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SMALL - ☆ 詩폐라뮤지엄/스포츠뮤지엄98 메이저리그 전설스토리 우승 반지 10개,MVP 3회 수상에 빛나는 뉴욕 양키스의 심장 요기 베라_경기는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메이저리그 전설스토리 우승 반지 10개,MVP 3회 수상에 빛나는 뉴욕 양키스의 심장 요기 베라 경기는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로렌스 피터 "요기" 베라(Lawrence Peter "Yogi" Berra,1925년 5월12일~2015년 9월22일(향년 90세),170cm / 85kg)는 뉴욕 양키스의 영구결번 포수로 그가 양키스의 마스크를 쓰는 기간에 얻은 우승 반지만 10개나 되며, 15회 올스타에 선정되었습니다. 통산 MVP 투표에서 5위 안에 든 횟수만 7번이고, 그 중 3번이나 MVP를 차지했는데 이는 아메리칸리그에서 현재까지 가장 많은 MVP 수상 횟수로, 베라보다 앞서 달성한 조 디마지오와 미키 맨틀,알렉스 로드리게스가 타이를 이루고 있습니다. 양대리그 전체로 범위를 넓혀보면 스탠 뮤지.. 2024. 3. 25. 메이저리그 전설스토리 루게릭의 후계자 미키 맨틀_역사상 최강의 스위치히터 메이저리그 전설스토리 루게릭의 후계자 미키 맨틀 역사상 최강의 스위치히터 미키 찰스 맨틀(Mickey Charles Mantle,1931년 10월20일~1995년 8월13일(향년 63세),180cm / 88kg)은 뉴욕 양키스의 원클럽맨이자 사상 최고의 스위치 히터로 MVP를 3회 수상했습니다.미키 맨틀은 베이브 루스의 기록들을 갈아치울 재능이 있던 선수라고 평가를 늘 받아왔던 선수였고 실제로도 그럴 기세였으나 그 놈의 부상으로 여러 번 골골대는 바람에 고작 500홈런을 넘긴 것에 그쳤습니다.선수생활 내내 여러가지 잔부상에 시달리지만 최악의 유리몸이라고 하기엔 18년 동안의 선수생활 중 3시즌을 제외하고는 전부 120경기 이상을 소화하는 미친 근성을 보여줬으며 무수한 잔부상들의 고통을 20년 가까이 버틸.. 2024. 3. 23. 메이저리그 전설스토리 뉴욕 양키스 원클럽맨 프랜차이즈 스타 조 디마지오_불멸의 56경기 연속 안타와 마릴린 먼로와의 세기의 사랑과 이별 메이저리그 전설스토리 뉴욕 양키스 원클럽맨 프랜차이즈 스타 조 디마지오 불멸의 56경기 연속 안타와 마릴린 먼로와의 세기의 사랑과 이별 조셉 폴 "조" 디마지오(Joseph Paul "Joe" DiMaggio,1914년 11월25일 캘리포니아 출생~1999년 3월8일(향년 84세)는 베이브 루스와 루 게릭을 잇는 뉴욕 양키스의 원 클럽 맨 프랜차이즈 스타로 보스턴 출신이었던 루스가 아닌, 양키스 팜에서부터 올라온 게릭으로부터 시작되는 원 클럽 맨 프랜차이즈 스타 계보는 이후 미키 맨틀,돈 매팅리,데릭 지터가 이으며, 향후 애런 저지가 이을 수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비록 13시즌밖에 뛰지 않아 누적 성적이 낮지만, 준수한 비율 스탯과 더불어서 뛰어난 전성기를 누린 선수로 실제로 디마지오의 누적 성적은 3.. 2024. 3. 22. 메이저리그 전설스토리 베이브루스와 살인타선을 이끌던 양키스의 철마 루 게릭_14년 동안 2,130 경기 연속 출장을 달성한 메이저리그 최초의 영구 결번선수 메이저리그 전설스토리 베이브루스와 살인타선을 이끌던 양키스의 철마 루 게릭 14년 동안 2,130 경기 연속 출장을 달성한 메이저리그 최초의 영구 결번선수 오늘 저는 제 자신이 지구에서 가장 운이 좋은 남자라고 생각합니다. Today I consider myself the luckiest man on the face of the earth. /1939년 7월 4일에 양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헨리 루이스 게릭 Henry Louis Gehrig(1903년 6월19일~1941년 6월2일,향년 37세,183cm / 90kg,1루수),뉴욕 양키스의 원 클럽 플레이어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야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근위축성측색경화증이 루게릭병으로 불리는 이유로 알려진 선수이기도 합니다. 희귀병으로 커리어를.. 2024. 3. 18. [3]⑫신장은 고작 165cm였지만 세계 카라테 챔피언을 차지한 작은 거인 미도리 겐지_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 오야마 마스다츠 최배달의 제자 백과사전 [3]⑫신장은 고작 165cm였지만 세계 카라테 챔피언을 차지한 작은 거인 미도리 겐지 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 오야마 마스다츠 최배달의 제자 백과사전 미도리 겐지(극진 공수도 유파 중 가장 큰 단체인 신극진회의 대표)는 165cm의 작은 체구이지만 일본 뿐 아니라 전 세계 거구의 강자들과 맞서 세계 카라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전무후무한 미도리 겐지의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기록으로서 체구가 작은 극진 카라테 선수들에게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신화적인 인물입니다.미도리 겐지는1962년 4월 18일 일본 큐슈의 섬 남쪽에서 출생했으며,만 16살때인 1978년에 카라테에 입문하게 됩니다.그의 스승은 수많은 전설적인 선수를 길러낸 히로시케 사범으로 미도리 외 야마키 켄지, 카즈미, 이.. 2024. 3. 14. [2]⑪격투게임 스트리트 파이터 캐릭터 류와 료의 모티브가 된 극진의 용호 야마자키 테루토모와 소에노 요시지_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 오야마 마스다츠 최배달의 제자 백.. [2]⑪격투게임 스트리트 파이터 캐릭터 류와 료의 모티브가 된 극진의 용호 야마자키 테루토모와 소에노 요시지 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 오야마 마스다츠 최배달의 제자 백과사전 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최영의가 일본 무도계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모두 알게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카지와라 잇키의 만화 공수 바보일대의 영향력이 가장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리고 공수 바보일대는 최영의 뿐 아니라 그의 제자들도 유명세를 안겨줬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극진의 용호라고 불린 용龍 야마자키 테루토모와 호虎 소에노 요시지였습니다.극진의 용호라 불린 이 둘은 절친한 친구 사이이자 라이벌이었으며 최영의가 40대때 입관하여 제대로 대련한 마지막 제자들이기도 했습니다.용龍이라 불린 야마자키 테루토모는 천.. 2024. 3. 13. [1]⑩불꽃처럼 살다간 남자,싸움 10단 카라데 천재 아시하라 히데유키_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 오야마 마스다츠 최배달의 제자 백과사전 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 오야마 마스다츠 최배달의 제자 백과사전 [1]⑩불꽃처럼 살다간 남자,싸움 10단 카라데 천재 아시하라 히데유키 실전무술 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최영의는 1960년대 대산도장에 이어 극진회관을 창립하며 극진카라테 보급에 온 생애를 매진하게 됩니다.전 세계 2000만명의 수련생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최영의는 살아 생전 수많은 극진의 제자들을 배출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오늘은 최배달의 제자 백과사전이란 제목으로 처음 소개할 최영의의 제자는 원조 싸움 10단 카라데 천재 아시하라 히데유키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최영의가 이끌던 극진회관에서 폭력 사건으로 인해 파문당할 뻔한 제자가 있었습니다.싸움으로 붙으면 제자들 중 단연 최강이라 불리던 이 남자가 바로 아시하라 히데유.. 2024. 3. 12. ⑨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분열과 분파로 흩어져버린 최영의의 정신과 극진의 혼魂 _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 오야마 마스다츠 최배달 ⑨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분열과 분파로 흩어져버린 최영의의 정신과 극진의 혼魂 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 오야마 마스다츠 최배달 최영의 총재가 1960년대에 창시한 새로운 극진 카라테는 일본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엄청난 수련인구를 폭발적으로 향상시키며 실전 무술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습니다.우리에게는 바람의 파이터 최배달로 유명한 김제 출신의 이 무도가는 수백 차례에 걸친 무술 고수들과의 실전 대결에서 모두 이겼다는 화제성과 최영의의 카리스마가 기반이 되어 최영의는 1953년 도쿄에서 첫 번째 도장이였던 대산도장을 연 이후 10여년 만인 1964년 극진회 세계 총본부를 출범시켰는데, 이것이 극진카라테의 시초입니다.최영의는 당시 도쿄 이케부쿠로역 근처에 5층 규모의 극진회관.. 2024. 3. 11. ⑧최영의의 실전 카라테가 일본에 던진 격투기 문화·킥복싱과 K-1을 탄생시키다_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 오야마 마스다츠 최배달 ⑧최영의의 실전 카라테가 일본에 던진 격투기 문화· 킥복싱과 K-1을 탄생시키다 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 오야마 마스다츠 최배달 사무라이의 나라답게 일본에서는 여러 무술이 융성하는데 유도를 비롯하여 대동류합기유술,아이키도,최영의의 극진 카라테 등 많은 무술들이 1900년대에 탄생하여 일본에 자리잡습니다.킥복싱 역시 마찬가지인데 킥복싱은 펀치와 킥을 모두 사용하여 상대를 타격하는 일본에서 태동한 격투기로 여러 무술 중에서도 특히 무에타이를 많이 참고해 나온 무술입니다. ■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 오야마 마스다츠 최배달_무에타이의 강함을 경험하는 극진의 사나이들 풀컨택트룰을 표방한 실전 무술 극진카라테의 등장은 일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진정한 강함을 추구하던 남자들은 하나,.. 2024. 3. 9. 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 오야마 마스다츠 최배달_⑦최영의의 상징,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상상초월 극진 훈련법과 100인 조수 그리고 맹수와의 싸움 ⑦최영의의 상징,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상상초월 극진 훈련법과 100인 조수 그리고 맹수와의 싸움 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 오야마 마스다츠 최배달 최배달 최영의가 일본 그리고 전세계 무도계에서 전설로 기억되는 이유는 수없이 많지만 한국인으로써 일본 사회에 단일 도장으로는 그 유래가 없을만큼 어마어마한 규모의 수련생(120개국 2천만명이 수련중)을 끌어 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만화 공수바보일대의 영향도 엄청났지만 결국엔 만화 속 인물이 실존한다는 믿을 수 없는 사실 때문이었고 최영의는 그런 자신의 실증을 증명한 무두가였다는 점에서 20세기 일본의 미야모토 무사시,그 이상의 존재였다 할 수 있습니다.1938년 도일한 이래 1939년 카라테 입문하는데 최영의는 이 시절 강유류 카라테와 송도관 카.. 2024. 3. 8. ⑥[2부] 스승을 배신한 제자,만화 공수바보일대의 카지와라 잇키와 최영의의 애증어린 사제지간_ 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 오야마 마스다츠 최배달 ⑥[2부] 스승을 배신한 제자,만화 공수바보일대의 카지와라 잇키와 최영의의 애증어린 사제지간 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 오야마 마스다츠 최배달 극진 카라테를 수련하던 윌리 윌리엄스의 승부조작 사건과 안토니오 이노키와의 매치에서 카지와라 잇키의 수법이 드러나면서 최영의가 문하생들과 카지와라를 습격한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았을 정도로 카지와라와 최영의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정도로 사이가 나빠졌고 카지와라는 특유의 미디어와 언론을 이용하여 최영의에게 사과를 요구하였지만 최영의가 묵살하며 의형제까지 맺었던 두 사람의 관계는 완전히 파탄나고 말았습니다.결국 1983년 3월19일 카지와라 잇키와 미키 히사오를 극진에서 제명 처리하는 강수를 둔 최영의는 카지와라를 제명한지 5개월되던 8월8일,날벼.. 2024. 3. 4. ⑤[1부] 스승을 배신한 제자,만화 공수바보일대의 카지와라 잇키와 최영의의 애증어린 사제지간_ 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 오야마 마스다츠 최배달 ⑤[1부] 스승을 배신한 제자,만화 공수바보일대의 카지와라 잇키와 최영의의 애증어린 사제지간 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 오야마 마스다츠 최배달 카지와라 잇키(梶原一騎)는 만화 원작자라는 직업의 선구자로 본명은 타카모리 아사키(高森朝樹), 극화계의 돈(Don)'이라고 불렸던 사나이로 도쿄도 다이토군 출신으로 거인의 별,내일의 죠,타이거 마스크,사마라이 자이언츠,공수도 바보일대,인간흉기 등의 원작자로 특히 1971년 만화 공수도 바보일대(空手バカ一代)의 대히트로 최영의는 단순히 격투기 관련 인물만이 아닌 일반 대중들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일본 내에서 초 유명인사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때 최영의는 상당한 사업 수완을 발휘하여 극진공수를 단순한 무술도장 수준을 넘어서 사실상 거대기업 수준으로 .. 2024. 3. 2. 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 오야마 마스다츠 최배달_④프로레슬러,복서와의 대결과 승리를 가져온 미국 원정길의 숨겨진 진실 ④프로레슬러,복서와의 대결과 승리를 가져온 미국 원정길의 숨겨진 진실 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 오야마 마스다츠 최배달 최영의는 이소룡과 더불어 한 시대를 대표하는 위대한 무도가의 범주에 들어있습니다.현대 미디어의 헤택을 받았다는 점에서 최영의나 이소룡은 얼핏 비슷하지만 최영의가 자신의 실력과 무술세계를 바탕으로 아주 약간의 도움(카지와라 잇키의 만화 공수도 바보일대 속 오야마의 세계관 창조)을 바탕으로 극진 카라테를 융성시키는데 일조했다면 이소룡은 자신의 무술을 영화에 적극 차용하면서 팬들의 판타지를 적극적으로 충족시키며 이소룡이란 개인과 그 자신의 무술을 세계에 각인시킵니다.최영의는 만화라는 매체로 일본 전역에 오야마 판타지를 일으켰다면 이소룡은 영화로 세계에 브루스 리 판타지 광풍을 불.. 2024. 3. 1. ③세계화에 가려진 최영의의 실전 스타일과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싸움 카라테의 진짜 모습_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 오야마 마스다츠 최배달 ③세계화에 가려진 최영의의 실전 스타일과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싸움 카라테의 진짜 모습 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 오야마 마스다츠 최배달 극진카라테의 세계화는 최영의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단 한명의 인물이 존재했기에 가능했으며 최영의에 대한 숱한 무용담과 강함을 동경하던 남자들은 극진 카라테의 아이덴티이기도한 풀컨텍트 카라테에 매료되어 전 세계에서 최영의의 극진카라테를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몰려오기 시작합니다.풀컨텍트(Full Contact)라는 말은 직접 타격을 가리키는 말로 원래는 미국에서 킥복싱룰을 가리켜 풀컨텍트룰이라고 부른 것이 그 시초이며 초기의 극진 카라테는 실전카라테라는 말이 사용되었으며 풀컨텍트 카라테로 불리게 된 것은 나중의 일입니다.카라테가 일본을 벗어나 해외로 전파되기 시작.. 2024. 2. 29. 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 오야마 마스다츠 최배달_②최영의는 어떻게 지상 최강의 카라테를 완성시켰나? 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 오야마 마스다츠 최배달 ②최영의는 어떻게 지상 최강의 카라테를 완성시켰나? 최영의는 아버지 최승현과 어머니 김부용 사이 6남 1녀 중 넷째로 태어났는데 부농의 아버지 밑에서 자란 최영의는 어린 시절엔 공부엔 딱히 관심이 없고 골목대장을 하는 등의 문제아였다고 하며 이 시절 머슴 범수(고우영의 대야망에서 언급 혹은 차력 및 택견)에게 무술을 배웠다고 알려져 있으나 명확하지는 않습니다.아버지 최승현은 말썽꾸리가 최영의를 경성영창학교에 입학시키지만 최영의가 경성영창학교에서마저 퇴학을 당하고 아버지와의 골이 더 깊어진 최영의는 꿈이었던 파일럿이 되기 위해 부친의 반대에도 도망치듯 형이 있는 일본으로 떠나는데 셋째형 최영범 말에 의하면, 당시 본인이 아버지 몰래 돈을 빼돌려.. 2024. 2. 28. 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 오야마 마스다츠 최배달_①한국인 최영의와 일본인 오야마 마스다츠라는 두갈래길 인생 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 오야마 마스다츠 최배달 ①한국인 최영의와 일본인 오야마 마스다츠라는 두갈래길 인생 극진 카라테는 전 세계 120개국 143개지부 1200만명의 수련 인구를 가진,단일 도장으로는 비교조차 불가한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 무술이며 이 극진 카라테를 창시한 오야마 마스다츠(大山 倍達.おおやまますたつ.Ōyama Masutatsu)는우리들에게는 최배달이란 이름으로 유명합니다.1950년대 일본 도쿄의 허름한 도장에서 시작하여 낡은 발레 스튜디오를 연습장소로 사용해야했던 극진회관 최초의 명칭은 오야마도장은 이후 비교를 거부하는 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도장으로 발돋움하였고 극진카라테는 풀컨텍트 카라테의 효시로 불리며 전 세계적인 무술로 발전했습니다.최배달의 극진 카라테의 융성은 국.. 2024. 2. 27. 고릴라가 레슬링을 배워야 이길 수 있는 영장류 최강의 사나이_887승2패의 러시아의 영웅 알렉산드르 카렐린 고릴라가 레슬링을 배워야 이길 수 있는 영장류 최강의 사나이 887승2패의 러시아의 영웅 알렉산드르 카렐린 러시아의 레슬링 선수이자 정치인 및 군인이었던 알렉산드르 카렐린은 레슬링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이자 올림픽 3연패와 세계선수권 9회 우승, 유럽선수권 12회 우승은 물론, 국제대회에서 7년 간 무패, 6년 간 무실점을 기록한 전설적인 선수인데 이마저도 부상으로 인한 기권을 제외하면, 국제대회에서 2패, 사실상 13년 간 무패라고 할 수 있습니다.레슬링 선수에서 은퇴한 이후에는 통합 러시아 소속 러시아 제3·5대 국가두마 의원직을 역임하였으며, 1996년부터 현재까지 러시아 국경수비대 중장 계급을 보유하고 있습니다.알렉산드르 카렐린은 일단 피지컬 자체 넘사벽인데 신장193cm, 평체 130kg .. 2024. 2. 14. 복싱 역사상 가장 강한 주먹이자 복서로 평가받다_올림픽 헤비급 3연패· 358승의 쿠바 펠릭스 사본 복싱 역사상 가장 강한 주먹이자 복서로 평가받다 올림픽 헤비급 3연패· 358승의 쿠바 펠릭스 사본 이종 격투기와 UFC가 세계에 정착하기 전 세게에서 가장 강한 사나이라는 칭호는 보통 복서들에게 돌아갔습니다.오로지 주먹 하나로만 승부로는 단순함과 체급에 따른 공정함이 어필되는 스포츠가 바로 복싱이기 때문입니다.그렇다면 아마추어 복싱과 프로복싱을 통틀어 세계 최고의 주먹이자 복서는 누구였을까?많은 이름들이 거론되지만 세계 프로복싱 헤비급의 내로라하는 주먹들은 거의 모두 올림픽을 거쳤기 때문에 아마추어 챔피언은 프로 팸피언이라는 공식이 성립될 정도입니다.우리에게 전설로 회지되는 무하마드 알리가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이름으로 1960년 로마올림픽 라이트헤비급에서 금메달을 땄고, 불도저 조 프레이저는 64년 도.. 2024. 2. 13. 패전국 일본인들의 우상이 된 식민지청년 프로레슬러 역도산_조선인 김신락이 아닌 일본인 모모타 미쓰히로 혹은 자이니치 리키도잔 조선인 김신락이 아닌 일본인 모모타 미쓰히로 혹은 자이니치 리키도잔 패전국 일본인들의 우상이 된 식민지청년 프로레슬러 역도산 역도산은 한국계 일본인 프로레슬러로 일본 프로레슬링 업계를 개척한 최초의 스타이자 오늘날 한일 프로레슬링 계보도를 타고 올라가면 대부분은 그 뿌리가 역도산에 닿게 됩니다. 한창 잘나갈 때는 일본 천황 다음으로 유명한 역도산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지만, 1963년 한 나이트클럽에서 시비가 붙은 야쿠자의 칼에 찔려 비교적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역도산은 조선인이었지만 철저하게 일본 사회에서는 일본인으로 살면서 국적에 대한 정체성을 숨겼지만 그럼에도 역도산이 일본과 한국에 미친 영향력은 지대하여 지금까지도 역도산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기도 합니.. 2023. 10. 31. 체급을 넘나들며 통산 88 KO승을 거둔 링위의 불도저 일본의 권성(拳聖) 호리구치 츠네오 피스톤 호리구치와 식민지 시대 조선의 주먹들 체급을 넘나들며 통산 88 KO승을 거둔 링위의 불도저 일본의 권성(拳聖) 호리구치 츠네오 피스톤 호리구치와 식민지 시대 조선의 주먹들 ▣일본의 권성(拳聖), 피스톤 호리구치를 이야기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복싱,권투의 역사는 기원전 1500년 전 경으로 거슬러 올라사는데 크레타섬을 중심으로 한 청동기 시대의 미노스 문명에서부터 권투의 기원이 발견되었고, 연구에 의하면 오늘날의 아프리카 에티오피아(기원전 4000년경)지역에서 더 일찍 시작되었다고도 합니다. 고대의 권투모습은 손목과 손을 보호하기 위해 가죽으로 된 끈으로 팔을 감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이후 콜로세움에서 권투를 즐겼던 로마제국의 몰락과 기독교의 전파로 권투는 위험한 행위라며 배척당하게 되며 당시 오락의 지위에서 밀려나게 됩니다.근대에 이르러.. 2023. 10. 20.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21·2022 이정후_전 세계 유일무이 부자 타격왕과 리그 MVP 등극으로 날아오르다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21·2022 이정후 전 세계 유일무이 부자 타격왕과 리그 MVP 등극으로 날아오르다 이정후는 프로 입단 전부터 이종범의 아들로 일찌감치 주목을 받아왔으며 고교 시절 기본 포지션은 유격수였으나 프로에 와선 타격 능력을 살리기 위해 외야수로 전향하여 2017 년에 10년 만의 순수 신인왕 및 순수 고졸 신인왕이 되었습니다. 정교한 타격과 선구안,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듯한 배트 컨트롤로 안타를 생산해 내는 컨택 능력이 특징으로, 5년 연속 골든글러브, 2년 연속 타격왕, 2022년 MVP 수상을 비롯한 다수의 수상 실적을 보유하고 있습니다.고척 시대 히어로즈 구단을 대표하는 선수이자 김현수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을 이끌어나갈 ‘차세대.. 2023. 10. 12.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19년 양의지_곰의 탈을 쓴 여우,1984년 이만수 이후 35년 만에 포수 타격 1위를 달성하다 곰의 탈을 쓴 여우,1984년 이만수 이후 35년 만에 포수 타격 1위를 달성하다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19년 양의지 양의지는 두산 베어스 소속 우투우타 포수로 KBO 골든글러브 포수 부문 7회 수상자로 지명타자 부문 1회 수상과 2010년 신인왕, 한국시리즈 MVP 2회 수상의 커리어를 보유하고 있으며 가장 유명한 별명은 '곰의 탈을 쓴 여우'입니다.양의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부 부장 선생님이었던 담임선생님의 제안을 받고 야구를 시작하는데 어린 시절부터 부친이 야구팬이어서 야구 관람도 자주 가고 동네에서 야구도 자주 했었다고 합니다.광주 진흥고에서 정확한 송구 능력과 장타력이 돋보이는 타격으로 나름대로 촉망받는 포수였지만 동작이 굼떠 프로에서 크게 성공하기는 힘들다는.. 2023. 10. 11.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17년 김선빈_165cm의 작은 거인,이종범 이후로 23년만의 유격수 타격왕을 거머쥐다 165cm의 작은 거인,이종범 이후로 23년만의 유격수 타격왕을 거머쥐다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17년 김선빈 김선빈은 KIA 타이거즈의 2010년대 유격수 자리를 책임진 프랜차이즈 스타로 커리어의 대부분을 유격수로 출전하였고, 안치홍이 팀을 떠난 2020 시즌부터는 주전 2루수로 출전 중입니다.타 선수들에 비해 작은 신장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대표적인 KBO 리그 단신라인의 선수 중에 한명입니다.프로필상 키는 165cm이지만 실제로 신인드래프트 때 고교시절의 좋은 활약과 화순의 야구천재라 불리며 2학년때 유일하게 청대에 발탁된 커리어에도 불구하고 하위픽으로 지명을 받은 것도 작은 키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지만 프로 데뷔 후의 활약으로 KBO 리그에서도 키가 작다.. 2023. 10. 10.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16·2020 최형우_2000년대 좌타자 거포의 명맥을 잇다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16·2020 최형우 2000년대 좌타자 거포의 명맥을 잇다 최형우는 최정,양의지와 더불어 KBO 리그 2010년대 최고의 좌타자 선수로 자주 언급되는데 특히 타격 기록에 있어선 넘사벽이라 할 수 있습니다.스탯티즈 기준 야수로는 최정이 1위, 최형우가 2위고 타자 기록으로는 최형우가 1위이며 2014년 전에는 수비 스탯이 아예 기록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신뢰도가 매우 떨어지긴 하지만, 일단 외야수 통산 누적 sWAR로는 이미 박재홍을 넘어섰고, 21~23시즌 3년의 계약이 보장된 만큼 이 누적기록은 더 올라갈 것으로 보이는며 최형우가 은퇴할 때에는 최형우보다 4살 어린 김현수가 이 타이틀을 가져갈 확률이 높습니다.최형우는 이전에도 클린업트리오로서 충분한 .. 2023. 10. 9.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15년 에릭 테임즈_40-40 클럽과 3할 8푼의 타율로 리그를 폭격한 역대급 외인용병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15년 에릭 테임즈 40-40 클럽과 3할 8푼의 타율로 리그를 폭격한 역대급 외인용병 180cm에 106kg의 당당한 체격의 에릭 테임즈는 비록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단 3년밖에 활동하지 않았지만 그 어떤 외인 용병보다 임펙트 강한 3시즌을 보내고 자신의 꿈을 찾아 메이저리그로 떠납니다.에릭 테임즈는 KBO 리그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타자로 손꼽히는데 에릭 테임즈가 3년간 한국에서 보여준 활약은 폭격 그 자체였습니다. 특히 MLB에서도 통산 4명밖에 세우지 못한 기록이자 2006년 알폰소 소리아노가 마지막으로 달성하고 아시아엣서는 최초로 40홈런-40도루 클럽 가입과 한 시즌 사이클링 히트 2회의 기록은 모두 역대 최초로, NC의 구단 역사는 물론 KB.. 2023. 10. 7.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14년 서건창_서교수, 리그 사상 초유의 한시즌 200안타 돌파의 신화를 쓰다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14년 서건창 서교수, 리그 사상 초유의 한시즌 200안타 돌파의 신화를 쓰다 서건창은 2008년 LG 트윈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하여 같은 해 6월 정식등록 선수로 전환됐지만 1경기 1타석 1삼진만 기록하고 방출되었습니다. 이후 육군 31사단 일반병(예비군부대 소총수)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넥센 히어로즈 테스트를 거쳐 신고선수로 재입단하게 되었고 2012년 또 하나의 신고선수 성공 사례를 쓰며 신인왕과 KBO 골든글러브를 동시에 수상했습니다.2014년에는 KBO 역대 최초 단일 시즌 200안타 기록을 세우며 MVP까지 차지했지만 이듬해 십자인대 부상을 당하며 수비력이 감소하고 타격 능력에도 영향을 주는 불운을 겪었으나 이후로도 다시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등.. 2023. 10. 6.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12년 김태균_한미일 프로야구 사상 최다 86경기 연속 출루에 빛나는 출루머신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12년 김태균 한미일 프로야구 사상 최다 86경기 연속 출루에 빛나는 출루머신 김태균은 야구 명문 천안 북일고 3루수로 1학년부터 팀의 중심타선에 들어간 초고교급 선수였습니다.대한민국 U-18 야구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2000년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WBSC U-18 야구 월드컵을 재패한 황금 세대의 일원으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3학년 시즌 부진한 모습을 보였으나 한화 이글스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김태균을 1차 지명, 2000년 7월에 계약금 1억 6천만원을 받고 입단했습니다.2001 시즌 초반엔 1군에 자리가 없어 2군에 머물렀으나 5월에 승격 후 주로 대타로 기용되며 날카로운 타격을 보였고, 곧 대선배 강석천의 3루를 빼앗아 버렸으며 김태균의 놀라.. 2023. 10. 5.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09년 박용택_통산 2천504안타에 빛나는 트윈스의 심장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09년 박용택 통산 2천504안타에 빛나는 트윈스의 심장 박용택은 LG 트윈스 소속 야구선수로 現 KBS,KBS N SPORTS 해설위원이자 예능 프로 최강야구에 출연 중으로 선수 시절 포지션은 외야수였습니다.데뷔 때부터 주로 좌익수로 출전하였고, 입단 직후 당한 어깨 부상으로 송구에 약점을 보였습니다. 이후 2010년 LG 외야 빅5가 구성되자 주로 지명타자로 출전하였고, 2011년도 역시 지명타자로 출전이 예정되어 시즌 전 장타자 변신을 선언하며 체력단련에 매진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가시적인 성과는 거두지 못하며 시즌 후 외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후 12시즌부터 15시즌까지 중견수와 좌익수로 출전하다가 16시즌부터 지명타자로 전업합니다. 입단 당시 .. 2023. 10. 4.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08·2018 김현수_이정후 이전 정밀한 타격기계와 타격천재의 탄생을 알리다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08·2018 김현수 이정후 이전 정밀한 타격기계와 타격천재의 탄생을 알리다 김현수는 LG트윈스 소속 우투좌타 외야수이자 한국프로야구 선수협회 회장으로 신일고 시절부터 뛰어난 타격으로 이름을 날리며 청소년 대표팀에도 뽑혔지만 AAA대회 당시 멤버중 김현수만 혼자 프로구단에 지명을 받지 못했습니다.발탁되지 못한 이유로 발이 느리고 수비를 무성의하게 한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김현수를 가르쳤던 한 코치의 증언에 의하면 "현수는 쳤다 하면 2루타여서 열심히 뛸 필요가 없었다."라고 증언하기도 합니다.미국으로 진출한 신일고 동기 남윤희에 대한 보복으로 각 구단 스카우트들이 담합하여 지명하지 않았다는 설도 있지만 1987년생 드래프트를 보면, 남윤희와 김현수 사이.. 2023. 10. 3.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07년 이현곤_역대 프로야구 미스터리 타이틀홀더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07년 이현곤 역대 프로야구 미스터리 타이틀홀더 이현곤은 현재 기아 타이거즈의 수비코치로 신인시절부터 1군에서 통하는 수비를 지녔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리그 평균에 못미치는 타격을 보였고 온갖 잔부상과 질병을 달고 사는 일명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인 선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여년간 KIA의 내야에서 주전과 백업을 오가며 감초 역할을 했고, 2009년 우승 당시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기도 하였으며 무엇보다 놀랍게도 2007년 타격왕 수상자로 역대 프로야구 미스터리에 어김없이 이름을 올리곤 하는 선수이기도 합니다. 이현곤은 송정동초등학교시절 공부도 잘했으며 야구센스가 있었다고 합니다.이현곤 모친의 치맛바람은 상당했다고 합니다.광주일고에서 1루수 최희.. 2023. 10. 2. 반응형 BIG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