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오랑과 세오녀가 일본으로 간 까닭은? |
우리나라의 문화가 어느정도 자생력을 생성하기 시작했을때 일본문화개방이라는 악제가 발생하기도 했었다.
당시의 의식에서는 일본문화가 전면개방되면 그나마 걷기 시작한 우리나라 문화가 일본이라는 선진문화에 완전 잠식될것 이라는 우려가 충분히 우리나라 문화도 선진문화틈 바구니속에서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견보다 우세했던 기억이 난다.
1998년인가?확실한 기억인지는 알수없지만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를 본 기억이 난다.
일본 영화를 어둠의 경로가 아닌 극장 간판을 통해 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색다른 느낌이었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그렇게 점진적으로 일본 문화가 개방되면서 2004년이 후로 일본문화는 우리에게 완전히 개방되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우려와는 다르게 일본문화가 한국문화에 끼치는 영향은 미미했다.도리어 역으로 우리나라의 문화가 일본으로 수출되며 묘한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같은 해인 2004년 초 일본 NHK 위성채널을 통해 방영된 겨울연가는 일본인들의 오랜 감성을 자극하며 배용준을 욘사마로 등극시켰으며 최지우를 지우히메라 부르는등 한류의 초석을 다지기 시작한다.
물론 그전에 일본으로의 진출은 꾸준히 있어왔다.조용필과 계은숙등이 그들이었으나 한류라고 부르기에는 개인적인 성취로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지 한류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았다.
만 13세의 나이로 2000년 국내에 데뷔한 보아같은 경우는 일본 진출이 좀더 전략적이었다.국내에 잠시 얼굴을 내비친 보아는 2001년 곧바로 일본으로 진출하였고 그후 승승장구하며 일본 가요계를 접수하기에 이르른다.
이후 보아의 성공에 자극받은 국내의 여러가수들이 일본에 진출하였고 동방신기,빅뱅같은 남성 아이돌그룹과 카라와 같은 여성그룹의 성공이 뒤를 이었다
한류의 상징이 되어버린 배용준과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와빅뱅
오랜기간 한국의 드라마와 K-POP이 일본을 점령하자 한류의 반대어인 험한류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일본 자국내에
부는 한국문화 경계령이 생겨날 정도로 한류는 이본내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아이러니한 것은 양국의 문호개방에 제일 걱정한 것은 한류를 일으킨 한국 당사자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보니 반대의 현상이 일어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일본의 가요계나 문화,예술은 우리나라보다
시장규모가 훨씬 크다.즉,소모하는 콘텐츠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다양하다는 것이 어쩌면 한류가 비집고 들어갈 틈을
만들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타국의 음악,문화라도 좋으면 열광하고 받아 들일 수 있는 유기적인 사고방식이 한류의 기본 틀이라는 것이다.
도리어 우리나라같이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시장 구조에서는 하나의 콘텐츠가 성공하면 그 어떤 좋은 문화 상품조차도
쉽게 사장되고 묻혀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생각 되어진다.
프랑스에서조차 분다는 한국의 한류바람의 시초는 언제부터일까?
2004년 겨울연가때부터,약간의 억지 설정을 하자면 그 기원은 신라시대때부터라고 말하고 싶다.
바로 어릴적에 읽었던 삼국유사속의 신화 연오랑과 세오녀가 바로 그들이다.
오랫동안 왜 연오랑과 세오녀는 일본으로 갔을까?
어째서 해와달일까?등등 우리나라 고대 신화와 전설속에는 은유와 암호가 깊이 숨겨져 있어 그 숨은뜻을 찾는 것이
버릇 아닌 버릇이 되었는데 수수께끼와 같은 연오랑과 세오녀의 그때 그 시절로 잠시 들어가보도록하자.
연오랑과 세오녀가 일본으로 가져간 상품은 뭘까? |
연오랑과 세오녀의 전설을 모르는 한국 사람은 없을 것이라 여기지만 복기한다는 의미로 되짚어나가보자.
전설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러하다.
(신라 8대 임금 아달라 왕 때) 동해 연안에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살았다. 하루는 연오랑이 바다에서 해조를 따는데,
홀연 바위 하나가 나타나자, 이것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매, 사람들이 범상한 인물이 아니다 여겨 왕으로 모셨다.
세오녀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음을 이상하게 여겨 그를 찾는데 남편이 벗어놓은 신발을 보고, 역시 그 바위에 올라타니
마찬가지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 나라 사람들이 놀라 왕에게 바치니 부부가 상봉하여 세오녀는 왕비가 되었다.
이 때부터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 천문을 맡은 자가 아뢰어 말하기를
"해와 달의 정기가 우리나라에 있다가 이제
일본으로 간 까닭에 이러한 변괴가 있는 것입니다".
왕은 사신을 보내어 두 사람을 돌아오게 하였으나 연오랑이 말하기를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은 하늘의 뜻이니, 어찌 돌아갈 수 있겠소.
그러나 나의 아내가 짠 가는 명주를 줄 터이니 이것을 가지고 하늘에 제사하면 빛을 찾을 수 있을 것이오".
사신이 돌아와 아뢰고 그 말에 따라 제사를 지냈더니 해와 달이 옛날같이 빛났다.
그 명주를 어고에 두어 국보로 삼고 그 창고를 귀비고라 하고, 제사 지낸 곳을 영일현이라 하였다.
그리고는 인도국의 보살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 신화에 숨겨진 암호는 무엇이 있을까?연오랑과 세오녀는 해와달로 상징된다.남편인 연오랑이 떠나고
곧이어 아내인 세오녀가 떠나자 신라에는 빛이 사라졌다고 한다.짐작하다시피 둘에게서는 세계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일월신앙이 보인다.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독특하게도 문헌으로 확인된 일월 신앙에 관한 전설은 연오랑과 세오녀가
유일하다는 것이다.여기에서 의문은 왜 해와 달인가?하는 것이다.
단순히 해와달을 믿는 이들이 일본으로 넘어왓다고 해서 그곳에서 왕으로 지낼 수 있을까?
일본에서 한류 바람을 일으킨 우리나라 아이돌 그룹이나 드라마에는 그만의 성공요인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아무런 상품가치가 없는데 단순하게 외국에서 왔으니 좋아하고 열광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연오랑과 세오녀 역시 무언가 그들만이 가진 특별한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일본에까지 건너가 와으로 일생을 마친것이
아닐까?그렇다면 그 가치는 무엇일까?
자,그렇다면 이제 몇가지 개인적인 관점및 생각들을 토해낼 시간이다.
물론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며 의심일 뿐,역사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다.
연오랑과 세오녀같은 신화와 전설에는 커다란 그림으로 보면 역사성과 지역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위 전설에는 지역적인
특성이 여럿 보인다는 것이다.연오랑과 세오녀의 전설 마지막 부분에가면 영일현,도기야등과 같은 지명등이 나오는데
앞의 내용이 마치 지명의 유래를 설명하기 위한듯한 느낌이 드는 것 같기 때문이다.
전설이나 신화에는 비현실적인 은유법과 상징등이 특징인데 연오랑과 세오녀 역시 그런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연오랑과 세오녀가 일본을 건너간 도구가 특이하게도 바위라고 되어있는데 이것은 결국 본인의 의지라기보다는
강압적이거나 어쩔 수 없는 사정이라고 본다면 연오랑과 세오녀는 해와달을 신성시하는 부족이었으나 내부 권력의
다툼에서 지거나 패하여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해석도 가능할 것 같다.
특히 연오랑이 바위를 타고간 지점이 현재의 포항 호미곳인데 이곳은 철의 생산이 가능한 곳이기에 아마 고대에도
역시 대장간과 같이 무기등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 예상된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고대에도 무기등을 생산할 수 있는 대장간과 같은 곳은 최첨단 군사 시설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연오랑과 세오녀는 신라에서 재동,제철 기술을 보유한 집단이었으나 내부 권력의 싸움에서 밀려 일본으로 넘어갔고
당시 일본보다 월등한 문화,군사력을 보유한 연오랑은 다시 세오녀를 불러오는데 아마도 세오녀 역시 연오랑과 견줄만한
세력 내지는 제출 기술을 보유하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신화나 전설을 개인적인 추측으로 유추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줄은 알지만 우리 나라의 자료같은 경우에는
너무나 빈약하기에 이런 경우가 솔직히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이다.
뭐,어쩌면 당연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연오랑과 세오녀가 실존한 인물이 전설화 된 것이란 것이라면 이들은 한반도
내에서는큰 세력은 아니었겠지만 일본에 가서는 왕이 될 정도의 기술과 세력을 지녔으리라 본다.
물론 이들이 일본 전체를 지배하는 왕이 된 것은 아니었다.(당시의 일본은 여러 도시 국가 형태로 쪼개여져 있었다)
신화와 전설은 어제가 아닌 오늘날의 우리 자화상과 같다.한류의 바람이 거세다하여 이런 문화 현상이 백년,만년 지속
되지도 않으며 문화는 돌고 도는 것이다.
어제는 중국이 우리에게 문화를 전파하고 오늘은 우리가 일본에게 전파하며 내일은 또 다른 바람이 분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해야 겨우 불기 시작한 한류라는 바람이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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