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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감금과 폭행 트라우마의 연인 곁을 지킨 양조위의 18년간의 순애보_1990년 홍콩 삼합회 유가령 납치사건

by 마음heart 2024.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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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감금과 폭행 트라우마의 연인 곁을 지킨 양조위의 18년간의 순애보

1990년 홍콩 삼합회 유가령 납치사건



홍콩영화는 1980년대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가 전 세계를 누비기 이전 아시아 전역에서 가장 잘 팔리는 문화이기도 했습니다.하지만 홍콩이 1997년 7월 1일 중국으로 반환되는 것을 계기로 더이상 홍콩영화의 영광은 과거의 일이 되어 버립니다.단순히 생각하면 공산국가인 중국으로 홍콩이 반화되면서 표현의 자유를 잃은 홍콩의 문화는 그 생기를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여기에 더해 홍콩과 중화권에 만연한 조폭,삼합회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홍콩 영화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삼합회는 이소룡의 죽음이후를 다룬 사망유희(Game Of Death,1978)에서 인기 액션 배우 빌리(이소룡 분)가 범죄 조직 두목 닥터 랜드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그들이 고용한 살인 청부업자가 빌리를 암살하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맞서는 내용으로 이때부터 홍콩내에 범죄조직이었던 삼합회의 검은 영향력을 잘 드러내 보였으며 특히 중화권에서는 연예인 납치사건이 다른 범죄 사건에 비해 발생횟수가 잦다고 합니다.홍콩 탑스타 유덕화는 이런 범죄조직의 납치와 협박에서 오랫동안 자유롭지 못하기도 했었습니다.

영화 인질의 원작 영화 세이밍 미스터 우 중에서

홍콩 영화 배우 중 영화 출연료가 1억 위안(한화 약 120억원)을 넘어섰다는 사실이 언론에 공개된 후 유덕화 측 소속사는 더이상 수입에 대하여 함구하고 있으며 2006년 대만의 인기배우 소유붕은 매니저와 함께 푸젠성 푸저우 공항에서 수상한 남자들에 의해 가방을 빼앗기고 포위 당한채 자신들의 차에 탈 것을 요구 당했습니다.소유붕은 수상한 남자들과 대치하던 중 신고를 받고 달려온 공안에 의해 겨우 구출되기도 했으며 2004년 영화 무간도에 출연한 진관희는 홍콩의 한 상점가에서 2명의 청년들과 30분 동안 격투를 벌이다가 눈을 다치는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2006년에는 홍콩 여배우 채혜민이 드라마 제작 관계자를 만나러 대만의 한 가라오케를 찾아 가다가 8명의 괴한에게 납치를 당하고 맙니다.당시 납치범들은 채혜민을 성폭행하려고 했으나 두목이 이를 말려 모면했다고 합니다.하지만 채혜민 역시 강제로 알몸 사진을 찍히고 홍콩의 한 황색잡지에서 커버스토리에 실어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영화의 소재가 된 오약보 납치사건

황정민 주연 영화 인질은 유덕화 주연의 세이밍 미스터 우를 리메이크한 영화로 톱스타가 납치당하는 상황을 그린 영화들로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한 작품들인데 2004년 베이징 산리툰 지역의 술집에서 벌어진 중국의 인기배우 오약보 납치사건을 기반으로 당시 중화권에서는 크게 화제가 되었던 납치 사건입니다.

영화는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많은 변형을 가했지만 실제 오약보 납치사건의 전말의 경우 2004년 2월3일 새벽 2시경,중국의 유명배우 오약보는 영화 계약 후 제작자 및 친구들과 함께 번화가의 한 클럽에 들렀다가 나오는데 이때 낯선 남자들이 자신들이 경찰이라며 오약보에게 수갑을 채우고 차에 태워서 떠나 버렸습니다.이것을 보고있던 오약보의 친구가 바로 경찰에 신고했지만 이미 범인들은 자취를 감춘 후였습니다.베이징 공안국은 사건 접수 후 바로 전담반을 구성하고 수사에 착수했는데 목격자의 증언을 토대로 이미 일어났던 다른 납치 사건들과의 유사성을 발견하였으며 일면 '화즈"라고 불리는 왕리화 일당의 소행으로 판단하기에 이릅니다.왕리화는 27세에 강도죄로 징역 9년을 선고받고 출소 후에 매일 다른 곳으로 옮겨다니며 생활해서 일정한 주거지를 파악하기 어려웠고 그래서 이들 일당들의 주거지나 아지트 역시 특정하기가 어려웠습니다.오약보가 납치당한 그날 밤 12시경,유괴범들이 몸값을 요구하는 전화를 걸어왔고 오후 7시경,몸값 협상을 거쳐서 돈을 받으러 가던 왕리화의 차량이 발견되어 경찰들이 급습하여 검거합니다.왕리화의 차량에서는 권총과 수류탄 1개가 발견됩니다.검거 후 몇시간동안 진술을 거부하던 왕리화는 밤 10시경,자신의 여자친구와 애완견을 만나보고 싶다고 요구했고 경찰은 왕리화를 여친의 집으로 데려가 만나게 해줬으며 결국 심경의 변화를 보인 왕리화가 인질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주겠다며 경찰과 함께 오약보가 납치되어 있는 곳으로 갔고,베이징시 공안국 형사수사총대 부총대장의 현장 지휘하에 특경이 돌입하여 집안 모든 용의자를 검거합니다.오약보 납치사건은 비록 하루만에 해결된 사건이지만 납치당했던 오약보는 이후에도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이 사건에 대해서 일절 언급을 꺼려할 정도였습니다.하지만 가장 유명한 납치시간은 양조위의 연인으로도 유명했던 여배우 유가령 납치사건으로 이 사건은 1990년에 벌어지게 됩니다.

▣1990년 홍콩 삼합회 유가령 납치사건

유가령(劉嘉玲Liú Jiālíng,Carina Lau Kar-ling;167cm,1965년생)은 중국 쑤저우에서 태어났고 15세에 홍콩으로 이주했으며 홍콩 TV 방송국인 TVB의 연예인 훈련반 졸업(12기) 이후 1983년 TVB 드라마 북두쌍웅과 신조협려에서 단역으로 출연했고 1984년 TVB의 드라마 녹정기에서 주연으로 데뷔했습니다. 연기 활동 초기에는 귀엽고 편안하고 친숙한 이미지의 역을 맡아 로맨스물에서 활동했으며 그후 영화계로 진출하여 다양한 배역을 훌륭히 소화해내는 배우로 성장했습니다.홍콩영화 전성기의 대표적 여배우들(임청하,장만옥,왕조현)보다 유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홍콩영화 붐이 사그라든 지금 한국에서는 유가령을 한 명의 배우라기보다는 영조위의 아내로만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특히 한국의 양조위 일부 팬덤에서는 가령찌에~~라고 하면서 그녀를 단순히 '양조위 내조나 하는 사람' 으로만 취급하기도 하지만 홍콩영화 팬 사이에서는 배역의 폭이나 연기의 깊이가 상당한 배우로 통하며 유가령의 뛰어난 연기력은 아비정전,동사서독,자소 등에서 볼 수 있습니다. 주성치의 영화 007 북경특급 2에서는 코믹 연기 또한 굉장히 능숙하게 해내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또한 황가여장에서는 고려홍과 고난이도의 화려한 액션 연기를 선보이기도 하는 등 캐릭터 소화능력이 남편보다 더 뛰어나기도 합니다.적인걸 1~3로에서는 측천무후로 출연했는데, 한때는 평범한 여인이었으나 온갖 음모가 판치는 궁궐에서 살면서 차차 권력의 화신으로 변해서 딸처럼 가까이 하던 측근조차 이용하고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된 캐릭터를 잘 살렸다는 평을 얻기도 합니다.하지만 유가령은 남편인 양조위에 뒤지지 않을정도로 안정된 연기력을 선보였지만 막상 상복이 없는데 대표적인게 1991년 제10회 금상장 여우주연상으로 아비정전 후보에 올랐고 이미 작품상,감독상,남우주연상을 휩쓸어서 여우주연상까지 받으면 그야말로 올킬이었으나 '표저,니하오(북경 예스마담)'의 정유령이 수상했습니다. 때문에 유가령이 굉장히 실망한 장면이 카메라에 그대로 잡히기도 했는데 이전과 이후에도 수상기회를 놓친적이 많았는데, 함께 후보에 오른 장만옥과 엽동이 여우주연상을 받을 당시 그들의 활동시기까지 겹쳐 평가절하되기도 했습니다.

유가령은 양조위와 연애 초기인 만 25살때인 1990년 조폭들인 삼합회에 납치되는 수난을 겪었습니다. 자신들의 영화에 출연하라는 조폭의 요구를 거절했다가, 조폭 4명에게 납치당해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고 폭행,추행,윤간을 당했으며 강제로 나체 사진을 찍히기까지 했는데 앞서 언급한 홍콩의 유명 배우인 유덕화도 조폭의 영화 출연 강요를 거절했다가 머리에 총이 겨누어지고 살해 협박을 받은 뒤에 결국 출연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당시 홍콩영화계는 조폭의 입김이 강했습니다.하지만 당시 연인이었던 양조위는 촬영 중이던 영화 아비정전 촬영을 모두 캔슬하고 친구 및 지인들을 총동원하고 백방으로 손을 쓰는 등 결국 3시간만에 유가령을 납치한 조폭들을 직접 찾아가 유가령을 무사히 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심한 충격을 받은 유가령을 양조위는 오래동안 안아주고 차분하게 달래주었다고 합니다.하지만 엄청난 일을 겪은 유가령은 당시 약혼 사이였던 양조위와 결별하려 했으며 트라우마 때문에 술과 마약에 의존하는 등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지만 양가위는 유가령의 곁을 12년간 묵묵히 지켜주었습니다.당시 유가령 납치 사건은 연예계에만 쉬쉬하며 알려졌을 뿐,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그러데 사건이 발생하고 12년이나 흐른 2002년에, 돈에 눈이 먼 주간지 동주간(東周刊)이 납치 당시 강제로 찍힌 유가령 누드 사진을 적나라하게 보도하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이 일로 대중의 관심이 쏠리며 온갖 억측이 나돌자, 납치 사건을 겨우 극복하고 살아가던 유가령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또한 동주간의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행태로 인해 엄연히 범죄 피해자인 유가령의 인권이 유린되자, 동료 배우들이 길거리로 쏟아져나와 시위를 벌이는 등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같은 영화인이라는 의리 때문이기도 했지만, 홍콩의 유명한 연예인치고 황색언론에게 시달리지 않은 사람이 없어서 그동안 쌓인 분노가 폭발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이 일로 동주간은 약 1년간 정간되었고 동주간의 출간인은 5개월간 징역을 살았습니다. 양조위는 이 사건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녀에 대한 사랑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일갈하며 둘의 관계가 변함없음을 알렸습니다.

사랑의 결실을 맺은 양조위와 유가령

양조위의 유가령을 향한 헌신적인 사랑 앞에 결국 두 사람은 결국 2008년 4월, 결혼하면서 사랑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결혼식은 친분이 있던 부탄 국왕의 초대를 받아, 부탄에서 소수의 사람만 초대한 가운데 올렸으며 2018년 유가령은 인터뷰에서 "납치 사건의 범인들을 모두 용서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양조위가 얼마나 유가령에게 일편단심이었냐면 1990년대에, 국내 영화잡지 인터뷰에서 결혼에 대해 묻자 '결혼을 한다면 반드시 유가령과 할 것이다'라고 못박을 정도였습니다.2008년 결혼 이후로 불화설, 유가령 바람설, 고부 갈등설 등이 언론에서 계속 터져나왔지만 어디까지나 찌라시일 뿐이었으며 2014년엔 양조위가 유가령의 연극에 참석하면서 양조위의 가족들까지 대동해 이런 불화설을 일축시키기도 했습니다.두 사람 사이에서 아이가 없기 때문에 불임설, 대리모 임신설 심지어는 임신을 포기했다는 찌라시까지 도는 판국이지만 사실 이건 두 사람이 너무 나이가 많아서라고 보는 게 맞을 듯,결혼했을 때의 나이가 둘 다 40이 넘은 상태였기 때문입니다.(결혼 당시 양조위가 1962년생, 유가령이 1965년생.)또한 양조위가 내성적인 성격이라 사람들이 많은 곳을 못견뎌하는 편인데 이때 나오는 표정을 유가령이 따라하기도 했습니다.양조위가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의 출연을 망설일 때 설득한 이가 유가령으로 휴가 중이라 일에 대해 생각하기 싫어서 감독에게 연락을 안 하고 있었는데 유가령이 연락하라고 시켰다고 합니다.사실 영화 등에서는 납치당한 피해자들이 납치범에게 구출당하면 그것으로 해피엔딩이지만 현실세계에서는 납치당한 피해자들은 이후로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운 삶을 살기 때문에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언론이나 여론 등은 피해자들을 2차,3차로 가해하는 행태를 보여줘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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