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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知識을 낳는 뮤지엄

우리는 진정 행복한가?전태일이 꿈꾸던 세상

by 마음heart 2011.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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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꿈꾸는 세상 ,우리가 꿈꾸는 나라



 

 

1970년,11월 13일,매서워지는 날씨의 한복판에서 22살, 한 청년이 절규하고 있었다.

그 청년의 이름은 전태일이었다.노동법이 뭔지 인식조차 없던 시절 무용지물과도 같던 당시 대한민국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경찰에게 차단당하자 전태일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그순간 전태일은 번개보다 빠르고 신의 의지보다 굳건한 마음을 품고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뿌린채 외쳤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라이터의 불꽃은 곧바로 전태일의 온몸을 감쌌고 전태일은 살을 타는 고통속에 평화시장을 내달렸다.

그렇게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22살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있었다.

 

내 기억의 작은 단자속의 전태일은 영화 "아름다운 청년,전태일"에 제일 먼저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영화의 지루함만큼 내게 깊은 인상을 주지는 못한 기억도 있었다.다만 온몸에 불꽃을 안고도 외쳐대던

전태일의 삶속에서 떠나지 않던 "근로기준법"과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가슴 먹먹하게 다가온 기억이 어렴풋이 날

뿐이었다.

당시의 어린 나에게 전태일이 맞부딪힌 세상의 절망과 거대한 벽이 깊이 감정 이입되지 않은 까닭도 있었지만

척박한 한국 경제환경속에서 어쩔 수 없는 희생, 소위 말하는 "대를 위한 소가 희생해야 한다"는 관념이 깊이

박혀 있었던 까닭도 있었다.

하지만 세상을 알면서,격으면서 그런 속좁은 나의 생각은 전폭적으로 수정되어갔다.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다시 나의 시발점에 찾아든 인물은 청년 전태일이었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란 생각이 얼마나 말만 늘어 놓기 좋아하는 자들의 세뇌방식에 빠져살았던가?

세상길을 걷다보면 깃털보다 가벼운 죽음도,태산보다 더 무거운 이의 죽음도 보게 된다.

전태일의 삶 그리고 죽음은 장엄한 교향곡보다 더 크고 넓게 대한민국 밑바닥 구석 구석에 새로운 청사진을 그릴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때론 그가 살아 치열한 투쟁을 계속 했더라면하는 아쉬움과 젊은 날의 치기어린 죽음으로 생각한 적도 있었으나

전태일은 알고 있었다.자신이 직접 몸으로 겪은 대한민국이란 사회가 자신의 죽음 이외에는 더이상 관심을 가지지도

보지도 않으리란 사실을,

전태일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죽음으로 떠나가며 외친 소리는 이 사회 그 어떤 토론이나 담론보다 더 큰 울림을

안겨주었고 빽빽한 밀림속에서 자신을 직시한 사자후와도 같았다.

바보 노무현 이전에 바보 전태일이 있었다.

바보는 교육화되어 순종적이고 눈치 빠른 일반인과는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본다.

배우지 못한 평범한 청춘이었던 바보 전태일의 눈에 세상은 부조리하고 모순되었으며 약자에게는 한없이 잔인한

사회였다.

평범한 우리들은 그런 현실에 좌절하고 곧 순응하며 약삭빠른 이들은 기회의 열차를 타기위해 몸을 날린다.

그러나 바보 전태일은 잘 사육된 개가 아니라 바보라도 존엄한 인격을 갖춘 인간이었다.

그리고 눈치 없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라고 외칠줄 아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우리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당연하다 여기는 일들을 전혀 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상사의 잘못을 바로 이야기

못하고 비비꼬고  돌려 말하며 은유적으로 뒷담화를 까기도한다.

그리고 그것을 삶의 지혜라는 식으로 포장한다. 결코 그 앞에 대놓고 "당신은 틀렸어!라고 말하지 못한다.

세상을 지배한 먹물들과 이론가들의 방식이 이와 같다. 그들은 세상을 지배할지는 몰라도 세상을 바꾸지는 못한다.

전태일은 세상을 바꾸려 투쟁하지는 않았지만 결과론적으로 그가 꿈꾼 세상은 조금씩 세상을 변화시켜 나갔다.

전태일 자신도 입에 풀칠하기 힘든 형편에 어린 누이들의 고통에 드라마 대사마냥 "아프냐..나도 아프다.."

나뿐만이 아니라 남도 생각할 줄아는 측은지심의 발로가 그에게 세상을 바로보고 메세지를 던지게 했다.

 

 

 

 

 

 

 

 

 

 

어느 유명한 전직 아이돌 가수는 지탄받을 역사관으로 트위터에 할로윈 파티 사진을 게재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또래,혹은 그 이상이나 그이하의 나이또래에 얼마나 이 나라 역사를 공부하며

분개할 것인가?

끊임 없이 주입된 빨갱이는 나빠요와 일본은 적이라는 사상속에 이유 없는 분개와 분노를 할 줄 알아도

논리 정연하게 우리 역사의 참됨과 그름을 설명할 수도, 그런 관심도 없으리라.

 

21세기의 대한민국 사람들은 진정 잘먹고 잘살기 위해 태어낫을까?

그렇다면 진정으로 원했던 삶을 얼마나 살아가고 있을까?

전태일은 1970년대 낙후되고 아무런 의식도 없던 사회에 메세지를 던졌다.

그리고 신문이나 테레비로 그 소식을 짧막한 뉴스로 받아든 사람들의 반응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순종적이고 시키는데로만 일해야 할 밑바닥 계급의 의식있는 외침과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듯이 이 불편한

진실 앞에 가진 이들과 권력의 최상층에 위치한 이들은 짜증을 낸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열악한 환경속에서 하루 12시간이 넘는 닭장같은 삶속에서 살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이 사회는 행복하지도,즐겁지도 않은 우울한 나날들뿐이다.

물가는 서민을 압박하고 정치는 그 어떤 때보다 서민을 외면하는 날들,

전태일이 꿈꾸며 자신의 몸을 분신하던 순간, 현재를 사는 우리들은 너무나 큰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지금도 크게 작게 전태일과 같은 메아리를 외치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1970년대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불편한 진실에는 짜증을 부리기도하고 자신에게 직면한 현실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하고 살아간다.

바보 전태일,그리고 그 뒤를 따른 또 다른 바보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누리는 삶을 50년후에 혹은 백년후에나 맛볼수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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