람'라는 설이 떠돌았다.한편 정계의 유력자가 은폐하려 했다는 설과 정적관계에 있던 자의 소행이라는 의견이 있으나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다.정인숙의 아들 정성일은 1985년 도미했다가 1991년 전 국무총리 정일권을 상대로 친자확인소송을 제기하기도 하였으나 돌연 소를 취하한 후 미국으로 떠나 피살 사건의 의혹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장자연과 정인숙은 닮은꼴의 희생자입니다. 권력이 그녀들의 입을 틀어막았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여러 정황들 속에 죽은 자의 흔적은 산 자들에 의해 철저히 은폐되었지요. 우리는 어릴 적에 정의는 승리한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투쟁하지 않는 정의는 침묵하고 살해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한살 한살 나이들며 알 수 있었지요.40여년전의 정인숙이 아무리 억울하게 살해당하였다해도 결국엔 산 자에 의해 잊혀지고 장자연의 분노가 아무리 깊다해도 죽은 자는 아무 말도 못합니다.그녀의 죽음을 가까이서 목도한 이들은 권력 혹은 그 이상의 힘에의해 침묵하고 외면하겠지요.그리고 우리는 또 잊을 것입니다. 내 자녀 혹은 내 자녀의 자녀가 억울한 일로 상처 받고 찢겨지기 전까지는,그리고 나만 잘먹고 잘 살면 된다는 이기심으로 사회를 돌돌 말아 갈 것입니다.등산을 한번쯤은 다 해보셨을 것입니다. 등산로가 아닌 길로 잘못 가다 보면 길을 잃고 맙니다.올바른 길로 다시 돌아 오기까지는 험난하고 어려워서 자칫 잘못하면 조난당하기도 합니다.깊은 산속에서 조난당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작금의 대한 민국이 그런 길로 가고 있지 않나하는 마음에 몇자 적어보게 되었습니다.위정자들, 그리고 그의 추종자들은 일류 국가를 외칩니다.하지만 초일류 국가보단 국민 개개인이 억울하지 않고 행복하며 단단하고 내실있는 국가를 희해 봅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초일류 국가라는 위정자들의 염원은 공염불과도 같습니다.국토가 좁고 인적 자원밖에 없는 나라에서 중국이나 미국과도 같은 거대 강국을 꿈꾼다면 일본과도 같은 패망의길을 걷게 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작지만 내실 있고 국민 개개인이 행복한 국가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늘 국민이 깨어서 정치인들의 발길을 바로 잡아 줘야 합니다. 너는 니 길을 가라, 난 내 길을 간다라고 생각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이제는 앞이 아니라 옆과 뒤도 돌아 보며 우리 선조들의 여유로움과 이웃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던 그 마음으로 돌아가야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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