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한 전설의 바둑 천재, 그리고 그들의 한판 – 영화 <승부> 리뷰

실존한 전설의 바둑 천재, 그리고 그들의 한판 – 영화 <승부> 리뷰

2023년 개봉한 영화 《승부》는 단순한 스포츠 드라마가 아닙니다. ‘바둑’이라는 정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두 천재의 운명을 건 대결과 인간적인 고뇌를 그린 심리극으로, 관객에게 놀라운 긴장감과 감동을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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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화 기반의 묵직한 드라마 – ‘이창호 vs 조훈현’

《승부》는 한국 바둑 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대결로 꼽히는 조훈현 9단과 이창호 9단의 사제지간 승부를 모티브로 삼았습니다. 특히 이 영화는 전설적 기사였던 조훈현의 천재성과 인간적 그림자, 그리고 그를 뛰어넘으려는 제자 이창호의 냉철함과 고뇌를 담백하게 풀어냅니다.

그간 바둑을 소재로 한 콘텐츠는 드물었지만, 《승부》는 인간 드라마와 심리전의 밀도를 무기로 관객의 몰입도를 끌어올립니다.

2. 연기와 연출의 치열한 수 싸움

이병헌은 조훈현 역을 맡아 또 한번 연기의 경지를 보여주며, 특유의 묵직한 감정선과 내면 연기로 캐릭터에 깊이를 부여합니다. 유아인 역시 이창호를 모티브로 한 인물을 연기하며, 감정을 절제한 연기를 통해 강력한 존재감을 발산합니다.

연출을 맡은 김형주 감독은 고요한 바둑판 위에서 숨막히는 전쟁을 재현해내며, 시네마토그래피와 편집으로 극의 긴장감을 탁월하게 구성합니다. 바둑을 모르는 이들도 극 속에 빠져들 수 있도록, 배경 설명과 경기의 흐름을 유려하게 풀어냈습니다.

3. 주제의식 – 이기는 자와 지는 자의 인간성

《승부》는 단순히 누가 이기느냐를 넘어, ‘이긴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사제 관계라는 특수한 구도 속에서, 서로를 존경하고 경계하며, 때론 배신감마저 품는 인간적인 갈등은, 스포츠의 승패 너머 존재의 의미를 묻습니다.

‘최고의 자리를 지킨다는 것’, 그리고 ‘그 자리를 넘는다는 것’이 각각 어떤 고통을 동반하는지를 날카롭게 파헤칩니다.

4. 음악과 편집 – 정적 속의 전율

음악 감독 조영욱의 스코어는 과하지 않으면서도 묵직하게 감정을 이끌며, 바둑판 위의 ‘숨소리’마저 느껴지게 만듭니다. 편집 또한 경기의 흐름과 감정선이 맞물려 클라이맥스를 향해 점층적으로 고조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5. 아쉬움과 확장성

다만 영화가 실존 인물의 감정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극적인 재현이 과연 당사자의 감정을 완벽히 반영할 수 있는가에 대한 윤리적 고민은 여전히 남습니다. 실제 인물의 감정과 내면에 대한 해석이 관객에게 다소 일방적으로 전달될 여지가 있다는 점도 비평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결론 – 《승부》는 인생의 비유다

《승부》는 단순히 바둑 천재들의 경기 이상을 보여주는 ‘인생의 비유’입니다. 이 영화는 도전, 패배, 극복, 승리라는 감정을 관객 각자의 삶에 대입하게 만듭니다. 스포츠, 심리극, 인간극 모두를 좋아하는 관객에게 강력히 추천합니다.

두 천재가 ‘승부’를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결국 이 한 마디로 압축됩니다. “당신의 인생은 지금, 어떤 수를 두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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