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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1999년 마해영_부산 갈매기 20세기 마지막에 날아오르다

by 마음heart 2023.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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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1999년 마해영

부산 갈매기 20세기 마지막에 날아오르다



마해영은 프로 데뷔 직후에 잠깐 3루수로 뛰었지만 주 포지션은 1루수였으며,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된 후에는 잠깐 좌익수로 뛰다가 수비 때문에 결국 지명타자로 활약했습니다.전성기 때도 극단적인 오픈스탠스 타격의 반동으로 몸쪽 공에 취약했던 문제점이 노쇠화로 인한 배트 스피드 저하로 극명히 드러났지만 본인의 고집으로 이 점을 개선하지 않았던 점이 급격한 몰락의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마해영은 부산 출신으로 부산 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아마추어 시절 차세대 빅뱃 자원으로 촉망받으며 2년 후배 심재학과 함께 국가대표팀 쌍포로 활약했고, 일부 아마야구에 관심이 많은 롯데 팬들의 기대를 받았습니다.고려대학교 시절, 워낙 힘이 좋아 장타가 자주 나오던 탓에 야구장 그물 너머의 과학도서관 유리창을 하도 깨서 학교 측에서 도서관 1층에 창살을 설치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고려대학교를
졸업한 후 롯데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았지만 곧바로 입단하지 않고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친 후, 다소 늦은 26세의 나이로 1995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습니다. 입단 첫 해인 1995년 시즌 신인임에도 주전 3루수와 4번타자로 낙점받았지만 수비 부담으로 타격에서도 슬럼프에 빠져 5월부터 김민호 대신 1루수로 이동했고 이 때부터 타격도 상승세. 당시 롯데 라인업 전원이 주루코치 조 알바레즈의 지휘 하에 적극적인 주루플레이를 감행한 덕택에 도루도 무려 16개나 기록하였습니다. 프로 첫 해인 1995년 전 경기인 126경기 출전에 0.275의 타율 18홈런 87타점 16도루를 기록합니다.극단적인 오픈 스탠스 타격 폼으로 인해 타격의 정확도 면에서 아쉬움이 남아 2년차인 1996년에는 스퀘어 스탠스 형태로 타격폼을 바꿨지만 타율은 별반 다르지 않은 0.276에 되려 홈런과 타점이 더 떨어지자 스퀘어 스탠스를 아예 포기하고 다시 오픈 스탠스 타격폼으로 회귀. 1997년 타율은 0.259로 더 떨어졌으나 25홈런을 기록하며 서서히 거포로서의 입지를 다져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1999년에는 타율 0.372에 35홈런 119타점 OPS 1.114의 맹활약으로 타격왕까지 차지, 펠릭스 호세와 함께 롯데의 거포로 팀을 준우승까지 이끌었고 커리어 하이를 달성했습니다. 1999년의 마해영은 구단 역사상 최고의 타자 중 하나이며 다른 해였다면 1루수 골든글러브는 물론 정규시즌 MVP까지 바라볼수 있는 성적이였지만, 이승엽이라는 존재로 인해 빛이 바래고 맙니다.어쨌든 1999 시즌 타자 중에서는 단연 2등에 빛나는 훌륭한 성적이였습니다.데뷔 이후 김용희 롯데 감독의 전폭적인 기용으로 매우 빠른 시간 안에 프로무대에 적응합니다. 2000시즌에는 선수협 파동으로 인해 시즌 전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했고 .294/.378/.487 25홈런 90타점으로 전시즌에 비해 다소 아쉬운 성적을 거두며 시즌 종료 후 트레이드로 팀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삼성에서는 이승엽이 주전 1루수로 자리잡고 있었기에 마해영은 지명타자로 전업하게 되었고, 3번 타자인 이승엽에 이어 4번 타자로 클린업 트리오로 맹활약했습니다. 2001 시즌은 커리어하이였던 1999 시즌 다음으로 좋은 152.4라는 wRC+와 4.43이라는 WAR을 기록하며 만개하는 모습을 보였고 2001 한국시리즈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보였으나 팀의 준우승을 막지는 못합니다.이듬해 2002 시즌은 작년보다도 더 우수한 161.3의 wRC+와 5.61의 WAR을 보이며 팀의 2년 연속 정규시즌 1위에 큰 힘을 보탰고, 대망의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9회 말,이승엽의쓰리런으로 동점이 된 9:9 상황에서 이승엽의 다음 타자로 나온 마해영은 이상훈이 강판당한 후 구원투수로 등판한 최원호를 상대로 끝내기 연속 홈런을 쳐서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 최초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뤄 내는 1등 공신으로 등극했으며 2002년 한국시리즈 MVP까지 차지합니다.이후 지명타자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하며 최고의 한해를 보냈는데 마해영의 선수 시절 유일한 한국시리즈 우승이기도 합니다.


2003시즌에 이승엽-마해영 - 양준혁으로 이어지는 이마양 트리오는 무려 127홈런 356타점을 합작하며 역대 최강의 클린업 트리오를 자랑했는데 마해영은 시즌 개막 후 4월과 5월에 홈런 14개를 몰아치며 이승엽,심정수와 함께 홈런 레이스를 펼치며 엄청난 페이스를 보여주었으나, 6월부터 홈런은 고사하고 안타도 거의 치지 못하며 급기야는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는 등 슬럼프를 겪었고, 이후 7월에 다시 부활하는 모습을 보여 슬럼프는 벗어났지만 시즌 막판이었던 9월 들어 다시 부진에 빠지며 급기야 8번 타순까지 내려가는 등 6월과 9월의 부진으로 3할 타율에 실패하더니 포스트시즌에서는 SK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역전 기회에 병살타, 2차전에서 주루 미스로 인해 삼중살을 기록하며 삼성의 플레이오프 광탈에 한 몫하며 시즌을 마무리했습니다.이 해 마해영은 본인의 한 시즌 최다 홈런과 타점을 기록하며 성적 자체는 괜찮았지만 몇 차례의 부진으로 인해 전체적인 성적은 직전 시즌에 비해 떨어졌고, 그 해 지명타자로 뛰던 김동주가 타격왕을 차지할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시즌 중반까지는 유력해 보였던 지명타자 골든글러브 2연패에 실패합니다.그리고 2003년 초에 연봉조정 신청을 했다가 삼성에 찍히기도 했기에 시즌 후 FA가 되었지만 삼성은 그를 잡지 않았고, 삼성과 협상이 결렬된 후 KIA 타이거즈와 계약하며 삼성을 떠나게 됩니다. 

2003 시즌 종료 후 FA를 신청, 삼성에게 4년 31억 이라는 당시 FA 최고액을 요구했으나 협상이 결렬되며 시장으로 나오게 되었는데 직전시즌 몇 차례 부진하며 3할 타율과 골든글러브 수상에 실패했지만 38홈런을 기록하는 등 시즌 스탯은 괜찮았기에 4번타자감이 필요했던 KIA에서 제시한 4년 28억 제안을 수락, 당시 FA 최고액을 기록하며 KIA로 이적하였지만 바로 다음 날 진필중과 정수근이 각각 4년 30억, 6년 40억 6천만 원으로 이적하며 하루만에 최고액 기록이 바뀌게 됩니다.그러나 KIA에서의 활약은 삼성 시절에 비해서 많이 떨어졌고, 데뷔 후 처음으로 2군으로 내려가는 등 부진한 모습을 보이다가 이후 먹튀로 까이기도 합니다.계약 첫 해였던 2004 시즌, 개막전에서 4번 타자로 출장해 5회 초 2타점 적시 2루타를 기록하며 기아에서의 첫 안타와 타점을 만들어내면서 팀의 승리에 기여했으나 그 후 1할 타율에 홈런은 단 1개에 그치는 극심한 부진에 빠졌으며 6월 들어서 주간타율 5할을 기록하는 등 어느정도 살아나기 시작했으나, 장타력이 올라오지 않으면서 8월에는 데뷔 후 처음으로 2군 강등까지 당할 정도로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였고, 결국 11홈런에 3할대 장타율로 첫 시즌을 마무리했습니다.2005년 시즌에는 시즌 4번째 경기였던 SK전에서 만루홈런을 기록했지만 이후 부진한 모습을 보이다가 4월 중순 두산과의 군산 홈경기에서 멀티홈런을 때려내는 등 살아나기 시작, 5월 들어서는 타율을 크게 끌어올린 후 5월 말 만루홈런 포함 4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며 맹활약하면서 시즌 타율 3위에 장타율 2위로 올라서는 등 지난해와는 달리 시즌 초 좋은 활약을 보였으나.. 6월부터 시작된 부진이 끝나지 않으면서 결국 두 차례 2군으로 강등되었고, 서정환 감독과의 갈등이 심해지면서 시즌 후반 내내 벤치에 있어야 했습니다.결국 시즌 종료 후 LG와의 3:3 트레이드로 기아를 떠나게 됩니다.기아에서의 성적은 2년간 타율 0.275 23홈런 131타점을 기록하여 먹튀라는 오명을 쓰게 됩니다.2005 시즌 후 중심 타자를 원하던 LG의 기대를 받던 마해영은 2006년,잠실 홈 개막전에서 솔로포를 기록했지만 그 외에는 계속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5월 중순 부터는 컨택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타격 스타일에 변화를 주었고, 5월 16일 롯데전에서 4타수 4안타 2타점을 기록하며 맹활약했습니다. 그때부터 타율을 상당히 끌어올리며 살아나는가 싶었지만 찬스 상황에서 번번히 찬물을 끼얹고, 타격 상승세도 다시 꺾이면서 결국 최길성에게 밀리고 7월 초에 2군으로 내려간 뒤 1군으로 올라오지 못하고 시즌을 마감,시즌 성적은 .270 .333 .379 5홈런 28타점.다시 2007년 시즌을 맞았지만 마해영ㅇ의 1군 성적은 11경기 28타수 2안타,0할 7푼 1리(.071). 7푼이, 007 등으로 엄청난 조롱을 받았고 결국 LG는 중심타선이 약해서 이로 인해 해당 시즌을 5위로, 그것도 포스트 시즌 탈락으로 마무리합니다.당시 마해영은 배트 스피드가 느려지는 등의 노쇠화 기미가 보였기 때문에 다시 회복될 가능성이 없었는데 마해영은 매일 자정까지 배팅 연습을 하면서 현역 연장의 의지를 불태웠지만 2007년에는 더욱 노쇠화를 보이며 사실상 1군에서 기용할 수 있는 기량이 아닌 수준까지 되었고,결국 5월 이후로는 더 이상 1군에 올라오지 못했습니다.

결국 2007년 시즌 종료와 함께 LG에서 방출당한 마해영은 2008년 롯데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고 이 때 새로 부임한 외국인 감독 제리 로이스터의 눈에 들어 친정 팀 롯데 자이언츠에 연봉 5천만 원이라는 헐값으로 재입단 하게 됩니다. 2000시즌 이후 약 8년만의 롯데 복귀전을 치뤘고, 8회 초에 안영명을 상대로 승부에 쐐기를 박는 솔로포를 기록하며 팬들의 환호를 받았습니다.그 후로도 로이스터의 신임을 받아 시즌 초 꾸준히 출장하였고, 흥행 차원에서도 대성공을 거두며 부산에 다시 마해영 열풍을 불러오기도 합니다.하지만 시즌이 갈수록 1할대 중반의 타율에 허덕이며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면서결 국 2군으로 강등당했습니다.결국 마해영은 부상 및 부진으로 인해 시즌이 종료될 때 까지 1군으로 다시 승격되지 못하고 시즌 종료 후 방출되면서 현역 생활을 마감하게 됩니다.마해영은 통산 1501경기에 출장,5482타수 1609안타 타율 0.294,298개의 2루타,20개의 3루타,260 홈런,1003타점,850득점,장타율 0.497,출루율 0.370을 기록합니다.

마해영 통산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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