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명장열전名將列傳

베트남의 英雄,명장 진흥도 장군

by 마음heart 2011. 5. 7.
728x90
반응형
728x170
BIG

 

 

 

1229(?)~1300 베트남 반키에프

 

 

 

 


 

 

 베트남판 불멸의 영웅

 

명장이라는 수식어만으로는 부족한 인물들이 있다. 조선시대의 충무공 이순신은 명장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하여 옛적 사람들도 성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그럼 다른 나라엔..?

 

우리 한반도 전체를 합친 7천만보다 더 많은 8,500만이라는 인구, 그리고 훨씬 넓고 비옥한 영토를 가진 베트남이라는 국가,

 

 

 

 

 

 

 

 

그러나 베트남에 대해 우리에게 연상되는 것은 실로 많지 않다.베트남 전쟁과 하얀 아오자이를 입은 여성, 자전거, 그리고 쌀국수 정도가 되지 않을까..마음이를 비롯한 많은 한국인들의 의식속에는 동남아시아에 베트남이라는 이유만으로 못살고 가난하며 지저분한 후진국이라고 우습게 여길 수도 있다.마치 60년전 한국전쟁의 우리 모습은 잊은채로, 한일 합병이후 우리 나라는 자체적인 힘이나 자립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것이 불과 백여년 전이고 경제적으로 상당한 성장을 했지만 국가의 총체적인 파워미국과도 같은 외세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된다.

최소한 베트남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강인하고 무시할 수 없는 민족이라고 단언한다. 베트남은 천년 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다른 소수민족들처럼 중국에 동화되거나 흡수되지 않고 마침내 봉기하여 중국을 몰아낸다.이후, 줄기차게 계속된 중국의 침공을 막아내고 자신들의 손으로 독립을 지켜 냈다.

13세기, 그 당시에 모든 세계는 몽골제국으로 통하고 몽골의 법이 세계의 법이었다.이런 몽골 제국조차 끝내 정복하지 못한 국가가 베트남이었다.우리가 흔히 역사책에서 배우는 고려의 삼별초 항쟁(뭐,삼십여년을 꿋꿋이 버티었다 자랑질하는)은 말이 항쟁이고 전쟁이지 고양이 앞에서 찍하는 새앙쥐 수준으로 실상은 최씨 정권의 정권 유지를 위해 강화도로 피난하여 백성들이 죽건 말건 자신들의 안위만을 지키던 행위임을 생각하면,참, 많이도 조상을 닮아가는 현재의 위정자님들,

반면, 베트남은 일부 매국노들을 제외한 전 관민이 일치단결하여 몽골군에 맞섰고 물리쳤다.남송을 멸망시키고 중국을 통일한 원나라 초대 황제, 쿠빌라이칸은 세 차례에 걸쳐 무려 50만 대군을 보내 베트남을 정복하려 했지만, 베트남군을 지휘하던 명장 진흥도 장군에게 번번이 패하였고 최종적으로 베트남 백등강 전투에서 원의 침공군을 격멸하여 쿠빌라이칸의 야심을 꺾었다.

고려가 대제국 몽골에 맞서 30여년을 버팅겼다 자랑질하듯 일본인들 역시 몽골군을 유일하게 격퇴시킨 국가는 자신들이라며 무지막지하게 역사를 왜곡, 뻥튀기하는데 베트남의 3차에 걸친 50여만 대군을 당당하게 박살낸 베트남인들의 분전에 비하다면 우스울 뿐이다.마치 수,당나라를 물리친 을지문덕과 연개소문의 고구려를 보는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암튼 베트남도 무척 국난이 많았던 국가로 원나라 이후로도 명나라와 청나라 역시 대군을 보내 베트남을 점령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베트남인들은 침략군을 무찌르고 그들을 쫓아버렸다.

 근대사를 살펴보자면 , 이념 전쟁의 시초였던 6.25가 결국은 동족상잔이라는 비극으로 마무리 되고 아직까지 분단의 아픔을 겪는 우리 나라에 비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올라선 미국을 적국으로 돌리고서도 1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2차 대전 때보다 더 많은 무력을 퍼부은 미국을 베트남에서 돌려 보냈던 민족,

중국과 몽골, 미국 같은 강대국들조차 번번히 베트남에서 패배의 쓴잔을 마시고 발걸음을 돌렸던 주요한 원인은 무엇일까? 베트남의 기후적인 특성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덥고 습한 기후와 수많은 강과 호수로 얽힌 지형이 침략군의 행보를 늦추는데 도움이 되었고, 베트남에서 한국의 이순신과도 같이 성웅으로 추앙받는 진흥도 장군같은 인물의 해피엔드

베트남인들의 자립과 독립을 향한 굳은 의지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죠.자, 그럼 진흥도 장군은 어떤 인물이었을까요.간략하게 그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죠.

 

 

 

 

 

진흥도 장군의 동상


 

 

 

 

 

본명은 찬 쿠옥 투안[陳國峻]·훙 다오 부옹[興道王]이라고도 한다. 베트남 역사상 전설적 인물로서 쿠빌라이 칸의 몽골군을 물리친 뛰어난 군사전략가이며 오늘날 베트남인들에게는 문화적인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여러 지방에서 그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그를 기리는 많은 사당이 건립되었다. 진흥도는 베트남 쩐(진)왕조의 초대 황제 태종의 형인 진류의 아들로 태어나 유년기는 부유하게 자랐다.그러나 아버지 진류가 당시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진수도에 의해 실각하자 진흥도는 조정과 대립하여 관직에 오르는 것을 거부하기도 하였다.그러나 문무를 겸비하고 지략과 용기가 뛰어나 결국 장군으로 중용되었다 쩐(진)왕국은 1257년 전세계를 정복한 몽골군의 공격을 받게 된다.
 
 
 
쿠빌라이 칸이 남쪽에서 중국을 공격하기 위해 홍수이 강[紅水河] 지역을 통과하기 위한 허락을 요구했을 때 찬 훙 다오 장군이 군인들에게 사기를 복돋는 연설로서 국가적 단합을 호소하고 침략자에 대한 투쟁을 촉구했다. 〈병서요략 兵書要略〉이라는 병서를 저술했는데, 이 책 서문에 전쟁을 거의 종교적인 의무로 신성시하고 군주에 대한 충(忠)과 국가적 의(義) 등 유교 덕목에 대해 썼다. 진흥도는 쩐(진)왕조의 군대를 이끌고 몇 차례의 전투 끝에 몽골군을 완전히 격파시키고
패잔병들을 끝까지 추격하여 섬멸한다.그러나 쿠빌라이 칸은 쉽사리 베트남을 포기하지 않고 1282년,2차로 몽골군을 베트남에 파견시킨다. 제 2차 몽골 침략에도 진흥도 장군이 직접 군사들을 이끌고 대적했는데 이때는 베트남의 지형지물을 이용한 게릴라전을 전략적으로 이용하였다.
 
 
 
 
 
 
 
 
 
 

베트남 지페에 새겨진 진흥도

 
 
 
 
 
 
 
 
 
 
 
진흥도 장군의 교묘한 게릴라전에 막대한 피해를 입던 몽골은 직접적으로 베트남의 황제 인종에게 압력을 가해 항복을 받아내려한다.이에 흔들린 인종이 항복하려하자 진흥도 장군은
 
 
 "싸우지 않고 항복하려 한다면 자신의 목을 바치겠다"
 
 
며 항복을 만류한다.결국 마음을 바꾼 인종이 이웃국가 참파에 장낫즈앗(외교관)을 파견하였고 원수이던 참파와 동맹을 맺고 몽골군과 연합하여 대적하였다.결국, 1288년 몽골군은 쩐(진)왕조와 참파왕조의 연합군에 견디지 못하고 철군을 감행하고 이를 눈치챈 진흥도 장군의 군대는 중국인들이 대부분인 몽골군 수군과 바익당 강[白藤江] 입구에서 교전하게 되었다. 훙 다오군은 쿠빌라이 칸의 전함을 미리 물밑에 박아놓은 철주에 걸리도록 유인해 궤멸시켰다. 이 전술은 베트남의 전사 고 쿠엔[吳校]이 939년 사용했던 방법이다.전술이 정확히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충무공 이순신의 전략과 을지문덕의 전략이 오버랩되는 것은 왜일까,암튼 이로인해 진흥도는 국가적 영웅의 반열에 오르고 홍도로는 이름과 함께 왕으로 책봉된다.고구려의 구국의 영웅이었던 을지문덕은 후에 완전히 역사에서 사라지고 조선의 명장 이순신은 명나라 장수조차 생사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고초를 겪었던 것을 생각하면 나라가 바로 설려면 공을 세운 이에게는 확실한 상을 줘야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선조들의 마인드가 아쉬울 뿐이다.

 

 

진흥조는 그가 71세인던 1300년 세상을 뜨는데 그가 죽자 쩐(진)왕조의 모든 사람은 물론 이웃 나라의 참파왕 체만 역시 몹시 슬퍼하며 인생 최대의 동지를 잃었다면 한탄하였다고 한다.이후 참파왕 체만이 죽자 밀월 관계를 유지 하던 쩐(진)왕조와 참파는 또 다시 깊은 전쟁의 수렁텅이로 빠져들고만다.조선이 충무공 이순신 혼자의 힘만으로 임진왜란을 극복할 수는 없었겠지만 단 한명의 영웅이 참혹한 전쟁을 종결시킬 수도 있다.베트남의 진흥도는 여러모로 우리 나라의 충무공 이순신과 고구려의 을지문덕을 연상시키지만 그의 말년은 사뭇 다르다.그는 왕이 되었고 천수를 다하고 죽었지만 우리의 영웅들은 어떤가?죽어야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님을 베트남의 명장 진흥도는 보여주고 있다.

 

 

 


 

 

 

 


 

 

 

 

 

 

 

 

 

 

반응형
그리드형
LIST
사업자 정보 표시
옥탑방 바카시온 | 최창열 | 22309 | 사업자 등록번호 : 708-28-01499 | TEL : 070-4517-4074 | Mail : sysy2202@naver.com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22-인천중구-0183호 | 사이버몰의 이용약관 바로가기

댓글


.myredbtn{ -webkit-text-size-adjust: 100%; word-break: break-word; background-color: #e00d0d; border-radius: 28px; border: none; display: inline-block; cursor: pointer; color: #faf8f8 !important; font-family: Arial; font-size: 20px; font-weight: 550; text-align: center; 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 white-space: nowrap; padding: 10px 35px; box-shadow: 2px 4px 6px #646363; text-shadow: 0px 1px 0px #bb2154; width: 80%; height: 40px; line-height: 40px; overflow: hidden; transition: background 0.3s, transform 0.3s; text-decoration: none; } .myredbtn:hover{ transform: scale(1.05); background-color: #fc6565; text-decoration: underlin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