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SMALL 고구리3 남당유고 박창화의 고구려사초(高句麗史抄) 고구려사략(高句麗史略)제6대 신명선제_나라의 안정과 평안을 가져오다 남당유고 박창화의 고구려사초(高句麗史抄) 고구려사략(高句麗史略)제6대 신명선제 나라의 안정과 평안을 가져오다 신명선제의 이름은 재사인데 혹은 록신이라고도 한다. 대무신제의 별자 즉 서자이다. 어머니는 갈사태후라고 하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해소인데 유화부인이 금와에게서 난 아들이다. 성품이 총명하고 어진 것을 좋아하며 선서(仙書)를 읽고 의약에 통달하였다. 또한 병사를 이용하는데 능하다. 언변이 좋고 항상 아는 것도 모르는듯하였다. 동복형인 호동이 비명에 죽어 슬퍼하였다. 민중제가 죽으매 나랏사람들이 재위에 오르게 하려고 했지만 거절하며 말하기를 "적자가 있고 서자의 마땅한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어머니를 모시고 피하여 달아났다. 모본이 그 뜻을 가상히 여기어 선왕(仙王)으로 봉하였다. 부여를 평정함에 .. 2023. 11. 8. 남당유고 박창화의 고구려사초(高句麗史抄) 고구려사략(高句麗史略)제5대 모본제기_고구려 최초의 폭군,신하에게 시해되다! 남당유고 박창화의 고구려사초(高句麗史抄) 고구려사략(高句麗史略)제5대 모본제기 고구려 최초의 폭군,신하에게 시해되다! 모본제의 이름은 해우이고 대무신제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오태후로 오이의 아들 루의 딸이다. 용모가 아름답고 말타고 활쏘는데 아주 능하였다. 허튼소리와 비위를 잘맞추고 옛 무제가 그를 귀여워하여 정윤[동궁이 될 수 있는 친자식]으로 삼았는데 이윽고 뜻 하던 것을 얻었으므로 후궁들과 어지러이 놀아났으며 성품은 아주 잔인하였다. 무제는 죽음을 앞두고, 태갑의 옛일太甲故事을 민중에게 시키면서, 해우가 개관천선하기를 기다렸다가 해우에게 물려주라고 하였다. 오태후에게도 명하길 민중을 받들면서 그 일을 이루라고 하였다. 아직 개과의 기운도 보이지 않았는데, 민중은 해우가 개과한 것으로 알고 양위하려고 .. 2023. 11. 7. 남당유고 박창화의 고구려사초(高句麗史抄) 고구려사략(高句麗史略) 제1대 시조 추모대제기_주몽의 정복전쟁으로 바라본 고구려의 초기 영토 남당유고 박창화의 고구려사초(高句麗史抄) 고구려사략(高句麗史略) 제1대 시조 추모대제기 주몽의 정복전쟁으로 바라본 고구려의 초기 영토 남당유고 박창화 선생의 고구려사초(高句麗史抄) 고구려사략(高句麗史略)은 박창화가 1933년 ~ 1942년 사이에 일본 궁내성 서릉부(일본 황실 도서관)에서 촉탁(계약직)으로 근무했는데, 서릉부에는 일제가 규장각 등에서 약탈해 간 비공개 고서가 많이 있었고 10여년간 여러 책들을 읽고 손으로 옮겨 적었다고 합니다.광복 이후에는 교사 생활을 했으며, 제자 김종진, 김준웅 형제를 가르칠 때 화랑세기 필사본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또한 이승만 정권 당시 박창화 자신이 직접 일본에 가서 일제강점기 동안에 약탈해 간 고서들을 되찾아 오겠다며 지원을 요청했으나 당시 정부는 그의 .. 2023. 10. 23. 반응형 BIG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