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연예인 100여명과 향학을 즐긴 타락한 재벌 2세 칠왕자 박동명 사건의 나비효과
영화 베테랑 속 막장 재벌 유아인의 실제모델
박동명은 시온사업을 운영하고 신앙촌으로 유명한 천부교의 교주 박태선(1917 ~ 1990)의 아들로 태광산업의 젊은 사장이었던 그는 국산차를 사는 것도 사치로 통하던 시절에 외제차만 여러 대를 가지고 있었고, 미국 라스베이거스 같은 곳까지 가서 유흥을 즐기고 오는 등 상당히 방탕한 인생을 살아온 것으로 유명합니다.1975년,당시 33세의 박동명은 미화 8만 달러를 밀입하려 했고 당시 고급 아파트 3채를 살 수 있던 금액이었습니다.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6700달러였던 때로 미국 기준으로도 적은 돈은 아니었으며 달러의 가치가 2022년보다 많이 높던 시절이었습니다.그렇게 외화밀반출 혐의로 그의 자택에서 구속된 박동명은 검거 당시 현장에 신인 여배우 강경희가 함께 있다가 발각되었는데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그의 집에는 그가 만났던 여배우의 목록이 무더기로 발견되었는데 그가 만난 여배우가 누군지 캐내고 싶어하는 기자들의 호기심으로 수많은 여배우들이 박동명의 애인으로 거론되었습니다.
■여자 연예인 80여명과 향학을 즐긴 타락한 재벌 2세 칠왕자 박동명 사건_박동명 리스트에 떨던 연예계
1975년, 칠공자 박동명 사건은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습니다.그동안 사람들의 입으로만 전해지던 루머가 실제로 확인되던 순간이었으며 재벌 후계자들이 재산을 빼돌려 사치스런 생활을 자랑하는가 하면 타락한 향락을 즐기고 유명 연예인들을 데리고 다니며 문란한 생활을 즐겼다는 보도는 사람들의 맹렬한 비난을 받게 됩니다. 심지어는 그들이 마약을 즐기며 부도덕한 일들을 자행했고 범법 행위도 했다는 이야기가 퍼져나갑니다.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서는 한겨울에 '어르신'의 총애를 받게 된 유채영이 재벌 후계자들의 비리를 폭로한 것처럼 묘사하기도 합니다.실제로 사건이 일어난건 여름이었고 공개된 내용은 대검특수부가 당시 33세이던 태광실업 대표 박동명을 구속 수사하면서 밝혀진 것들이었는데 그의 혐의는 26만 5000달러의 원자재를 해외로 밀반출한 것이었고 여배우와 동침하던 중 수사관에게 연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이른바 박동명 리스트가 공개된 것인데 무려 80~100여명의 연예인 이름이 적힌 그 명단에는 유명 여자연예인들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당시 수입을 금지하던 외제 물건과 보석 등의 사치품도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나중엔 해외 별장이나 외제차까지 들통났습니다.당시 박동명과 함께 여자연예인들과 환락을 즐기고 여성 편력을 자랑하던 재벌 후계자들을 칠공자라고 불렀는데 엽기, 엽색이란 표현이 남발하는 당시 기사들은 지금 읽어봐도 화끈거릴 정도로 노골적이었고 박동명 이외의 나머지 6명의 명단을 공개하라고 요청한 국회의원도 있었지만 그들의 명단은 루머처럼 떠돌 뿐 공개된 적은 없습니다.
■여자 연예인 80여명과 향학을 즐긴 타락한 재벌 2세 칠왕자 박동명 사건_연예계를 강타한 후폭풍
칠왕자 박동명 사건은 곧바로 연예계에 큰 파장이 몰고옵니다.당시 수많은 연예인들이 박동명의 여자로 거론되었는데 그 중에는 1960년대 최고 미녀 김지미도 있었는데 여론은 김지미에게 "당신도 박동명과 놀았느냐?"라며 추궁했지만, 김지미는 "내가 왜 그런 망나니랑 놀아나느냐?"라며 강력하게 부인했습니다. 당시 명보극장 사장 아들과 결혼할 예정이었던 최정민도 의심을 받았는데 최정민은 결백을 증명하고자 음독까지 시도하였으나 결국 파혼을 맞았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은 여배우는 바로 양정화였는데 드라마와 영화를 오고가며 사실상 1세대 여배우 트로이카의 뒤를 이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배우였지만 박동명의 애인으로 지목되며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고 모든 방송계약이 파기되었습니다.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는데 MBC 전속이었던 양정화를 TBC에서 헤드헌팅을 시도했지만 거절당하자 앙심을 품고 모기업인 중앙일보를 통해 보복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양정화는 적극적으로 소명했고, 중앙일보를 상대로 1억 5천만 원대의 소송을 걸어 승소했습니다. 여론도 다시 우호적으로 돌아와 수많은 작품 제의도 받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김호선 감독의 겨울여자입니다.처음에 양정화에게 주연 자리를 주려 했지만 이미 이 사건으로 연예계에 환멸을 느끼고 은퇴를 마음먹었기 때문에 양정화는 출연을 고사했고 이후 양정화의 빈자리를 차지한 여배우가 TBC출신 장미희였습니다. 결국, 영화는 엄청나게 대박을 터뜨리면서 성공가도를 달렸으며 장미희는 이후 전두환 스캔들이 터지고도 인기를 구가하는 연예인이 됩니다.양정화의 몰락은 반대급부로 수혜를 입은 배우들도 존재했는데 2세대 트로이카 정윤희,장미희가 대스타로 만드는 데 아주 중요한 기여를 하였습니다. 방송체계에도 큰 영향을 끼쳐 김자옥의 인기 상승에도 기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MBC를 이끌어가던 쌍두마차 여배우가 양정화,김자옥이었지만 양정화의 은퇴로 김자옥은 MBC의 원탑 배우가 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청춘극장에 출연 예정이었던 강경희도 여기에 연루되어 주연을 맡을 수 없었는데 강경희 자리에 들어온 여배우가 바로 정윤희였는데 당시 정윤희는 데뷔작 '욕망'의 흥행 실패로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무명 여배우였으나 이 영화의 출연을 재도약의 기회로 삼았습니다.그도 그럴 것이 청춘극장은 이전의 스타였던 김지미,윤정희가 주연이었던 영화였던지라 시사성이 엄청났습니다. 비록 영화는 실패했지만 이 영화에 출연하여 정윤희는 대중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고 정윤희는 이 영화에 출연한 후 TBC에게 주목을 받아 발탁되어 쇼쇼쇼에 출연했고 동시에 당시 해태제과의 모델이었던 양정화가 몰락한 후 그 자리를 대신해 해태 제과의 전속모델 자리를 쥐어 성공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또한 박동명 사건은 영화계를 겨낭해서 터졌기 때문에 수많은 영화배우들이 몰락하였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사건은 당시 엄격하게 구분되었던 영화계와 드라마계를 하나로 묶는데 기여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여배우 인력이 대거 감소하여 출신을 따질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드라마 배우들이 영화계에 진출했으며 그 중에 한 명이 안방극장의 트로이카 김자옥으로 김자옥은 O양의 아파트 등의 흥행작을 내며 2세대 트로이카가 연예계를 휩쓸던 시절에도 살아남은 배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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