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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한국 프로야구 역대 40홈런을 기록한 슬러거 외국인 용병들

by 마음heart 2023.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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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한국 프로야구 역대 40홈런을 기록한 슬러거 외국인 용병들



KBO 리그 한국 프로야구에서 외국인 용병은 이제 꼭 필요한 선수자원이라 할 수 있지만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 이후 1998년에애 처음으로 도입되었으며 외국인 선수로 처음 40 홈런을 날리며 홈런왕에 등극한 당시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의 타이론 우즈가 기록한 42개 홈런입니다.타이론 우즈의 42개 홈런은 만 5년만에 장종훈이 기록한 한시즌 최다 홈런 기록인 41개를 경신한 것으로 그해 타이론 우즈는 외국인 선수 최초로 MVP를 수상하기도 합니다.하지만 다음해인 1999년  한화 이글스의 지명을 받아 입단한 댄 로마이어가 타율 0.292에 45홈런 109타점이라는 초특급 성적을 거두며 타이론 우즈에 이어 40홈런을 기록하며 한국 프로야구에 외국인 용병 시대를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합니다.

댄 로마이어(한화,1999~2001)

대니얼 "댄" 로마이어(Daniel "Dan" Rohrmeier:183cm / 83kg)는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 출신으로 세인트토마스 대학을 졸업하고 1987년 시카고 화이트삭스 마이너리그 팀에서 현역 생활에 입문, 이후 텍사스 레인저스,캔자스시티 로열스 등을 전전하다가 1997년 시애틀 매리너스로 이적하면서 무려 데뷔 10년 만에야 비로소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무대를 밟았습니다. 메이저리그 성적은 타율 0.333, 2타점으로 보잘것없었으며 마이너리그에선 특이하게 투수로도 등판했던 기록이 몇 번 있는데 성적은 2.1이닝 무승 무패 무세 ERA 3.86을 기록했습니다.1999년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 참가하여 한화 이글스의 지명을 받아 입단한 댄 로마이어는 타율 0.292에 45홈런 109타점이라는 성적을 거두며 제이 데이비스와 함께 최고의 용병 듀오로서 한화의 우승에 크게 기여합니다.45개의 홈런은 종전 타이론 우즈가 기록했던 42홈런을 뛰어넘은 외국인 선수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으로, 2015년 나바로와 테임즈가 뛰어 넘기 전까지 16년 동안 이 기록을 넘어선 외국인 타자가 없었으며 109타점은 김태균이 136타점을 기록하는 2016년까지 17년 동안 한화 이글스 타자가 넘지 못한 기록이였습니다.1999년 댄 로마이어는 지명타자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습니다.댄 로마이어는 2000년에도 타율 0.296, 29홈런과 96타점으로 나름대로 제 몫을 해주었지만,한화 이글스는 댄 로마이어와의 재계약을 포기했는데 댄 로마이어와 같은 강타자를 포기한 이유는 동료 선수들에게 타격에 대하여 지적과 설교를 자주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이것 때문에 로마이어는 플레잉 코치라는 소리까지 들었는데 어떻게 보면 프로 의식이 강했다고 볼 수 있지만, 국내 코치들은 로마이어의 이런 행동을 월권 행위로 여겨 못마땅스레 여겼고, 이후 그는 계속 코치들과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한화가 로마이어를 포기한 것도 표면적인 이유는 투수진 보강 차원이었지만, 코치진과의 불화도 한몫 했다는 것입니다.하지만 실력만 놓고 보면 역대 최고의 용병 중 한명었으며 팀의 첫 우승의 주역이기도 했습니다.

마이너리그 털사 드릴러스  시절과 한화 이글스 시절의 댄 로마이어

댄 로마이어는 2001년 장타자를 원했던 LG 트윈스에서 영입하지만 2001시즌에도 코치진과의 불화 문제로 7월에 중도 퇴출당했습니다. 2001시즌 성적은 60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68, 11홈런 47타점으로 퇴출 당한 후 LG는 대체선수로 타자가 아닌 투수 더그 린튼을 영입하였습니다.댄 로마이어는 KBO 리그에서 3시즌 동안 총 315 경기에 출전하여 1165타수 337 안타-타율 0.289-2루타 68개-3루타 4개-85홈런-252 타점-192 득점-장타율 0.573-출루율 0.372를 기록했습니다.

댄 로마이어 한국 통산성적


제이 데이비스(1999~2002·2004~2007(한화)

일명 신남연(라면을 너무 좋아해서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라 불린 호타준족 제이 데이비스는 한화 용병 영입 역사상 최고의 선택으로 평가받습니다.비록 댄 로마이어처럼 한 시즌 40홈런을 치는 장타력의 소유자는 아니었지만 1999년 외국인 선수 첫 30-30 클럽이라는 기록을 세웠으며, 한화 팬에게 댄 로마이어와 함께 사상 첫 우승이라는 감격을 안겨줬습니다.제이 데이비스는 특히 1999년부터 2007년까지 7시즌을 뛰며 '장수 용병'으로 사랑 받았는데 홈런을 치고 3루를 돌 때마다 나온 거수경례 세리머니는 제이 데이비스의 시그니처이기도 합니다.제이 데이비스는 1989년 뉴욕 메츠에서 투수로 12라운드에 지명되어 선수 경력을 시작했으며 마이너리그에서 뛸 적에는 코너 외야수였으며 파워는 거의 없고 발만 조금 빠른편인 마이너 레벨에서도 평범한 선수였습니다. 한국 진출 직전인 97,98년도에는 텍사스-루이지애나 리그에서 뛰면서 대활약하는데 특히 98년도에는 OPS 1.175의 놀라운 활약을 했지만 당시 그 리그 자체가 타고투저에다가 대부분 24세 이하 어린 선수들이 뛰던 리그라서 데이비스의 성적은 잘 봐줘야 상위 싱글A 정도를 폭격한 수준이었습니다.제이 데이비스는 KBO 역대 최고의 외국인 타자 중 한 명인데도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경력은 전무한데 제이 데이비스의 커리어는 AAA 레벨에서는 스몰 샘플밖에 없고 대부분 AA, 독립리그, 멕시칸리그 코너 외야수를 보며 2할 중반대에 10홈런도 넘기기 힘들어 하던 평범한 마이너리거였습니다.물론 KBO 리그에선 리그 최강의 홈런과 도루 도둑이자 저격수 중견수이면서 리딩히터급의 타율과 30-30이 가능한 대괴수급으로 변모했으며 용병 신분으로 KBO 리그에서 잠재력이 터진 드문 케이스이기도 합니다.


제이 데이비스가 입단한 1999년에는 비록 2010년 이후와 비교하면 외국인 선수의 네임밸류가 크게 떨어졌지만, 펠릭스 호세,에드가 캐세레스,브레트 바워스, 조지 카날리 같은 메이저리그 출신도 있었고, 찰스 스미스같은 멕시칸 리그 홈런왕이자 마이너리그 올스타 출신도 있었습니다. 반면에 제이 데이비스의 마이너기록은 AA에서 한 해 OPS .800이 제일 좋은 기록(위에 나온 텍사스-루이지애나 리그는 독립리그임)으로 마이너 기록만 보면 당시 용병 중에서도 거의 최하 수준이었지만 데이비스의 KBO 리그 성적은 펠릭스 호세만이 비교할만 하고 다른 메이저 출신 선수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뛰어났습니다.1999시즌을 앞두고 제이 데이비스는 크게 눈에 띄는 선수가 아니었는데 1라운드 지명선수들은 메이저 리그 올스타 출신 펠릭스 호세를 필두로 대다수가 메이저 리그 경력이 있는 선수들이었고 2라운드급 선수들 또한 마이너 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검증된 선수들이었는데 제이 데이비스의 경쟁력은 드래프트 참가 선수들 중 비교적 젊은 나이였다는 것 정도였습니다.결국 제이 데이비스는 거의 최하위 순번이었던 한화 이글스에 지명되었는데 이 결정이 최고의 선택이 됩니다.제이 데이비스는 1999년 한화에 입단해 2003년을 제외한 2006년까지 7년동안 한화 한 팀에서 뛰었습니다. 한화는 1999~2002년까지 이영우,송지만과 함께 8개구단 최강의 외야 공격력을 과시했습니다. 비록 우즈, 테임즈의 전성기에 비할 정도로 압도적인 활약을 보여준 시즌은 없지만 꾸준히 제 몫을 해줌으로써 많은 사랑을 받은 용병 타자였는데 제이 데이비스는 용병 중 가장 장수한 타자이며 한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한 선수 중 한명이었습니다.7시즌동안 총 979안타 591타점으로 역대 외국용병 안타와 타점 1위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한국 리그 통산 타율 .313으로 3000타석 이상 출전한 선수 중 통산 타율 역대 9위에 올라있는 선수이기도 합니다.

제이 데이비스는 장타력있는 용병임에도 불구하고 중견수로 뛰었고 내구도와 수비력이 좋아서 더욱 가치가 높은 선수였으며 30-30 클럽을 달성한 호타준족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 박재홍,홍현우,에릭 테임즈와 더불어 3할-30홈런-30도루-100타점의 진기록을 기록한 몇 안되는 선수이기도 합니다.2002년에 계약을 끝내고 멕시코리그에서 1년을 보낸 뒤 2004년 다시 한화와 계약을 맺었는데 이 때부터 예전같은 말썽을 부리지 않고 성실한 선수로 재탄생하며 한화를 대표하는 선수가 되었지만 노쇠화로 인해 예전보다 성적은 살짝 저조해졌으며 2004년 이후론 두자릿수 도루는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매년 20개 이상의 홈런과 3할을 넘나드는 타율을 기록했던 선수였으며 2005년에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도 수상했습니다.야구공을 깎아치는 듯한 독특한 스윙궤적, 홈런을 친 이후에 하는 거수경례 세레모니가 데이비스를 대표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2006년 계약이 끝난 후 재계약을 하지 않았는데, 전년도에 비해 조금 떨어졌지만 여전히 준수한 성적이었음에도 명확한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채 방출되었는데 방출 원인으로는 많은 나이와 2006 한국시리즈에서 시리즈통산 1할을 친 부진과 약물검사를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흉흉한 소문도 있었습니다.제이 데이비스는 KBO를 떠난뒤 멕시칸리그에서 선수생활을 하다 2008년 초에 은퇴했다고 합니다.제이 데이비스가 선수로 뛰던 시절은 투고타저 시절이라 2010년대 중반 이후 타고투저 시절을 기준으로 하면 클래식 스탯이 그렇게까지 대단해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데 세이버 스탯으로 보면 가장 클래식 성적이 나쁜 해인 마지막 2006년조차 wRC+(조정득점생산력)는 147.3이고  WAR은 4.98입니다.게다가 스탯티즈가 부정확하게나마 수비 스탯을 반영하기 시작한건 2014년부터라서 KBO 최고수준이었던 데이비스의 수비력은 승리기여도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2016년 비교적 좋은 활약을 했다고 평가받는 윌린 로사리오의 wRC+가 131.0이고 WAR은 3.01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좋은 활약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이상 스탯티즈 기준) 제이 데이비스는 7시즌 통산 836경기 출장-3130타수-979안타-타율 0.313-2루타 175개-3루타-6개-167 홈런-591 타점-538득점-108도루-장타율 0.533-출루율-0.383을 기록합니다.

제이 데이비스 한국 통산성적


펠릭스 호세(1999·2001·2006~2007(롯데)

1999년에는 45홈런을 기록한 댄 로마이어,제이 데이비스 뿐 아니라 펠릭스 호세 역시 빼놓을 수 없는데 펠릭스 호세는 1999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여 검은 갈매기라 불렸습니다.사건사고가 많았지만, 롯데 팬들에게 대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았던 선수였는데 현재 한국 프로야구에는 메이저리그 올타임 레전드 선수인 추신수나 야생마 야시엘 푸이그 등 메이저리그 경력이 상당한 선수들도 한국 프로야구에 많이 입성하지만 1999년 당시 펠릭스 호세의 이름값은 당시 최고였다 할 수 있습니다.펠릭스 호세는 1984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 자유계약으로 입단해 1988년 데뷔했으며 1990년 오클랜드에서 풀타임 우익수로 데뷔했다가 윌리 맥기 트레이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이적해서 윌리 맥기의 자리를 그대로 차지하고 1991년부터 주전 우익수로 나섰으며 1991년 세인트루이스의 5번타자로 3할 타격에 많은 2루타를 쳐내며 올스타에 뽑히기도 합니다.1992년 시즌을 마치고 캔자스시티 로열스로 트레이드되어 우익수로 뛰었지만 점점 기록을 내지 못하며 1995년 시즌 이후로는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없었습니다. 펠릭스 호세는 메이저리그에서는 10홈런 가량과 15~20개의 도루정도는 기록했었으며, 커리어하이 3할 1푼정도도 쳐줄 정도로 인지도도 있었던 선수였었는데, 1995년 이후로 메이저 리그를 떠나 멕시칸 리그와 독립리그에서 활동했습니다.1999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한 펠릭스 호세는 KBO리그 통산 10,000번째 홈런의 주인공이 되기도하고 좌-우타석에서 홈런을 치며 최초로 좌-우타석에서 모두 홈런을 친 선수가 되기도 했으며 6월 20, 21일 한화전에선 두 경기 연속 만루홈런을 치는 등 진기록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펠릭스 호세는 1999 시즌 타율 .327, 151안타, 36홈런, 122타점으로 마무리하며 박정태-마해영과 함께 일명 박마호 트리오로 롯데 자이언츠의 플레이오프 진출 일등공신으로 뽑리는데 특히 1999년 플레이오프 5차전은 호세가 가장 만화같은 모습을 보여줬던 경기였는데 삼성이 1차전과 2차전 승리후, 4차전까지 이기며 롯데가 1승 3패로 1경기만 더 지면 끝나는 상황에서 맞이한 5차전에서 롯데가 5:3으로 밀리는 상태로 9회말을 맞게 되었고 당시 최고의 마무리였던 임창용을 맞아 롯데는 2루타와 볼넷으로 무사 1, 2루의 찬스를 만들었으나 4번타자 마해영이 삼진을 당하고 호세가 타석에 들어섰습니다.벤치에서는 호세를 고의사구는 아니지만 볼로 빼면서 안되면 볼넷으로 내보내고 다음타자를 상대하자는 사인을 내보내게 되는데 임창용의 공이 2볼까지의 상황이 가게 되고 다음 공도 볼이었다. 기다리면 걸어 나갈수 있는데도, 호세는 헛스윙을 하였고 다음 공에도 헛스윙을 하였습니다.마치 승부를 보자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에 승부욕 하면 뒤지지 않는 임창용은 스트라이크 존에 직구를 쏘아 던지지만 호세가 그대로 받아쳐 한국프로야구 사상 첫 플레이오프에서의 역전 끝내기 홈런을 날리며 6:5 승리를 이끌었습니다.벼랑끝 상황에서 롯데를 살린 이 홈런으로 결국 롯데는 6, 7차전까지 3연속으로 6:5로 이기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게 됩니다.

펠릭스 호세는 1999 시즌 후 롯데에서의 호성적을 바탕으로 메이저리그 재진입을 노리며 뉴욕 양키스에  입단하였지만그다지 많이 출장하지 못하며 2001년에 롯데로 복귀했습니다.2001년 복귀 후 더욱 뜨거워진 호세는 엄청난 불방망이를 선보이며 리그를 지배했는데 배영수와의 벤치클리어링으로 잔여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음에도, 타격 3위, 출루율 및 장타율 1위, 홈런 2위, 타점 3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이때 펠릭스 호세는 역대 단일 시즌 최다 기록인 볼넷 127개는 상대 투수들이 그를 얼마나 무서워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프로야구 원년 백인천의 출루율 0.502를 0.503으로 경신하여 역대 최고 출루율 기록을 보유하게 됩니다.펠릭스 호세는 이후 롯데와  몬트리올 엑스포스와의 마이너리그 이중계약으로 인해 영구제명 처분을 받았지만 롯데가 2006년 시즌을 앞두고 5년 만에 호세를 재영입하면서펠릭스 호세는 다시 롯데유니폼을 입고 한국프로야구에서 뛰게 됩니다.

펠릭스 호세는 2006 시즌 초반에 잠시 부진하지만 6월부터 대폭발하며 이대호와 홈런부문 1위를 놓고 경쟁하기도 합니다.2006 시즌 총 122경기 타율 0.277, 22홈런, 78타점으로 홈런 2위, 타점 4위, OPS 3위로 시즌을 마무리했습니다. 클래식 스탯이 좀 약해 보이지만 세이버상으로는 wRC+가 163으로 매우 훌륭한 성적이었으며 당시 펠릭스 호세는 65년생으로 당시 한국나이로 42세에 거둔 성적으로 2006년은 21세기 역사상 최악의 투고타저 시즌이라 리그에서 손에 꼽힐 만한 뛰어난 타격 능력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이 때문에 수비수로는 전혀 출장하지 않아 풀타임 지명타자로만 뛰었습니다.2006 시즌 후 일찌감치 재계약에 성공하면서 2007년 시즌도 롯데에서 뛰게 되었지만, 캠프 막바지에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하며 시즌을 늦게 시작했고, 여기에 노쇠화까지 겹치면서 5월 11일 웨이버 공시되고 말았습니다.펠릭스 호세는 롯데에 남기를 희망하며, 자신이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어필하려 했으나 부상과 노쇠가 겹치며 떨어진 배트스피드가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그렇게 한국을 떠나게 되었습니다.펠릭스 호세는 총 4시즌동안 394경기 출장-1330타수-411안타-타율 0.309-2루타 74개-3루타 5개-95 홈런-314 타점-247득점-장타율 0.586-출루율 0.437을 기록합니다.

펠릭스 호세 수상내역

2001 KBO 정규리그 출루율 1위
2001 KBO 정규리그 장타율 1위
2000 도미니칸 윈터리그 MVP
1999 KBO 골든글러브 외야수상

펠릭스 호세 한국 성적


호세 페르난데스(2002.SK)

호세 마요바넥 페르난데스(José Mayobanex Fernández Rojas,1974년생) 몬트리올 엑스포스,애너하임 에인절스,SK 와이번스,지바 롯데 마린스,세이부 라이온즈,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오릭스 버팔로스 소속의 도미니카 공화국 국적의 거포 야구선수로 몬트리올 엑스포스,애너하임 에인절스 로스터에 들기도 했지만 별 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다가 2002년 시즌을 앞두고 KBO 리그 SK 와이번스 계약, 이후 팀의 주전 3루수로 자리매김합니다. 당시 팀내에 확실한 거포와 핫코너가 공석이었기에 그야말로 안성맞춤급 영입이었습니다.2002년 SK에 합류한 페르난데스는 시즌 개막 후 내내 무안타에 그치다가 무려 9경기 만에 KBO 리그 데뷔 첫 안타를 쳐내는 등 시즌 초에만 해도 퇴출 후보 1순위였으나, 5월부터 타격감이 올라오기 시작하며 가까스로 퇴출 위기를 모면하였습니다. 7월에는 14경기에서 무려 9개의 홈런을 치는 등 시즌이 갈수록 괴물급 활약을 하였고, 9월 13일에는 무려 한 경기 8타점이라는 기록을 세웠으며, 어느덧 홈런 순위권에 오르며 이승엽,심정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인천 연고팀 선수 중 최초로 한 시즌 40홈런을 넘겼으며 호세 페르난데스의 2002 시즌 후 성적은 타율 0.281, 45홈런 107타점을 거둡니다.

2002년 SK에서 뛰었던 호세 페르난데스는 타율 0.281이라는 타율을 유지하며 45홈런을 쏘아올렸고(이 기록은 2017년 9월 13일까지 역대 KBO 리그 3루수 한 시즌 최다 홈런기록이자 역대 SK 와이번스 소속 야수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이었지만 최정이 이 기록을 모두 경신합니다)107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최전성기를 달리던 이승엽(47홈런)과 심정수(46홈런)에게 밀리며 홈런 3위에 그칩니다.설상가상 KBO 골든글러브 수상에도 실패하는데 경쟁자인 김한수에게 소위 한국인 버프+우승팀 프리미엄이란 존재로 인해 밀릴 수밖에 없었고 외국인 선수에게 짜게 굴었던 당시 골든글러브 수상 분위기가 결정적이었습니다.2002년 시즌 종료 후 SK는 그해 최고의 활약을 펼친 페르난데스와 재계약을 원하며 협상을 하였으나, 페르난데스의 활약을 본 일본 구단들이 페르난데스를 영입하기 위해 머니 게임을 벌이자 결국 큰 금액으로 인해 재계약에 실패하며 호세 페르난데스는 단 1년만에 한국 프로야구계를 떠나게 됩니다.

호세 페르난데스는  2003년 치바 롯데 마린즈에 입단하면서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하게 되는데 일본 진출 첫 해인 2003년 123경기에 출장해 타율 0.303, 32홈런, 100타점을 기록하였지만 2003년 시즌 후 롯데에 돌아온 바비 발렌타인 감독이 수비력 등을 문제삼아 재계약을 하지 않았고,결국 롯데를 나와 세이부 라이온즈와 계약합니다.2004년에는 이토 츠토무 감독의 지휘 아래 마쓰자카 다이스케,나카지마 히로유키,와다 카즈히로,알렉스 카브레라 등과 함께 세이부 라이온즈의 주축 전력으로 활약하며 오치아이 히로미츠 감독이 이끄는 주니치 드래곤즈를 물리치고 일본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이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오릭스 버펄로즈에서 OPS 0.8, 20홈런 전후를 꾸준히 기록하면서 오랜 기간동안 퍼시픽리그의 수준급 외국인 타자로 자리잡았습니다. 2006년 퍼시픽리그 3루수 베스트나인을 수상한 것은 본인으로서도 첫 타이틀,라쿠텐을 나온 뒤로는 기량이 꽤 떨어진 모습을 보이고 수비력은 완전히 상실했지만, 2010년대 초반까지도 여러 팀들에서 중심타선의 공백 한 자리를 메우다가 2013년 오릭스를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습니다.한국 프로야구에서는 단 1년만 뛰며 45홈런이라는 거포의 상징처럼 되었지만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한 시즌 33개의 홈런이 최고 기록이며 무려 11년간 일본 프로야구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갔으며 총 1253경기 출장-4566타수-1286안타-타율 0.282-206 홈런-772타점-출루율 0.340-장타율-0.457을 기록했습니다.


톰 퀸란 (2000~2001(현대)·2002(LG)

이제는 사라진 현대 유니콘즈의 전성기를 이끈 용병으로 톰 퀸란은 성실한 용병의 대명사이기도 합니다. 용병 선수로는 보기 드물게 특타(특별 타격훈련)는 물론 야간 훈련도 자청할 정도였습니다. 2000시즌 개막전에서 3개의 홈런을 날리며, 한국무대 신고식을 화끈하게 치뤘으며 현대는 그 해 톰 퀸란의 맹활약으로 정규시즌 최다승(91승)을 기록하며 우승했습니다. 특히 한국시리즈에서는 7경기 26타수 9안타 3홈런 10타점을 기록하며 외국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MVP로 선정되기도 합니다.톰 퀸란은 1986년 드래프트에서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지명을 받아 입단했는데, 당시 NHL과 대학리그에서도 관심을 많이 가졌다고 합니다.아이스하키 선수로서의 포지션은 골키퍼,엄청난 속도에다가 크기까지 작은 퍽을 막아내야 했을 톰 퀸란의 수비가 뛰어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메이저리그에서 자주 뛰지는 못했고, 가끔씩 백업 멤버로 로스터에 등록되는 정도였는데 1992년 당시 소속팀이던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해 우승반지를 낀 적이 있습니다.메이저리그 커리어는 4시즌 42경기 58타수 9안타(2루타 3개, 홈런 1개) 5타점 8득점 6사사구 26삼진 타/출/장 .155/.234/.259입니다.2000년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한 톰 퀸란은 이후 주전 3루수로 뛰었는데,타율은 0.236으로 멘도사 라인보다 살짝 높은 수준이고, 출루율도 겨우 3할 턱걸이(.302)에 그쳤으며 삼진은 173개로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은 한 시즌 최다 삼진 기록의 보유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37개의 홈런을 기록한 장타력이 있었고, 수비능력 역시 상당히 뛰어났습니다.공갈포 장타력과 철벽같은 수비력을 지녔기 때문에 2000년 주전 3루수로 활약했으며 이 과정에서 전년도 주전 3루수였던 박종호가 2루수로 옮겼습니다.그리고 퀸란이 3루 붙박이로 가면서 박진만-박종호라는 길이 남을 미들 인필더 콤비가 탄생했습니다.

톰 퀸란은 수비와 달리 타격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며 박재홍,박경완,박종호 등 현대 유니콘스의 탑급 타자들에 밀려 용병타자임에도 하위타순으로 밀려납니다.시즌 초반에는 팀 동료 박경완과 그리고 두산의 타이론 우즈와 홈런 1,2위를 다툴 정도로 클린업 타선이였지만, 약점이 노출되어 한동안은 하위타선에서 뛰었지만 그럼에도 2000 시즌 전체 3위에 해당되는 37홈런을 기록하였습니다.그리고 톰 퀸란이 진짜로 활약한 무대는 바로 한국시리즈였습니다.드림리그 우승팀이었던 현대가 PO에서 삼성을 격파하고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드림리그 2위팀 두산 베어스, 1~3차전을 따내며 쉽게 우승컵을 가져가 싶었지만, 4~6차전을 두산이 내리 따내며 리버스 스윕에 단 한경기 남아있던 상황,운명의 7차전에서 맹활약한 선수가 바로 톰 퀸란으로 퀸란은 2회말 0:0에서 먼저 달아나는 2타점 2루타를 쳐냈고, 이후 2:2로 두산이 따라붙자 4회말 다시 앞서가는 쓰리런을 작렬하고, 8회말 쐐기 솔로홈런까지 때려내며 최초의 외국인 한국시리즈 MVP에 선정되었습니다.톰 퀸란은 2000년 플레이오프에서 타/출/장 .308/.438/.692 13타수 4안타(1홈런) 2타점을 기록하였으며, 이 기세를 한국시리즈까지 이어나가 타/출/장 .346/.370/.731 26타수 9안타(3홈런) 10타점을 기록하여, 포스트시즌 11경기 동안 타/출/장 .333/.395/.713 39타수 13안타(4홈런) 12타점을 기록하였습니다. 타율과 출루율의 경우 페넌트레이스 때보다 약 1할이 높았고, 장타율은 무려 약 2할이나 높았습니다. 비율로만 보면 페넌트레이스에서 경기당 0.28개(133경기 37홈런)씩 때려내던 홈런포를 포스트시즌에 진입하자 경기당 0.36개(11경기 4홈런)씩 쏘아올렸습니다.톰 퀸란은 2001년에는 작년에 비해 피삼진은 좀 줄었으나 160개로 2022년 현재까지 한 시즌 최다 삼진 3위에 올라있는데 1위, 3위를 모두 가지고 있는 선수이며 전체적으로 기량이 떨어진 모습을 보이면서 시즌 종료 후 현대가 재계약을 포기했고 LG에서 그를 영입,2002년 13경기 21타수 무안타의 성적을 기록했고 4월 23일에 2군행 통보를 받은 뒤 5월 3일에 웨이버공시되어 방출당했으며 은퇴이후 독립리그의 한 팀에서 동생 롭 퀸란과 같이 일한다고 합니다.

톰 퀸란 3시즌 한국성적


클리프 브룸바(2003~2004·2007~2008(현대) 2008~2009(히어로즈)

1995년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 13라운드 지명을 받고 입단,이후 마이너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계속하던 중, 2001년 메이저로 승격이 됩니다.대부분 대타로 활동하다가 콜로라도 로키스로 이적하지만 이후 다시 마이너 리그로 내려가게 되고 2003년에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계약을 맺습니다.시카고 화이트삭스 산하 마이너 팀에서 좋은 성적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메이저리그로의 승격이 되지 않자 한국 프로야구 팀인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하게 됩니다.클리프 브룸바는2016년 기준으로 외국인으로서 최초이자 유이하게 타격왕 타이틀을 차지한 경험이 있는 선수이며, 그가 세운 2004 시즌 타율 0.343은 한국 프로 야구에서 활동했던 외국인 선수 중 가장 높은 시즌 타율이었으나 2015년 에릭 테임즈가 3할 8푼을 찍으며 갈아치워 버립니다.클리프 브룸바는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이끌어 KBO MVP 후보로 거론되기도 하였으나 다승왕 타이틀을 차지한 배영수에 밀려 수상은 하지 못하였습니다.성적도 좋았으며, 친화력도 뛰어나 현대, 히어로즈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히어로즈의 프랜차리즈급 스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다만 그가 활약했던 시절이 한국프로야구의 암흑기 기간이었기 때문에 저평가되는 감이 없지않아 있습니다.

2003년 시즌 후반기 마이클 프랭클린의 대체선수로 한국 땅을 밟은 브룸바는 70경기를 뛰며 타율 3할3리, 14홈런, 51타점을 기록했으며 2003 시즌 후 현대 유니콘스와 재계약한 그는 2004년에 타율 1위,홈런 2위, 타점 3위 등 공격 전 부문에서 최상위권을 기록하며 현대 유니콘스의 한국 시리즈 2연패에 공헌합니다. 특히 2004년에는 끝내기 안타만 4개를 기록하며 단일 시즌 최다 끝내기 기록을 남겼습니다.그럼에도 브룸바는 MVP는 고사하고, 올스타전에서조차 뽑히지 못해 KBO 리그의 외국인 선수 차별 사례 중 가장 유명한 사례로 꼽히기도 합니다.2005년에는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 버팔로스로 이적하였으나 고질적인 발목 부상과 성적 부진, 감독과의 불화 등으로 인해 2006년 시즌을 끝으로 재계약에 실패하였습니다.클리프 브룸바의 일본 등록명이 일본어 발음상 ブランボー(브람보)로 표기되어서 이름 덕에 나름 컬트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고 합니다. 

2007년에 현대 유니콘스로 복귀한 브룸바는 시즌 초반, 4월에 매우 심각한 슬럼프에 빠졌으나, 5~6월 무렵부터 타격감이 살아나면서 엄청난 장타력을 과시했습니다. 최종 성적은 126경기 출장 0.308 29홈런 87타점. 그렇게 현대 유니콘스의 역사가 끝나가는 동안 유니콘스의 마지막 4번 타자로 활약하였습니다.현대의 고별전인 수원 한화전에서 안타를 치고 방망이를 내동댕이쳤는데 경기전 김시진 감독에게 현대의 마지막 경기인만큼 꼭 홈런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그것을 지키지 못해 화가 났었다고. 그 후 바로 대주자로 교체되었고 경기는 0:2로 현대가 승리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었습니다.2007년 말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되고 STX나 KT의 인수가 차례로 무산되자 마이너리그 계약을 알아보던 중 선수단이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로 넘어갈 때 계약하여 히어로즈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전년도 3할 타율에 30개에 가까운 홈런을 기록했음에도 전년 대비 삭감된 연봉을 제시받아 충격을 받기도 했으나 결국 계약서에 사인을 했으며 2008년에는 고질적인 발목 부상 등으로 고생하면서도 102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0.293, 13홈런 61타점을 기록하고 올스타전에도 출전했습니다.2009 시즌 초반에는 붙박이 4번 타자로 출장하였고, 덕 클락이 히어로즈에 새로 영입되면서 주로 지명타자로 나와 나왔으며 최종 성적은 타율 0.245, 홈런 27, 타점 86으로 시즌을 마감하였고, 결국 2009년 시즌 종료 이후 방출되면서 많은 히어로즈 팬들의 안타까움을 사기도 합니다. 클리프 브룸바는 2009년을 마지막으로 5년간 활약했던한국 무대를 떠나게 되었으며 2010년엔 잠시 멕시코 리그에서 뛰었고, 이후엔 독립 리그인 골든 베이스볼 리그 소속의 에드먼턴 캐피털스에서 뛰었습니다.총 76경기 출장해서 타율 0.383에 23홈런 90타점의 좋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부상과 나이 등 여러 여건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은퇴합니다.한국 프로야구에서 5시즌 동안 총 553경기 출장-1971타석-590안타-타율 0.299-2루타 94개-3루타 3개-홈런 116-390타점-320득점-장타율 0.527-출루율 0.407을 기록했습니다.


카림 가르시아(2008~2011(롯데)·2011(한화)

멕시코 출신의 용병 카림 가르시아는 롯데와 한화에서 발휘한 화끈한 공격력과 특유의 쾌활한 성격으로 '한국 맞춤형 용병'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롯데 시절에는 3시즌 연속 20홈런과 7타수 7안타(2010년 4월 9일 한화전) 등 주목할 만한 기록을 남겼으며 한화 유니폼을 입은 2011년에는 팀의 저조한 성적 속에 '나홀로 해결사'로 고군분투 했습니다.그 해 국내외에서 인기를 끌었던 영화 ‘머니볼’에서 그의 이름이 언급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 2009년과 2013년에는 멕시코 대표로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출전해 한국 팬들의 향수를 자극했던 선수이기도 합니다.카림 가르시아는 메이저리그부터 일본과 한국그리고 조국인 멕시코 리그까지 무려 15개의 팀, 20개도 넘는 팀에서 야구를 한 저니맨으로도 유명합니다.

카림 가르시아는 KBO에서 상당히 드문 좌타 순혈 파워히터로 정교한 스윙과는 거리가 먼 선풍기 스윙이지만 맞기만 하면 30개의 홈런을 칠 수 있는 거포로 장타율이 상당히 높았습니다.극단적인 풀히터로서 거의 당겨치기만을 구사했는데, 스타일이 일정하다 보니 국내팀들은 가르시아 전용 수비 시프트로 대응하였고 이후, 이런 당겨치기 스타일의 타자 대응 시프트에 가르시아 시프트라는 이름이 붙기에 이르렀습니다.2000년대 초중반까지는 한국야구는 타율을 중시하는 올드스쿨적인 경향이 강해서 당겨치기-밀어치기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스프레이 히터를 미덕이라 여겼는데 가르시아같이 한 가지 타격방식만을 고집해서 타율을 좀 희생하더라도 장타율로 좋은 성적을 내는, 소위 말하는 OPS히터 스타일 타자는 드물었습니다.극단적으로 당겨치기만을 하면서도 또 꾸준히 오래 활약한 것이 가르시아였기 때문에 이런 당겨치기 위주의 좌타 장타자 상대 시프트를 자연스럽게 가르시아 시프트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수비 능력은 코너 외야수임을 감안하면 좋은 편이었는데 특유의 강견과 어릴 때부터 송구연습을 자주 해서인지 우익수로도 송구도 매우 빠르고 정확해 보살도 상당히 자주 기록했는데 동 시즌 리그에서 같이 뛰는 다른 외야수들과 비교가 불가능 할 정도의 개수이지만 순수한 수비 스킬 자체는 나쁜 편인데 낙구 판단, 집중력, 포구 모두 평범 혹은 그 이하였습니다.2008 시즌 롯데 자이언츠를 통해 한국 프로야구에 입성은 카림 가르시아는 125경기에서 타율 0.283-30 홈런(2위)-111타점(1위)-장타율 0.541(2위)를 기록했으며 이후 2년간 롯데에서 활약하다 2011년 한화에서 72경기 출장에 그치며 한국야구와의 인연은 끝나지만 이후 2017년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가다 은퇴 이후론 해설과 스카우터 일을 하다가 2022년 부터 멕시코 프로야구 마리아치스 데 과달라하라의 타격코치로 부임했다고 합니다.

카림 가리시아 한국성적


야마이코 나바로(2014,2015(삼성)

야마이코 나바로는 삼성에 입단한 용병 중 최강의 외인 용병으로 평가받는 선수로 입단 초만 해도 형편없는 메이저리그 성적에 수염 덥수룩한 외모까지 더해져 최악의 용병 영입이라는 평가까지 돌았지만,기록과 성과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습니다. 나바로는 2014시즌 154안타 타율 3할8리 31홈런 98타점이라는 기록을 남겼으며 한국시리즈에서는 4홈런을 포함, 타율 0.333, 10타점 등 원맨쇼에 가까운 활약을 펼쳤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대에 NC 다이노스에 입단한 에릭 테임즈로 인해 역대 최고라는 평가는 테임즈의 몫이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에릭 테임즈는 1500타석 이상 역대 KBO 타자들 중 wRC+, OPS, wOBA 독보적 1위로 신생팀으로 첫해 7위를 찍었던 NC 다이노스를 입단 후에 332로 올려놓은 주역이며 KBO 리그에서는 단 3년만 뛰었음에도 스탯티즈 기준 23.0의 WAR를 쌓았고 호타준족 1루수로서의 정확한 컨택과 엄청난 파워 그리고 빠른 발에 탄탄한 수비까지 갖춘 5툴 플레이어의 대표격 외국인 선수 중 하나였습니다. NC를 제외한 9개 구단 팬이 하루 빨리 메이저리그로 가길 원했을 정도이며 또한 KBO 리그 소속으로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은 첫 외국인 선수며 동시에 KBO의 유일한 40-40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홈런왕(2016.40개)과 외국인 최초로 2년 연속 40홈런을 달성하기도 합니다.그런 에릭 테임즈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야마이코 나바로 역시 삼성 라이온즈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평가 받으며 누적 WAR이 무려 12.67로 3년동안 활약한 데이비드 뷰캐넌과 다린 러프의 WAR을 단 2년만에 거의 근접하게 쌓았으며 MVP급 활약을 펼친 호세 피렐라의2022년급 성적을 2014년과 2015년 연속으로 기록했다고 보면 됩니다. 센터 라인을 수비하면서도 1.0에 가까운 OPS와 140 전후의 괴물같은 wRC+를 기록했고, 역대 KBO 2루수 최다 홈런이자 외국인 선수 최다 홈런인 48홈런 기록의 보유자이기도 합니다.

야마이코 나바로는 매년 30홈런 이상씩을 때려낼 수 있는 거포로 장타력은 KBO 역대 2루수 원탑입니다. 박정태 이후 국내 최고 2루수중 한명인 정근우가 11년 동안 친 홈런보다 나바로가 2년간 친 홈런이 더 많지만 공갈포가 아니며, 타율보다 출루율이 1할 이상 높을 정도로 선구안이 훌륭합니다. KBO에서 좋은 2루수는 희귀자원인데다 미국에선 유격수 유망주였던지라 유사시 유격수 포지션까지 우수하게 소화할 수 있으며 팀내 최고수준의 강견과 2년 연속 20도루를 기록해준 빠른 발도 있습니다.단점으로는 경기 외적으로 워크에씩 문제가 있다는 것인데 한국 시절에는 성적이 받쳐주니 별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미국 시절부터 이후 일본 시절까지 커리어 내내, 훈련을 게을리 한다, 불성실하다며 워크에씩을 지적받았던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2014 시즌 삼성 유니폼을 입고 한국 프로야구에 첫 선을 보인 나바로는 125경기 출장-500타수-154안타-타율 0.308-2루타 27개-3루타 1개-31 홈런(5위)-98타점-118득점(3위)-출루율 0.417-장타율 0.552를 기록합니다.하지만 나바로의 진가는 한국시리즈에서 증명되는데 2014 한국 시리즈 1차전에선 3회초에 넥센이 2점을 내자 3회말에 바로 앤디 밴 헤켄을 상대로 동점 투런을 쳤습니다. 2014년 한국시리즈의 첫 홈런. 이 날 기록은 4타수 1안타 1홈런 2타점으로 준수했지만 팀은 8회 강정호에게 역전 투런을 맞으며 패배했으며 2차전에서도 좋은 타격감을 이어갔는데 4타수 3안타 2타점 3득점,3차전에선 4타수 무안타로 침묵했지만, 4차전에선 7회 밴 헤켄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쳤지만 팀이 6점차로 패배해서 별로 부각은 되지 않았습니다.하지만 나바로의 솔로 홈런은 밴 헤켄의 퍼펙트를 저지하는 홈런이었습니다.6차전에서 조상우를 상대로 쓰리런을 치며 4-1로 리드하던 팀을 7-1의 스코어로 만들며 삼성의 우승에 쐐기를 박았습니다.한국시리즈 최종 성적은 24타수 8안타 4홈런 10타점 8득점 .333/.393/.875,그리고 한국 시리즈 MVP에 선정됩니다.나바로는 한국 프로야구에 적응한 2015 시즌 타출장 .287/.393/.596, 48홈런(2위)-137타점(3위)의 성적을 기록했는데 전지전능 에릭 테임즈보다 한개 더 많은 48개의 홈런으로 외국인 타자 최다홈런 기록을 수립하기도 합니다.역대 삼성 최고의 용병으로 평가받던 나바로의 재계약은 확실해보였지만 2016년 일본 프로야구 치바 롯데로 이적한 나바로는 타율 0.217-10홈런-44타점에 그칩니다.


제이미 로맥(2017,2018,2019,2020(SK),2021(SSG)

제이미 로맥은 내야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KBO리그 30000번째 홈런의 주인공이자 유일무이한 멀티 잠실 장외홈런의 사나이이며 페르난데스와 함께 SK-SSG 역사상 최고의 타자로 평가받으며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선수입니다. 아울러 SK-SSG 랜더스 구단 역사상 최장수 외국인 선수이며 메릴 켈리와 더불어 와이번스-랜더스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꼽힙니다. 메릴 켈리는 2018 시즌이 끝난 후 4년 간의 성공적인 커리어를 마치고 메이저리그로 진출하여 최고의 성적을 기록하면서 활약하고 있고, 제이미 로맥은 2021 시즌 이후 5년간의 영광스러운 SK-SSG 시절의 커리어를 끝마치고 은퇴를 선언하였습니다. 

제이미 로맥은 정확성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수준급의 선구안을 앞세워 타율보다 1할 이상 높은 출루율과 무시무시한 파워로 높은 장타율을 기록하는 거포로 한국에서의 첫 시즌이었던 2017 시즌은 타고투저 시즌이었던지라 0.242라는 타율은 중심타선으로 기대하는 선수 치고는 매우 부족했으며, 삼진 역시 102경기 116개로 경기당 1개 이상을 기록한 수준이었지만, 타율에 비해 1할 가량 높은 .344의 출루율은 부족한 컨택에 비해 선구안은 준수함을 보여줬습니다. 파워는 더 말 할 필요가 없는 수준으로 인천 SK행복드림구장 최장 비거리 신기록인 140m를 때려내고 잠실에서도 2개의 장외홈런을 때린 선수가 바로 제이미 로맥입니다.로맥은 조이 보토의 타격 이론에 의한 타격을 한다고 알려졌는데 동시에 하체를 거의 쓰지 않고 상체만 사용하는 스윙으로 상당한 비거리를 만들어냅니다. 이런 성향 때문인지 속구보다 변화구에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존 밖으로 빠지는 변화구를 잡아당겨 홈런을 만들기도 하며 곧잘 걸러내다가도 존 안에 꽂히는 직구에 맥없이 방망이가 헛도는 모습이 자주 나옵니다. 또한 외국인 타자 치고 의외로 언더핸드와 사이드암에게 강하기도 합니다.

2018 시즌은 2017 시즌보다 전체적으로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며 43홈런과 107타점에 약점 중 하나였던 낮은 타율도 .316으로 완전체 강타자로 거듭났는데 타석 당 삼진율이 27.9%에 달했던 2017년에 비해 22.2%로 삼진율은 떨어뜨리고 볼넷률은 유지하였으며 수비의 경우 1루수부터 2루수,3루수를 모두 볼 수 있고 여기에 좌익수,우익수 역할도 소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어깨가 상당히 좋은 편으로 2018 시즌에는 3루수로도 깔끔한 수비를 선보이며 수비 활용도에서도 굉장히 가치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최정이 부상으로 이탈할 때는 최정의 자리 대신 수비를 보기도 했습니다.주포지션인 1루에선 수비력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1루수를 보면서도 리그 최고급의 수비력을 자랑하는데 빠른타구도 속속 잘 건져내고 바운드 된 송구도 깔끔하게 캐치합니다.제이미 로맥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총 5년을 뛰면서 626 경기 출장-2231 타수-610안타-타율 0.273-2루타 109개-3루타 1개-155 홈런-409타점-386타점-출루율 0.376-장타율 0.532를 기록하고 은퇴합니다.

제이미 로맥 통산성적


KBO리그 40홈런을 기록한 외국인 용병들
년도 선수(소속) 홈런
1998년 타이론 우즈(두산) 42개(종전 41개 한국 홈런 경신)
1999년 댄 로마이어(한화) 45개(2위)
2002년 호세 페르난데스(SK) 45개
2015년 에릭 테임즈(NC) 47개
2015년 야마이코 나바로(삼성) 48개(한시즌 외인용병 최다기록)
2016년 에릭 테임즈(NC) 40개(최정과 공동 1위)
2018년 제이미 로맥(SK) 43개(공동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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