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SMALL 남당유고 박창화의 고구려사초(高句麗史抄) 고구려사략(高句麗史略)제7대 태조황제기1 남당유고 박창화의 고구려사초(高句麗史抄) 고구려사략(高句麗史略)제7대 태조황제기_고구려의 새 역사를 열다 남당유고 박창화의 고구려사초(高句麗史抄) 고구려사략(高句麗史略)제7대 태조황제기 고구려의 새 역사를 열다 태조황제는 이름이 궁이다. 또는 어수라고도한다. 신명선제의 큰아들이고 어머니는 부여씨인 호화태후인데 동부여의 태사인 왕문의 딸이다. 임금께서는 태어날때부터 눈을 뜨시고 보실수 있으셨다. 신통한 힘으로 요동을 쳐서 큰 공을 세우셨다. 이제 제위에 오르시니 나이가 마흔다섯이었다. 아량이 넓고 어질고 효도를 하며 우애가 두터웠다. 타인을 존경하였다. 부황이 정사에 별 뜻이 없어 모친에게 물었기에, 태후가 정사를 처결하였고, 태보를 따로 두지 않았었다.원년은 임자년(AD112)이다. 6월에 先帝을 태상황으로 추존하고 모후를 호화궁황태후로 추존하였다. 마락을 좌보로 삼고 송두지를 우보로 삼았다. 신명이라는 연.. 2023. 11. 9. 반응형 BIG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