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219년에 한니발은 에브로 강 남쪽에 있는 이베리아의 독립도시 사군톰을 공격했다.
제1차 포에니 전쟁(BC 264~241)에 뒤이어 로마와 카르타고가 체결한 조약에서 에브로 강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카르타고 세력권의 북방 한계로 설정되었다.
사군툼은 실상 에브로 강 남쪽에 있었지만 로마인들은 그 도시와 '친선'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그 도시에 대한 카르타고의 공격을 전쟁행위로 간주했다.
사군툼 포위전은 8개월간 지속되었으며 그 와중에서 한니발은 심한 부상을 입는다.
카르타고에 항의하는 사절단을 보낸 로마인들은 사군툼이 함락된 이후 한니발의 항복을 요구했다.
이렇게 해서 제2차 포에니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 전쟁은 로마측에서 선포했으며 카르타고측에서는 전적으로 한니발이 주도해서 싸웠다.
아버지 하밀카르 바르카가 참전 했던 포에니 제 1차 전쟁은 카르타고의 패배로 끝이 났고
로마에 패한 카르타고의 국력은 예전만 못했지만 그렇다고해서 다시 로마와 자웅을 겨루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그러나 상황은 한니발에게 썩 유쾌한 정도는 아니었다.
조국 카르타고는 전쟁의 후유증과 부정부패,정쟁에 시달렸고 민간인과 군인의 신분적 구분이 없던
로마와는 달리 직업 군인제도하의 카르타고는공로를 세운 군인이 있을시엔 정치인들의
질투의 표적이 되는 일도 잦았다.
이래 저래 본국의 적극적 지원을 받기 힘들어잔 한니발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조국에 승리를
안겨주고 싶어 했다.
한니발의 카르타고는 해상국가였지만 해전에 익숙치 않은 로마군에게 패배하는 아픔을 겪었다.
한니발은 역으로 카르타고군을 이끌고 육전으로 로마군을 점령할 생각을 한다
BC 219년부터 BC 218년 겨울까지 한니발은 카르타헤나에서 보내면서 이탈리아로 쳐들어가서 전쟁을
벌일 준비를 했다. 동생인 하스드루발에게 스페인과 북아프리카의 방위를 위한 상당수의 병력을 맡겨
놓고 그는 BC 218년 4(또는 5)월에 에브로 강을 건너 피레네 산맥으로 진격해 들어갔다.
로마인들은 이 소식을 듣기 직전에 전쟁을 하기로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한니발의 군대는 9만 명의 보병과 1만 2,000명의 기병, 그리고 상당수의 코끼리 부대로 이루어져
있었다(그러나 이 수치는 과장된 것이며 총병력은 4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피레네 산맥에서 그의
군대는 피렌 부족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했다.
이 저항과 일부 스페인 병력의 이탈로 군사가 크게 줄어들었으나 그는 갈리아 남부의 부족들로부터는
거의 저항을 받지 않고 론 강에 당도했다.
한편 로마의 장군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는 반란 때문에 북부 이탈리아에 붙들려 있었던
그의 군대를 바다를 통해 마르실리아(마르세유)로 파견했다. 스키피오는 론 강 우안을 따라 북쪽으로
진군하다가 한니발이 이미 강을 건너 좌안에서 북쪽으로 진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어갈 계획인 것 같다고 깨달은 스키피오는 북부 이탈리아로 되돌아가서 그를
기다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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