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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폐라뮤지엄/우리 고대사 역사 바로보기23

왕이 된 승려 궁예_미륵불 신앙을 내세운 개혁군주였을까 아니면 왕건의 역성혁명에 의해 폭군으로 내몰린 비운의 지도자였는가? 미륵불 신앙을 내세운 개혁군주였을까 아니면 왕건의 역성혁명에 의해 폭군으로 내몰린 비운의 지도자였는가? 왕이 된 승려 궁예 우리나라 역사에서 성군이 흔하지 않듯이 폭군도 마냥 흔한 것은 아닙니다.하지만 폭군하면 연상되는 군주들은 몇몇 있는데 조선 시대에는 연산군가 광해군이 그러하고 신라말 고려초의 궁예 또한 폭군의 대명사처럼 남아 있습니다.하지만 시간이 흘러 폭군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는데 폭군으로 기록된 광해군의 경우 승자에 의해 입맛대로 광해군을 폭군으로 만들며 반정 세력의 명분을 만들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그렇다면 왕건이 창업한 고려 이전 궁예로 대표되는 후고구려의 경우 궁예의 강력한 카리스마로 한반도 전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더 중 왕건에 의해 쫒겨난 궁예는 왜 역사에 폭군으로 기록되고 비참한 죽음.. 2024. 1. 20.
추모왕(주몽)의 고구려 최초 도읍지_졸본성은 환인 오녀산성이 아니라 중국 대륙 산둥성에 있었다! 추모왕(주몽)의 고구려 최초 도읍지 졸본성은 환인 오녀산성이 아니라 중국 대륙 산둥성에 있었다! 삼국사기에 최초로 졸본이 등장하는 졸본성은 700년의 장대한 역사를 가진 고구려 왕조의 첫 번째 수도로 시조 동명성왕 고주몽이 북부여에서 남하해 졸본 땅에 고구려를 세웠으며 이후 제2대 유리명왕이 국내성으로 천도하기까지 약 40여 년간 초창기 고구려의 수도였습니다.동명성왕 고주몽은 세 현자를 만나 신하로 삼은 뒤, 아래의 선언을 하며 공식적으로 국가 건설에 나섰지만 북부여에서 도망쳐 나와 궁전을 지을 겨를이 안되어 졸본천 비류수 가에 초가집을 지어 임시로 거주했다고 합니다. "난 경명(景命)①을 받들어 원기(元基)②를 세우고자 한다." 그러나 급하게 궁실(宮室)을 만들지 않고 단지 초가집을 지어 비류수(沸流水.. 2023. 12. 6.
고구려 건국시조 고주몽 죽음의 미스터리_중국 왕망에게 처형당한 고구려후 추(騊)는 추모왕이었을까?유리왕일까? 중국 왕망에게 처형당한 고구려후 추(騊)는 추모왕이었을까?유리왕일까? 고구려 건국시조 고주몽 죽음의 미스터리 맨몸으로 부여를 탈출하고 고구려를 창업한 불세출의 영웅 고주몽은 추모왕이 되어 고구려 700년의 기틀을 다지고 40세의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이합니다.같은 해 부여에서 자신을 찾아온 아들 유리에게 태자의 지위를 준지 5개월만으로 이 급작스러운 추모왕의 죽음은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습니다. 추모왕이) 그러다 세위(世位)를 즐기지 않게 되자, (하늘이) 황룡(黃龍)을 내려보내 왕을 맞이하였다. 왕은 홀본 동쪽에서 용의 머리를 밟고 승천(昇天)하셨다(不樂世位因遣黃龍來下迎王王於忽本東履龍頁昇天) /광개토대왕릉비 가을 9월에 왕이 하늘에 오르고 내려오지 않으니 이때 나이 40이었다. 태자(太子)가 왕이 .. 2023. 12. 5.
고구려 왕 계보 미스터리_유리왕은 추모왕의 진짜 아들이었을까? 고구려 왕 계보 미스터리 유리왕은 추모왕의 진짜 아들이었을까? 고구려는 기나긴 역사만큼 뛰어난 왕들이 많이 배출된 나라이지만 그만큼 긴 역사 속에 고구려 왕들의 계보에는 수많은 미스터리가 있기도 합니다.특히 고구려를 창업한 주몽 추모왕과 그 뒤를 이은 유리왕은 고구려의 찬란한 역사의 시작점이기도 하지만 추모왕과 유리왕의 혈통에 대한 의문점 역시 존재하기도 합니다.삼국유사 왕력 유리왕 부분에 ‘유리왕의 성은 해씨(解氏)이다.’라는 기록도 있는데 동명성왕은 고씨이고 유리왕은 해씨이므로 동명왕과 유리왕은 혈통이 다르다는 견해가 있습니다.해씨 고구려설과도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지만 반면 동명성왕이 원래 해씨였으나 부여를 탈출하고 고구려를 세우면서 고씨로 성을 바꿨고 아들인 유리왕은 그 사실을 모른 채 부여에 남아.. 2023. 12. 4.
주몽이 계승한 숨겨진 고구려의 전신 고대국가 구려_700년 역사의 고구려가 아닌 900년 역사의 고구려를 발견하다 700년 역사의 고구려가 아닌 900년 역사의 고구려를 발견하다 주몽이 계승한 숨겨진 고구려의 전신 고대국가 구려 동부여서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과 내려온 고주몽은 고구려를 창업한 뒤 강력하게 성장합니다.이런 고구려 성장의 비밀은 기존에 존재했던 고대국가 구려에 있습니다. 고주몽의 고구려는 맨손에서 출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구려의 왕권과 영토를 그대로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고구려의 건국자인 고주몽은 부여의 망명 정치세력의 대표자로 망명한 지 2년 만에 고구려를 건국했습니다. 고주몽이 빠르게 새로운 나라 고구려를 건국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고주몽이 구려왕의 사위가 되어 구려 왕이 죽자 구려의 왕권을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주몽은 구려의 왕을 물려받으면서, 구려라는 나.. 2023. 12. 2.
위대한 태양의 나라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_추모왕이 국호를 고구려라 이름 지은 의미와 뜻 추모왕이 국호를 고구려라 이름 지은 의미와 뜻 위대한 태양의 나라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 한국의 고대사를 비롯하여 한국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가장 진취적이면서 대외적으로 가장 활발한 정복 전쟁을 펼쳤던 국가가 고구려입니다.물론 고구려 멸망이후로 한국의 역사는 점차 한반도로 영역이 축소되었고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은 만주 벌판을 내달렸던 고구려인들의 기상을 잃어버린지 오래지만 한류가 전 세계를 휘몰아치는 현상을 목격하는 21세기에 들어서 군사력으로 중국과 동북아 영토 전쟁을 벌였던 고구려인들의 기상이 문화적인 기상으로 부활한듯한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고구려는 기원전 37년, 22세 되던 해에 주몽이 건국한 고대 국가입니다.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졸본 땅은 말갈에게 자주 약탈을 당하고 있.. 2023. 12. 1.
인기급상승!최수종 주연 고려거란전쟁 속 거란에 대해 알아보기 대하 드라마 속 각종 왕들을 연기한 최수종이 강감찬 역으로 주연한 고려거란전쟁 속 거란은 과연 어떤 나라였을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2023년 11월 11일부터 방영 중인 KBS의 34번째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태종 이방원을 잇는 대하드라마로 고려와 거란족의 요나라가 충돌한 여요전쟁 중 제2차 여요전쟁, 제3차 여요전쟁을 배경으로 합니다.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은 1009년(고려 목종 12/현종 즉위년)에서 1019년(고려 현종 10)까지이며, 주요 장소는 개경과 서경을 비롯한 한반도 대부분과 거란의 수도였던 상경임황부입니다.오랜만의 대하사극 드라마인데다 흔치 않은 고려사와 거란을 다루며 이목을 끌었던 고려거란전쟁은 방영 첫 주만에 넷플릭스 국내 1위를 차지하여 OTT에서 좋은 흥행률을 보여주었으며, .. 2023. 11. 30.
고구려 추모왕의 롤모델 부여시조 始祖 동명왕東明王 고두막한_잊혀진 부여왕국 두막루 고구려 추모왕의 롤모델 부여시조 始祖 동명왕東明王 고두막한 잊혀진 부여왕국 두막루 동명왕 고두막한은 논형(論衡) 길험편에 전하는 부여의 시조입니다. 또한 고려시대 이후의 문헌에서 고구려의 시조 추모왕을 지칭하는 명칭이기도 하나 현재 역사학에서는 추모와는 다른 인물로 삼국유사에서는 북부여의 시조라고 전해지는 해모수를 계승한 인물로 묘사되었으며, 졸본에 도읍을 정해 부여를 건국하고, 훗날 고구려 건국에 영향을 준 인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삼국사기에서는 고구려를 건국한 동명성왕 고주몽이 졸본부여를 계승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는 해석상의 차이로서 논란이 있는 부분이기는 한데 졸본에 도읍을 정해 부여를 건국한 인물은 일반적으로 주몽(추모)과 동일시되지만 주몽을 부여의 건국자로 보는 이유는 단순히 이름이 동명으로 같.. 2023. 11. 22.
고구려와 백제,발해는 모두 부여의 별종이다_고조선 계승국 부여 이야기 고구려와 백제,발해는 모두 부여의 별종이다 고조선 계승국 부여 이야기 ▒고조선 멸망 후 열국시대에 접어들다 우리 나라 상고사는 단군조선 이전의 국가부터 고조선의 멸망이후 고구려가 등장하기 전까지 부여라는 고대 국가를 비롯하여 많은 기록이 유실되어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비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우리 한민족의 최초의 국가라고 말하는 고조선 멸망이후에 대한 기록 자체도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에서 고조선은 기원전 4세기경 진조선辰朝鮮(만주), 불조선卞朝鮮(요서), 말조선馬朝鮮(한반도)의 삼조선으로 분립하였으며 이후 열국 시대가 전개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신조선 지역에는 해부루解夫婁가 동부여東扶餘를 건국하여 후에 동북부여, 동남부여로 분리되었고, 해부루와 .. 2023. 11. 21.
고-한(漢)전쟁·최후의 왕험(검)성 전투 그리고 고조선의 패망_역사학자들이 비정한 한사군 실제위치와 단군조선를 계승한 부여의 탄생 역사학자들이 비정한 한사군 실제위치와 단군조선를 계승한 부여의 탄생 고-한(漢)전쟁·최후의 왕험(검)성 전투 그리고 고조선의 패망 고-한(漢)전쟁 최후의 왕험(검)성 전투는 한나라와 총 2차례 펼쳐졌습니다.당시 한나라는 정점으로 치닫는 황금기의 한무제 시기였고 인구나 국력이 고조선을 크게 압도했습니다. 또한 한무제는 주변국 정복에 의욕이 넘쳤는데 한나라 건국 시점부터 골칫덩이였던 흉노를 막북전투 끝에 제압하는 데 성공했고 베트남의 남월도 기원전 111년에 멸망시킨 상황이었습니다. 흉노에 복속되어있던 서쪽 실크로드 도시국가들도 한나라의 영향력에 들어왔으니 중국의 서남북이 평정된 상황에서 한무제에게 남은 건 오로지 동쪽의 고조선 뿐이었습니다.고조선에 갔던 사신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자 한무제는 이를 빌미로 고.. 2023. 11. 20.
일제 어용사가들이 왜곡한 낙랑군 재평양설_낙랑은 고조선 문화이다! 일제 어용사가들이 왜곡한 낙랑군 재평양설 낙랑은 고조선 문화이다! 우리 한민족의 고대사는 중국의 동북공정 뿐 아니라 일제에 의해 왜곡되고 일제의 가르침을 신성처럼 떠받드는 일제 어용사가들에 의해 확대되어 현대 국사 교육에 활용되어 오고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낙랑군 재(在)평양설의 경우 일제 때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닙니다. 문제의 발단이 된 것은 중국 한서 지리지에서 부터였는데 한서 지리지 저자 반고(32~92년)가 낙랑군의 위치를 아리송하게 만들어 놓은 데서부터 시작됐지만 결정적으로는 수경주의 저자 역도원(466?~527년, 북위의 지리학자)이 낙랑군이 평양 일대에 있었다고 주장하면서부터였습니다.이후 낙랑군 위치문제에 대한 논쟁이 세기와 세기를 거듭하면서 계속돼 왔으며 조선시대에도 대체로 낙랑군.. 2023. 11. 18.
우리 고대사에 기자조선은 없었다!_기자조선의 허구성과 5천년전 중국의 동북공정 기자조선의 허구성과 5천년전 중국의 동북공정 우리 고대사에 기자조선은 없었다! 우리 한민족의 기원이라할 수 있는 단군 조선과 위만조선 사이에 기자조선이 존재했다는 설이 있었습니다.흔히 기자동래설이라 하는데 고대 중국 주나라 초기인 BC 1122년에 은나라 왕족 출신인 기자라는 인물이 주나라 무왕의 책봉을 받고 우리나라에 와서 나라를 세우고 조선을 문명개화하였다는 설이 바로 기자동래설입니다. 사대주의에 물들은 고려와 조선시대 지배층들은 기자동래설을 사실이라 믿고, 기자숭배 사상을 퍼뜨렸습니다. 과연 기자가 우리나라에 와서 중화문물을 전달했고, 그 결과 우리나라가 문명개화했는가?이것은 마치 일제가 조선을 문명개화시키기 위해 조선합병을 한 이유와 무척이나 흡사한데 이 기자동래설이 문제로 되는 것은 중국 역사학.. 2023. 11. 17.
고조선의 마지막 왕조 만조선_위만은 중국인이 아닌 조선인이었다! 고조선의 마지막 왕조 만조선 위만은 중국인이 아닌 조선인이었다! 한민족의 고대국가를 형성한 고조선은 단군조선, 후조선, 만조선이라는 세 왕조가 있었는데, 이를 삼조선이라고도 합니다. 기원전 15세기경 단군조선은 내부적 모순의 축적으로 약화 몰락하고, 후조선이 성립하는데 후조선은 단군조선 시기의 영토였던 부여, 구려, 진국 등이 분리 독립해 나가 영토가 축소됐지만, 왕조 성립 이후 신속히 내부 체제를 정비하고, 의무려산맥 서쪽지역(요서지역)으로 광범히 진출해 난하 중류 일대까지 영토를 확장했지만 연나라 소왕 때 장수 진개의 고조선 침략으로 요하 서쪽 지역 2000여리의 땅을 연나라에 빼앗긴 후 나라가 약화됩니다. 후조선 마지막 왕인 준왕 때에 이르러 서변의 제후로 있었던 위만에 의해 멸망했는데 이때가 기원.. 2023. 11. 16.
고조선의 마지막 수도 왕험(검)성은 북한 평양이 아닌 중국 장단경이다_역사학자들과 사료가 비정한 단군조선의 수도 위치 고조선의 마지막 수도 왕험(검)성은 북한 평양이 아닌 중국 장단경이다 역사학자들과 사료가 비정한 단군조선의 수도 위치 ▣역사학자들이 말하는 고조선의 수도 위치 오늘은 단군조선 혹은 고조선의 수도라고 알려진 왕험성(왕검성)의 위치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현재 왕험성의 위치는 북한에 위치한 평양이었다는 것이 20세기 근대역사학이 정립된 이래 철벽처럼 군림해온 학설 중 하나로 정확히는 대동강 북쪽 평양 일대에 있다가, 한 제국이 기원전 108년 고조선을 멸망시킨 뒤 강 남쪽으로 거점(낙랑군 치소)을 옮겼다는 식민지 시대 일본 학자들의 추정이 100여년간 건재해왔다는 것입니다. 1960년대 이후 남북한 학계에서는 요동이 중심지였다가 기원전 3세기 연나라 장군 진개의 침공에 따라 평양으로 이동했다는 설도 .. 2023. 11. 15.
5천년전 고조선은 거대문명국이었다_역사학자들이 바라본 단군조선의 상투와 비파형동검,다뉴세문경에 담긴 초정밀기술 역사학자들이 바라본 단군조선의 상투와 비파형동검,다뉴세문경에 담긴 초정밀기술 5천년전 고조선은 거대문명국이었다 燕王 盧綰反, 入匈奴, 滿亡命, 聚黨千餘人, 椎結蠻夷服而東走出塞度浿水, 居秦故空地上下障. 연왕 노관이 반란을 일으켜 흉노로 들어가자,위만도 망명하였다. 그는 무리 천여명을 거느렸는데, 상투를 하고 오랑캐 옷을 입었으며, 동쪽으로 도망하여 요새를 나와 패수를 건너 진나라의 옛 공지인 상하장에서 살았다. /한서(漢書) 조선전(朝鮮傳) 고조선(古朝鮮) 상투하면 우리는 보통 100여년전 조선 사람들의 상투를 연상하기 마련이지만 상투는 이미 고조선 시대부터 해오던 우리 한민족 고유의 문화였다는 것입니다.그런데 상투(Sangtu)를 우리 민족만 해왔다고 생각하면 안되는 것이 상투는 한민족 뿐 아니라 고대 .. 2023. 11. 3.
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 경계선 패수는 어디일까?_역사학자들이 바라본 패수 논쟁 속 패수의 위치를 찾아라! 역사학자들이 바라본 패수 논쟁 속 패수의 위치를 찾아라! 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 경계선 패수는 어디일까? 패수 또는 패강(浿江), 패하(浿河)는 고대 상고사 고조선부터 한국사 문헌 기록에 자주 등장하는 강의 이름으로 패서 지방이나 패강진 등은 여기서 파생된 지명으로 사기(史記)와 한서(漢書)조선전(朝鮮傳)에 기록된 고유명사로 열수(列水)와 아울러 일찍이 중국에도 그 이름이 알려진 강이기도 합니다.그 위치에 대하여는 학설이 다양하며, 패수를 어디로 비정하느냐에 따라 고조선과 한 나라의 강역이 달라질 수 있어 매우 중요하기도 합니다. 또한 패수라는 이름은 시기별로 그 지칭 대상이 다른데 대략적으로 한반도 서북지역의 강으로 비정되나, 고조선대에는 주로 압록강 또는 청천강으로 삼국시대 이후로는 대동강이나 예성강.. 2023. 11. 2.
고조선 단군왕검 신화에 대한 역사적이면서 매우 사실적인 해석 고조선 단군왕검 신화에 대한 역사적이면서 매우 사실적인 해석 우리나라 역사 중 상고사에서 고조선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고조선 특히 단군조선은 신화와 전설로만 접근할 수 밖에 없다는 문제가 있습니다.한민족에게 있어 단군 조선의 건국은 처음으로 계급국가의 탄생이기도 합니다.또한 단군이란 존칭은 후세에 우리 선조들이 한자를 쓰기 시작하면서 민족의 원시조를 가리키던 고유 우리말을 이두식으로 표시한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檀君(단군)의 한자말 뜻으로 단군의 의미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어쩌면 잘못된 것일수도 있습니다. 단군에서 단은 음을 취하고 군은 뜻을 취해 단군이라고 불렀던 것인데 그렇다면 단군이란 원래 우리말로 어떤 의미였을까?단군의 명칭과 관련해 주목을 끄는 것은 .. 2023. 11. 1.
고조선의 건국과 탄생_역사학자들이 본 고조선과 중국의 경계선 및 최대 영토 역사학자들이 본 고조선과 중국의 경계선 및 최대 영토 고조선의 건국과 탄생 중국 동북공정과 국내 주류사학자들에 의해 지워진 단군조선-신화와 역사의 경계에서 잠든 한민족 고대사에서는 동북공정과 국내 주류 사학자들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지워진 고대의 국가 단군 조선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그렇다면 실제 고조선의 건국과 위치,고조선과 중국의 경계 및 영토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안타깝지만 단군 조선을 지우고 기자 조선을 한민족의 시초라고 단정지은 중국 동북공정 작업은 상당 부분 중국 내에서 통용되고 있는 실정이며 국내 정신 빠진 주류 사학자들의 동조와 방관으로 인해 우리의 상고사는 단군 조선을 잃고 3천년의 역사로 줄어들어 버렸고 그렇게 통용되어온 한민족 고대 상고사 고조선에 시각과 전혀 다른 논리를 전.. 2023. 10. 28.
중국 동북공정과 국내 주류사학자들에 의해 지워진 단군조선_신화와 역사의 경계에서 잠든 한민족 고대사 중국 동북공정과 국내 주류사학자들에 의해 지워진 단군조선 신화와 역사의 경계에서 잠든 한민족 고대사 고조선 특히 단군조선의 탄생은 우리 한민족의 역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아래로는 부여와 고구려의 선대 문명이며 위로는 환단고기의 환국과 배달국이라는 문명의 하위문명이자 계승자이기 때문입니다.고조선이 요하문명 홍하문화의 계승자이거나 그 주인공이라면 우리 나라의 상고사는 더욱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고조선 자체를 신화 내지는 전설의 영역에 놓아버리면 우리 역사는 영토 뿐 아니라 역사적 시간들도 반토막내기 때문입니다. ▣중국 동북공정으로 지워진 고조선의 존재 우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고조선은 현재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해 존재 자체가 지워진 상태입니다.중국인들은 동북.. 2023. 10. 27.
치우천황과 황제 헌원의 동북아 역사 10년 전쟁_탁록 대전의 승패와 중국 동북공정의 실체적 진실②부 치우천황과 황제 헌원의 동북아 역사 10년 전쟁 탁록 대전의 승패와 중국 동북공정의 실체적 진실②부 황제 헌원과 격돌한 치우는 신화적으로 오랫동안 요괴, 마물 또는 괴물로 취급되었지만 그러면서도 치우 신앙 또한 분명히 존재하였고, 많은 중국의 군주들도 전쟁에서의 승리를 그에게 기원했듯, 시대와 기록에 따라서 그 위상이 천차만별이었다는 것입니. 천자의 재상, 대제후, 섭정과 서자 떨거지, 요괴, 재앙신 등으로 위상이 매우 달라졌는데 한고조 유방도 치우에게 제사를 지내고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는 등 군신으로서 치우 자체에 대한 신앙은 면면히 존재해 왔습니다.하지만 이는 지역마다 달라서, 치우 신앙이 시작된 중국 동북지방에서는 상당히 대우가 좋았는데 진나라때 진시황에게 접근한 방사들이 숭상을 권한 팔신중에 치우.. 2023. 10. 26.
치우천황과 황제 헌원의 동북아 역사 10년 전쟁_탁록 대전의 승패와 중국 동북공정의 실체적 진실①부 치우천황과 황제 헌원의 동북아 역사 10년 전쟁 탁록 대전의 승패와 중국 동북공정의 실체적 진실①부 우리에게 치우천황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치우 응원으로 더욱 유명하고 친숙하지만 치우천황은 동북아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황제 헌원과 탁록에서 10년간의 전쟁을 통해 결국은 패배한 전쟁의 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그렇다면 치우천황과 황제헌원은 왜 10년간 전쟁을 벌이게 된 것일까?우선 치우천황의 라이벌 황제헌원부터 알아보자면,황제는 화하(華夏)라는 실체를 구성했다고 일컬어지는 전설상의 군주로, 사마천은 삼황오제에서 삼황 부분은 전설이라고 치부해 아예 언급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오제부터는 본기(本紀)로 저술했으므로 이 부분부터는 역사라고 생각했던 모양인데 사실 사마천도 이 부분에서는 고민이 많았는데 사기는 .. 2023. 10. 25.
환단고기 속 환국과 배달국은 실존여부와 요하문명 홍산문화와의 상관 관계에 대한 고찰 환단고기 속 환국과 배달국은 실존여부와 요하문명 홍산문화와의 상관 관계에 대한 고찰 한국의 고대사는 역사 속에서 완전히 지워져 버렸다고 할 정도로 그 자료라는 것이 전무하다시피 합니다.우리 나라의 고대사의 시초는 고조선으로 상정하고 있지만 그것조차 신화의 영역에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그러다가 고등학교 시절 교과서 역사공부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환단고기라는 책을 접하게 됩니다.물론 말도 안되는 고대사라는 생각과 위서라는 전문가들의 말에 그냥저냥 책장 속에 쳐박아 둔 책이기도 합니다.하지만 중국 대륙에서 발견된 제 5의 문명이라 일컬어지는 요하문명 홍산 문화를 접하면서 환단고기 속 말도 안되는 환국과 배달국이 실존했을 수도 있으리라는 상상을 가져보기도 했습니다.환단고기(桓檀古記)는 1979년에 이유립이 출.. 2023. 10. 18.
고대 한반도의 원류를 찾아서,제 5의 문명 요하문명 홍산문화_중국의 요하공정과 동북공정에 지워진 한민족의 실제 역사지도 중국의 요하공정과 동북공정에 지워진 한민족의 실제 역사지도 고대 한반도의 원류를 찾아서,제 5의 문명 요하문명 홍산문화 현재 우리나라의 상고사 역사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의해 지워지고 삭제되고 왜곡되며 한반도 속으로 축소되어 가고 있습니다.개인적으로 역사학자도 아니고 관련 지식이 특출나지도 않지만 우리나라의 상고사는 신화로 치부되는 단군의 고조선에 의해 시작되어 부여-고구려,백제,신라-발해와 신라 그리고 고려와 조선까지 이어집니다.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고려 시대까지 우리 나라의 활동 영역은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조선 시대 역시 지금 현재 한반도 영토보다는 간도 지역까지 포함하고 있지만 고려 시대까지는 분명히 우리가 알고 있는 영토보다 넓게 영역을 확장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백제와 고구려가 나.. 2023.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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