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1부] 스승을 배신한 제자,만화 공수바보일대의 카지와라 잇키와 최영의의 애증어린 사제지간
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 오야마 마스다츠 최배달
카지와라 잇키(梶原一騎)는 만화 원작자라는 직업의 선구자로 본명은 타카모리 아사키(高森朝樹), 극화계의 돈(Don)'이라고 불렸던 사나이로 도쿄도 다이토군 출신으로 거인의 별,내일의 죠,타이거 마스크,사마라이 자이언츠,공수도 바보일대,인간흉기 등의 원작자로 특히 1971년 만화 공수도 바보일대(空手バカ一代)의 대히트로 최영의는 단순히 격투기 관련 인물만이 아닌 일반 대중들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일본 내에서 초 유명인사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때 최영의는 상당한 사업 수완을 발휘하여 극진공수를 단순한 무술도장 수준을 넘어서 사실상 거대기업 수준으로 성장시켰고, 최영의의 영향력도 어마어마하게 커지게 되었습니다. 허나 이렇게 극진공수도가 성장하면서 자연히 이런저런 잡음도 생기게 되는데,최영의가 살아있었을 때는 총수로서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으니 큰 문제가 없었지만, 최영의 사후 극진이 파벌 싸움 등으로 분열되는 과정을 보면 이때 잡음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기도 합니다.극진의 사업이 커지면서 자연스레 지분이 상당했던 카지와라 잇키의 영향력도 커지게 되면서 카지와라 잇키와 최영의 사이의 관계는 여러모로 애증이 뒤얽힌 복잡한 사이가 되어버힙니다.그런 최영의와 애증의 관계를 떠나 만화가로서의 카지와라 잇키를 살펴보면,그의 작품의 특징으로는 피와 땀, 노력, 근성, 강한 남자, 우정 등 당시 기준으로도 이미 고리타분했던, 거칠고 땀내나는 사나이들의 이야기를 즐겨 다루었으며 거의 자기학대 수준의 과격한 자기 수양을 미화하고, 주인공들의 정신상태가 매우 반항적이고 자기파멸적이라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전자의 경향은 소위(所謂) "근성스포츠물"의 원조가 되었고, 후자의 경향은 내일의 죠와 같은 작품을 통해 당시 일본 운동권 학생들의 정신적 지주로 추앙받기도 합니다.카지와라 잇키 만화 속 주인공들은 실존인물들을 만화의 캐릭터로 자주 등장시킨 것도 특징으로 역도산,최영의,왕정치,안토니오 이노키,김일 등이 그 예이고, 실제로도 역도산, 최영의, 이노키와 연이 있었지만 만화적 재미를 위해 현실과 동떨어진 과장된 묘사를 굉장히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실상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는 것은 감안해서 봐야 합니다.소년원 출신이었으며 때문에 작중에 소년원 출신의 주인공이 자주 등장하는데 대표적으로 타이거 마스크,내일의 죠가 있습니다.
▣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 오야마 마스다츠 최배달_최영의를 왜곡한 카지와라 잇키의 공수바보일대
카지와라 잇키의 만화 거인의 별 巨人の星(1968~1971, 1977~1978)의 스토리는 前 요미우리 자이언츠거인)의 3루수였던 아버지 호시 잇테츠로부터 소년 시절부터 야구 영재 교육을 받은 주인공인 호시 휴마가 고교야구를 거쳐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해서 라이벌인 하나가타 미츠루, 사몬 호사쿠 등의 라이벌들과 아버지와의 특훈을 통해 개발한 메이저 리그 볼을 무기로 싸우는, 이른바 근성 야구만화의 원조라고 할수 있는 작품입니다.내일의 죠あしたのジョーAshita no Joe(1968년 ~ 1973년)는 도쿄 아사쿠사의 쪽방 거리에 불쑥 나타난 한 소년 야부키 죠라고 불리는 이 소년에게 일방적으로 타격을 입은 알코올 중독 권투 선수 탄게 단폐이는 그 움직임에 천부적인 복싱 센스를 찾아 일류의 복서로 만들기로 분투하는데…결말 부분에 대해 논란이 많았던 작품이기도 합니다.카지와라 잇키는 최영의에 대해 공수도 바보일대 뿐 아니라 인간 흉기에서도 최영의 총재를 묘사한 작품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공수도 바보 일대(한국명 무한의 파이터)는 지금도 일본에서 격투기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추억의 만화지만 작가가 멋대로 최영의의 출생 배경에 대한 설명은 빼면서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옹호(태평양전쟁에 병사로 징집된 시절에 미군을 치기 위해 출동한 일본군 비행기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나라를 위해 몸 바치는 사람들'이라며 경례하는 장면이 1권에 있었다)를 집어넣거나 실제 수련이나 대련 과정과는 관계없이 판타지적인 내용을 마구잡이로 그려넣어 왜곡이 많다는 비판도 받는데 심지어 총알을 잡는 묘사까지 그려넣는 바람에 최영의 스스로가 관련 질문을 받으면 매우 난처해 했다고 합니다.나중에 오야마의 실제 생애를 다룬 자서전 등이 발간되어 그가 한반도 태생이며 작가의 왜곡에 의해 판타지적으로 과장된 부분들도 있음이 알려졌으나 여전히 극진회관의 대스승으로 존중받고 있지만 지금까지도 잘못 알려진 일화들을 실제라고 믿는 경우도 존재합니다.어쨌든 이 만화의 영향으로 이후 일본매체 등에서 다뤄지는 격투기 바보 캐릭터는 최영의가 모티브인 경우가 압도적이 되었고 가상의 실전 공수 유파는 극진회관을 모티브로 삼는 경우(물론 애초에 이 만화가 나온 계기 자체가 최영의가 젊은 시절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러 격투가들과 실전을 겨룬 팩트가 있기 때문이긴 하다. 그걸 제자였던 작가가 멋대로 감정이입해서 판타지를 창조했을 뿐. 실제 이 만화 전에도 상기되어있듯 최영의는 이미 해외에서 제자들이 올 정도로 업계에선 나름 알아주는 인물이었고, 이런 이력 때문인지 미국 수사기관에 초빙되기도 하였다. 사실 최영의는 2차 대전 이후 주일미군들에게 가라테를 훈련시킨 경력도 있었는데 이 인연으로 성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가 많게 됩니다. 만화 바키의 오로치 돗포같은 경우는 아예 대놓고 이미지를 차용하기도 했다가 후반부로 가면 강력한 주먹에 대해서 이야기할때 하나야마 카오루를 이용해 최영희의 명언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카지와라 잇키가 말년에 내놓은 인간흉기는 1979년부터 1985년까지 주간만화 고라쿠라는 성인 만화 잡지에 연재된 만화로 주인공의 막장인생을 그려내고 있습니다.인간흉기는 사실 한국에서만 특히 유명한 만화인데 내일의 죠보다 1년 먼저 시작한 작품인 공수도 지옥변 키바의 마이너 카피이기 때문입니다.주인공 강의천(미카게 요시토)이 학교를 뛰쳐나와 진정한 인간흉기가 되기 위해 소년원-술집-공수도 도장 등을 거치며 막장트리를 탄다는 것이 주 내용으로 게다가, 스토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부터는 자신이 다니는 공수도 도장의 대관장인 최영의(실존인물 최영의가 모델)를 격파하고 진정한 인간흉기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사실 이 부분의 내용까지는 특유의 냉혹함과 썩은 맛이 제법 괜찮은 범작 이상의 청년만화였는데 2권 초반 강의천이 일하는 살롱에서 짤리고 기둥서방질 해먹던 여자들에게 배신당했을 때, 즉 이 작품의 황금패턴이 첫번째로 등장했을 때 제대로 된 무도만화로 패턴을 갈아탔다면 명작까진 못 돼도 수작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주인공은 무도만화 주인공처럼 강해지려 노력하기보다는, 양민학살이 가능한 수준의 무력으로 강간과 사기를 일삼다가 야반도주하는 짓거리만 반복하며 진짜 인간흉기처럼 강해지는 건 최배달과 다른 무술인들입니다.가장 큰 문제는 강의천이 자꾸만 자기 일에 여자를 끌어들인다는 것과 초반의 냉혹 비정한 야수같은 모습과는 다르게 성격이 점점 C급 찌질이가 되어간다는 것으로 차라리 거물 범죄자급 카리스마라도 있으면 훌륭한 피카레스크물이라도 됐을 텐데 주인공이란 놈이 조금만 위기에 몰려도 곧장 오줌을 지리며 손이 발이되듯 빌어대는 지나가던 3류 쓰레기 엑스트라 같은 꼴만 보여주니 독자 입장에선 도저히 정내미를 느낄 수 조차도 없으며 잘 나가다가 최영의와 대립하면서부터는 급격히 막장테크를 타는 게 주 내용일 정도로 스토리의 개연성 따위는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작품이기도 합니다.특히 이 작품에서 묘사되는 주인공의 최영의에 대한 굴절된 감정은, 최영의의 제자였던 카지와라 잇키 본인이 최영의에게 가지고 있었던 존경과 증오가 동시에 담긴 굴절된 경원시 감정이 그대로 표현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최영의와의 관계는 실제 카지와라 잇키의 인생과도 닮아있기도 합니다.이 작품의 연재 초반은 최영의와 카지와라의 대립이 절정에 이르던 시기니지만 말년에는 거의 화해 직전까지 갔다고 하지만 결국 카지와라 본인의 죽음으로 완전한 화해까지는 이루지 못한 듯하며 최영의 선생은 이것을 안타까워하는 듯한 발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1983~85년 사이 이 작품도 카지와라의 온갖 스캔들과 췌장암 투병으로 중단되었다가 마지막 23권 분량만 진행하고 완료되었습니다. 마지막권 카지와라의 후기에 의하면 당초 생각했던 완결은 주인공을 '완전한 흉기'로 만들 생각이었다고 하는데, 결국 최영의를 타도하는 데까지는 끌고 가지 못합니다.
▣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 오야마 마스다츠 최배달_최영의와 극진을 통제하려는 카지와라 잇키
카지와라 잇키는 힘이란 주제에 비정상적으로 심취한 사람으로, 막장같은 자신의 말년을 정리하고, 개심하여 자신이 왜 그렇게 폭력적인 힘에 매료되었는지를 알리기 위해, 자전적 만화 사나이의 성좌를 그리다가, 완결내지 못하고 사망하여 버립니다.카지와라 잇키는 태평양 전쟁 패전 건도 있어서 당시 일본인들은 패배의식에 사로 잡혀 있었는데 당시 미국인과 대결하여 승리한 최영의는 유명 인사가 되었고,그 때 마침 만화가 카지와라 잇키가 최영의에게 접근하여 둘은 친분을 나누게 됩니다.꼴마초였던 카지와라는 최영의의 무용담에 감복하여 친하게 지냈고 그 인연으로 최영의를 작중 등장인물로 두 번 써보았는데 이게 반응이 좋았을 뿐 아니라 당시 격투기붐이 불고 있었기 때문에 카지와라는 최영의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들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릅니다.와타나베 카즈히사(극진회관 초대 사범대)는 당시를 회상하기를,
"당시 무명의 카자와라씨를 오야마(최영의)선생님은
"장래 오야마도장을 선전시켜줄 사람이니까.."라고 이 시기부터
말하고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그 선견지명은 10수년후에 증명된 것이지만...'
오야마(최영의)선생님은 카지와라씨가
카라테를 쓰는 주인공이 활약하는 소설을
써주길 바랬던 것 같다.
내가 도장밖에서 실전 싸움을 하면,
오야마선생님은 카지와라씨를 불러 내 실전담을 하나하나 취재시켰다.
카지와라씨도 흥미를 가지고 실전에선
어떤 기술이 유효한가?
다수를 상대로는 어떻게 싸워야 좋은가?등을
열심히 나에게서 취재했다.
최영의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가 나오는 작품 '무지개를 부르는 주먹'을 그린 츠노다 지로가 작화를 맡은 만화 공수도 바보일대가 나오자마자 대히트하면서 최영의 개인의 유명세에 비해 정작 도장 자체는 그냥저냥한 수준이었던 극진공수도 도장에도 입문 희망자가 몰려들기 시작했으며 최영의와 친분을 맺고 도장을 들락거리던 카지와라를 따르는 사람들도 꽤 늘어나게 되었습니다.인기 고공행진을 하던 공수도 바보일대는 작화 담당 츠노다에서 카게마루 죠야로 교체하고 연재를 계속했지만 최영의의 에피소드는 이미 다 써먹었던 탓에 문하생이었던 아시하라 히데유키를 중심으로 작품을 계속 진행했는데 당시 극진공수도 해외 진출을 주장하는 아시하라파와 보수적인 최영의파로 갈려 있었는데 카지와라가 아시하라편을 들면서 최영의측에서는 이에 상당한 불만을 표하기도 했으며 여기에 최영의와 카지와라가 반반씩 출자하여 만든 영화 '지상 최강의 가라테'의 수익 분배 문제까지 터지자 두 사람은 결별하긷에 이릅니다. 또한 카지와라 잇키를 빼고 최영의를 주인공으로 츠노다가 만화 갓핸드를 그렸지만 분노한 카지와라는 편집부에 압력을 넣었고 당시 작품 자체도 크게 히트하진 못했기 때문에 갓핸드는 고작 9주만에 끝나게 되었는데 그 와중에 카지와라는 계속해서 츠노다를 괴롭혔고 이에 츠노다는 자기 작품에서 카지와라를 헐뜯는 말을 집어넣었다가 걸려서 카지와라에게 납치당해 사과장을 쓰는 사건(츠노다 지로 사과장 사건)이 벌어지기도 합니다.그 후 일본에 방문한 격투가 윌리 윌리엄스와 안토니오 이노키의 매치에서 마침내 최영의가 문하생들과 카지와라를 습격한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았는데 실제로 습격 사건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카지와라는 최영의에게 사과를 요구하였고 최영의가 묵살하여 의형제까지 맺었던 두 사람의 관계는 완전히 파탄나고 말았는데 이렇게 둘의 사이가 파탄난 주요원인은 카지와라 잇키가 자신의 작품이 연속적으로 성공하자 점점 교만해지게 되고 극진회관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세하게 되면서 최영의와의 관계를 스승과 제자가 아닌,동등한 관계 혹은 그이상을 원하게 되고 실제로 그런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합니다.
카지와라 잇키의 만화의 문제점은 창작자로서 금기를 깨고 실화에 허구를 뒤섞은 논픽션 실화를 만들어내 그것을 읽는 아이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원동력으로 막대한 부를 쌓아 올리게 됩니다.단편적인 예로 1981년,애니메이션 타이거마스크 2세가 방영된 3일 뒤 일본 프로레슬링계에서 손꼽히는 운동능력을 가진 사야마 사토루(Shooto 설립자)에게 타이거 마스크를 씌워 데뷔시키는데 당시 만화 속 주인공이 현실의 링 위에서 활약하는 모습에 흥분하지 않을 남자아이들은 없었습니다.그런 의미에서 카지와라는 마케팅 전략에서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그리고 카지와라 잇키의 천부적인 마케팅 전략의 시발점이 되는 것은 바로 만화 공수도 바보일대부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을 사실인채로 완전히 재현하는 것은 아무리
유쾌하고 즐거운 가공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보다도
훨씬 곤란한 것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이 이야기는 사실담이며 이 남자는 존재한다.
....중략...
우리는 진지하고 또한 냉정하게
이 남자를 응시해..그리고 그 가치를
독자에게 묻고싶다.
/카지와라 잇키,츠노다 지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명문으로 시작하는 카지와라의 만화 공수도 바보일대는 수많은 허구와 왜곡과 함께 곧 최영의의 진짜 역사가 되고 말았으며 일본 무도계를 넘어 일반인들에게까지 최영의를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국내에 알려진 사실은 극진 제 2대 관장 문장규(마쓰이 쇼케이),신극진회관 현대표 미도리 겐지 등 극진의 유명 무술인들도 바로 이 만화 공수도 바보일대를 보고 자라 극진에 입문했을 정도이며 실제 이 만화의 영향력은 만화가 연재된 직후 극진회관의 하루 입문자수는 평균 100명을 넘었고 수련생들이 도장에 들어올 수 없어 남은 인원은 복도와 옥상,도장 앞 길바닥에서까지 수련을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 오야마 마스다츠 최배달_카지와라를 초반에 방치한 최영의의 실수
그리고 이런 만화 공수도 바보일대 열풍은 전국 각지의 지부 도장 설립으로 이어지게 됩니다.여기에 더해 카지와라 잇키는 극진회관의 통신교육 사업 "마스 오야마 카라테 스쿨"을 건의,최영의를 교장으로 내세워 1년에 2만명이 넘는 신규가입자를 기록하게 되지만 이 사업의 실제 경영자는 카지와라 잇키의 친동생이었던 마키 히사오였습니다.최영의는 급격하게 늘어나는 지부장과 문하생들,본인과 총본부에 대한 결속력을 다지기 위한 잡지 "근대공수(후에 현대공수)"를 발매하게 되는데,당시까지 무도단체가 기관지를 발행한다는 발상 그 자체가 없던 일본에서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습니다.하지만 최영의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밑에 사람의 목소리에 답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잡지의 발행권을 갖게 된 사람 또한 카지와라 잇키의 친동생 마키 히사오(본명;타카모리 마츠치)였습니다.이 잡지는 마스 오야마 카라테 스쿨의 회원들 중심으로 판매하게 됩니다.최영의는 카지와라를 통해 막대한 이익과 명예를 얻었지만 카지와라 잇키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최영의의 손과 발을 묶고 점점 자신의 뜻대로 최영의를 조종하고 있었습니다.
"허구와 과장이 섞여있다 해도 어차피 만화니까 처음엔 신경쓰지 않았어.
누구나 자신이 훌륭하게 그려지면 기쁜법이야.
허나 정신 차리고보니 나는 극진도 가공의 세계에 말려들게하고 말았어.
이건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허나 이미 만화안에는 하나,둘 내가 한 말이 등장하는거야.
"대산배달담"으로말야.
그건 내가 실제로 한말인거 아니겠어..
이런 상황에서 탈출하려면 양자택일 밖에 없습니다.
카지와라와 연을 끊고 공수바보일대를 끝내
"그건 사실이 아니라 가공의 이야기입니다"라고 공표하거나,
카지와라의 방식에 맞춰가는 것,
"그 무렵의 난 카지와라와 결별할 용기가 없었던거야.."
/최영의
최영의와 카지와라 잇키의 기묘한 관계에 대하여 이시바시 마사시 전 대산도장 지도원은 "한때는 오야마 선생님(최영의)과 카지와라씨가 상부상조하는 관계로 비지니스적으로는 대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할 수 있겠죠."공수바보일대"로 인해 극진의 이름이 세산에 정착했다는 의미로서 카지와라씨의 공적은 커.하지만....저로서는 그 시절의 극진도,오야마 선생님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했으며 로야마 하츠오(한국명;노초웅,현 극진관 관장) 역시 "공수바보일대"가 히트치고 있던 시대,총재님은 확실하게(만화의) 주인공을 연기하고 있었습니다.그 이전의 총재님과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 되어버렸어..표정도 말하는 방식도..물론 그게 총재님의 본질은 아니야..프로레슬러따위랑 사귀고 지낼 필요 없다고..빨리 카지와라 형제랑 손을 끊고,무도카라테를 표방했던 원래의 총재님의 모습으로 돌아가길 바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영의 본인과 오랜 시간을 함께한 그의 제자들이 눈치챘을땐 이미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있었습니다.카지와라는 극진의 세계선수권대회를 "지상 최강의 카라테"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하여 개봉하기 시작했고 흥행 수익이 당시 기준 30억엔(한화 약 271억원)을 가볍게 넘겼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영화는 일본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기록적인 흥행을 기록하기도 합니다.극진의 모든 마케팅은 카지와라의 손을 거치게 되었고 최영의는 어떻게든 극진회관에 타격을 입히지 않고 이상적으로 카지와라와 손을 끊는 방법을 모색해야 했습니다.하지만 불행하게도 그것은 불가능했습니다.카지와라는 일본 격투기판 그 자체를 집어 삼키기 위해 극진을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극진카라테를 창시한 지상 최강의 사나이 오야마 마스다츠 최배달_, 제2회 극진 세계선수권대회 윌리 윌리엄스 승부조작 사건과 이후의 나비효과
카지와라 잇키는 더이상 종이에 만화를 그리지 않았으며 극진이라는 연필을 쥐고 현실 세계에 자신의 만화를 그리기 시작합니다.카지와라는 1970년대 후반 당시 극진 최강의 외국인으로 평가받던 윌리 윌리엄스(Willie Williams)에게 주목하기 시작합니다.카지와라의 계획은 윌리 윌리엄스를 안토니오 이노키와 싸우게 하는 것으로 그것을 통해 극진회관 VS 신일본프로레슬링과의 대립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었지만 최영의는 윌리가 프로레슬링 무대에 서는 것을 반대하였고,타류시합 출전 금지라는 조항까지 만들어 윌리를 보호하였습니다.그러나 이는 카지와라에게 더 좋은 전개를 만들 수 있는 복선에 지나지 않았습니다.1979년 11월, 제2회 극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카지와라는 최영의에게 공식석상에서 "일본선수가 우승하지 못하면 배를 가르겠다"라는 인터뷰를 하게 만듭니다.그리그 윌리 윌리엄스는 압도적인 강함을 뽑내며 준결승에 진출,이대로 윌리가 우승한다면 최영의는 배를 갈라야 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는 상황이 만들어지자 카지와라는 심판진(지부장들)을 불러내 최영의의 명령이라며 충격적인 말을 전합니다.'윌리의 반칙패로 시합을 끈내라"고,당시 와세다대학 극진동호회는 (준결승)시합전 윌리를 만나게 되는데 그들은 알수 없는 위화감에 휩싸이게 됩니다.수많은 극진 선수들 중 윌리만 개인 대기실을 사용하고 있었고 윌리의 대기실을 찾아가자 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만취해 있었고 대기실 바닥에는 맥주 10캔이 넘게 굴러다니고 있었다고 합니다.그리고 이어진 윌리 윌리엄스 VS 산페이 케이지의 준결승 시합,주심은 극진의 호랑이 소에노 요시지였으며 경기내용은 간단했습니다.
당시의 개정된 극진 룰은 상대의 옷깃을 잡고 공격하는 행위가 반칙으로 간주되었는데 준결승에서 윌리는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산페이의 도복 깃을 잡고 무릎차기를 복부에 연속으로 시도 그리고 주심의 주의와 최영의,카지와라와 소에노의 협의에 이은 경기 속행에도 윌리는 다시 산페이의 도복 깃을 붙잡고 무릎차기 시도와 주심의 경고와 연이은 윌리의 반복적인 반칙 행위에 결국 주심은 윌리의 반칙패 선언을 하기에 이르고 윌리는 실격패를 당하게 되고 경기장의 관중들은 영문을 알수 없어 술렁이지만 당시 이 승부조작에 의문을 품은 사람들은 당시 윌리의 대기실을 방문했던 와세다대학 극진동호회 학생들 뿐이었습니다.그리고 극진의 여러 지부장들은 이 사건으로 인해 극진 자체와 스승 최영의에 대한 의심과 의문을 품게 되었고 비록 외국인이었지만 자신들의 제자이자 사제였던 윌리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술에 취해 미친척하면서도 상대 산페이의 몸에 데미지가 남을 공격은 단 한번도 하지 얺았다는 사실에 눈물을 참아낼 수 없었습니다.그리고 극진회관의 지부장들 사이에서도 친 카지와라파와 반 카지와라파의 세력으로 나뉘어지기 시작합니다.이 사건으로 스승 최영의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 극진의 호랑이라는 별칭을 가졌던 소에노 요시지(현 사도관 관장)는,
윌리는 승부조작을 했고,거기에 나는 가담했고,대회는 실력으로 산페이를 꺽은
나카무라 마코토가 우승했다.
일본의 위신은 지켜졌고,지난 대회와 마찬가지로 오야마(최영의)관장은 배를 가르지 않았다.
폐회식,그리고 리셉션 파티와 행사가 계속되는 가운데
오야마 관장은 시종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나는 인내심을 가졌다.
그러나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혼자 울었다.
소리치듯 목이 쉴때까지 나는 목놓아 울부짖었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믿는 극진카라테는 끝났다.
내가 스승으로 추앙한 오애마 마츠타츠는 최악의 사기꾼이다."
/소에노 요시지(현 사도관 관장)
하지만 소에노 요시지는 반만 알고 반은 모르는 것이 있었습니다.고다 유조(현 극진회관 최고고문)은 당시의 상황에 대해 말하기를,
"총재님이 윌리의 승부조작(우승하지 못하게 하는 것)에 동의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총재님의 생각은 준결승에서 산페이가 윌리의 스테미나를 소비시켜
결승이 (나카무라)마코토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카지와라씨가 이노키전의 "이슈몰이"를 위해 조작해낸 일인 것입니다.
총재님이 모든 사실을 알게된 건 모든 것이 결정된 뒤였습니다.
시게루(오오야마)선배랑 소에노(요시지)는 카지와라 선생으로부터
총재의 지시라고 듣고 움직였습니다.
/고다 유조(현 극진회관 최고고문)
그리고 윌리는 제2회 세계선수권대회 이후 미디어와 가진 인터뷰에서 거짓 인터뷰를 진행합니다.윌리는 당시,"어차피 이노키랑 싸워 파문당할거 프로레슬링식으로 날뛰어 보자고 생각했다."며 승부조작에 대한 면피용 발언을 하기도 합니다.사실 이 시합은 실전 이종 격투기가 아닌,프로레슬링(쇼)시합이었지만 윌리의 세컨드(사실상 폴리스맨)로 참가한 인물들은 오야마 시게루,쿠로사키 겐지,소에노 요시지 등이었으며 카지와라 잇키는 극진측과 안토니오 이노키에게 전혀 다른 시합 결과(각본)를 알려주었고 약속을 어긴 이노키에게 분노한 극진측 세컨드가 프로레슬러들을 습격하는 흥미로운 장면들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데 성공합니다.후에 몇몇 일본 격투만화들에서 소재로 사용하는 카라테 VS 프로레슬링은 이렇게 만들어지게 됩니다.
"윌리와 이노키의 시합도 그렇습니다.
전부 총재님이 모르는 곳에서 카지와라씨 주도로 결정되고 있었던 것,
맹세하고 말하겠습니다만,윌리와 이노키의 시합도
총재님은 끝까지 반대의 입장을 이어나갔습니다.완전한 카지와라씨의 독단입니다.
쿠로사키(켄지)선생님도 처음엔 반대했습니다.하지만 당시 힘의 관계에서
카지와라씨의 방식을 참고 따를 수 밖에 없었고,
쿠로사키 선생님도(카지와라와)비지니스격으로 얽혀서 움직일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고다 유조(현 극진회관 최고고문)
"간단히 말하자면 오야마선생님도 나도 비지니스의 도구로(카지와라에게)이용당했다는 것입니다"
/메지로GYM설립자 전 대산도장 지도원,전 극진회관 최고사범
2년뒤인 1981년 2월23일 극진회관 지부장들로부터 카지와라 잇키와 그의 동생 마키 히사오의 제먕을 요청하는 결의서가 도착하고,최영의는 이제 결단을 내려야만 헸습니다.1983년 3월19일,카지와라 잇키와 마키 히사오는 극진회관에서 제명되었고 카지와라와 친분이 두터웠던 아시하라 히데유키와 소에노 요시지는 1980년 9월에 먼저 극진회관에서 제명되었습니다.최영의와 극진회관을 두고 비선실세처럼 행동하던 카지와라 잇키를 두고 볼 수 없었던 최영의는 결국 제명이란느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 카지와라 잇키와 극진과 연걸된 악연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리고 카지와라 잇키는 극진에서 제명당한 5개월뒤 날벼락같은 소식을 최영의에게 전합니다.이상으로 스승을 배신한 제자,만화 공수바보일대의 카지와라 잇키와 최영의의 애증어린 사제지간 ⑤[1부]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더 자세한 이야기는 2부에서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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