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당유고 박창화의 고구려사초(高句麗史抄) 고구려사략(高句麗史略)제7대 태조황제기 고구려의 새 역사를 열다 태조황제는 이름이 궁이다. 또는 어수라고도한다. 신명선제의 큰아들이고 어머니는 부여씨인 호화태후인데 동부여의 태사인 왕문의 딸이다. 임금께서는 태어날때부터 눈을 뜨시고 보실수 있으셨다. 신통한 힘으로 요동을 쳐서 큰 공을 세우셨다. 이제 제위에 오르시니 나이가 마흔다섯이었다. 아량이 넓고 어질고 효도를 하며 우애가 두터웠다. 타인을 존경하였다. 부황이 정사에 별 뜻이 없어 모친에게 물었기에, 태후가 정사를 처결하였고, 태보를 따로 두지 않았었다.원년은 임자년(AD112)이다. 6월에 先帝을 태상황으로 추존하고 모후를 호화궁황태후로 추존하였다. 마락을 좌보로 삼고 송두지를 우보로 삼았다. 신명이라는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