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당유고 박창화의 고구려사초(高句麗史抄) 고구려사략(高句麗史略)제4대 민중제기_짧은 재위기간으로 명을 다하다
남당유고 박창화의 고구려사초(高句麗史抄) 고구려사략(高句麗史略)제4대 민중제기 짧은 재위기간으로 명을 다하다 帝, 諱, 之季子也. 母, 太后. 性, 寬厚好賢. 之伐時, 守都得宜故信其能, 而臨崩, 寄以大事. 群臣, 以為不肖, 而立之. 卽位於. 以為太子, 戒之以善. 민중제의 휘는 해읍주이며, 광명제의 막내아들이고, 모친은 송태후이다. 성품은 너그럽고 후하였으며 현명한 이를 좋아했다. 대무가 부여를 정벌할 때, 민중은 도읍을 {잘} 지켜내었기에 마땅히 그 능력을 인정받았었고, 선제가 임종할 때 큰 일{나라 다스리는 일을 맡았다. 군신들도, 모본이 불초한 까닭에, 해읍주{민중}를 보위에 세웠다. 란대에서 즉위하였다. 해우{}를 태자로 세우고, 선{善}한 방도로 그를 타일렀다. ◎ 元年甲子, 十一月, 大赦. 群臣..
2023. 11. 6.
남당유고 박창화의 고구려사초(高句麗史抄) 고구려사략(高句麗史略)제3대 대무신제기_부여를 복속하고 정복국가 고구려로 거듭나다
남당유고 박창화의 고구려사초(高句麗史抄) 고구려사략(高句麗史略)제3대 대무신제기 부여를 복속하고 정복국가 고구려로 거듭나다 ○ 대무 원년{단기2361년/AD28}무자, 11월 연호를 대무로 고쳤다. 다물후인 송의를 태보 겸 주민대가로 삼고, 모친인 송후를 태후로 올렸으며, 비{妃}였던 진 공주를 황후로 올렸다. 용산{동명릉}에 가서 즉위하였음을 고하였다. 이해에 나이 25세였다. ◎ 元年戊子, 十一月, 改元. 以為太輔․主民, 以母后為太后, 以妃公主為皇后. 如, 告卽位. 時, 年二十五. ○ 대무 2년{단기2362년/AD29}기축, 정월 황후가 아들 대해를 낳았기에, 천하의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한남{汗南}국이 가물고 황충이 일어 백성들이 굶게 되자, 찾아와 의지하려는 이들이 1,000여 호가 되었다...
2023. 1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