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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知識을 낳는 뮤지엄

세계를 휩쓴 여성 파워,대물보다 더 대물스런 여성 대통령들

by 마음heart 2011.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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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선덕 여왕때부터 관심 가지며 자료를 모아 오던 여성 지도자에 관한 아이템이 드라마 대물의 방영을 계기로 자료를 정리, 글을 포스팅하게 되었네요

처음 선덕여왕을 볼때는 세계의 여왕이라는 주제로 쓰려 하다 현실속의 여성 대통령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대물 드라마 속의 여성 대통령은 밑바닥에서부터 치고 올라와 국민들을 위한 정치를 합니다만 현실속은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물론 우리 나라의 상황에선 아직까지 시기 상조인 면도 있고인물이 없다라는 의견도 다수이고보면 세계속으로 눈을 돌려 어떤 엿ㅇ 대통령이 있는지 알아 보는 것도 좋겠지요

민주주의의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조차 아직 배출하지못한 여성 대통령,물론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가 배출 되었지요.

그렇다면 역시 여성 대통령은 아직까진 시기 상조일까요.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와 중국을 둘러봐도 여성이 정치 일선에 나서는 여왕 시대는 중국이 측천무후로 유일하며 우리는 드라마로도 알려진 신라 시대의 선덕여왕과 진성여왕 둘뿐이죠. 이 두분 같은 경우 여성의 활발한 사회참여에 의한 쟁취라는 점보다는 신라 사회가 모순적으로 지닌 신분 차별제도 골품제의 수혜자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이쯤에서 대물에서 고현정이 분한 여성 대통령의 의미와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여성 지도자들,여기에는 여성 대통령도 포함 되겠죠.전 세계적으로 여성 대통령이나 총리는 상당수 배출되거나 지금도 활동하는데 놀랐습니다.

물론 그 내면에는 후진적인 정치 문화로 인해 한가문의 나눠먹기식도 분명 존재하지만 어떠한 형태로든 여성 정치가들의 힘은 날로 늘어나는 추세인것은 확실한듯 하네요

세계 최초로 여성 대통령이라 불리는 한 사람은 아르헨티나의 후안 페론의 세번째 부인이었던 이사벨 마르티네스 페론(Isabel Martínez de Perón. 1931년 2월4일~)으로 남편의 러닝메이트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 했다가 남편의 사망이후 대통령을 승계하였습니다. 마음이도 그렇지만 우리 나라 사람이 좋아 하는 최초,최고중 전 세계 최초로 여성 대통령을 지낸 이사벨 페론에 대해 아주 짧게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사벨 마르티네스 데 페론(아르헨티나 대통령/재임기간 1974~76년)

 

 

 

 

그녀의 정식 이름은 마리아 에스텔라 마르티네스 데 페론(스페인어:María Estela Martínez de Perón마르티네스는 결혼 전 성)이며, 이사벨이라는 이름은 아르헨티나전통교회인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얻은 세례명이다. 넉넉하지 못한 집안 출신으로, 젊은 시절 무용수로 일했고, 이 때부터 이사벨이라는 이름을 예명으로 사용하였다. 1956년파나마로 망명간 후안 페론을 만나게 되었다. 두 번째 부인 에바 페론을 잃고 독신으로 지내던 후안 페론은 이사벨의 젊음과 미모에 빠져들었고, 이사벨을 자신의 개인 비서로 채용하였다. 1960년 후안 페론은 망명지를 스페인으로 바꿨고, 이사벨은 그를 따라 스페인으로 건너갔으며, 두 사람은 35세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함께 살다가 그 이듬해 정식으로 결혼하였다.

 

이사벨은 1960년대70년대초 여러 차례 아르헨티나로 가서 후안 페론시대의 추억을 상기시키며 후안의 정계 복귀를 위한 기반을 다졌다. 그런 가운데 1973년대통령선거에서 페론 주의내건 정의당엑토르 호세 캄포라당선되었으니, 이는 곧 후안 페론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캄포라는 곧 스스로 사임했으며, 페론 부부는 아르헨티나로 돌아가 다음 선거를 준비했다. 호세 로페스 레가를 주축으로 국민들의 반대 움직임이 있었는데도 후안 페론의 러닝 메이트로는 이사벨이 지명되었다.

 

선거 결과 후안 페론이 대통령, 이사벨 페론이 부통령으로 당선되어, 1973년10월 12일 취임하였다. 그러나 고령의 후안이 건강이 악화되어 대통령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이사벨이 대통령직을 대행해야 했으며, 결국 후안 페론은1974년 사망하여, 이사벨은 대통령직을 승계하였다. 그는 이로써 세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었다. 부통령에 있다가 대통령의 권위로 대통령직을 승계한 것이므로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었지만,국민의 반감은 심했으며, 이전 정권의 인플레이션, 사회갈등, 정치폭력 등의 문제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는 낮은 지지율을 회복해 보기 위해 국민의 인기가 높던 에바 페론 계승자를 자처했다. 그는 이에 외국에 있던 에바 페론의 유해를 아르헨티나로 송환하는 등 국민의 지지를 받기 위한 노력을 했으나, 반감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경제는 파탄상태에 이르렀고 물가를 잡기 위해 화폐 발행을 늘렸지만, 인플레이션은 더욱 심해졌고, 이에 항의하는 폭동이 이어져 국가는 거의 무정부상태에 이르렀다. 정치혼란을 타개하고자계엄령을선포했으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군부도 그에게 등을 돌렸다. 집권 내내 좌파게릴라준동과우파암살단의 보복 테러 등으로 인한 정국 혼란에 시달렸으며, 결국 1976년 3월 군부 쿠데타일어나 축출되고 말았다.

군부의 군사반란으로 5년 간 가택연금을 당한 이사벨은 1981년 재임 중의 부패혐의로 기소되었다가 가석방된 후 외국 망명이 허용되어 스페인으로 떠났다. 1983년 사면되었으나 아르헨티나로 돌아오지 않았고, 1985년에는 정의당의 당수직도 사임하여 정계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그 후 몇 차례 아르헨티나로 돌아가 정계 복귀 시도를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계속하여 스페인에 머물고 있다. 2007년 아르헨티나 법원이 그가 그의 대통령 임기 중 일어난 반체제 인사의 의문사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이유로 그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하여 그녀는 일단 스페인법정에 출두하였다. 그러나 2008년 4월스페인 사법부는 그의 아르헨티나 송환을 거부하는 결정을 하였다.당시 아르헨티나 법원에서 적용한 혐의는1976년2월좌파 인사 엑토르 알도 파게티 가예고의 실종 및 미성년자인 호르헤 발렌틴 베론 체포 사건과 집권 기간 극우 비밀조직인 반(反)공산주의 동맹(AAA)에 의해 자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에 연루된 혐의이다. AAA 동맹은 1973~1976년 사이 최소한 1천500명의 정치적 반대자를 살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드라마에서 기대하는 여성 정치인에 대한 꿈은 꿈일지도 모른다.그녀 이사벨 페론 역시 어쩌면 미숙한 사회 현상의 희생양일런지도 모르지만 아르헨티나 전반에 걸친 여성 대통령이라는 불신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정치 인생은 남편 후안 페론에 기댄 것이었고 난국을 타개하는데에 이미지 정치만을 실현하려는 정치적 미숙함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아무튼 최초의 아르헨티나 여성 대통령이자 세계 최초였던 그녀의 정치 행보와 말년은 유쾌하지 않다.

그녀가 노무현 대통령과 똑 같을 수는 없지만 우리 사회와 아르헨티나의 편견과 맞서 싸운 점은 비슷하다 할 수 있겠다.

그녀는 부통령으로써 자연스레 대통령직을 승계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회 전반에 걸친 반대 급부라는 편견에 맞서야 했고

노무현 대통령이야 너무도 잘 알다시피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생각 외로 글이 길어져 세계 여성 지도자들은 이미지 사진으로 간략하게 소개해보고자 한다.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 (스리랑카 총리/1960년~1965년,1970년~1977년,1994년~2000년 역임)

 

 반다라나이케 총리(이름에서 알 수있듯 그녀의 남편이었음)의 암살이 후 아내인 시리마보가  총리를 물려 받습니다.

그녀는 세계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명예?도 동시에 얻게 되었지요

 

 

 

인디라 간디(인도 총리/1966년~1977년,1980년~1984년 역임)

 

 

 

 골다 메이어(이스라엘 총리/1969년~1974년 역임)

 

 강렬한 인상에서도 느껴지듯 이스라엘의 철의 여인이라 불리운 골다 메이어, 팔레스타인들에게는 모질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철의 여인이었다네요

 

 

 

 코라손 아키노(필리핀 대통령/1986년~1992년 재임)

 

                                          80년대 코라손의"노랑색 물결"이 참으로 유명했었던..얼마전 돌아가셨죠^^ 

 

 

 

마거릿 대처(영국 총리/1979년~1990년 재임)

 

 

 너무 유명하신 분이라 설명 불필요^^ 슬슬 귀차니즘이 ㅠㅠ

 

 

베나지르 부토(파키스탄 총리/1988년~1990년,1993년~1996년 재임)

 

 

 그녀의 아버지 알리 부토는 민족 지도자로 추앙 받는 분이였으나 쿠데타 세력의 손에 의해

정권을 탈취 당하고 투옥 되어 결국 숨졌습니다.그녀 역시 총선을 얼마 두지 않고 암살을 당하고 맙니다.

그녀의 남편인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대통령은 그녀의 집권 시절부터 부패의 상징으로 유명 했던 인물 이었습니다.

베나지르 부토의 경우 그녀에 대한 영화 "부토"도 나왔다는데 한번 보았으면..좋겠네요

 

 

메리 로빈슨(아일랜드 대통령 /1990년~1997년 재임)

 

 

 

참고로 아일랜드는 내각제입니다. 내각제에서는 대통령은 어쩌면 상징적인 국가 원수로서의 존재 의미가 더 큰 법이죠.

하지만 그녀 같은 경우 저극적으로 분쟁 중재및 평화활동유지를 위해 많은 일을 하셔서 유명하십니다.

유엔 인권기구의 수장을 지냈으며"디 엘더스(The Elders)"라는 국제 원로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모임에는 남아공의 만델라 대통령도 계신다는>

 

 

 

 

 

 

반다라나이케 쿠마라퉁가(스리랑카 대통령/1994년)

 

 

세계 여성지도자에서 맨 처음으로 소개 했던 최초의 여성 총리 기억 하시죠

바로 그녀의 딸입니다.이거야 말로 진정한 집안끼리 다 해먹는다는.. 

 

 

 

 

헬렌 클라크(뉴질랜드 총리/1999년~현재)

 

 

영연방에 속해 있는 뉴질랜드의 총리인 그녀는 여왕을 매우 싫어 하는 걸로 유명합니다.

여왕님 방문시 휴대폰으로 문자질 하는 모습이 노출 되어 구설수에 한동안 올랐었지요^^

 

 

 

 

글로리아 마카파칼 아로요(필리핀 대통령/2001년~현재)

 

 

 가문의 영광과 후광을 모두 등에 업은 그녀 같은 경우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과 후원으로

정권을 유지 하고 있습니다.

 

 

 

 

앨런 존슨-설리프(라이베리아 대통령/2006년~현재)

 

 

 우리에게는 이름조차도 생소한 라이베리아는 아프리카에 위치해 있습니다.이 나라는 내전이 극심한 곳인데

그녀가 민주적 선거에서 당선 되어 대통령이 됩으로써 아프리카 전체에 희망의 상징이 된 여성입니다

또 아프리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기도 하구요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인도네시아 대통령/2001년~2007년 재임)

 

 

 인도네시아 건국 영웅 수카르노의 딸이며 지금도 야당 지도자로 왕성한 활동을 한다고 하네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아르헨티나/2007년~현재)

 

 ,남편인 에스토르 키르치네르에 이어 바로 그녀가 당선 되어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사벨 페론 이후 아르헨티나의 두 번째 여성 대통령이 되었으나

집권 직후 70% 이상의 지지율은 정책의 연이은 실패로 지지율은 계속 추락중인..

 

 

 

 

 아웅산 수치 여사

 

 

아웅산 수치 여사를 소개하고 갈무리 하도록 할께요.

그녀는 미얀마의 비폭력 민주화 운동 지도자이며, 최대야당인 민족민주동맹의 당수입니다.

미얀마 건국의 아버지로서 1947년 6월 정적에 암살당한 아웅 산 장군의 딸로 출생했습니다.

독실한 불교 신자인 그녀는 199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미얀마는 1962년 쿠데타로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군정이 들어섰고,

1988년 민주화 요구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한 신군부가 등장한 우리 나라의 현대사와 매우 흡사한 길을 걷고 있습니다.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 정권에 맞서 민족민주동맹(NLD)을 이끌었으며,

1990년 5월 실시된 총선에서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이 495석 중 392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었으나,

군정은 선거 무효를 선언하며 수치 여사의 총리직을 빼앗아 갔습니다.

2005년 군부 온건파이던 킨 뉸 총리가 발표한 ‘7단계 민주화 로드맵’에 따라 2010년 총선을 앞두고 있으나,

수치의 출마 자격까지 박탈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아시아의 많은 여성 지도자들은 아버지,남편 혹은 가문의 후광으로 출세하였다는 편견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분명 많은 여성 지도자들의 배경에는 집안과 아버지, 혹은 남편이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은 다릅니다. 그런 특혜 아닌 특혜가 출발선상에서 조금의 우위와 이점을

주는 건 사실이겠지만 역시 그후의 인생은 그녀들 자신이 개척하기 나름이고

정치적인 성공혹은 실패 역시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아웅산 수치 여사를 맨 마지막으로 소개해 드린건 가문이나 남편,아버지의 후광이

아무리 휘황찬란 하다 해도 그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대신 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죠

결국 정치가는 남자와 여자를 떠나 정치력으로 승부를 봐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버마 건국 영웅 아웅산 장군의 딸이라는 화려한 도화지위에 그녀가 써내려간 그림은

민주화를 힘겨운 투쟁의 연속이었고 그것은 그녀 자신이 선택한 그림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여성 대통령이 나온다면..이라는 주제는 매우 힘겹고 복잡미묘한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 여성에 대한 편견과 싸워나가야 하고 우리 나라 여성 정치가의 이미지 역시 남성 정치가의

부정적 이미지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사회가 좀 더 건강하고 힘찬 발길을 할 수 있으려면 남성과 여성의 성별 차이를 떠나

동등한 조건과 정치력을 승부수로 정책을 펼쳐야 하지 않는가,

남자라는 이유로 여성의 능력을 평가 절하 하거나

또한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보다 혜택을 받으려는 일도 없어야 겠지요

또 조만간 그리 되리라 한다 믿습니다

 

 

 

 

전 우리 정치인들이 결코 세계 어떤 정치가들보다 후진적이고

뒤떨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하지만 99명이 새치기 하면 결국 나머지 한명조차

자신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 대열에 동참하게 됩니다.미천할만큼 짧은 우리

민주주의라는 정치 풍토에

각각의 정치인이라는 이름은 나약합니다.공천이라는 족쇄에 매여 잇고 당이라는

고삐에 끌려 다니는

후진적인 정치 풍토에서 눈에 보이진 않지만 조금씩 노력할 많은 정치인들의 힘으로

종내엔

드라마 대물의 여성 대통령 같은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이며 자랑스런 정치인이

나올거라 분명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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