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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1997년 김기태_리그 최초 좌타자 홈런왕,타격왕까지 거머쥐다

by 마음heart 2023.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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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1997년 김기태

리그 최초 좌타자 홈런왕,타격왕까지 거머쥐다



김기태는 초5 때 투수로 야구에 입문, 광주일고 1학년 때 팔꿈치 부상 때문에 1루수로 전향했으며 중고교 때만 해도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인하대 진학 이후 급성장해 양준혁과 함께 국가대표팀의 붙박이 클린업 트리오로 활약합니다.김기태의 선수 시절의 전성기는 1992(시즌 30홈런 돌파),1994(홈런왕),1997(타격 및 홈런 2관왕)~1998 시즌입니다. 양준혁,이종범,이승엽,박재홍처럼 성적이 꾸준하지는 못하고 격년제 비슷하게 기복을 보였던 것이 아쉬운 타자였습니다.김기태는 1991년 신생 팀 특별우선 지명을 받아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했는데 쌍방울은 구단 차원에서 첫 시즌부터 투수 김원형,조규제와 타자 김기태 구도로 팀의 간판으로 만들었습니다. 입단하자마자 팀의 4번타자라는 중책을 맡았으나, 5월까지 홈런 0에 타율도 2할 턱걸이라서 초창기 김기태가 타석에 나오면 욕을 엄청나게 해대기도 했으며 이 기간 본인도 마음고생이 굉장히 심했지만, 그래도 변함없이 믿고 계속 4번타자로 기용한 김인식 감독 덕택에 5월부터 홈런을 쳐가면서 부진에서 탈출하여 이후 쌍방울의 중심타자로 자리매김합니다. 1991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0.262, 27홈런으로 35개를 친 장종훈의 뒤를 잇는 홈런 2위를, 그것도 신인으로 기록했지만 신인왕은 팀 동료였던 좌완투수 조규제가 구원왕 타이틀을 앞세워 차지했습니다.이후 이승엽 이전까지 좌타자 최다 홈런(31홈런, 1992년), 3년 연속 골든 글러브(1992~1994. 지명타자) 수상으로 가난한 쌍방울의 핵심 선수이자 타선의 해결사로 활약했습니다.1993년에는 타율 0.240에 홈런이 고작 9개라 골든글러브 받기엔 민망한 성적이었지만 당시 타격왕과 홈런/타점왕을 차지한 양준혁, 김성래가 둘 다 1루수 후보로 가버리는 바람에 김기태가 그대로 지명타자 부문을 지캐내기도 합니다. 1994년에는 25개의 홈런으로 홈런왕 타이틀도 차지하였습니다. 25개라는게 투고타저를 감안해도 적은수치임에는 틀림없으나, 당시 김기태는 방위병 신분으로 원정경기에 제약을 받아 당시 126경기체제였던 리그에서 18경기를 결장한 108경기를 뛰고도 홈런왕을 따내며 앞으로 나올수 없는 방위병 홈런왕을 이뤄냈습니다. 게다가 프로야구 최초의 좌타 홈런왕이 되었으며 1997년에는 타격왕(.344)을 차지하기도 합니다.

박경완,심성보,조원우와 같은 팀 동료로 있던 1997 시즌 쌍방울 레이더스의 타선은 공포 그 자체였는데 넘사벽이였던 삼성을 제외하면 해태랑 비교했을때 팀 타율 및 출루율, 장타율, ops가 전체 2위로 해태보다 우위였습니다. 97년 당시 .344/.461/.636 으로 11할에 가까운 ops를 기록한 김기태는 wRC+ 가 리그 수준, 즉 투고타저까지 고려하므로 이것이 2001호세를 넘어갑니다. 쌍방울에서 김기태를 제외하면 그리 큰 타자가 없었던 관계로 타 구단 감독이 "쌍방울은 김기태만 조심하면 된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항상 집중 견제의 대상이었는데, 15시즌동안 사사구 975개를 얻어낸 것도 이를 증명하는 대목입니다.무려 한 시즌당 평균 65개로 그것도 삼성으로 트레이드 된 이후에는 굳이 집중 견제를 할 필요가 없어졌기에 쌍방울 시절에는 시즌 100사사구를 무려 3번이나 기록했을 정도이며 쌍방울이 해체되지 않고 은퇴할 때까지 뛰었으면 통산 1000개는 가볍게 넘었을 것입니다.1996~1998년까지 김성근 감독 아래에서 쌍방울의 주장을 맡으며 뛰어난 리더십을 보였는데 오죽하면 당시 감독이 "구단이 아무리 어려워도 김기태만은 절대 팔지 말아달라", "김기태는 미래의 감독감"이라고도 했습니다.

1997년 외환 위기로 모기업이 부도난 쌍방울은 결국 핵심 선수들을 팔아치워 구단 운영비를 대야만 했는데 특히 김기태의 경우는 매우 치명적이었습니다. 쌍방울이 IMF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때 선수단에서 가장 힘이 되었던 선수가 김기태였고, 쌍방울의 정신적 지주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김기태 역시 1998년 시즌 끝난 뒤 팔려 나갔고 당시 쌍방울 김성근 감독은 '모든게 다 끝났다.' 라고 말하며 실의에 빠졌다고 합니다. 전 해 6위팀의 중심타자+중심 중간계투를 빼앗긴 건 팀에겐 사형선고였기 때문입니다. 1998년 겨울 삼성 이적한 첫해에 수비 포지션을 좌익수로 옮겼지만 나름 괜찮은 활약을 보여 줬고 시드니 올림픽 국가대표팀으로 뽑힐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김응용 감독과의 불화와 이적해 온 마해영에 밀려 결국 김기태는 주전급 기량은 유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벤치 신세를 지게 됩니다. 

2001년 시즌 종료 후 삼성에서 설 자리를 잃은 뒤 트레이드 시장에 나온 김기태는 결국 6:2 현금 트레이드로 SK 유니폼을 입게 되지만다.애석하게도 예전의 김기태가 아니었는데 2002~2003년은 많은 타석을 제공받으면서 홈런수도 한 자릿수에 머물렀으며 2004년 SK에서 126경기에 출장, 3할에 복귀하며 지명타자 KBO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마지막 불꽃을 태웁니다. 그러나 2005년 시즌에는 부상으로 1군 54경기에 그쳤고, 타율 또한 2할 5리의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고 결국 은퇴합니다. 동갑이면서 1년 후배인 양준혁이 30대 후반 나이에도 3할을 치며 42세까지 롱런해서 비교되긴 하는데, 사실 이건 양준혁이 터무니없이 오래 버틴 거고 김기태도 37세에 은퇴면 지금 기준으로도 그다지 이르지 않은 은퇴로 충분히 할 만큼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감가태는 3000 타석 이상 기준 누적스탯을 보면, wRC+, 출루율,장타율,OPS,볼넷이 모두 10위권 내에 랭크되어 있고, 15시즌 6000여 타석 동안 통산 wRC+가 150대, 통산 warbat이 70에 근접한 역대급 소리를 듣기에 부족함이 없는 뛰어난 좌타자였습니다. 발이 아주 빠른건 아니었지만 주루센스가 준수했고 도루도 두자리 수를 기록하기도 하였지만 수비는 뛰어나다곤 할 수 없었고 1루 수비는 곧잘하긴 했지만, 삼성시절 잠시 뛰었던 외야수비는, 95-117-95의 작은 구장이었던 대구에서도 좌익수로 나가면 불안정한 수비를 보였는데 타구판단도 타구판단이지만 어깨는 그 이대형, 박용택에 비교될 정도로 소녀어깨였습니다.쌍방울 레이더스 시절,S급이라곤 혼자였던 약체타선에서 견제받으면서도 화려한 성적을 쌓은 선수로, 1990년대와 쌍방울 대표하는 선수이며, 기록면에서 김기태 이상의 좌타자는 양준혁,장효조,이승엽 외엔 없습니다. 

 

김기태 통산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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