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초거대 거인문명과 거인족은 실제로 존재했을까?
이사야마 하지메의 다크판타지 만화 진격의 거인은 미지의 거인을 소재로 한 만화로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한 정체불명의 식인종 거인들에 의해 인류의 태반이 잡아 먹히며 인류는 절멸 위기에 처하고 목숨을 부지한 생존자들은 높이 50m의 거대한 삼중의 방벽 월 마리아, 월 로제, 월 시나를 건설하여 그 곳으로 도피, 방벽 내부에서 100여 년에 걸쳐 거인의 습격을 피해 평화의 시대를 영위하지만 100여 년이 지난후 방벽에 돌연 나타난 초대형 거인이 뚫은 방벽의 구멍으로 들어온 거인들에게 수많은 민간인들이 죽임을 당하며 100년 동안 만들어졌던 벽 안 세계의 평화가 무너져 버리는 내용을 담고있는데 인간들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거인의 존재에 대한 공포심은 고대부터 발현되어 왔다는 것입니다.고전 소설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대인국의 거인들 역시 보통 사람 걸리버보다 키가 자그마치 12배나 더 큰 것으로 묘사되는데 추정하자면 대략 18~20m에 이른다는 얘기입니다.이들이 사는 대인국에서 걸리버는 곤충의 먹잇감이나 어린 소녀의 인형이 되어 갖은 수난을 겪습니다.하지만 이런 무시무시한 거인족의 세계가 단지 소설이나 영화 속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닐 수도 있는데 거인 족은 과거 한때 이 지구에서 인류와 공존하며 또 하나의 세계를 형성했을지도 모를일이기도 합니다.
▣신라 동쪽 거인족인 장인국의 정체
우리나라 고대사에서도 거인족에 대한 기록이 존재하는데 바로 신라 동쪽 거인족인 장인국에 대한 이야기입니다.백제에서 지금의 충청도 일원 바다 근처에서 661년 시체가 떠올라 발견되었는데 삼국유사에 거인족에 대한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거인의 시체가 백제 멸망의 징조로 나타난 기록은 659년, 661년, 667년 세 차례의 기록으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흩어져 나옵니다. 삼국사기의 기록은 사람의 몇 배 정도 크기로 거인들 치고는 그다지 큰 편이 아니나,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 크기가 그보다 훨씬 더 크게 나옵니다.특히 바다에 시체가 떠올랐다는 것을 보면, 바다 먼 곳의 섬나라, 혹은 바다 속 사람이 살 수 있도록 공기가 차있는 동굴 따위에서 살 것이라는 이야기를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고, 몸에 비해 발은 무척 작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사람처럼 땅 위에서 달리거나 걷는데 능숙하지 못하여 항상 물에서 헤엄을 치거나 엎드려 기어 다닌 것으로 생각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이 외에 한국 옛 기록 속 여러 거인 이야기들을 정리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한국의 거인 이야기 중에 가장 옛것은 중국 고전 박물지에 실린 옥저 이야기입니다. 여기서는 중국 위나라의 관구검이 고구려를 침공해서 고구려 동쪽 끝까지 갔다가 들은 것이라면서, 옥저의 한 노인에게 들은 이야기 몇 가지가 짤막하게 나와 있습니다. 이 노인은 여자들만 사는 나라인 여인국 이야기 등과 함께 바다 건너 동쪽에서 시체를 건진 이야기를 하는데, 그 시체 옷의 소매 길이가 세 길, 그러니까 사람 키의 여러 배에 달했다고 합니다.이것은 아주 커다란 사람 이야기일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엄청나게 소매만 길다란 괴상한 옷을 입은 사람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이 거인 이야기는 역사 책인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도 실렸고, 이에 따라 그 뒤의 삼국, 고려, 조선 학자들에게도 알려졌습니다.조금 더 본격적인 거인 이야기는 나중에 나온 중국 서적 기문에 실린 장인국(長人國) 이야기로 신라 동쪽에 장인국이라는 나라가 있었으며 거기에 크기가 큰 사람 비슷한 괴물이 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나라 전후 무렵 떠돌던 소문이 실린 것인데, 이것이 중국 역사서 신당서에도 실렸고, 역시 그에 따라 그 뒤의 삼국, 고려, 조선 학자들에게도 알려졌습니다.신라 동쪽 바다 건너 알 수 없는 곳에 있는 사는 거인 이야기는 사실 하나의 유형이 되어 나타나는데 특히, 중국 당나라 때에는 바다 건너 중국을 찾아 오는 사람들 중에 신라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중국의 “바다 건너 이상한 곳”에 관한 설화가 신라 뱃사람, 신라 사신과 엮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기문에는 당나라 사신이 신라에 갔다가 일본으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서 위의 “장인국” 같은 곳에 가서 잡혀 먹힐 위기에 쳐했는데, 붙잡혀 있던 베 짜는 여자들과 함께 도망쳤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옥당한화”에는 당나라 사신이 신라로 가다가 거인이 사는 섬에 표류했는데 도망치다가 칼로 거인의 손가락을 잘라낸 것을 조정에 바쳤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영표록이”에는 당나라 사람이 표류하다가 어떤 섬에 도착하니 같은 배에 타고 있던 신라 사람이 그곳이 개들의 나라, 즉 “구국”이라고 했고, 나중에는 거인이 사는 “대인국”에도 들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사실 거인 이야기 외에도 중국 당나라에서는 신라와 바다 건너 이상하고 신비한 것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돌았는데 예를 들면 “유양잡조”의 장수국과 용궁 이야기, “박이지”의 신선들이 사는 섬 이야기, “전당시주”의 인어가 짠 옷감 이야기, “소하록”의 백룡의 가죽 이야기 등등이 그 사례들로 이런 이야기들은 나중에 중국 송나라 때 “태평광기”에 실렸고 상당수 항목은 “신라”라는 항목명으로 편집되기도 했는데, “태평광기”가 고려, 조선에도 들어와 비교적 널리 유통 되었으므로 고려, 조선의 몇몇 사람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특히 거인 이야기는 앞서 “장인국” 이야기와 합쳐져서 바다 건너 먼 곳의 이야기로 특히 자주 돌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조선시대 문헌인 “어우야담”에도 바다 건너 먼 곳에 있는 커다란 거인 이야기가 나오고, 그 뒤의 “지봉유설”에는 직접 거인이 등장하지 않지만 표류해서 어떤 섬에 갔는데 커다란 신발이 있는 것을 보고 무서워서 도망쳤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특이한 사례로는 그리스의 “오디세이”에 나오는 퀴클롭스 이야기와 비슷한 것도 꼽을 만한데 “용주유고”의 “통천해척표풍설”에는 어부들이 표류해서 거인 섬에 갔는데 남녀 거인들이 너무 사나워서 거인의 외양간에 숨어 있다가, 말과 소를 방목할 때에 말 떼, 소 떼에 섞여서 탈출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19세기가 되면 정말 직접, 간접적으로 “오디세이”가 전해진 것인지, 거인의 눈을 찌르고 도망치는 무척 비슷한 이야기가 생겨 나는데, 이런 것이 “해동야서”, “청구야담”에 실려 있기도 합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흉한 징조로 거인의 시체가 물에 떠내려 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넓게 보면 역시 알 수 없는 곳에서 바닷물을 따라 거인이 떠내려 온 것이므로, 바다 건너의 거인 이야기와 통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바다 건너 먼 곳의 거인 이야기를 제외한 거인 이야기는 대체로 두 종류 정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첫번째로, 보통 사람 크기의 서 너 배, 네 다섯 배 정도 되는 무섭고 잘 싸우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형태인데 이것도 바다 건너의 거인 이야기 못지 않게 많은 편으로 이것은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괴물 이야기 보다는 덩치 크고 무서운 악당, 무서운 장수에 관한 이야기가 옛날 이야기 답게 적당히 과장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두번째로, 손으로 산을 만들고 발로 강을 만드는 크기의 어마어마하게 큰 거인이 등장하는 신화를 꼽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과거 기록은 상대적으로 드문 편이이며, 현대에 수집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전설에서는 사례가 더 자주 보인다는 것입니다.
장길손이 산을 만들었다든가, “창세가”에서 먼 옛날 거인이 손으로 해와 달을 떼어 냈다든가 하는 이야기 등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중국 고전에서는 이렇게 산과 바다 만큼 큰 거인 이야기가 드물지 않은데 비해, 비해 한국기록으로 시대가 오래된 것은 많지 않아서 18세기 이전의 기록에서 이렇게 산과 바다 만큼 큰 거인 설화는 장한철 “표해록”에 나오는 선마선파(詵麻仙婆) 이야기 정도가 전해지는데 선마선파 이야기는 제주도에서 현재 “설문대할망” 이야기로 잘 알려진져 있습니다.정리해 보면, 거인 이야기의 유형 중에는 바다를 표류하고 탐험하다가 신비한 섬에서 무서운 거인을 만나는 형태가 많고, 나아가 이런 부류가 한국 옛 괴물 이야기의 대표적인 한 유형이라고 할 만한데 한국 옛날 이야기에서는 해외의 먼 바다를 탐험하는 것은 안 어울린다고 단정해서인지 결코 먼 바다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하는 옛 이야기는 드물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라비안 나이트나 대항해시대 유럽 선원들의 모험과 비슷한 신라 선원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바다 모험 이야기는 자연스러울 정도리고 고려, 조선 시대의 바다 탐험 이야기도 뿌리는 뚜렷하다는 것입니다.
■1889년 일본 기록영화라고 포장된 2007년 영화 대일본인 속 4미터 거인의 기록
1889년 일본의 기록 영화라는 영상속에 신장이 4m인 거인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영화 대일본인 속 연출된 장면으로 영화 속 거인은 비대한 몸집에 약간 팔이 짧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상은 기록영화라는 포장을 하고 실제 존재했던 거인이라고 소문이 돌았지만 실제 거인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4미터의 거인은 거리에서 깃발을 흔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걷고 있는데, 앞에 말을 타고 가는 사람과 비교되는데 거인의 체격을 보면 앞에 앉아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과 체격을 비교해보면 그 거대함을 알 수 있습니다.더군다나 뒤에 거인은 다소 구부정한 느낌이 듭니다.이 영상이 실제라면 쇼킹하겠지만 이 영상은 영화의 한 장면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대 거인에 대하여
19세기초만 해도 사람들은 땅 속을 파헤쳐 옛 유물을 찾는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19세기 중엽에 이르러서야 고고학자들이 옛 문헌에 비추어 심증이 가는 지역의 땅 속을 파보기 시작했으며 그렇게 오랜 옛날부터 세계 여러 지역에서는 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거인 네필림과 거인 장수 골리앗 등을 연상시키는 고대 거인들의 유골로 추정되는 뼈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거인들의 유골이 발견될 때 마다 인류학자들이나 과학계, 그리고 종교계와 정부 관계 당국은 대체로 진지한 탐사와 적극적인 연구를 하여 결과를 공표하기보다는 사실 자체를 은폐하거나 가짜 모조품이라고 외면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거인유골이 발견된 독일의 브라이텐비너 동굴(Breitenwinner Cave)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 소재의 오라클 연구소에서 30년 이상 성경적 인류학을 연구해 온 신학자 페트릭 쿡크는1563년 베르톨드 뷔흐너가 25명의 탐사대를 이끌고 독일 바바리아 지역 동굴 탐사 후 쓴 책을 발간했습니다. 베르톨드 뷔흐너의 체험기에 따르면 브라이텐비너 동굴 안에는 인골이 너무 빽빽하게 차있어서 내부 탐사를 위해 뼈들을 다른 장소에 옮겨 놓아야 통로를 확보할 수 있었다며 대부분 거대한 인류들의 유골이었다고 기록했습니다. 페트릭 쿡크는 거의 450년이 지난 지금 이토록 값진 인류사의 보물들의 존재 흔적이 발견된 것을 불행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16세기 의도적으로 놀라운 거인 인류의 자취를 감추고 외면하고 또한 지식인들에 의해 파괴되고 이미 오래전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동굴에 대해 안타까운 심경을 신문에 기고했는데 그런데 이후 놀라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2007년 12월 초 미지의 한 미국 청년으로부터 페트릭에게 편지와 함께 비디오 클립이 도착한 것입니다. 발신자는 데니, 그는 최근 독일 주둔 미 육군에서 제대한 종군 사진기자인데 페트릭의 브라이텐비너 동굴 기사를 읽었다고 했으며 11월 5일 자신이 소속해 있는 다국적 트레이닝 센터의 동료 2명과 1조가 되어 야외 신속 적응 훈련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나무숲으로 둘러싸인 야산 언덕에 위치한 훈련 체크포인트 35 구역 부근에서 우연히 동굴을 발견했으며 팀 3명이 호기심에 동굴 안에 들어갔다가 그곳에서 거인 유골들을 포함해 수천여구가 넘는 해골들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비디오 촬영 클립을 보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대니는 브라이텐비너 동굴 안에는 현 인류보다 엄청 큰 인류의 유골들이 많았는데 수천이 넘는 많은 유골들이 왜 동굴 안에 방치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아마도 16세기 베르톨드 뷔흐너가 발견한 이래 오랜 세월 동안 동굴이 많이 훼손되고 유골들이 도굴된 것처럼 보이며 2차 대전 당시 이곳이 독일군의 연합군 포로수용소가 있던 곳이라서 시체들을 이 동굴에 처리해 정상 유골 숫자가 늘어난 것이 아닌가 추정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체크포인트 35 구역은 현재 나토군의 실탄 사격 훈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며 동굴에 대한 보다 철저한 연구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현재 브라이텐비너 동굴은 여러 인류학자들과 대학교 답사팀들이 공식 탐사를 하고 있는데 지난 수백 년간 버려진 이 동굴 연구 결과가 이번에는 과연 인류학상 어떤 변화와 파란을 몰고 올지 세계인들이 주목하고 있기도 합니다.
▩브라이텐비너 동굴 거인 유골 영상
□거인유골이 발견된 터키
1976년 터키 남동부 쿠르드지역에서는 신장 2.7m~3m의 거인 유골이 발견됐습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고고학자들이 고대유적 발굴 중 우연히 발견했는데 발견지가 성경에서 요르단 서쪽 가나안의 유적이 있는 곳으로 묘사된 지역이어서 많은 화제를 모았으며 사람들은 이를 근거로 이 유골이 네피림일 수도 있다고 믿기도 했습니다.
1950년 터키 유프라테스강 인근에서도 여러 거인 화석이 발견됐는데 그 중 한 화석의 대퇴골은 길이가 자그마치 1.2m에 달했는데 때문에 당시 학자들은 뼈 주인의 신장이 약 5m이며 발 크기는 56cm라고 추정했습니다. 또한 이곳 역시 길가메시가 통치한 수메르 문명 발원지와 유관해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켰습니다.많은 학자들은 시대를 벗어난 이러한 거인들의 기록이 거인들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며, 또한 거인들이 인류 문명의 시작과 함께 존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네피림, 시테카 그리고 길가메시 그리고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의 거인왕들
거인족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은 다름 아닌 성경으로 성경에 거인족 네피림(Nephilim)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는 것입니다.종교계 등에서는 이를 근거로 거인족이 실존했다고 추정하고 있는데 구약성경 창세기에 기술된 바에 따르면 네피림은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무렵 신과 인간의 조화로 탄생했는데 구체적으로 창세기 6장 4절에는 “세상에는 네피림이라는 거인족이 있었는데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들로서 옛날부터 이름난 장사들이었다”고 기술된 부분이 있으며 민수기, 신명기 등에도 네피림이 키가 장대 같은 사람들로 언급돼 있고 네피림이 사는 마을은 ‘성읍들을 둘러싼 성벽이 하늘에 닿을 듯이 어마어마하다’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성경의 이 같은 내용과 관련해 여러 신학자들은 네피림을 권세를 지닌 통치자 혹은 영웅으로 해석해 왔습니다.하지만 고대 유대인들은 네피림을 막강한 무력과 잔인한 심성을 지닌 악마적 존재로 받아들였습니다. 특히 스페인계 유대인 학자 아브라함 이븐 에즈라는 “그들을 본 사람들은 심장이 떨릴 지경이기 때문에 이렇게 불렸다”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신약과 구약이 만들어진 중간 시대에 쓰인 외경 ‘에녹서’ 에도 네피림은 ‘타락한 천사의 자손’으로 그려져 있습니다.하늘의 천사가 인간 세상의 여인을 탐해 네피림을 낳았지만 하늘의 징벌을 받아 노아의 방주 이후 한순간 사라졌다고 합니다. 거인족에 대한 가장 유명한 전설로는 미국 남부의 파이 우테족 인디언들 사이에 전해져 내려오는 거대하고 사나운 붉은 머리 거인족에 대한 것으로 ‘시테카’란 이름으로 불리 는 이 거인족의 신장은 자그마치 3~7m에 달했으며 인디언을 잡아먹던 식인종이었다고 합니다. 이에 인디언들은 오랜 전쟁을 통해 겨우 이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이처럼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기록에서 거인족은 대체로 신적인 능력을 가진 비범한 존재이지만 그 천성이 사납고 포악해 인류와 거세게 대립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만약 네피림과 시테카가 실재했다면 당시 인류는 거인족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을 것으로 짐작되기도 합니다.이밖에 전설이나 역사서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거 인으로 지목된 이들도 있는데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전설적 영웅 길가메시가 대표적 사례입니다.길가메시는 기원전 4천년경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에서 발원한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 수메르의 통치자로서 수많은 서사시에 등장하는데 3분의 2는 신(神), 3분의 1은 사람이었으며 일반 사람보다 훨씬 크고 장대한 거인으로 표현됩니다.특히 길가메시와 관련해서는 오늘날 전설 속 인물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한 인물이라는 주장이 속속 제기되고 있기도 한데 한 수메르 역사서에는 그가 기원전 2천600년경부터 127년간이나 재위했다고 씌어 있지만 그 외의 세부적 고고학 자료가 발견되지 않은 상태라 그 모습은 물론 실존 여부도 확신키 어렵습니다.길가메시 서사시는 1851년 니네베 아슈르바니팔 궁전 지하서고에서 길가메시 서사시라는 것이 발견되는데 당시 길가메시 서사시에 따르면, 길가메시는 키가 4미터나 되었다고 하며 사자를 한 손으로 휘어잡고 다닐 정도였으며 길가메시 이후 거인왕들이 수메르 문명을 통치했다는 기록이 남겨져있기도 한다고 합니다. 수메르 문명을 연구하는 고고학자 제카리아 시친은 수메르인들의 설형문자 기록에도 거구의 통치자가 등장한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위 사진의 석판에 새겨진 사람 크기가 다른 것도 거인이 존재했던 것이라고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는데 사람의 크기를 나눈 것은 당시의 권위적인 상징을 위하여 왕 또는 귀족 등의 사람들을 더 크게 그렸을 뿐이라고 반론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의 왕들 중 거대한 신장에 대한 기록이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데 신라왕들 중에 탈해왕의 키는 9척, 아달라왕은 7척, 실성왕은 7척 5촌, 법흥왕은 7척,지증왕의 왕후였던 연제부인은 7척 5촌, 진평왕은 무려 11척,진덕여왕은 7척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현재의 1척인 30cm가 아닌,신라시대의 1척은 지금의 1척과는 길이가 다르게 계산되어 사용됐는데 신라시대의 길이단위는초기부터 선덕여왕 때까지 중국의 한척(23cm)이 사용되었고 진덕여왕 시기에는 당소척(24.5cm)이 사용됐으며 통일신라 시대 이후로는 당대척(29.7cm)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시대별로 각기 다른 1척으로 계산하여야만 합니다.이 밖에 고구려의 길이 단위인 고구려척도 사용되기는 했는데 1척이 무려 35cm라 키를 측정할때 사용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진덕여왕때 1척의 길이가 변화된 이유는 당시 김춘추가 당나라와 동맹관계를 맺을 때 군사적 목적만 달성한 것이 아니라 당나라의 율령과 당나라식 관복을 도입했고 관복의 길이를 잴때 당소척이 사용됐기 때문이었습니다.일단 신라시대 상대에 사용된 한척은 1척이 23cm인데 삼국시대 당시 출토된 자 길이가 23cm인 것을 보면 우리나라는 전한척을 사용한듯 합니다.1척이 23cm이므로 신라 왕들의 키를 계산해보면 탈해왕은 23x9=207cm이며 아달라왕은 161cm, 실성왕은 172.5cm, 법흥왕은 161cm 입니다.이들중에 아달라왕과 법흥왕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작은 키이지만 당시 신라시대 남자들의 평균키가 대략 161~3cm라고 봤을 때 평균키 정도는 되었으며 유명한 지증왕의 키는 기록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왕후가 된 연제부인의 키가 7척 5촌 (173cm)이였던 것을 보면 지증왕 역시 기골이 장대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진평왕은 신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큰 키를 가진 왕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진평왕의 키는 무려 11척으로 2미터 53cm으로 그야말로 거인이었고 허리둘레도 무려 120cm정도였다고 합니다.진평왕은 천주사에 갔을 때 섬돌을 밟자 받치는 돌 3개가 그 자리에서 부서질 정도였으며 그의 옥대는 10뼘, 무려 150cm에 달했고 옥대에 구멍만 무려 62개나 될 정도로 컸다고 합니다.진평왕의 옥대를 천사 옥대(하늘이 준 옥대)라고 하여 신라 3대 보물 중 하나인데 아쉽게도 지금은 전해지지 않습니다.참고로 신라 3대 보물은 진평왕의 천사옥대와 황룡사의 금불상인 장륙존상과 9층 목탑이 있는데 황룡사의 두 보물은 고려시대 몽골의 침략때 모두 소실되었습니다.진평왕은 생년미상이지만 무려 54년이나 되는 기간을 왕으로 있었는데 10대 초반에 임금이 되었다고쳐도 최소 70세 가까이 또는 그 이상으로 장수하였을 것입니다.요즘 기네스북에 올라오는 거인들은 대체로 신장과 몸무게 때문에 여러 가지 잔병에 시달리고 특히 무릎과 관절에 큰 압박을 받아 심장에 무리를 주게 되서 심장병으로 50세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략 70세까지 살았다는 것이 요즘 거인들의 추세와는 맞지 않는다 할 수 있습니다.진덕여왕 시기에는 김춘추가 당나라에서 당나라식 관복 을 도입하면서 기존에 쓰던 한척의 길이가 변화되던 시기로 한척 23cm가 아닌 당소척 24.5cm으로 계산하면 진덕여왕의 키는 지금의 키로 화사하면24.5cmx7=171.5cm입니다.진덕여왕의 키는 지금 기준으로 봐도 꽤 큰 여자 키이며 신라시대 여성의 평균키가 대략 148~152cm정도였던 사실과 비교해 보면 정말 큰 키였던 셈입니다.또한 기록에는 진덕여왕이 용모가 아름답고 팔이 길다고 묘사된 것으로 보면 지금의 기준으로 봤을 때 모델급 키를 가진 미인이었다고 생각듭니다.신라왕들과 함께 백제 무령왕이 8척, 흑치 상지가 7척으로 무령왕 시기에 백제는 신라와 동일하게 한척(23cm)을 사용했으므로 센치로 환산하면 무령왕의 키는 184cm가 됩니다.흑치상지의 경우 삼국유사와 신당서에서 모두 7척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봤을 때 같은 길이 단위를 쓴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 당시에는 당소척(24.5cm)이 사용되었으므로 흑치상지의 키는 171.5cm가 됩니다.고구려왕의 신장에 대한 기록은 고국천왕이 9척, 안원왕이 7척 5촌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에 고구려는 고구려척(35cm)이 있기는 했지만 백제, 신라와 마찬가지로 한척도 사용했습니다.고구려척으로 계산하면 고국천왕의 키가 315cm, 안원왕의 키가 262.5cm가 되는데 이는 당연히 말이 안되므로 한척으로 계산한다면 고국천왕의 키는 207cm, 안원왕은 172.5cm로 볼 수 있는데 고국천왕의 키 역시 지금 기준으로 봐도 엄청 거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농구선수 서장훈이 207cm 정도이니 당시 사람들에게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의 몇명 왕들은 거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결국 거인들은 당시 측정하는 방식에 따라 2미터의 신장이 3미터로 기록될수는 있겠지만 지금에서 보더라도 거인은 분명할 것 같습니다.
▩현대 속 거인들의 모습들
전설 속 거인들이 아닌,현대에도 거인족에 버금가는 거인들이 실존했었습니다.첨세채는 청나라 시기인 1841년에 태어났으며 당시 키가 3m나 되었다고 합니다.현 정부에 남아 있는 기록에 의하면 첨세채의 아버지 첨진중은 태어난지 한달도 안되어 6살짜리 아이만 했고 체중이 30근(약 18kg)에 달했다고 합니다. 첨진중은 성인이 되자 키가 8척(약 2.5m)이 돼 거인으로 불렸고 그의 아들 첨세중은 아버지의 키를 물려받았으며 팔힘이 대단해 허난성 군대에서 근무한 기록이 있습니다.넷째 아들이 바로 첨세채로 그의 신장은 한 장(약 3m)를 넘어 첨씨 일가 중 가장 컸다고 전해졌습니다.
또한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약 200㎞ 떨어진 지토미르 지역에 살고 있는 세계 최장신 레오니드 스타드니크,성인 어른의 손과 거인의 손을 비교해 보면 차이가 느껴지는데 레오니드 스타드니크의 키는 2m 58cm 라고 합니다.
모로코 출신의 브라힘 타키울라는 신장이 무려 2m 46cm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918년 미국 알리노이 주 알톤에서 태어난 로버트 퍼싱 와들로우는 키가 2m 72cm 나 되었다고 합니다.
stephen quayle 박사가 발견한 아프리카의 거인들 무려 신장이 2m71cm이었다고 합니다.
바이노 밀리린네의 신장은 2m 51cm
바이노 밀리린네는 2m51cm 의 장신으로 군복무를 하였다고 합니다. 현재까지 세계 최장신 군인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나이를 먹을 수록 키가 계속 자랐다고 합니다. 죽기 전의 키가 가장 컸다고 할수 있습니다.
2m 83cm의 키를 가진 테드 에번스
술탄 코센은 터키 출신의 전직 갈라타사레이 소속 농구선수였으며 신장이 무려 2m 51cm였습니다.천장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키가 킵니다.
▤아프카니스탄 칸다하르 거인과 수색대
아프카니스탄의 칸다하르는 해발 1000m의 고원지대로 2002년 또는 2005년 쯤에 미군 수색대가 전멸한 사건이 발생합니다.사건의 발단은 이곳 칸다하르 지역의 주민들이 신으로 섬기는 대상에게 인신 제물을 바치고 있어서 문제가 되어 미군 수색대가 조사를 나가게 되었는데 매우 험준한 지역이라 이동이 쉽지가 않아 헬기로 지역까지 수색대를 수송한뒤 문제의 칸다하르 지역에 도착했습니다. 미군 수색대는 이 지역 주민들이 인신 제사 즉, 사람을 잡아서 먹이로 주고 있다는 곳으로 도보로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수색을 나간 미군들의 소식이 끊기고 모두 실종처리가 된 것으로 이에 미군은 새로 수색대를 보내 실종된 미군들을 찾도록 명령합니다. 실종된 미군 병사들을 찾기위해 2차로 수색작선에 나선 미군들은 험준한 산악지형들을 따라 수색을 하였으나 실종된 미군들의 흔적을 찾지 못하고 하산하기로 결정, 염소가 지나간 길을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하산 하던 중에 미군 병사중 한명이 동굴을 발견하였고, 그 근처에서 미군 병사의 파괴된 통신 장비와 버려진 소총등이 확인되어 당시 지휘관은 탈레반과 같은 테러범들이 미군을 사살하고 동굴에 은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동굴을 수색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광경을 목겨하고 맙니다.갑자기 동굴에서 키가 5m ~6m나 되는 거대한 거인이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이 거인은 동굴에서 나와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거인의 복장이 고대 로마시대의 복장이었고, 긴 창과 방패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손가락과 발가락의 수는 각각 6개씩이고, 머리카락 색깔이 붉은색이었다고 합니다. 머리와 수염은 매우 길게 자라있었는데, 미군 병사중 한명이 갑자기 나타난 거인에 당황하여 소총을 발사하자, 화가난 거인이 엄청 빠른 속도로 긴창으로 소총사격을 가한 미군병사를 관통한 후 들어 올렸다고 합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미군 수색대는 일제히 거인을 향해 사격을 가하였고 그 자리에서 거인은 총에 맞아 사망하였는데, 턱아래 부분이 모두 조각이 나버렸다고 합니다. 미군 수색대는 사망한 미군 병사 유해를 수습하고, 본부에 헬기를 지원 요청하여 거인 사체와 함께 내려옵니다. 거인을 가지고 내려온 미군 수색대는 지시에 따라 거인 사체를 미국 본토로 수송하기 위해 수송기를 요청하고 수송기 조종사에게 거인에 대한 사항이 비밀이므로 사진을 찍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당시 수송기 조종사는 후에 겪었던 사실을 기억을 되살려 그림으로 그렸는데, 거인의 발에는 천으로 감겨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신발을 대신해서 사용한것이라 여겨지는데 발의 크기는 자신의 발사이즈 보다 2배 가량 더 컸다고 합니다.
위 사진처럼 일반 성인 발사이즈의 2배 정도 된다고 보면 되는데 그때 만났던 수색대원들이 당시 교전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고, 거인에 대한 정체는 자신들도 모른다고 했다고 합니다. 수송기에 실은 거인의 무게는 1100 파운드 정도 나갔다고 한느데 대략 500kg 정도이며 수송기 조종사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미군 기지에 인계후 거인이 어디로 이송되었는지는 모른다고 했습니다.특히 거인이 입고 있던 복장과 방패와 긴창이 고대 로마시대 병사들이 입던 복장과 장비였다고 합니다.그렇다면 거인은 고대 로마시대 병사였고, 어떤 연유에서인지 로마가 멸망한 뒤에도 아프카니스탄의 칸다하르 산악지대에서 동굴에 은닉해 지내온것은 아닌지 추측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로마가 멸망한지 1600년이나 지났으니 거인의 나이는 어림잡아도 1600살 이상이 된다는 것일까요?여기에다 거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이 지역 주민들이 산신으로 섬기고 인신공양을 했다는 사실이 진실인지,거짓인지는 지금까지도 미스테리한데 미국 정부가 이 거인 시신을 숨겼다는 음모론도 가세하여 더욱 거인의 정체는 미궁 속에 빠지고 맙니다.사실 거인의 존재 자체가 미스터리한 것은 맞지만 현실 속에 존재하는 거인에 가까운 신장을 가진 인간들을 들여다보면 어느 정도 거인의 존재에 대한 해답이 나올지도 모릅니다.키가 크면 근력은 제곱이 되고 무게는 세제곱으로 배로 늘어납니다.근력은 근육의 표면적에 비례하나 몸무게는 몸의 부피에 비레합니다.즉, 거인이 실존한다고 하더라도 현대 우리들의 모습과는 다를 것입니다.이족 보행을 ㅎ했던 공룡 화석을 보면 다리는 어마어마하게 튼튼한데비해 팔은 짧고 부실하기 때문입니다.3미터 4미터의 거인이 존재했다면 어쩌면 과거 이족 보행의 공룡들과 비슷했을 것입니다.성경을 100% 믿어서도 안되겠지만 무조건 가짜라고 말해서도 안되는 것이 성경 속에 등장하는 거인 네피림이나 골리앗이 받드시 거인이었다고 단정지을 수도 없으며 거인이라 말한 것이 그만큼 강력한 힘이나 권위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오늘 소개한 거인들의 유골이나 미라,목격담 등이 증거로 나오지만 그것이 거인 문명의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은 그 자체로 확중성을 내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그렇다해도 과학자들이 인류사 뿐 아니라 지구 생성의 과정과 생명체의 모든 것을 알 수 도 없기 때문에 거인의 존재는 여전히 우리 인간들에게는 미지의 영역이자 미스터리한 세계일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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