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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 오야마 마스다츠 최배달_⑦최영의의 상징,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상상초월 극진 훈련법과 100인 조수 그리고 맹수와의 싸움

by 마음heart 2024.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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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최영의의 상징,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상상초월 극진 훈련법과 100인 조수 그리고 맹수와의 싸움

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 오야마 마스다츠 최배달



최배달 최영의가 일본 그리고 전세계 무도계에서 전설로 기억되는 이유는 수없이 많지만 한국인으로써 일본 사회에 단일 도장으로는 그 유래가 없을만큼 어마어마한 규모의 수련생(120개국 2천만명이 수련중)을 끌어 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만화 공수바보일대의 영향도 엄청났지만 결국엔 만화 속 인물이 실존한다는 믿을 수 없는 사실 때문이었고 최영의는 그런 자신의 실증을 증명한 무두가였다는 점에서 20세기 일본의 미야모토 무사시,그 이상의 존재였다 할 수 있습니다.1938년 도일한 이래 1939년 카라테 입문하는데 최영의는 이 시절 강유류 카라테와 송도관 카라테,강도관 유도를 배워 각 초단을 사사하고 대동류 합기유술을 수련하기도 합니다.단순하게 최영의라고하면 극진 카라테만 생각하지만 이때부터 최영의는 타격계와 그래플링계 모두를 섭렵했다 할 수 있습니다.최영의는 스승 조영주의 제자인 야시로와 함께 야마나기 현의 미노부 산에서 1차 입산수도를 시작하는데 판잣집에서 각종 수련도구를 가지고 살았는데 소설 미야모토 무사시의 저자 요시카와 에이지가 후원을 해주기도 합니다.최영의는 당시 하숙집 딸 후지마키 치야코(미스 도쿄 2위 입상)와 결혼하여 이미 유부남이었고, 산에 있을때 치야코는 첫째 딸(이후 2명의 딸을 더 낳아 총 3명의 딸을 둠)을 출산하기도 합니다.

▣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 오야마 마스다츠 최배달_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100인 조수

그러나 한께 산으로 간 야시로는 외로움과 격한 수련을 이기지 못하고 내려가 버렸고, 시간이 흐를수록 최영의도 회의감에 빠졌으나 하산의 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해 한쪽 눈썹을 밀고 하산의 유혹을 떨쳐 버립니다.그렇게 정신이 아득해지는 수련을 계속하던 차 요시카와 에이지가 더 이상 후원할 수 없다는 소식을 전해오고 최영의는 14개월만에 하산하게 됩니다.하산 몇개 월 후인 최영의가 만 24세(1923년생으로 계산할때)인 1947년(쇼와22년) 교토에서 개최 된 전후 최초의 전일본공수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데 아시아 게임 종목이자 2020년 도쿄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카라데의 첫 우승자는 바로 한국인 최영의였던 것이였습니다.그리고 우승 후 최영의는 첫 입산수도 당시 약속한 3년을 채우기 위해 다시 1948년 4월 치바 현의 기요즈미 산으로 들어가 1년 8개월간 입산수도를 마치고 내려옵니다.이때 최영의는 기존 가라테의 슨도메 룰에 의문을 품고 있었던지라, 가라테 관계자들에게 직접 타격제를 제안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현대 가라테는 무도도 격투기도 아닌 가라테 댄스다"' 같은 발언들로 인해 일부 가라테 유파로부터 이단 취급을 받기 시작했는데 이에 최영의는 일본 각지의 유명 도장들을 찾아가 일명 도장깨기를 신청하기에 이릅니다.이때의 최영의는 입산수련 3년을 거친때로 육체적으로 가장 강력하면서 혈기가 왕성할 때였고 본인 말로는 "주먹 한방에 사람이 죽을 것만 같은 정도로 힘이 넘쳤다"고 말하기도 합니다.최영의에게 도장깨기에 패배하고 도장을 그만두는 수련생들이 많아지면서 최영의의 이름이 일본 무도계에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도전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최영의는 이 당시 수많은 일본내 카라데맨들과의 대결을 통해 자신만의 카라테를 입증해 나갔는데 무사시노에서는 30명 이상의 카라데맨들과 대혈전을 벌이기도 했고 칼을 든 사무라이라 자칭한 이들나 야쿠자와의 시비에서 맨주먹만으로 상대하여 비록 목숨을 빼앗기도 하지만 정당방위로 인정되어 큰 처벌은 받지 않습니다.그리고 100명과의 대련을 통해 인간 이사으이 한계점에 도달하기도 하지만 끝내 승리하여 훗날 극진의 100인 조수를 완성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합니다.

프란시스코 필리오 100인 조수
극진회관 제2대 관장 문장규 100인 조수

최영의의 100인 조수(百人組手:ひゃくにんくみて,조수(組手)는 손을 섞는다는 의미로 스파링을 일컫는다. 일본어 발음은 쿠미테)는 극진카라테의 상징이자 백미이며 100명과의 연속적인 대련은 그야말로 초인적인 체력과 정신력,그리고 쿠미테 실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60년이 넘는 극진회관 내에서도 달성한 이가 극소수입니다.단 1명의 수련자가 100명의 가라테가(다른 지부 소속의 검은띠와 갈색띠)와 연속해서 대련하는데 보통 1명당 1~2분 씩 싸우며 평균 2시간이 넘게 걸리는데 2시간 동안 때리기만 해도 때리다 지치는 사람이 대부분으로 2시간 동안 샌드백을 치기만해도 장난이 아닌데 100인 조수는 그야말로 엄청난 체력과 인내를 요구한다는 것입니다.도전자 대부분은 부상으로 중도 포기하며 완주한 사람도 탈수나 전신 타박상으로 인한 간기능 장해나 급성 신부전증 상태가 될정도로 만신창이가 된다고 합니다. 극진의100인 대련 완주 후에도 멀쩡했던 사람은 아직까지 프란시스코 필리오(188cm, 108kg) 뿐입니다.원래 100인 대련은 극진공수도 수련자들이 해외에서 일본으로 돌아오거나 해외로 진출할 경우 수련생들이 전부 모여 축하나 송별을 기념하기 위해 돌아가면서 2~3일에 걸쳐 수련을 했던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그러다 최영의 총재의 명령에 의해 한 명의 도전자가 백 명의 유단자와 하루만에 대련하는 룰로 바뀌면서 100인 대련의 전설이 시작되었는데 사실 100인 대련의 도전자도 자기가 스스로 도전한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이 최영의나 각 지부의 지부장이 도전하라고 시켜서 한 것이며 극진의 홍보를 위한 영화나 해외에 진출하는 사범들(힘 세고 덩치 큰 외국인들을 상대하려면 강한 정신과 체력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추정)을 위해 실시된 이벤트성이 강한 수련이었습니다. 그래도 이 수련을 완주한 도전자들은 최영의의 후계자(문장규)가 되거나 K-1 같은 무대에서 활약(프란시스코 필리오)하는 등 극진공수도 역사의 전설적 인물이 되었고, 또한 보는 것만으로도 질려버릴 정도의 인간 한계를 시험하는 수련 방식은 극진공수도의 근성과 실력을 증명하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극진공수도가 여러 단체로 분파된 후 100인 조수의 의미는 많이 퇴색됐지만, 지금도 100인 조수를 도전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 100인 조수 달성자,공식 / 비공식 포함

1.스티브 아네일(1965.05.21) - 남아공 출신 영국인. 최초의 비공식 달성자.

2.나카무라 타다시(1965.10.15)

2.오야마 시게루(1966.9.17) - US 오야마 가라테 대표. 2016년 사망.

3.로엑 홀랜더(1967.08.05) - 네덜란드 출신. 명예 8단 수여자

4.존 자비스(1967) - 뉴질랜드 출신.

5.하워드 콜린스(1972.11.01) - 영국 출신. 최초의 공식 달성자. 현 신극진회 최고 고문.

6.미우라 미우키(1973.04.13) - 전 US 오야마 가라테 최고 고문. 현 미우라 도장 관장.

7.문장규(1986.04.18) - 일본명 마쓰이 쇼케이. 제4회 세계대회 우승. 현 극진회관 IKO1 관장.(최영의로부터 가장 완벽하게 완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실제 대련 영상을 보면 흐뭇하게 미소짓고있는 최영의 총재를 볼 수 있다. 참고로 마쓰이 쇼케이는 일본 내 통명이며, 실제 국적은 대한민국이다)

8.아데미르 다 코스타(1987.04.25) - 브라질 출신. 프란시스코 필리오의 선배.

9.산페이 게이지(1990.02.24) - 제2·3회 세계대회 준우승.전 신극진회 대표.(한 번 실패하고 35세에 재도전하여 성공했으며 제 2·3회 세계대회 우승자이자 산페이 게이지의 라이벌인 나카무라 마코토는 1980년에 실시한 100인 대련 중 30인에서 실패하였다.)

10.마쓰다 아키라(1991.05.19) - 제5회 세계대회 준우승. 현 극진연합 소속.

11.야마키 겐지(1995.03.22) - IKO1 제6회 세계대회 우승.[8]

12.프란시스코 필리오(1995.03.22)[9] - IKO1 제 7회 세계대회 우승.

13.마리우스 쇼만(1996.3.23)''' - 남아공 출신.

14.카즈미 하지메(1999.03.13) - IKO1 제6·7회 세계대회 준우승. 현 카즈미 도장 관장.

15.클라우스 렉스(2002.12.12) - 스페인 출신.

16.나오미 알리(2004.7.4) - 호주 출신.

17.알투르 호바니시안(2009.05.29) - 아르메니아 출신. IKO1 제9회 세계대회 3위.

18.주드 레이드(2011.10.22) - 호주 출신.

19.타리엘 니콜라시비리(2014.04.26) - 러시아 출신. IKO1 제10회 세계대회 우승.

20.압둘라 타샤(2016.6.2) -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

21.태너 존슨(2017.9.30) - 미국 출신.

22.코케츠 타쿠마(2017.11.26) - 극진연합 제3회 세계대회 우승. 역대 최고령(36세 5개월) 100인 대련 달성자.(100인 대련 달성 직후 횡문근융해증으로 병원으로 실려갔으며 엄청난 피로 때문에 그 후 원형탈모증까지 생겼다. 유튜브에 극진공수도 관련 체널을 운영하고 있다)

23.다니엘 산체스(2018.3.10) - 스페인 출신.

▣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 오야마 마스다츠 최배달_인간을 뛰어넘어 소 그리고 곰과의 대결

최영의는 일본 무도가들의 계속되는 도전에 피로감을 느끼고 영화 쿼바디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소와의 대결을 추진하기에 이릅니다.인류 역사상 야샹 동물과의 대결은 많지만 거의 전설처럼 내려오는 썰들이었지만 최영의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소와의 대결을 48~50여 차례 펼쳤으며 47마리의 황소뿔을 꺾고, 투우소를 쓰러뜨리는 등 초인적인 무도인의 기량을 보여주며 일본에서는 "제 2의 미야모토 무사시" 혹은 "불패(不敗)의 무신(武神)"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일본 청소년이 선정한 위대한 인물 10걸 중 한국인으로써는 유일하게 선정되었고,1994년 권위있는 무도전문 매거진 BLACK BELT지의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기도 합니다.세계 격투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1974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절권도(截拳道)창시자 이소룡, 통산 450전 무패를 기록한 최강의 브라질주짓수(일명 : 그레이시 유술)의 힉슨 그레이시와 함께 20세기 3대 무술인으로 손꼽히기도 합니다.아무튼  그건 나중에 일이고 소와의 한판 승부를 위해 소를 주먹으로 때려 제압할 수 있도록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최영의는 마침내 소뿔을 꺽어 버리며 20세기 무도사에 전설의 이름을 아로 새깁니다.최영의는 소와의 대결에서 소의 돌진을 막다가 오른쪽 엄지 발가락이 분쇄골절 되는 등 나중에 상당한 후유증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맨손으로 소를 때려잡는 최영의 영상

최영의의 소 때려잡는 영상은 현재 인터넷에서 딱 하나만 있는데 이 영상을 촬영할 당시 최영의는 사기를 당해 돈이 쪼들려 푼돈이나마 만져보려고 젊은 시절 했던 소 잡는 이벤트를 다시 시도했는데, 소가 도대체 덤비지를 않고 죽어라 도망만 다녀서 대결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었고 관객들은 사기라며 돌을 던지고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카지와라 잇키는 이때 수모를 당하는 최영의의 낙담한 얼굴을 보면서 안타까움에 '차라리 소뿔에 받혀서 쓰러지기라도 했다면 적어도 저런 모욕은 당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고 하는데 동영상을 보면 우리가 상상했던 영상은 분명 아니지만 400~500kg 나가는 소를 최영의는 완력으로 패대기 치기도 하는데 이게 얼마나 엄청난 힘과 기술이 필요한 것인지는,간단히 생각해 일본 스모 선수들이 맣이 나가면 200kg 정도 되는데 80kg 되는 성인 남성이 200kg의 스모선수를 넘어뜨리는 것조차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본다면 최영의가 비록 만화처럼 소를 때려잡지는 못하여도 분명한 것은 거짓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여게에 더해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최영의의 극진카라테 수련생이었던 윌리 윌리엄스는 기록영화 지상최강의 가라테 파트 2에서 카라테맨으로 곰과 써우는 영상을 찍었다는 것입니다.당연한 얘기지만 실제 곰은 앞발의 타격은 제대로 맞으면 사지가 찢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빨이나 앞발 발톱 등은 불상사를 대비한 조치를 취한 후 촬영된 영상이란 점입니다.

곰과 대결한 카라테-윌리 윌리엄스

▤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 오야마 마스다츠 최배달_극진을 전설로 만든 미국 프로복서와 레슬러들과의 대결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인터넷에서 이소룡과 최배달이 싸우면 누가 이겨요?최배달이랑 시라소니 혹은 김두한 등을 엮습니다.일단 최영의는 당시 일본 무도가들과는 달리 체계적인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80kg 초중반대의 몸무게를 유지했다고 합니다.이소룡과 최영의가 비슷한 부분은 둘 다 신체의 웨이트 트레이닝을 중요시했고 실전을 모토로 삼았다는 것입니다.최영의는 175cm, 85kg의 피지컬을 가졌으며 이소룡 역시 170cm, 61kg이었지만 웨이트 트레이닝을 중요시해서 체지방이 10% 내외(추측임)의 몸을 자랑했습니다.최영의는 딱봐도 우람한 느낌으로,원래 장사였지만 체계적인 웨이트를 통해 힘과 일격필살의 카라테를 추구했으며 이소룡은 비록 피지컬적으로는 왜소해보이지만 꾸준한 웨이트로 일반인들보다 강력한 힘과 빠른 스피드를 구사했습니다.최영의와 이소룡이 체중 차이는 분명 나지만 신장 차이가 크게 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힘의 최영의와 스피드의 이소룡은 사실 붙어봐야 그 결과를 알 수 있지만 실전 경험에서 최영의는 앞서 이야기 했듯이 수많은 실전에서 이소룡같은 스타일을 많이 경험해 봤다는 것입니다.실전에서의 경험은 무시할 수 있는 요소가 절대 아니며 그것은 이소룡을 상대하는 최영의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그런 최영의는 일본에서는 더이상 상대가 없었고 미국 무대에서 자신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프로복서 및 레슬러들을 상대하여 연전 연승해 나갑니다.

힘과 일격필살의 카라테를 추구한 최영의의 피지컬
다양한 상황에 대응하는 격투 센스와 스피드의 절권도를 창시한 이소룡

최영의는 극진카라테의 부흥과 대중화를 위해 싸움 카라테(잡기 및 던지기,그리고 안면 타격이 허용되던 초창기 오야마 도장의 극진 카라테)에서 안면 타격과 잡기 및 던지기를 삭제하고 맙니다.이 결정은 결과론적으로 성공하여 극진 카라테는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에 그위세를 떨치게 됩니다.유도 4단에 복싱까지 배웠던 최영의는 왜 이런 모든 것을 제거하고 안면 타격까지 극진 카라테에서 제외시켰을까?최영의는 제자와의 대련에서 자신을 잡아 던지려는 제자에게 주먹 찌르기로 간단히 제압하며 "타격가는 잡아 던지려는 시도를 하는것보다 치는 것이 더 빠르다"고 하였고 안면 타격의 경우 맨주먹을 쓰는 극진 카라테의 경우 얼굴은 단련이 안되기 때문에 심각한 부상을 염려해 극진카라테에서 제거하였다고 합니다.위의 동영상은 문장규를 비롯한 극진 카라테맨들이 태기권(사와이 켄이치가 대성권을 배워 일본에서는 태기권이라는 이름으로 보급되는데, 사와이 켄이치는 극진 공수도의 최영의 총재와 친분이 있어 두 유파는 교류가 꽤 있다고 한다.)과 비공식 시합을 하는 영상인데 안면 타격이 없던 극진 카라테맨들이 상당히 고전하는 영상으로 비공식 시합이었다고는 하지만 이 영상이 일본 전역에 퍼지며 극진의 실전성에 수많은 의구심이 따라 붙기도 합니다.하지만 이에 반발한 문장규는 몇달 후 안면 타격을 보완하여 태기권과의 재대결에서 태기권 권사 3~4명을 압살하기도 합니다.분명한건 안면타격을 제외한 극진 카라테는 분명 실전성에서 많이 부족해지지만 안면 타격을 보완한다면 그 역시 너무 무서운 무술이라는 것입니다.

최영의는 안면타격에 유도 기술까지 곁들인 극진카라테를 서양의 복서와 프로레슬러들에게 펼쳐보이며 불패의 신화를 쌓아갔던 것입니다.미국에서 이런 실전성을 선보인 덕분에 1953년 미 FBI 본부 가라데 사범,1953년 미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가라데 사범을 역임하기도 합니다.그렇게 강했다는 최영의의 실제 대결 영상은 기록으로 남은 것이 거의 없어 많은 사람들이 최영의의 실제 싸우는 모습을 매우 궁금해 하기도 합니다.물론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고 위에서 살펴본 영상이었던 일본 태기권의 창시자 사와이 켄이치와의 약속 대련 영상이 존재하기는 합니다.일본 태기권의 창시자사와이 켄이치 역시 일본 무술계에서 유명한 무도가로 일본제국주의 시절, 일본군 장교이며 유도와 검도의 무술교관이었지만 중국에서 의권의 왕향제를 만나 시합에서 패배하고 6년간 의권을 배웁니다.사와이 켄이치는 일본 패전 후 일본에서 태기권이라는 이름으로 무술을 가르칠 수 있는 허락을 왕향제에게 받고 일본으로 돌아와 친분이 있었던 최영의의극진 카라테와 교류를 합니다. 최영의 총재는 의권의 움직임과 특징이 의권의 참장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 후 극진의 제자들에게도 의권의 참장 연습을 추천했었습니다.의권의 창시자 왕향제는 형의권 곽운심의 제자였는데 곽운심의 제자인 왕향제에게 형의권의 핵심은 형보다는 참장과 힘을 운용하는 시력등에 그 핵심이 있다고 가르치고 후에 왕향제는 참장, 시력기법들을 정리하고 보다 단순한 공격기술들을 정리해서 의권을 만듭니다. 의권의 왕향제는 당시 중국의 한 신문기자와 인터뷰(담권학요의)에서 중국의 태극권등 여러 중국 무술들의 실전성 없음을 한탄하면서 "중국의 일반 무술가와 서양의 복싱가는 실전에서 '천지차이'가 난다"고 실랄하게 비판합니다. 그 옛날에도 형 위주에 스파링 거의 없는 중국무술의 실전성에 대한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했던 몇 안되는 중국무술가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극진 카라테의 창시자 최영의와 태기권의 창시자 사와이 켄이치는 앞서 본 극진 카라테 VS 태기권 시합과는 달리 약속대련이기 때문에 실망스러울스도 있지만 인체의 각(角)를 잃지 않으려는 두 고수의 모습이 매우 인상깊기도 합니다.각을 어떻게 잡는가에 따라 우리 신체 역시 그 능력을 몇배로 증폭 시킬 수 있는데 팔의 각과 무릎의 각 그리고 허리의 각 등 몸의 수많은 각을 이상적으로 배열해 놓고 그 각을 유지한채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약속대련이니만큼 실제의 격투와는 분명 차이가 있지만 두 고수가 각자의 무예를 풀어내는 방식을 볼 수 있는 귀한 영상임은 틀림 없습니다.

태기권의 창시자 사와이 켄이치와 최영의

 
극진 카라테의 창시자 최영의와  태기권의 창시자 사와이 켄이치의 약속대련

최영의의 움직임을 볼 수 있는 귀한 자료이기도 하지만 실망스러울수도 있는데 태기권 창시자 사와이 켄이치의 경우 대산도장 시절 대산도장 유단자들과 대련하여 유단자들도 몇명 쓰러트렸지만 당시 최고참 제자 중 한명이었던 야스다 에이지와 맞대결하다가 장이 파열되며 실신한 일화가 있기도 합니다.물론 극진 카라테를 배운 모든 이들이 최강의 무술가가 되는 것은 아니며 극진 카라테 역시 많은 허점이나 부족함이 있는 무술이지만 제 2대 극진회관 문장규에 이르러서는 잡기와 넘기기 등이 추가되는 등 극진카라테는 최영의 시절의 극진 카라테에서 변화를 모색하며 시대에 맞게 진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최영의가 실전 카라테를 추가하며 일본 전국 각지를 돌며 도장깨기를 하고 소뿔을 내려치고 외국의 복서,레슬러 등과의 시합 등 끊임없이 도전했듯이 극진 카라테 자체도 최영의처럼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배달 총재의 극진가라데 기본기 지도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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