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치과의사 모녀살인사건
아내를 살해한 남편은 정말 영화 해피엔드와 위험한 독신녀처럼 영화를 따라한 것일까?아니면 억울한 누명이었을까?
치과의사 모녀살인사건은 1995년 6월12일 오전 8시 45분경, 서울시 은평구 불광동에 위치한 미성아파트 7층에서 흰 연기가 발생했고 이후 9시 10분경, 경비가 화재가 난 것을 알아채고 119에 신고했으며 오전 9시 20분경, 소방관들이 도착하여 10여 분 만에 화재를 진화했습니다. 화재는 안방의 장롱에서 시작되었으며, 장롱과 일부 옷, 커튼과 벽지 일부만을 태웠습니다.화재를 모두 진압한 후, 소방관들은 현장에서 외과의사인 이도행(이하 L)의 부인 최수희(이하 C, 치과의사)와 딸 이화영이 사망한 채로 욕조에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때 남편인 외과의사 L은 개인 병원을 개원하는 날이어서 외출한 상태였습니다.
■치과의사 모녀살인사건_사건현장
부인 C와 딸은 물이 담긴 목욕탕 욕조에서 숨져 있었는데 C는 발견 당시 상의가 벗겨지고 팬티가 내려가 있는 상태였으며, 목에는 교살(絞殺)의 흔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목, 팔 등에는 미세한 찰과상이 발견되었고 딸 역시 끈으로 목이 졸린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욕조의 물에 잠겨 있었습니다. 이로 볼 때 타살임이 명백하였으며, 화재 역시 장롱에서 불이 난 것으로 보아 명백한 방화였습니다. 이에 수사팀은 누군가 살인을 저지른 후, 증거 인멸을 위해 불을 질렀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특이한 점은, 현관문이 잠겨있는 상태였고, 외부로부터의 침입의 흔적이 없었으며 그리고 집 안의 현금과 귀중품은 그대로 남아 있었으며, 집을 뒤진 흔적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개인적인 원한으로 인한 살인 사건으로 접근했지만 주위에서 피해자들과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사람들을 수사한 결과, 그들은 용의선상에서 배제되었습니다. C와 내연관계였던 인테리어 업자 J가 있었으나, 그는 사건 발생 시간에 다른 지역에 있었다는 것이 증명되었기에 자연스럽게 의심의 시선은 남편 L에게 쏠리게 되었습니다.
■치과의사 모녀살인사건_범인은 남편 L?
L은 자신이 오전 7시에 집을 나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모녀는 살아 있었으며, 둘의 배웅을 받으면서 병원에 출근했다고 증언합니다. L이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자신의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8시였습니다.따라서 이 사건의 최대의 쟁점은 모녀가 사망한 시간이었습니다. L이 출근한 오전 7시 이전에 모녀가 사망하였다면 L이 범인으로 확정되고, 그 이후에 사망하였다면 L은 범인이 아님이 명확해지지만 당시에는 과학수사 개념이 정립되지 못한 1995년시점이라 모녀에 대한 검안(檢案)이 이루어진 시간은 오전 11시 30분이었습니다. 검안 당시, C에게는 우측 대퇴부를 중심으로 하여 양측성 시반(屍斑)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양측성 시반이 형성되려면 사후 6~8시간이 경과하여야 합니다. 이를 고려할 때, 모녀의 사망 추정 시간은 오전 3시 30분~5시 30분이 됩니다.지문을 뜨기 위해 손가락을 펼치자, 이미 손가락에 시강(屍剛)이 진행된 상태였는데 지관절(指關節)에 시강이 진행되려면 사후 6~12시간이 지나야 합니다. 이 경우, 모녀의 사망 추정 시간은 전날 오후 11시 30분~사건 당일 오전 5시 30분 사이가 된다는 것입니다.또한 C의 위에서는 소화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밥이 350g 정도 있었으며, 위의 내용물에서 사건 당일 전날 저녁에 먹었다는 미역국의 미역이 발견되었지만 L이 아침에 먹었다고 주장한 콩나물국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은 잔존물의 상태로 미루어보아, 저녁을 먹은 지는 시간이 조금 되었으나 아침을 먹기 전에 살해되었으며, 사망 시간은 6월11일 오후 11시 30분경부터 6월12일 오전 4시 사이로 추정되었습니다.당시 집 안에는 제 3자의 침입 흔적이 존재하지 않았는데 집에서 혼란스럽게 다닌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집의 구조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파악하였지만 살인에 이용된 도구를 경찰은 제대로 찾아내지 못했고, 범인의 지문이나 머리카락 등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정적인 증거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간접 증거와 정황만으로 재판을 하였으며, 이 때문에 많은 논란이 있게 됩니다.경찰의 거짓말 탐지기 검사 결과, L은 전체적으로 양성 반응이 나왔지만 다만 변호인은 경찰 수사 과정에서 살해 시각, 장소 등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은 L이 진범 여부와 상관없이 선입견이 박혀 특정 질문에 이상 반응을 보였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1심에서는 증거로 인정받았으나, 이후 직접적인 증거로는 채택되지 않았습니다.범인(혹은 범인들)은 여자를 강간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강간범죄인 것처럼 옷을 벗겨놓고, 방해자가 될 수 있는 아이도 죽이는 극악무도한 짓을 저질렀으며 증거가 발각되지 않게 하기 위해 물에 시신을 담그고 굳이 시신도 아닌 안방에 불까지 질러 현장 증거를 없애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그리고 현장이 발견되는 것을 지연시키기 위해 일부러 또는 무의식적으로 현관문을 잠궜습니다. 대범한 범죄를 저지르고 빨리 도망가려하기보다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 심리가 엿보이는데 그것은 증거가 발견되면 범인이 곧바로 특정될 수 있는 사람이 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치과의사 모녀살인사건_남편 L이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
시반(屍斑)과 시강(屍剛)으로 사망 시각을 추정하는 것은 오차 범위가 굉장히 넓습니다. 사람에 따라 시반의 발생 시점과 정도가 다른데 최초 검안 시에는 C의 시신에서 목, 가슴, 배에도 시반이 관찰되었지만 부검을 하는 시점에서는 우측 대퇴부 이외의 시반이 모두 소실되었습니다. 우측 대퇴부의 경우, 그녀가 팬티를 입고 있었기에 압력으로 인해 시반이 먼저 형성된 것으로 볼 수도 있으며 다른 시반이 모두 소멸한 것으로 볼 때, 시반이 형성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경우 L이 집을 나간 이후인 오전 7시 40분경까지 사망 추정 시간이 늘어납니다.이는 시강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온도가 높을 경우, 조기 강직이 나타나는데 이 사건에서는 욕조 물의 온도가 얼마나 뜨거운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아 시강의 원인이 불분명했는데 시간이 오래 지나서 시강이 나타난 것인지, 혹은 용의자가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고의적으로 급속한 시강을 유도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시강으로 사망 시간을 추정한 것 역시 반박되었으며 게다가 당시 욕조 물의 온도를 경찰이 처음 현장 조사를 할 때 측정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향후 이것을 지적받자, 당시 수사했던 경찰의 손등에 온도별로 물방울을 한 방울씩 떨어뜨려 "이 온도가 맞습니까?"라는 식으로 증언하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화재 신고 시간은 오전 8시 45분경이었는데 따라서 화재는 그 이전에 발생하였을 것입니다.문제는 몇 시에 불씨가 옮겨 붙어 밖에서 화재가 났음을 알아챌 수 있었는가 하는 점으로 이에 변호인 측은 1,800만 원짜리 아파트 모형으로 운동장에서 화재 실험을 진행하여, 만약 장롱에 불이 났다고 하더라도 5~6분이 지나면 외부에서 연기를 인지할 수 있음을 증명하였습니다. 이 주장에 따르면, 8시 30분 전후에 누군가가 방화한 것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C는 사망 당시 렌즈를 낀 상태였는데 C의 어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C는 평소 자기 전에 렌즈를 빼고,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을 한 이후 다시 렌즈를 착용하였다고 합니다. C가 렌즈를 낀 상태에서 죽었다는 것은, 자기 전에 사망했거나 혹은 일어나서 렌즈를 낀 이후에 죽었다는 말이 되지만 자기 전 그녀가 사망했다면, 몸에 더 많은 시반이 형성되어 있을 것이기에 따라서 그녀는 일어난 이후에 죽었으며, L이 출근하고 난 이후 자신도 출근 준비를 하는 도중에 사망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치과의사 모녀살인사건_C의 외도와 가정불화
당시 C에게는 내연남이 있었습니다. C는 1989년에 L과 결혼하였으나, C는 1992년에 알게 된 인테리어 업자 J와 사건 직전까지 불륜 행각을 벌였는데 C는 자신의 병원 진료실 안에서까지 J와 관계를 가졌습니다. 이는 차후 C의 병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들에 의해 밝혀졌습니다. 수색 과정에서 발견된 C의 일기장에서는, 'L과 잠자리를 하면서도 J가 생각났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는데 만약 L이 이를 알았더라면, 살해의 동기는 충분했을 것입니다.그러나 L은 C의 외도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주장했는데 L이 J를 최초로 본 시간은 사건 발생 한 달 전이었으며, 당시에도 그냥 아내의 병문안을 온 사람들 중 한 명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C와의 사이도 나쁘지 않아서, C가 먹던 한약은 둘째 아이를 갖기 위해서 먹는 것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수사팀은 C가 외도를 저지른 것뿐 아니라, L이 장모의 집안과 사이가 안 좋았다는 점을 지적했는데 장모는 L을 구박하였지만, L은 성격이 내성적이었기 때문에 화를 억누르다가, 결국 살인으로 이를 표출했다는 것이지만 L은 이 주장을 일축합니다. 둘 사이에서 불화는 잦지 않았으며, 사건 발생 2주 전에는 온 가족이 장모를 모시고 괌에 여행을 다녀왔다고 증언합니다.다만 평소에 사이가 안 좋던 상태에서 같이 여행을 갔다가 오히려 갈등이 더 커져서 파국으로 치닫는 경우도 적지 않으며, 이 경우는 오히려 여행이 범행의 도화선이 되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실제 커플이 여행을 갔다가, 여행 중에 싸우거나 여행 직후 헤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유명한 수지 김 사건 역시 부부가 홍콩에서 말다툼 끝에 우발적으로 살해했던 사건이었습니다. 또한 만약 우발적인 범행이 아니고 계획적인 범행이라면, 오히려 알리바이 용도로 계획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당시 집을 수사하던 수사관들은 L의 트레이닝복 바지에서 쪽지를 발견합니다. 여기에는 수많은 영화 제목이 적혀 있었는데, 11992년에 개봉했던 위험한 독신녀를 비롯한 살인 사건을 다룬 영화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책임자 Y는 목록에 적혀 있는 영화를 직접 구해서 보는데 이중 한 영화에는, 극중 여자 범인이 남성을 죽여 욕조에 시신을 담그는 장면이 등장하였습니다.이에 Y는 L에게 그 영화를 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았으나, L은 부정했으며 Y는 L이 공중보건의로 근무하였던 강릉에 수사팀을 급파하여, L이 해당 비디오를 대여했는지 확인합니다. 그 결과, L은 1994년 2월28일에 해당 비디오를 빌려, 3월2일 반납했다는 것을 알아냅니다. 같은 해 10월 26일 또 다른 대여점에서 이를 빌린 후, 한참 뒤에야 연체료를 물며 이를 반납한 정황이 드러나지만 L은 끝까지 자신은 그 영화에 대해 모른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치과의사 모녀살인사건_결론
검찰이 언론 발표 등을 통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만 발표했으니, 심증은 확실한데 물증이 없어서 L이 풀려났다며 한국판 OJ심슨 사건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데 그러나 이는 L이 범인이 확실하다는 검찰의 일방적인 주장이라는 점을 인지한다면 당사자에게는 다소 억울한 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시 L의 무죄를 확신하고 변호에 나선 김형태 변호사의 글들을 보면, 당시 경찰과 검찰, 그리고 심정적으로 이해는 가지만 C의 가족들의 행태는 정말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으며 과연 L이 일반인과는 다르 ㄴ차원에 있는 사람이라서 돈의 힘으로 유죄를 무죄로 만들어서 빠져나온 것인가라는 물음표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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