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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폐라뮤지엄/고구려사략

남당유고 박창화의 고구려사초(高句麗史抄) 고구려사략(高句麗史略)제5대 모본제기_고구려 최초의 폭군,신하에게 시해되다!

by 마음heart 2023.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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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당유고 박창화의 고구려사초(高句麗史抄) 고구려사략(高句麗史略)제5대 모본제기

고구려 최초의 폭군,신하에게 시해되다!



모본제의 이름은 해우이고 대무신제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오태후로 오이의 아들 의 딸이다. 용모가 아름답고 말타고 활쏘는데 아주 능하였다. 허튼소리와 비위를 잘맞추고 옛 무제가 그를 귀여워하여 정윤[동궁이 될 수 있는 친자식]으로 삼았는데 이윽고 뜻 하던 것을 얻었으므로 후궁들과 어지러이 놀아났으며 성품은 아주 잔인하였다. 무제는 죽음을 앞두고, 태갑의 옛일太甲故事을 민중에게 시키면서, 해우가 개관천선하기를 기다렸다가 해우에게 물려주라고 하였다. 오태후에게도 명하길 민중을 받들면서 그 일을 이루라고 하였다. 아직 개과의 기운도 보이지 않았는데, 민중은 해우가 개과한 것으로 알고 양위하려고 하였다가, 오후가 힘껏 말려서 그리 하지 못하더니, 오히려 좌우들에게 “나는 오후 때문에 형님의 뜻{해우가 개과하면 보위를 물려주라 한 것}을 이룰 수 없다.”라고 하면서,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병들어 죽었다. 유명에 따라 {해우가} 제위에 올랐더니, 오후가 제{모본}에게 이르길; “네 아버지{민중제}께서는 너를 보위에 세우려고 하셨는데, 나는 너를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말렸었다. 이제 유명을 좇아 너를 보위에 세운다. 너는, 네 두 아버님{대무신제와 민중제}의 뜻을 깨달아, 천자가 갖추어야 할 덕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라 하였더니, 제{모본}는 평소에 효행을 {하는 체는} 하였었기에, “예! 예!”라고만 대답하고 제위에 올랐던 것이었다.           

                                   
帝, 諱<解憂>, <大武神帝>之子也. 母, 曰<烏>太后, <烏伊>子<婁>之女也.  容皃美麗, 而能騎射, 善諧謣阿諛, 故<武帝>愛之以為正胤. 旣得志, 多亂後宮而性頗殘忍.  <武帝>, 臨崩, 命<閔中>令行「太甲故事」; 待其改過而傳位, 又令<烏>后事<閔中>而完其事. 未幾, <閔中>見其改過之跡而欲讓位, <烏>后力止之而未得. 常謂左右, 曰;“吾, 以后故未副兄志.” 夜不能寢, 疾作而崩. 以遺命, 立帝.  <烏>后謂帝, 曰;“汝父欲立汝, 吾力止之者, 猶有未信故也. 今, 以遺命, 立汝. 汝, 其體汝二父之心而無失天子之德.” 帝, 素有孝行, 故唯唯而卽位.


◎ 元年戊辰, 六月, 葬先帝于石窟. 謂左右, [曰];“叔父, 以我長而賢, 欲傳位. 二三奸臣, 托以母后之命, 而拒之. 母后豈惡我哉. 是乃太輔之過也.” 乃罷<麻勁>為庶人, <松宝>․<乙祥>皆免. <烏希>左輔, <羽真>右輔委軍國大事. 尊母<烏>氏為太后, 納<羽真>女為皇后. 廢元妃<麻>氏, 曰;“<勁>, 以女妻朕, 窘我久矣. 今廢之, 爽然.” <烏>太后曰;“汝云改過, 而復如此. 汝父有靈, 必復<閔中>矣.” 盖先帝常以帝亢<閔中>, 故如是言也.  七月, 復納<烏希>女為副后.  八月, 山崩二十餘所, 上有惧色, 命停采女.

○ 모본 원년{단기2401년/AD68}무진, 6월

선제를 석굴에 장사하고 나서, 신하들에게 말하길; “숙부{민중}는, 내가 커서 알 만큼 알게 되자, 전위하려고 하셨는데, 두 세 명의 간악한 신하들이 모후의 명을 핑계 삼아 그 일을 막았었소. 모후께서 어찌 나를 헐뜯었겠소? 이 모두는 태보의 잘못이었던 것이오.”라 하고는, 마경은 파직하여 서인으로 만들고, 송보와 을상은 면직시켰다. 오희를 좌보로 삼고, 우진은 우보로 삼아서 군국대사를 맡겼다. 자신의 모친은 태후로 올리고, 우진의 딸을 거두어 황후로 삼았다. 원래의 비였던 마씨를 폐하며 말하기를; “마경은 제 딸을 짐에게 처로 주어놓고, 나를 오래도록 괴롭혔다. 지금 이를 폐하니, 속이 후련하다.”라 하였다. 이에 오태후가 이르길; “너는 개과천선했다고 하지만, 지금 하는 짓을 보니 옛날과 똑같구나. 네 아버님{대무신제}의 혼령이 있다면 반드시 민중을 다시 세울 것이다.”라 하였다. 개략 선제{대무신제}가 항상 제{모본}를 민중에 견주어 보았었고, 그런 까닭에 이런 말을 했음이었다.  7월, 오희의 딸 하나를 더 거두어 부후로 삼았다.  8월, 20여 군데의 산이 무너지자, 상은 두려운 안색이 되어, 여자들 뽑아 들이기를 중지시켰다.

◎ 十月, 以元子<翊>為正胤. <翊>, 時十一, 自其母<麻>氏出宮, 號泣不食. 太后叱帝, 曰;“汝欲殺子耶.” 上, 乃召<麻>氏同寢, 曰;“使汝出宮者, 欲使汝父改過也.” 乃慰<翊>而為嗣者也. 先是, 上行天祭于神隧, <羽真>請立<翊>. 上, 曰;“朕欲以卿女之子為嗣.” <羽真>{曰};“臣女幼, 何可待之. 且<翊>有孝行如陛下, 故國人敬之. 陛下, 若以<翊>為臣女之子, 不亦好乎.” 上, 感其言, 而立<翊>. <羽>皇后, 亦累言<麻>氏之賢, 而復后, 故以<翊>為<羽>后之子.  <扶余>再乱, <再思>․<芦花>與<穆卓>徃鎭之.  如<曷思宮>. 左輔<烏芾>諫, 不聼.

○ 10월, 원자 익을 정윤으로 삼았다. 익의 나이는 11살이었다.  익은 어미가 출궁된 이후, 울부짖으며 먹기를 마다하니, 태후가 제를 꾸짖어 말하길; “너는 자식을 죽일 셈이냐?”라고 하였다. 이에 상은 마씨를 불러들여 동침하면서 “내가 당신을 출궁시켰던 것은 당신의 아비가 잘못을 뉘우치게 하려 한 것이었었소.”라 하였으며, 익을 위안하고 후사로 삼았다. 이에 앞서 상이 신성한 동굴무덤을 찾아 천제를 지낼 때, 우진이 익을 {후사로} 세우길 청하였더니, 상이 말하길; “짐은 경의 딸이 낳은 아들을 후사로 삼으려 하오.”라고 하였고, 우진이 아뢰길; “신의 딸은 아직 나이도 어린데 어찌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익은 효행이 폐하와 같아서, 나라사람들이 공경하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익을 신의 딸이 낳은 자식으로 삼으시면, 그 또한 좋지 않겠습니까?”라 하니, 상이 그 말에 마음이 동하여 익을 세웠다. 우황후 또한 마씨의 현명함을 누차 간하였더니, 마씨를 후로 복위시키고, 익은 우후의 아들로 삼아주었다.부여가 다시 어지러워졌더니, 재사와 호화가 목탁과 함께 가서 진압하였다. 갈사궁{異腹弟<再思>母, <大武神>之后}에 거둥하였다. 좌보 오불이 말렸으나, 듣지 않은 것이었다.

◎ 二年己巳, 正月, 擇宗室公卿女七人納後宮, 又采民間女七十人分屬七宮, 淫荒為事.  三月, 暴風拔樹.  四月, 霜雹. 上, 怒, [曰];“天旣惡我, 我亦惡天.” 命左右射天.  八月, 發倉賑民.  納<好童>女<葦花>. <再思>[之]室也.  <曷思宮>, 生女怩之, 曰;“生此, 何為.” 乃名<怩>.

○ 모본 2년{단기2402년/AD69}기사, 정월

종실과 공경들의 딸 일곱을 뽑아 후궁으로 들이고, 백성의 딸 70명을 가려 뽑아 일곱 궁에 나누어 두고, 황음하기를 일로 삼았다. 3월엔 폭풍에 나무가 뽑혔고, 4월엔 서리와 우박이 내리니, 상이 화를 내면서, “하늘이 이미 나에게 모질게 하였으니, 나 역시 하늘에 모질게 대할 것이다.”라고 말하고는, 좌우에 명하여 하늘에다 활을 쏘게 하였다.  8월, 창고를 열어 백성에게 먹을 것을 풀었다. 호동의 딸 위화를 거두었다. 그녀는 재사의 여인이었다.  갈사궁{異腹弟<再思>母, 大武神后}이 딸을 낳고는, 딸 낳은 것{또는, 모본의 자식을 낳은 것}을 민망해 하면서, “이걸 낳았으니, 어쩌나?” 하더니만, 니라고 이름 지었다.

◎ 三年庚午, 三月, 作<淌水>新宮, 極其奢侈. 日會宗戚․命婦, 飮荒度日.  <濟>侵<羅><蛙山>, 不克.  六月, <藍>公主薨, 年七十八.
<漢>殺其弟<英>. 作金龜玉鶴罪.

○ 모본 3년{단기2403년/AD70}경오, 3월

창수{탕수≒탕하?}에 새 궁전을 지었는데, 사치가 극에 달했다. 날마다 종척들과 명부{대부의 부인}들을 불러 모아놓고, 술 마시고 음란하기로 세월을 보냈다. 백제가 신라의 와산에 침입했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6월, 람공주가 나이 78살에 죽었다.  한이 자기 동생 영을 죽였다. 금 거북과 옥 학을 만든 죄였다.

◎ 四年辛未, 二月, 殺內使者<勝人>. <勝人>, 以美容得幸. 上, 坐臥席之. <勝人>, 不能堪其苦, 而動之放尻. 上, 怒格而殺之. 其母<尺>, 亦以<勝>之故得寵, 怨其殺子而見黜. 自是, 宮人內使之為席人者, 多被殺傷.  上, 殺副后<烏>氏. <烏>氏生女, 未幾, 使席人<杜魯>通之, 疾作而怨上. 上, 拳之, 吐血而死. 太后痛哭. 上, 怒, 曰;“此老狐促我死耶.” 命左右引出之.  <羽>后諫之亦見廢. <烏希>․<羽真>皆稱病不出, 人心洶洶. <杜魯>等跋扈擅權.  <涉得>死, <射旭>立.

○ 모본 4년{단기2404년/AD71}신미, 2월

내사자 승인을 죽였다. 승인은 얼굴이 예뻐서 고임을 받았다. 상이 눕혀 놓고 깔고 앉으니, 승인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옴지락거리다가 궁둥이에서 벗어났더니, 상이 노하여 그를 때려죽인 것이었다. 승인의 모친 척 역시 승인으로 인하여 승은을 입었는데, 자기 아들이 죽는 것을 보고 원망하다가 쫓겨났다. 이때부터 궁인과 내사들 중에 인간깔개가 되었던 사람 중에 많은 이가 죽거나 상하였다.  상은 부후인 오씨도 죽였다. 오씨는, 딸을 낳고 몸을 추스르기 전인데도, 인간깔개 두로를 시켜 통음케 하였다. 병이 들어 상을 원망하자, 상이 오후를 주먹질하여서, 토혈하고 죽었다. {이 꼴을 본} 태후가 통곡하니, 상이 노하여 말하기를; “이 노파가 내가 빨리 죽기를 바란다.” 하고는 좌우에게 끌어내라고 명하였다. 우후도 이를 말리다가 역시 폐함을 당하였다. 오희와 우진은 칭병하고 나오지 않았고, 인심은 흉흉해졌다. 두로 등이 발호하여 권력을 마음대로 휘둘렀다.  섭득이 죽고, 아들 사욱이 섰다.

◎ 五年壬申, 四月, 田<質山>.  五月, <東扶余>屬國<藻那(尼港)>反. 命<穆卓>․<達賈>等, 徃平之. <卓>, 以<藻那>王女<琩>為妻. 七月, 田<閔中原>. 九月, 採國中美少年, 入宮中為枕臣․席人. 不如意則輒射之, 或死或傷. <勝人>之弟<崔裀>被殺. <烏俊>諫, 曰;“人命至重, 何可如是.” 上, 怒亦射之. 人不敢言.

○ 모본 5년{단기2405년/AD72}임신, 4월

질산에서 사냥하였다.  5월, 동부여의 속국인 조나(니항)가 반하니, 목탁과 달가 등에게 명하여 가서 평정하게 하였다. 목탁이 조나왕의 딸 창을 처로 삼았다.  7월, 민중원에서 사냥했다.  9월, 나라 안의 미소년을 가려 뽑아서 입궁시켜 침신이나 깔개로 썼다. 뜻에 따르지 않으면 번번이 쏴버려서 죽거나 상하였다. 승인의 동생 최인도 죽임을 당했다. 오>이 “사람 목숨은 지극히 귀한 것인데, 어찌 이러실 수 있으십니까?”라고 간하였더니, 상은 화를 내며 역시 활을 쏘았다. 누구도 감히 말하려 하지 않았다.

◎ 六年癸酉, 二月, <慕本>新宮成, 以為「東都」遊幸之所. 以<杜魯>為枕臣. <魯>, <慕本>民也. 美容而能媎, 上自太子時爱之, 及卽位, 封為将軍, 有<扶餘>功, 爵大兄, 拜中畏大夫. 皇后<羽>氏・<烏>氏・<麻>氏皆被其汚. <麻>氏生<杜魯>女. <烏>太后亦與<杜魯>通. 宮中呼<魯>以小帝. 五月, 戊午晦, 日食. <杜魯>, 與<崔裀>母<尼滿>交好, 而歎, 曰;“吾命亦不久矣.” <尼滿>曰;“小帝, 有何不洽而言如此乎.” <魯>曰;“上, 怒我動搖, 欲殺之. 奈何.” <尼滿>曰;“撫我則后, 虐我則讐. 彼為無道, 殺人如草芥. 何不殺彼而自立耶.” <魯>, 然之, 遂有弑逆之心. 上累怒其動罪, 而戒之. 至十一月, 又動之, 上, 欲射之. <魯>, 以所藏宝刀刺帝, 出血如湧. <魯>, 見其狀而悔之, 欲自刎而不得, 乃如<麻>后寢而告之. <麻>后, 與<魯>有私, 故秘其喪, 欲立<魯>為帝, 召<麻樂>議之, 曰;“主上不道而被弑. 當立宗室. <魯>, 何敢立乎.”

○ 모본 6년{단기2406년/AD73}계유, 2월

모본 신궁이 완성되어, 동도의 유희장소로 삼았다. 두로를 침신으로 삼았다. 두로는 모본사람으로, 예쁜 얼굴에 여자노릇을 잘하여, 상이 태자시절부터 그를 아끼더니, 즉위한 이후엔 장군을 봉하였다. 부여와의 전쟁에 공이 있어서 대형의 작위를 받고 중외대부에 제수되었다. 황후인 우씨,오씨,마씨는 모두 이 인간의 오물을 뒤집어썼다. 마씨는 두로의 딸을 낳았으며, 오태후까지도 두로와 통정하였다. 궁중에서는 두로를 작은 황제라고 불렀다.  5월, 무오일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두로가 최인의 모친 니만과 함께 놀아나면서 한탄하기를; “내 목숨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오.”라 하였다. 이에 니만이 “작은 황제는 무엇이 모자라서 그런 말씀을 하시오?”라 하였고, 두로는 “상이, 내가 꼼지락거려 흔들리면, 화를 내고 죽이려 하는데, 어찌 할 수 있겠소!?”라고 실토하니, 니만이 말하길; “내게 잘하여 주면이야 나는 그의 후가 되겠지만{내가 그를 황제로 여기겠지만}, 나를 박해하면 원수가 될 것입니다. 그 인간은 무도하여 사람 죽이기를 초개와 같이 하는데, 왜 그를 죽이고 스스로 보위에 오르려 하지 않습니까?”라 하였다. 두로는 그래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시역할 마음을 먹었다. 상이 누차 두로가 움직이는{밑에 깔렸을 때 움직이는 것} 죄를 지음에 화를 내며 훈계를 해오다가, 11월이 되어서는, 또 움직였더니, 상은 두로를 쏘아 죽이려 하였고, 로는 숨겨둔 보도로 제를 칼질하였다. 피가 솟구쳤다. 두로는 그 모습을 보더니만 후회하면서 자기 목을 칼로 베려 하다가, 그러지도 못하고 마후의 침소로 가서 사실을 알렸다. 마후는, 두로와는 개인적인 사연이 있었기에, 상이 죽었음을 숨긴채 두로를 제위에 세우려고, 마락을 불러 상의하였더니, “상이 부도하여 시해되긴 하였지만, 당연히 종실사람을 세워야지, 어찌 감히 두로를 세울 수 있겠습니까?”라 하였다.

◎ <魯>, 知事敗, 而自刎. 乃召<麻勁>・<松宝>・<烏希>・<羽真>等議之, 皆曰; “<大武>諸子中, 唯<再思大王>最賢.” 乃遣<麻樂>于<曷思宮>迎之. <再思>曰;“寡人年少沒識, 不如立<翊>.” 固辭不出. <麻>后亦欲立<翊>而請於<勁>, <勁>曰;“立皇以賢. 汝, 何敢言.” 遂與<松宝>亦至<曷思宮>, 叩頭請出. <再思>, 不得已, 卽位「東都」神宮. <麻勁>以病固辞太輔, 于<松宝>, <宝>亦固辞. 上, 曰;“國之二老如是棄我. 我, 何敢立.” <宝>, 乃受位, 曰;“臣, 有一言敢請.” 上, 曰;“何言.” <宝>曰;“<勁>, 以柱石, 為國盡忠. 廢<麻>后而出<茅[山]>, 父女之情割矣. 願, 陛下, 抱容為后. 何如.” 上, 可之, 乃召庻人<烏>氏․<麻>氏于<茅山>, 尋以<麻>氏․<羽>氏為宮人. 葬大行于<慕本原>, 埋<杜魯>․<尼滿>于其側. <尼滿>, 宝刀之主. <崔理>女也.

○ 로는 일이 잘못되었음을 알고는 스스로 목 베어 죽었다. 마경,송보,오희,우진 등을 불러들여 상의하니, 모두가 “대무의 아들들 중에 재사대왕이 가장 현명하다.”고 하고는,마락을 갈사궁으로 보내서 재사대왕을 맞아서 세우려 하였더니, 재사가 말하길; “과인은 나이도 적고 아는 것이 없어, 익태자를 세우는 것만 같지 못하오.”라고 말하면서 고사하여 나서지 않았다. 마후 또한 익태자를 보위에 세우고 싶어 마경에게 부탁하였더니, 마경은 “현명한 이를 황위에 세워야 할 것인데, 어찌 감히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라 말하고는, 송보와 함께 갈사궁으로 가서 머리를 조아리고, 보위에 오르길 청하매, 재사가 부득이 동도의 신궁에서 즉위하였다. 마경이 칭병하며 태보자리를 고사하는지라, 송보에게 돌렸더니, 송보 또한 고사하였다. 이에 상이 “나라의 두 노신이 나를 이리도 피하는데, 내가 어찌 감히 보위에 설 수 있겠소?”라 말하자, 송보가 태보 자리를 받아들이면서 아뢰길; “신에게 감히 청할 말씀이 하나가 있습니다.”라 하였다. 상은 무엇이냐 물었고, 송보가 아뢰길; “마경은 나라의 주춧돌이 되어서 충성을 다하였었습니다만, 마후를 폐하여 모산으로 내쫓았으니, 부녀의 정이 갈렸습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마후를} 맞아들여서 후로 삼아주시겠는지요?”하였다. 상은 이를 허락하여, 폐서인 오씨와 마씨를 모산에서 들어오라 불러들였고, 이어서 마씨와 우씨를 궁인으로 삼았다. 대행을 모본원에 장사하였으며, 두로와 니만도 그 곁에 묻어주었다. 니만은, 보도의 주인으로, 최리의 딸이었다.

원문출처; http;//mf.history.go.kr/Pdf/MF0020000/00322307.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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