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타자/
메이저리그 전설스토리 출루의 신神 테드 윌리엄스
테드 윌리엄스 Ted Williams(1918~2002),19년 통산 2,654안타와 521개 홈런, 1,839타점을 기록하며 3.000안타도 600홈런도 2000타점도 기록하지 못한 테드 윌리엄스지만 그를 이야기함에 있어 메이저리그 역사상 위대한 타자들 중 한 명으로 꼽기에 주저하지 않는 이들이 다수이며 혹자들은 통산 타율 0.367의 타이캅이나 홈런의 대명사 베이브 루스와 더불어 메이저리그 3대 천왕으로 불리기도 하는 테드 윌리엄스. 타격의 과학이라는 전 세계 타자들의 바이블을 저술하기도 한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나이로 불리고 싶어 했던 테드 윌리엄스는 세계 2차대전 참전과 한국전쟁이라는 시간으로 5년을 허비하고서도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은퇴할 때까지 놓치지 않은, 불세출의 타격 천재이기도 했습니다. 김태균과 일본의 야구 천재 스즈키 이치로가 가지고 있는 아시아 연속 출루 기록은 69경기이지만 테드 윌리엄스는 1948년 84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세우며 세계에서 연속 출루를 많이 한 선수이기도 합니다. 세계 2차대전과 한국전쟁 참전으로 누적 스탯에서 많이 손해 본 테드 윌리엄스지만 그럼에도 그가 통산 기록한 기록들은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6차례의 타격왕과 12차례의 최고 출루율, 올스타 17회, 최다 득점 6회를 기록한 테드 윌리엄스는 통산 타율 0.344, 통산 장타율 0.634(역대 2위) 등 공격 전 부문에서 당대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을 뿐 아니라 베이브 루스 이후 처음으로 2.000 볼넷을 기록한 선수이며 통산 출루율이 무려 0.482에 이르는 경이로운 출루율을 가진 선수이기도 합니다.
▧테드 윌리엄스, 20세기 마지막 4할 타자역사상 가장 위대한 타자로 불리길 바라다
메이저리그 19년간 테드 윌리엄스는 뚜렷한 족적을 남깁니다. 테드의 통산 타율 0.344는 메이저리그 역대 5위이지만 1940년대 이후 활동한 선수들로 좁혀들어간다면 역대 1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테드 윌리엄스의 타율보다 위에 있는 선수들 대부분이 1900년대에서 1930년대를 전후로 활동한 선수들이기 때문입니다. 메이저리그 전체 타율 1위는 역시 가장 유명한 타격의 신神 타이콥은 1905년부터 1928년까지 24년을 활동하며 통산 타율 0.367를 기록합니다. 2위는 로저스 혼수비(1915~1937)로 통산 타율 0.358이며 3위는 에드 델라한티(1888~1903)로 통산 0.346.4위는 트리스 스피커(1907~1928)로 0.345입니다. 그 바로 밑에 테드 윌리엄스가 통산 0.344의 타율을 마크하고 있습니다. 야구는 기록과 수치의 게임이기도 한데 기록적 측면으로 본다면 테드 윌리엄스를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타자로 부르기에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에게는 선수로써 잃어버린 5년의 시간이 그의 경력 동안 따라다닌다는 것입니다. 현대 프로야구에서 선수의 경력에 빈 공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 캡을 메우기가 무척 힘들기 때문에 테드 윌리엄스가 5년이라는 공백기가 무색하게 자신의 타격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경이롭기까지 하며 그 공백기가 최전성기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테드 윌리엄스는 메이저리그 최후의 4할 타자로 더욱 유명한데 테드가 4할을 치던 1941년에는 56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펼치던 조 디마지오(뉴욕 양키즈)의 경이적인 페이스에 MVP를 내주게 됩니다. 더군다나 당시 4할 타자에 대한 인식은 비록 1923년 해리 헤일맨 이후 거의 19년 만의 대기록 도전이었지만 당시 더욱 어려운 기록에 도전하던 조 디마지오의 상징성과 화제성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 테드 윌리엄스의 4할 기록을 묻히게 한 감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테드 윌리엄스가 4할 타율을 기록하던 41년 당시 기록 역시 압도적인 4할이 아니라 마지막 경기까지 4할을 알 수 없던, 최종 성적 0.406 타율을 기록하지만 마지막 더블헤더 시합에서 딱 0.400이었던 테드 윌리엄스는 감독이 4할을 지키기 위해 테드의 경기 출전을 만류했지만 자신이 진정한 4할 타자라면 경기에 출전해야 한다며 경기 출전을 감행했으며 결국 2경기에서 8타수 6안타의 맹타를 휘두르며 최종 성적 0.406를 기록하며 지금까지 20세기 최후의 4할 타자로 남아있습니다.정정당당한 패배와 원칙을 중요시하며 기록을 위한 시합을 하지 않았던 테드의 정신이 지금 현재 약물로 기록을 늘리는 모든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어야 하는건 마땅하다고 여겨집니다.
테드 월리엄스 데뷔년도부터 10년간 총 1.423경기 4.752타수 1.763안타(년 평균 176.3안타) 타율 0.371,홈런 323개,1.261타점 및 1.327볼넷 등 세계 2차 대전 참전으로 빠진 3년을 제외하고서도 33살의 나이에 여전한 타격감을 선보입니다.주관적 견해이기는 하지만 전쟁에서 돌아온 46년도이후 2년간 약 .340정도의 타율을 기록하는데 아마도 적응기 였다고 여겨지며 38년도에는 타율 .369를 기록했기 때문에 전성기였던 3년의 공백기(43,44,45년도)에는 못해도 .360에서 .380 이상의 기록을 꾸준하게 달성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보면 통산타율은 2위인 로저스 혼스비의 0.358까지는 아니라고해도 통산 3위인 에드 델라한티의 통산타율 0.346보다는 더 위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이후 선수생활의 마지막 9년 중 1952년과 53년 2년간은 한국전 참전으로 43경기 출전에 그치며 정상적으로 활동한 기간은 7년에 그치며 총 871경기 출전,2,620타수 891안타 타율 0.340, 198홈런,578타점을 기록하며 은퇴하기 때문입니다.521개의 홈런은 물론 2루타도 525개를 날렸으며 3루타 71개와 통산 OPS 1.115를 기록하는등 데뷔이후 10년간의 기록 자체가 넘사벽이었던 테드 윌리엄스.
테드 윌리엄스는 17세 때 마이너리그 퍼시픽 코스트리그 소속의 고향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입단, 1937년 보스턴 스카우터 에디 콜린스에 의해 보스턴과의 인연을 시작하게 됩니다. 데뷔 시즌이던 만 21살 때인 1939년 타율 0.327,31홈런. 145타점을 기록하며 The kid이라는 별칭과 함께 차세대 보스턴 거포로 화려한 메이저리그 데뷔를 성공적으로 치르게 되며 데뷔 연도 신인 최다 타점(145점) 기록을 보유하기도 합니다. 라이벌 팀 뉴욕 양키즈에 번번이 우승을 경험하지 못했던 보스턴은 젊은 테드를 주축으로 팀 리빌딩을 시작하며 점차 활기를 띠어갑니다. 테드 윌리엄스의 역사적인 1941년, 메이저리그 3년 차를 맞은 테드 윌리엄스는 정규 시즌에서 20년만의 4할 타율을 기록한 타자로 역사에 이름을 올리는 동시에 올스타전에서는 9회 말 2아웃에서 스리런 역전 홈런을 치며 AL 올스타를 승리로 이끌기도 합니다. 테드 윌리엄스는 19년 메이저리그 생활 동안 2번의 MVP를 수상하는데 정상적으로 성적에 의해 MVP를 뽑는다면 적어도 3번은 더 MVP에 뽑힐 기록을 낸 테드 윌리엄스였지만 기자들과 껄그러운 관계(MVP 투표는 기자들에 의해 이루어진다)였던 테드 윌리엄스는 타격 3관왕(타율. 타점. 홈런)을 2번이나 달성하고도 MVP 수상과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1941년 테드 윌리엄스는 역사적인 4할 타율 0.406 와 출루율 553 장타율 0.735, 37홈런 120타점을 기록하지만 56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한 조 디마지오( 0.357 .440 .643 30홈런 125타점)에게 MVP 수상의 영예를 내줍니다. 이후 1942년 타율. 356, 홈런 36, 137타점으로 리그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지만 양키스의 조 고든(당시 조 고든의 기록은 0.322타율 0.409, 출루율 0.491,13홈런 103타점)에게 다시 MVP 수상의 영광을 빼앗기고 맙니다. 이후 테드 윌리엄스는 시즌 중반 해군에 입영신청을 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 3년간의 공백을 가지게 되며 메이저리그에서 볼 수 없게 되는 테드 윌리엄스는 1946년이 되어서야 다시 모습을 메이저리그에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테드 윌리엄스는 1947년 8관왕의 위업을 달성하며 최종 성적 타율0.343와 출루율 0.499 장타율 0.634와 32홈런과 114타점을 기록하지만 조 디마지오(0.315 .391 .522 20홈런 97타점)에게 최우수선수 MVP 수상을 다시 뺏깁니다. 이때 투표는 그냥 인기투표였다는 게 중론입니다. 또한 10년 후인 1957년 테드는 4할 타율 이후 생애 가장 높은 타율 0.388와 출루율 0.526 장타율 0.731 및 34홈런 94타점을 기록하지만 미키 맨틀(0.365 .312 .665 38홈런 87타점) 다시 최우수선수의 영예를 빼앗깁니다. 이때 선정 방식은 수비와 인기투표에서 빼앗겼다는 게 중론입니다. 2번의 MVP 수상 이력이 전부인 테드이지만 실제로는 5번 정도 MVP 수상을 했어야 하는 선수가 테드 윌리엄스라는 것입니다.
3년간의 공백기가 무색하게 테드 윌리엄스는 타율. 342와 38홈런, 123타점으로 건재함 이상을 과시합니다. 테드의 부재 기간 동안 5할 이하의 승률을 기록하기도 했던 팀을 월드 시리즈에 진출시키고 정규 시즌 팀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트리블 크라운을 달성하고도 받지 못했던 MVP를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테드 윌리엄스는 시즌 후반 당했던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당겨치는 타격으로 전환되고 1946년 클리블랜드의 신예감독 루 부드로가 Williams Shift(윌리엄스 쉬프트)를 고안할 정도로 극단적인 당겨 치기를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드는 슬럼프 없이 매 시즌 경이적인 타격 페이스를 선보였으며 1947년 타율. 343, 32홈런, 114타점으로 두 번째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지만 월드 시리즈 우승에 공헌한 조 디마지오에게 MVP의 영예는 빼앗기고 맙니다. 당대 최고의 명장 조 메카시를 영입했지만 리그 우승권은 계속 멀어졌으며 팀은 하향세를 그렸지만 테드 윌리엄스의 타격은 팀성적과 달리 지칠 줄 모른 채 계속 달려나갔으며 1949년 테드 윌리엄스 생애 최다인 43홈런과 159타점 그리고 타격왕을 거머쥔 조지 켈에 0.002차이로 뒤지는 타율. 343의 성적을 올리며 생애 두 번째 MVP를 차지하게 됩니다.
1952년과 1953년 한국전 참전으로 시즌의 대부분을 결장한 테드 윌리엄스는 20대 초반에 이어 긴 공백으로 다시 메이저리그에 모습을 보인 건 30대 중반의 나이였으며 다이빙캐치로 인한 왼쪽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뼛조각 제거 수술로 많은 경기에 결장하기도 합니다. 은퇴까지 고려할 30대 중반의 나이에 복귀한 테드는 그러나 복귀 이후에도 3할의 타율을 기록했으며 1957년과 1958년에는 각각 타율. 388, .322로 리그 타격왕에 등극, 생애 통산 6차례의 타격 1위의 마침표를 찍습니다. 41살이 되던 1960년 8월 베이브 루스에 이어 통산 2,000볼넷을 얻어낸 유이한 타자이며 은퇴 발표 후 마지막 경기였던 9월 26일 볼티모어와의 홈경기 마지막 타석에서 홈런을 장식, 통산 521홈런을 기록하고 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은퇴하기에 이릅니다. 메이저리그 19년간 테드 윌리엄스는 6차례의 타격왕과 12차례의 최고 출루율, 올스타 17회, 최다 득점 6회, 통산 타율. 344, 통산 장타율. 634(역대 2위-1위는. 690의 베이브 루스) 등 당대 최고의 기록은 물론이거니와 공격 전 부문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록을 남긴 선수로 명예의 전당 헌액자격이 주어진 1966년 첫해 93.38%의 득표율로 쿠퍼스 타운에 헌액됩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타자로 불리워도 손색없을 테드 윌리엄스에게 가장 아쉬운 점은 역시 전쟁에 참전한 5년이라는 잃어버린 시간 때문이기도 한데 만약이고 가정이기는 하지만 테드의 잃어버린 5년을 예측하여 테드의 통산 기록에 합산하면 어떠한 성적이 나올 것인가?라는 의문점을 데이터로 환산한 것이 있는데 메이저리그 150경기 기준 180안타와 32홈런, 120타점과 94 볼넷 등 5년간의 기록을 합치면 대략 테드 윌리엄스는 3.000경기 출장과 3400~3500안타, 670~690 홈런 전후, 2.300타점과 3할 4푼의 타율 및 4할 7푼의 출루율, 6할의 장타율과 11할의 OPS를 기록할 것이라는 예측치가 나왔는데 이 정도면 베이브 루스 이외에는 테드 윌리엄스에 비견할 타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타율 0.406를 기록하고 군 복무 이후로도 변함없는 타격은 과시한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테드 윌리엄스의 통산 타율은 더 상승할 수 있다는 견해입니다. 테드의 최고 타율이 41년에 기록한 0.406이고 이 밑의 기록은 48년의 0.369와 57년의 0.388이고 보면 최소치의 기록으로 그의 통산 성적을 유추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5년의 시간을 뛰어넘어서 지금까지도 메이저리그 역사상 타이콥과 베이브 루스와 더불어 가장 위대한 타자로 선정되는 테드 윌리엄스가 군 복무를 피하고 야구에만 전념했다면 기록 자체는 더욱 위대해졌을지 모르지만 테드의 생애를 더욱 위대하게 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원칙과 정정당당한 패배를 택했지만 그럼으로 더욱 위대해진 타자 바로 테드 윌리엄스였습니다. 테드 윌리엄스는 통산 출루율 0.482로 메이저리그 전체 1위인데 2위는 베이브 루스의 0.474이며 3위는 John McGraw (1891-1907) 0.4657,4위는 Billy Hamilton (1888-1901) 0 .4552,5위는 Lou Gehrig (1923-1939) 0.4474이며 6위는 배리 본즈 (1986-2007) .4443입니다. 현재 한국 프로야구에서 71경기 연속 출루 신기록을 달성하며 스즈키 이치로의 69경기를 뛰어넘어 조 디마지오가 56경기 연속 안타를 달성했을 때 기록한 74경기까지 몇 경기 안 남아 한국의 조이 보토로 불리는 김태균의 통산 출루율이 0.430 정도인데 테드 윌리엄스의 기록은 그야말로 넘사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테드가 더욱 존경받을 수 있던 것은 사회적 소수와 약자들에게 늘 관심을 두고 있었다는 것이며 자신의 명예의 전당 입성 연설에서는 니그로리그의 홈런왕 조지 깁슨 등을 언급하며 흑인이기에 차별받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재능 넘치는 야구 선수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테드의 이 발언으로 조지 깁슨 등 니그로리그를 주름 잡던 흑인 선수들에게 메이저리그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으며 조지 깁슨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기도 합니다.
사람에게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
하루의 목표, 인생의 목표,
그리고 내 자신의 목표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게 하는 것이다.
저기 테드 윌리엄스가 지나간다.
이제까지 살았던 사람중에 가장 위대한 타자다.
'- ☆ 詩폐라뮤지엄 > 스포츠뮤지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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