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통일의 기틀을 다진 소양왕과 미월 그리고 무패의 장군 백기 스토리/
중드 역사 드라마 대진제국3
대진 제국은 중국의 역사 소설가 쑨하오후이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시리즈로 진나라의 궐기부터 천하통일까지 180년의 역사를 담았는데 대진제국 3은 진 소양왕의 재위기간 및 미월전으로 유명한 미월 등이 부수적인 스토리가 중국 역사에 관심있다면 나름 볼만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4년에 걸쳐 제작되었다는 대진제국3는 중국 공영방송 CCTV-1의 황금 시간대에 편성되어 CCTV 시청률 효자 드라마로 주연배우들로는 장보, 영정, 형가동 등이 출연했으며 중국 영상물 리뷰 사이트 더우반(豆瓣)에서 평점 8.7을 받았고, 최종회의 인터넷 조회 수는 5억 3천만 회를 기록하며 전국 1위를 차지하기도 합니다.고대 냉병기 시대의 격렬한 전쟁을 표현하기 위해 특별히 초빙된 전문가들이 병기를 만들었다고 하며 드라마에 영화 촬영 기법을 사용해 전투 신을 부각시켰는데 특히, 명장 백기가 이끈 이궐, 영도, 화양, 장평의 4대 전투 장면에서는 역사적 무게감과 전쟁의 장렬함을 동시에 재현해 업계 안팎에서 냉병기 시대 전쟁의 교과서라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춘추전국시대가 한자 성어의 부화기인 만큼 제작진은 계명구도(鷄鳴狗盜), 모수자천(毛遂自薦),완벽귀조(完璧歸趙)등 유명 고사들을 드라마 속에서 잇따라 등장시켜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사실 대진제국 시리즈 중 개인적으로 대진제국 3편이 가장 임팩트가 약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는데 중국 최초의 천하통일은 진시황이 이루지만 그 기틀을 다진 것은 사실 소양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 소양왕은 혜문왕의 팔자인 선태후에게서 서자로 태어났습니다. 기원전 307년 혜문왕의 장자이자 왕위를 승계한 무왕이 4년여 만에 갑작스럽게 죽자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습니다. 힘겨루기를 좋아했던 무왕은 역사(力士)인 맹열과 청동으로 된 큰 솥을 들다가 정강이뼈가 부러져 왕위에 오른 지 4년 만에 22살의 젊은 나이로 죽게 되는데 당시 무왕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결국 연나라에 인질로 가 있던 이복동생 영직이 왕위를 잇습니다. 영직은 당시 연나라에 있었지만, 조나라의 무령왕의 도움으로, 대군의 재상 조고에 의해 연나라와 조나라를 거쳐서 진나라에 귀국, 진나라의 신하들이 반대하는 가운데, 위염 등 신하들의 지원으로 이복형 무왕의 뒤를 이어 왕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무왕에서 소양왕으로의 왕위 계승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는데 소양왕은 재위 초기에 왕실 내부의 반발을 억누르고 왕권을 확립하는 데 힘을 기울이게 됩니다. 기원전 305년에는 서장(庶長) 장(壯)의 모반에 연루된 대신과 제후들을 모두 처형했는데 이때 혜문왕의 왕비인 혜문후도 목숨을 잃었으며 무왕의 왕비인 도무왕후는 위나라로 돌아가게 됩니다. 사실 위와 같은 스토리를 대진 제국 3편에서도 잘 나와있지만 또 다른 중국 역사 드라마 미월 전을 참고하셔도 좋을 것입니다.
소양왕은 드센 어머니 미월의 정치참여에 어릴 적에는 크게 힘을 쓰지 못하지만 이후 자신만의 정치적 세력을 규합하여 진나라가 천하통일의 과업을 이루는데 밑거름을 이루기도 합니다.소양왕은 어머니 미월뿐 아니라 무패의 명장 백기 등을 이용하여 기원전 256년에는 장군 규를 보내 한나라의 양성과 부서 지역을 빼앗았고, 조나라를 공격해 20여 개의 현을 점령합니다. 당시 주나라 왕실은 하남과 공지역에 분봉되어 세워진 서주국과 동주국이 서로 대립하고 있었는데, 주나라의 제37대 난왕은 서주국의 무공에 의존해 왕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서주국의 무공은 한나라, 조나라 등과 연합해 이궐로 군사를 보내 진나라가 양성으로 가는 길을 막았지만 소양왕은 서주국을 공격,무공은 서주국의 36개 읍과 주민을 넘기며 항복하고 맙니다.서주국의 영토가 진나라로 병합된 이 해에 주나라의 마지막 왕인 난왕도 죽으면서 결국 주나라는 멸망했는데 소양왕은 이듬해에 주나라 왕권을 상징하는 보물인 큰 솥 구정을 진나라로 가져옵니다.바로 무왕이 힘자랑을 하고 들다 죽음에 이르게 된 구정을 그 아우 소양왕이 가져오면서 주나라를 멸망하고 왕권을 상징하는 구정을 차지한 소양왕은 기원전 253년 진나라 최초의 도성이었던 옹성에서 상제에게 제사를 올리고 다른 나라들을 복속시켜 군림하려 했으나 기원전 251년 가을에 사망하고 맙니다.소양왕 뒤를 이어 태자인 주가 효문 왕으로 즉위하여 천하통일의 대업은 진시황에게로 넘어가 버리고 맙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