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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知識을 낳는 뮤지엄

히틀러와 비트겐슈타인,유년기의 우연한 동침

by 마음heart 2011.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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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장으로 떠나는 백년전의 시간여행,히틀러와비트겐슈타인

 

그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어렸을땐 참으로 많이한 공상들이지만 커가면서 잊혀진 무엇처럼 점점 바빠지는 생활 속에 놓고온 것들,만약 여러분들에게 타임머신이 있다면,뭘할까요?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과의 만남을 위해 떠날지도 모르겠고 지난주의 로또 번호 사러 냉큼달려 갈지도 모르겠네요. 와우~생각만 해도 들뜨네요.물론 현대 과학에선 불가능한 일인지라 상상속으로만 가능한일 이지만서도,

왜 이런 이야기를 서두에 꺼내냐면 전 한장의 사진으로도 충분히 과거와 미래를 향한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 믿으니까요.아마 종종 이런 시간 여행을 갈껀데 따라 오실 분들은 선착순입니다. 물론 재미 있어야 겠지만 재미 없어도 따라 오실분들은 미리 전화 하셔요.오늘은 매우,아주,무척 유명한 두 사람에 관한 시간 여행식의 추론을 풀어 내려 하기 때문입니다.유명했었던 두 인물이 한 자리에서 만났다면 하는 가정말이죠.

충무공 이순신과 연개소문이 같은 장소에 같이 있었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 졌을까?

안중근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가 같은 학교를 다녔다면?역사에 가정이란 없다 지만 가정이 없으면 백반으로,

흠~썰렁하구나..추워..암튼 가정 없는 역사는 앙꼬 없는 붕어빵이라는 마음이 생각^^

오늘 시간 여행은 세계 2차 세계 대전을 연 장본인이자 유대인 학살의 선봉장이었던 히틀러와 천재로서 그 명성을 드높인 비트겐슈타인.이 두사람은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데 밑의 한장의 사진으로 말미암아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 많은 상상의 여지를 만들어 버립니다.


 

 

 


 

 
 
 
 

누가 히틀러 이고 누가 비트겐슈타인인지 알겠죠! 많은 사람들은 1904년의 15세 소년들(지금으로부터 약 1백년전의 두 소년에게서 각기 나름의 유년기를 유추해 보고는 합니다)유난히 총명해 보이고 교육을 잘받은 소년으로 비춰지는 비트겐슈타인과 어릴적부터 현실의 삶에 염증을 느껴 오만가지 인상을 하고 있는 히틀러로부터 어릴적부터 그 싹이 보였다 여기는 듯 합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엔 어떤가요,정말 히틀러는 미래의 전쟁광 기질이 어릴적부터 엿보이시나요?아니면 비트겐슈타인은?

정반대의 가정에서 자라난 이 두 소년은 히틀러는 가난한 과거 유년기의 삶에서 벗어나 현실적 삶에서는 엄청난 명예와 물질을 획득하고 비트겐슈타인은 과거 유복했던 삶을  등지고 소박하고 검소한 삶을 살았기에 더 사람들 기억에 남는 것이겠죠.

 

더 자세히 이 두소년의 유년기, 히틀러와 비트겐슈타인을 보노라면  15세(우리나라로 치면 중학생인가요)...소년의 얼굴 표정이나 자세를 통해 느끼는 인상은 아돌프를 비롯한 4명의 아이들은 평범하다 못해 히틀러 같은 경우는 음울해 보이기까지 하는데(선입관일지도)그와는 다르게 확연하게 틀려 보이는 소년 하나, 바로 세기의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올망 졸망 똑소리 나보이는 눈빛은 총기가 넘쳐 흘러나 보인다는.. 

히틀러는 많은 유대인을 적대시 하며 학살하는데 많은 이들(여기에 학자도 포함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은 어쩌면 그런 성향이 어릴적의 삶의 괴리감이 원인일 수도 있다 주장하기도 하는데 만약 히틀러가 좀 더 유복하고 유대인과의 괴리감이 적었다면 유대인과의 융통성을 발휘했을 수도 있었다면 히틀러가 독일내의 고급두뇌인력을 영국이나 미국으로 수출시키지 않을 수도 있었다 생각하기도 한답니다.

독일이 비트겐슈타인과 하이젠베르크 같은 고급인력의 손실로 말미암아 영국과 미국이 왜 강해지고 왜 전쟁에서 이겼고

독일은 왜 세계2차대전에서 졌는지를 증명한다는 것이죠.

그외의 수많은 철학자, 과학자들을 다 포함한다면 손해는 이루 말할수 없이 크다고 추측과 추론을 펼치고 있습니다.

 

진짜 이 두 소년은 같은 곳에서 전혀 다른 생각과 사상,그리고 인생을 살았을까요?

 

 

 

 

 

 

물론 위와 같은 상상과 추론은 자유로운 것이며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죠.하지만 약간의 변론과 수정안을 들고 나오자면,

위에서 언급한 하이젠베르크는 끝내 독일을 떠나지 않고 3제국 원자폭탄 계획의 핵심 책임자였다는 것이죠. 이들과 비슷한 시기 스위스 취리히의 아인슈타인이 떠났고 비트겐슈타인과 여러모로 비견되는 천재 괴델이 떠났죠.. 슈뢰딩거와 오펜하이머가 떠나갔으며 하이젠베르크와 오토한만이 독일에 남아 있었다는것.

비트겐슈타인을 좀 더 공부해 보면 그리 삶에 염증(?)을 내지는 않고 살았다는것.. 비트겐슈타인은 이미 2차대전 시기에는 만년의 노신사 였지만 1차 대전에서는 거의 전쟁영웅이었다는 것,
말 수 없고 자폐증에 가까운 증세룰 보인 것은 비트겐슈타인이었으니 비트겐슈타인의 집안이 유태계이기는 했지만 부계는 일찌기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했고 모계는 카톨릭계였으며 그리고 결정적으로 히틀러는 비트겐슈타인보다 1년 늦게 입학했다는 사실. 사진 한 장만으로 그들의 모든 것을 유추할 수도 없고 백년전이라고는 해도 그들 삶의 흔적은 대부분 추적이 가능하기에 억지스런 추론이나 상상은 역시 호사가들이나 하는 것이 어울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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