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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知識을 낳는 뮤지엄

섹시 가수의 종결자,김완선의 등장이 반가운 이유

by 마음heart 2011.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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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선 신곡 Super Love 듣기

 

 

 

 

 

 

 

 

 

 

 

 

 

 

 진정한 댄싱퀸의 귀환, 그녀가 반가운 이유

 

 

 

 

 

 

 

 

 

 

 

1986년 매력적인 외모에 특별난 분장 없이도 키메라를 닮은 눈꼬리의 강렬한 인상과

 

당시로써는 센세이셜한 춤사위로 브라우관에 앉은 대중의 시선을 사로 잡던 소녀가 있었다.

 

시대와 세대를 불문하고 사랑과 질타를 동시에 받는 인물들은 꼭 있다.이제 만 42살의 김완선이

 

꼭 그랬다.당시 나이 17세에 <오늘밤>이라는 타이틀 곡으로 처음 대중 앞에 선을 보인

 

김완선(본명:김이선)의 등장은 대중들에게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었다.

 

 

 

 

 

 

 

 

 

1986년 17세의 어린 나이로 타이틀곡<오늘밤>을 들고나온 김완선,

 

국내 최초가 아닐까 싶은 3년간의 연습기간을 통해 선보인 김완선의

 

음악과 댄스는 지금봐도 새로운 감흥을 준다.

 

 

 

 

 

 

 

 

 

 

 

 

 

 

<한국의 마돈나>니 <댄싱퀸>과 같은 수식어가 늘 그녀를 따라 붙었지만 요새 아이돌들이 겪는

 

가창력 논란이라던지, 연예 프로나 패널로 나왔을 때의 백치미는 맹한 가수 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붙었고,(모 퀴즈프로에서 닭을 발음 그대로 쓴 가수가 그녀라느니,아니다.

 

다른가수이다라는 논쟁거리부터해서,그게 그토록 중요한건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이 내용을 마음이도 올핏 들었는데 이번에 내용이 뜨자 김완선이 본 내용의

 

주인공으로 기억이 나는 것이었다. 근데 실상 나 자신이 퀴즈탐험을 즐겨보지도

 

않았기에 결론은 역시 소문과 기억의 왜곡 현상이 아닐까 싶다.)

 

어릴 적부터 춤만 배워서 모자라던지 하는 선입관을 대중들에게 심어 주기도 했고 대중이

 

편견으로 만들기도 했다.

 

충격적인 데뷔와 논란 속에 김완선이 여자 가수로써 누리던 인기는 곧 추월 당한다.

 

기본적으로 우리 나라 사람(남녀를 떠나서 기본적일 수도 있지만) 얼마 안있어 출현한 고교생

 

가수 이지연과 강수지,하수빈등으로 대표되는 소녀적 청순함을 무기로 김완선의 위치를

 

윽박질렀으며 박진감 넘치는 댄싱 머신 박남정,현진영의 등장은 댄스 가수로써

 

독보적이었던 김완선의 입지를 좁게 만든다.

 

거기에 서태지까지 춤을 추며 <난 알아요>를 들고 나왔다.

 

하지만 1990년대에 내놓은 5집 음반은 음악적으로 김완선의 일대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발랄한 댄스곡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서정적인발라드 <나만의 것> 비트가 강한

 

<가장무도회>등이 연달아 히트하며 무관의 제왕이었던 김완선이 지상파 각종 방송에서

 

1위를 차지 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한다.

 

 

 

 

 

 

 

 

 

 

 

 

 

김완선은 5집 앨범에서 인기와 더불어 음악적인 완성도를 높여 간다.

 

국내 여가수로는 100만정이라는(비공식이긴 하지만)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나만의 것>은 서정적인 멜로디와 가사로 많은 인기와 김완선에게 생애

 

첫 가요톱텐 1위의 영광을 안겨 줬으며

 

(의외로 김완선은 그전까지는 1위와는 인연이 없었다.)

 

발라드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이무렵 김완선은 얼굴을 성형수술할 정도로 큰 교통사고르 당하는데 얼굴에 붕대를 감고서

 

1위곡을 부르는 기억이 새롭기도 하거니와 여자로써는 참 감당 하기 힘들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진정 프로페셔널하다고 느낀 기억이 있다.

 

김완선은 이런 영광의 길을 뒤로 하고 6집 <애수>를 끝으로 한국 무대와 결별한다.

 

이후의 김완선은 해외 활동을 재개한다. 요즘으로치면 원조 한류가수의 기틀을 다져놓은 것인데

 

척박하고 편견 가득한 한국 가요사에 댄스 음악을 정착 시킨이 후 1994년 대만에서 음반

 

<fIRST TOUCH>시작으로 <Sayonala>는 무려 50만장이 팔려 나가 한국의 댄싱퀸으로서의

 

실력을 유감 없이 발휘하며 대만 유학생 사이에서 표창장을 받을 정도였다.

 

김완선은 그 이후로도 중국,일본등 동아시아에서 한류의 기초를 착실히 다져 놓음으로써 이후의

 

한국 아이돌의 주춧돌이 되었다.

 

<어째서 호들갑 떨기 좋아하는 국내 언론이 이런 기사는 나몰라라했는지 좀 의심스럽기도하다>

 

 

 

 

 

 

 

 

 

 

 

김완선의 공전의 히트곡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그녀가 긴 세월의 고난의 터널을 뚫고 다시 그녀만의 다른 공전의

 

히트곡을 남기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녀의 환상적인 댄스에 가린 그녀의음악 역시 소중한 우리 문화의 일부분이다.

 

 

 

 

 

 

 

 

 

 

 

 

 

 

 

김완선 이후로 수많은 여성 댄스 가수가 양산 됐지만 음악적인 재능만으로

 

(김완선은 예능이나 기타 활동보다는 음악적인 활동만으로 지금의 위치에 이르렀다고해도

 

과언은 아니다) 기타 여러 여가수들보다 좀 더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엄정화나 이효리,백지영,아이비가 김완선의 뒤를 잇는 댄싱퀸으로 자리매김 했지만 엄정화나

 

이효리는 가수적인 재능과는 함께 엔터테이먼트적인 요소 역시 강했다.

 

엄정화는 <포이즌><배반의장미> 성공이후 영화배우로서의 길에 주력하였고 이효리는

 

핑클의 멤버로써 인지도를 널리 알린뒤 솔로 앨범 <텐미닛>의 성공으로 섹시 여가수로써의 변신에

 

성공하지만 이 후의 앨범의 잡음과 실패로 가수로서의 입지는 좁아 진다.

 

물론 아직까지 이효리는 가장 성공한 아이돌 가수의 전형으로 존재하지만 가수로써의 능력 외에

 

예능에서 보여주는 능력이 좀 더 플러스된 케이스라고도 볼 수 있다.

 

가만히 살펴보면 데뷔 당시만해도 뭇 대중들에게 음악적 재능을 의심 받고 폄훼 받았던

 

김완선의 가수로써의 능력은 분명 시대가 틀리고 음악적 장르가 달라 졌지만 분명 우리 가요사에

 

분명 한획을 긋고 있음은 분명한 것 같다. 이런 그녀가 다시 컴백을 앞두고 있다.

 

시대적 상황과 분위기 역시 많이 달라져 있다.

 

 

 

 

 

 

 

 

 

 

 

 

 

 

 

 

 

 


 

 오디션 프로의 맹폭!!과거로의 회귀 혹은 향수

 

 

 

 

 

 

 

 

 

 

 

 

 

 

 

 

 

 

 

.

나는 가수다(일명 나가수)에서의 가창력 쩌는 가수들의 서바이벌 프로라던지,케이블에서 촉발된

 

오디션 프로그램, 슈스케의 지상파 버젼 위대한 탄생(이하 위탄)같은 경우는 주말 예능의 절대 강자

 

1박2일의 시청률을 근소한 차로 제칠 정도로 이런 류의 프로가 인기이다.

 

거기에 이번 무릅팍 도사와 승승장구에 출연한 원조 섹시가수 김완선에 관한 관심은 매우

 

이례적일 정도로 그 열기가 뜨겁다.

 

그녀 김완선은 80년대와 90년대로 넘어가는 시기 가창력에서는 기존 가수에게

 

멸시 받았고 어느 정도 가수로써의 능력을 인정받을(단순히 비디오형 가수가 아닌 본격적인

 

댄스 뮤직의 시기를 앞당긴 선구자적인 역할에 일조한 국내 최초의 여가수임은 분명함에도)

 

즈음에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으로 국내 가요의 패러다임이 확연하게 바뀌어 버립니다.

 

그럼에도 그녀가 결코 무시할 수 없음은 그녀 김완선의 음악 변천사를 보면 그녀가 결코 삐에로나

 

꼭두각시처럼 입맛 벙긋거리는 수준의 가수는 아님을 알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고단한 개인사로 인해 유행처럼 번지는 자살과도 같은 극단적인 선택이 아니라 끊임 없이

 

음악적인 시도로 자신의 존재감을 꾸준히 알려 왔다는 것이다.

 

김완선은 십대때부터 나이 사십이 지금에도 열정이 꺼지지 않은 댄싱퀸이며 음악인이었다.

 

 

 

 

 

 

 

 

 

 

활발한 활동과 인기를 구가하던 8090년 시기의 가수들이 사라져 갈때도

 

꾸준히 음악적인 변신을 시도했던 김완선,

 

비록 대중적인 사랑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또 다른 앨범의 <탤런트><쉘위댄스>

 

 

 

 

 

 

 

 

 

 

 

 

김완선뿐만 아니라 요즘은 속속들이 80년대에서 90대초에 활동하던 가수들이 컴백하고

 

있다. 근래에 들어서 열풍처럼 부는 오디션 프로그램과 나가수와 같은 향수와 실력을

 

토대로 한 프로그램이 왜 인기있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7080세대로 대변 되는 오십,육십대의 세대가 민주화와 독재라는 이념속에

 

흑과백의 분명한 잣대와 잘 살아 보겠다는 경제 구호 아래 전력을 다해 달려와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둔 세대인데 반해 8090세대에게는 특별한 페러다임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미 경제 성장은 이룰만큼 이루었고 민주화라는 극단적인 논리 역시 시들해져 갔으며 도리어

 

이전 세대들이 진리라고 믿었던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라는 말들이나

 

"개천에서 용난다"같은 자수성가의 사례들은 세계적인 경제 한파로 무용지물이 되곤 했으며

 

8090세대는 결국 IMF사태속에서 경제 활동 자체가 빚잔치가 되어 버리는 현실속에 놓이게 되었다.

 

 

 

 

 

 

무릅팍 도사에서 김완선은 자신의 지난 날들을 담담히 이야기 했다.

 

아이돌 그룹이 시장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속에 향수를 자극하는,그러면서도 김완선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댄스가 다시 회자되고 있는 것은 최고였지만 너무나 인간적인 김완선의

 

매력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보는데 기인하는것 같다.

 

김완선만의 독특한 음색과 춤이 그녀만의 매력이었지만 당시 분위기는 춤은 잘추지만

 

노래는 못하는,그리고 백치미가 넘치는 여자 가수로 이미지를 굳혀가게 됩니다.

 

 

 

"한번 잡힌 맹한 이미지가 평생을 가더라구요.."

 

 

 

라는 그녀 말처럼 미디어가 고착화시킨 그녀의 이미지는 쉽사리 깰 수 없는 것들이었다.

 

요독 김완선의 이번 컴백에 대중들의 시선이 뜨거워진 이유는 무얼까?

 

김완선 자신이 1992년 <애수>를 끝으로 은퇴

 

(물론 이번에 그 은퇴가 매니저이자 이모였던 한백희씨의 전략적인 선택이었고

 

김완선 본인은 그것이 죽기보다 싫었고 창피했다고 고백했지만)한 이후 96년도에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이번 컴백에는 김완선 본인의

 

성격적인 문제도 있었겠지만 그동안 밝히지 못했던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담담히 하면서

 

화려한 연예계 뒷면속에 숨겨진 그녀만의 인생 역정이 고스란히 대중들에게 감정 이입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경제 대국이라는 겉표면 속에 가리원진 우리 국민들의 고난과 댄싱퀸이라는

 

겉으로는 화려 했던 그녀가 실상은 노예계약의 원조였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완선은 브로운관속에서 가수로써의 섹시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성격의 소유자임을 많은 사람들이 재발견하게 되었고 많은 대중들,

 

특히 그녀가 활동하던 시기에 그녀를 이유 없이 시샘하거나 싫어하던 이들조차 그녀의

 

안티에서 팬으로 돌아 서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다시 살펴보는 김완선의 일본,대만 방송 프로그램 모습은

 

김완선의 발빠른 해외진출의 면목을 엿보게 한다.

 

가창력을 바탕으로한 한국가수들의 일본진출기와는 다른 의미의 김완선의

 

일본 진출은

 

한국 가요의 다양화의 시초이며 원조 한류의 시발점인 셈이다

 

 

 

 

 

 

 

 

 

 

 

 

 

 

 

 

영화 올드보이처럼 13년간 이모 한백희로부터 철저하게 친구조차 없이 격리된 연예 생활,

 

개런티를 단 한푼도 받지 못한 사연, 생활고로 누드사진을 찍게 되기까지의 과정들이

 

김완선의 외모에로부터 풍기던 선입관을 철저히 깨게 되었죠.

 

"한국의 마돈나"나"댄싱퀸"이라는 수식어 뒤로는 80년대에 당시의 딴다라라는 멸시속에

 

같은 가수에게서조차 무시받는 시선이 분명 존재했었고 1990년도에 발표한 5집

 

<삐에로는 우릴보고 웃지>가 국내 여가수 최초로 100만장을 돌파하며 분명 음악적인 성과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것임에도 가수 김완선은 여전히 가벼운 댄스 가수라는 수식어로 불리웠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 이전에 댄스 가요는 존재했었으나 대부분 신나는 노래에 율동

 

수준의 댄스가 대부분이었으며 그녀의 등장이 후 댄스는 전문적인 수준의 영역으로 끌어

 

올려졌습니다.그리고 지금 아이돌의 홍수 속에 그들에 대한 평가 역시 유보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아이돌이 넘쳐나기에 희소성의 가치 하락에 의한 펌훼는 분명 불공정한 것이라는 것이죠.

 

김완선이 당시에 받은 평가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이구요.

 

실력이 떨어지는 아이돌이나 댄스 가수들은 기억에서 완전히 잊혀지겠지만 분명 실력을 갖춘

 

이들은 언젠간 정당한 평가를 받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돌아온 댄싱퀸 김완선에 대한 기대는 지나간 세월속에 한때 최고의 무대를 선보였던,

 

그러나 세월의 흐름보다 더 빠르게 바뀐 음악적 환경속에 적응 못하는 8090세대의 과거로의

 

회귀와도 같습니다.

 

 

 

 

 

 

 

 

 

 

 

 

로맨틱 카우치의 뮤비에 모습을 선보인 전설의 귀환 <댄싱퀸 김완선>

 

 

 

 

 

 

 

 

김완선의 음악을 좋아 했던 이들은 자신들과 함께 같은 시간을 보낸 여왕의 복귀를 반기는

 

것이며 김완선의 음악을 싫어했던 이들조차 이제는 젊은 날의 편견과 가십에서 이제는

 

어느정도 자유러워진 상태에서 요즘 세대에게만 들려 주는 암호문 같은 아이돌만의 음악이

 

아닌 신명나는 댄스 음악, 보는 음악의 명품인 김완선의 재출현을 반기는 것이 아닌가?

 

가만히 눈 감으면 절로 감성적이 되는 명품 발라드가 있듯이

 

김완선 특유의 신나는 비트와 아이돌 음악과는 궤를 달리하는 그녀만의 댄싱 음악이

 

이젠 시대에 매몰 되어진 인기 많던 댄스 여가수에서 진정 한 시대를 살아온 그녀에게

 

다시 손을 내미는 대중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Super Love -/김완선

 

 



I WANNA BE WITH YOU


IT'S JUST A TWO OF US


I'm dreaming everywhere everyday
I fall in love with you
Just from my burning heart
I'm not gonna live without you
Come on baby stop

너를 사랑할거야 틀림없는 사실이야
I’ve got to tell you what

또 실수해서 무릎 꿇진 않겠어
제일 현명한 선택 중 최고는 너뿐
숨이 차오를 때까지 뛰어 갈 거야
다시는 안 돌아봐
Do it do it do it now

내 전부를 네게 주겠어
조바심은 갖지마
너 또한 그래 주겠니

맨 처음 만난 날 성큼 내 앞에 와
처음으로 한 말 기억해
하얗게 타버린 메마른 네 입술
나는 이미 설레임에 숨이 막혔어


가사 출처 : Daum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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