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06·2010·2011 이대호
트리플 크라운을 두번이나 달성한 조선의 4번타자
조선의 4번타자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이대호는 2001년 데뷔, 2004년 풀타임 출전을 시작으로 KBO 리그의 유일한 타격 7관왕과 두 번의 트리플 크라운 그리고 9경기 연속 홈런 세계신기록을 달성한 롯데 자이언츠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일본 프로야구에는 두 번의 베스트나인과 타점왕 타이틀, 그리고 한국인 최초로 일본 시리즈 MVP를 수상했으며 이후 메이저리그서도 한 시즌을 활약하며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해 최초로 한미일 리그에서 모두 활약한 한국인 타자이면서, 각 리그에서 최초로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한국인 타자라는 기록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KBO 역사상 은퇴 시즌에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최초이자 유일한 선수이기도 합니다.이대호는 22년의 프로 생활 동안 2,895안타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KBO를 거친 선수 중 최다 안타 개수이며 한국인 중 2위 기록이기도 합니다.1위는 일본 프로야구 장훈의 3,085안타,국가대표에서의 활약을 요약해보면, 타점 1위, OPS 1위, 홈런 2위, 안타 3위를 기록하였습니다.이승엽의 뒤를 이어
KBO 리그 두번째 은퇴 투어를 진행한 이후 롯데 자이언츠 두 번째 영구결번 선수가 되었습니다.
이대호는 1982년 6월 21일 부산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 그의 삶은 눈물 없이는 듣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어려웠다고 합니다. 3살 때 부친이 세상을 떠났고 모친은 집을 나가서 재가하는 바람에 친할머니 오분이 여사 밑에서 자랐는데 오분이 여사는 어려운 여건에도 야구를 하고 싶어했던 이대호를 위해 부산 수영구 수영팔도시장에서 된장과 깻잎 좌판 장사를 이어갔다고 합니다. 된장과 깻잎을 다 못 팔고 집에 가야 할 때면 "아이고 우야노. 우리 야구쟁이, 이기라도 몬팔면 닭 한마리도 못사묵을낀데"라고 안타까워했고 훈련이 끝난 이대호는 유니폼을 입은 채로 할머니와 함께 좌판 리어카를 끌고 집에 갔다고 합니다. 그렇게 할머니가 어렵게 번 돈으로 야구용품을 하나 둘씩 마련했고 이대호는 눈물을 흘리며 "정말 열심히 연습해서 훌륭한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다졌다고 합니다.야구는 수영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하였는데수영초 3학년 때 야구 유니폼을 입고 들어온 키 작은 전학생이 왔는데, 그 전학생이 이대호의 모습을 보고 놀랐는지 방과 후에 감독한테 "우리 반에 고등학생이 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얼른 데리고 오라는 감독 지시에 이대호가 야구를 처음 시작하게 된 것인데 그 전학생이 훗날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되었고, 이대호도 KBO 리그를 대표하는 슬러거가 되었으니 이대호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기량이 빼어났으나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그를 주목한 건 신종세 대동중학교 감독으로 대동중 유니폼을 입은 이대호는 2년 6개월간 감독의 자택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대동중 당시 투수는 채태인,포수는 이대호, 외야수는 장기영이 맡았으며 이대호와 장기영은 경남고로 진학, 채태인은 부산상고 동문인 아버지의 뜻으로 부산상고로 진학합니다.
이대호는 본래 투수 출신으로 경암고 시절 대한민국 U-18 야구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어 2000년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세계청소년 야구대회에 추신수,김태균,정근우 등과 함께 출전했으며 준결승전에서는 호주를 상대로 결승 솔로포를 때려냈으며 결승전에서 연장 13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우승을 차지하는데 일조했습니다.이후 고3이던 2000년, 대통령 전국고교야구대회1회전에서 류제국의 덕수정보고에 2-3 패배를 당하고 맙니다. 당초 4강에 오르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패배의 쓴잔을 빨리 들고야 말았는데 안타까운 건 투수 이대호가 1회 3실점 이후 2회부터 무실점 무피안타로 호투했다는 점입니다.경남고를 졸업하고 2001년 롯데 자이언츠에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그 해 롯데의 1차 지명은 부산고 추신수가 받았지만, 추신수는 미국으로 건너가 메이저리거가 되었습니다.이대호는 롯데 자이언츠에 투수로 입단했으나 덩치에 비해 구속이 그렇게 빠르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스프링캠프에서 어깨와 팔꿈치 통증으로 구속이 더 떨어지게 되자 타자로 전향했는데 당시 우영득 2군 감독이 이대호의 재능을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타자 전향을 추진했다고 합니다.처음에는 타자 전향을 반대했던 다른 코치들도 이대호의 유연한 타격 폼과 비거리를 보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이대호의 타자 전향을 줄기차게 요청했고 결국 김명성 감독이 승인해서 타자로 전향하기로 했습니다. 타자로 전향 중이던 이대호가 1군으로 처음 올라온 계기는 바로 펠릭스 호세 때문인데 시즌 막바지 펠릭스 호세가 사건을 저지르며 잔여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아 시즌을 마감하자 호세를 1군에서 말소한 후 이대호를 1군으로 처음 불러들였습니다.
2002년 이대호에게 기회가 찾아왔는데 정식 감독으로 승격한 우용득이 이대호를 붙박이 4번 타자로 기용하겠다고 선언한 것. 이 해 최다패 타이기록(97패)을 뒤집어쓸 정도로 롯데의 전력이 허약했던 탓도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1군 경험이 거의 없는 사실상의 신인에게 4번 타자를 맡긴다는 것 자체가 이대호의 자질을 일찌감치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막전부터 4번 타자로 기용된 이대호는 시즌 개막 후 한달간 홈런은 1개에 그쳤지만, 타율은 놀랍게도 3할대 중반을 기록하며 시즌 초반에는 투수 김진우 및 조용준 등과 함게 신인왕 후보로 언급되기도 했습니다.하지만 신인들이 늘 그렇듯 시즌 중반으로 접어들며 타율이 떨어지고 선구안에 문제를 드러내며 2군으로 내려갔으며 결정적으로 성적 부진으로 우용득 감독이 경질되고 후임 감독으로 부임한 백인천이 이대호가 좋은 타자가 되기 위해서는 살을 빼야 한다며 쪼그려뛰기 및 사직 야구장 스탠드를 오리걸음으로 오르내리기 등 전근대적인 무식한 훈련 수행으로인해 이대호는 무릎 부상을 당했고, 그 후 계속 재활 치료를 해야 했습니다. 이 때 부상으로 운동량이 떨어지고 실의에 빠진 이대호는 술과 야식 등으로 세월을 보내 지금과 같이 30kg 정도 체중이 불었다고 합니다.그래도 2002년에는 1군 74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278에 8홈런 32타점을 기록해 신인 2년차 + 타자전향 2년차 치고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대호는 2002년 10월 왼무릎관절 수술을 받은 뒤 6개월째 배트를 들지 못했으며 이 때문에 체중이 130㎏을 훌쩍 넘어버렸지만 배팅과 펑고를 시작하면서 곧바로 몸무게는 120㎏대로 줄게 되었습니다.무릎 부상 때문에 6월에 합류하며 1군 54경기 출장에 그쳤으며 2003 시즌 성적은 타율 .243 4홈런 13타점으로 홈런과 타점이 반토막났지만 그럼에도 유망주로서의 가치는 떨어지지 않았고, 오프 시즌에 몇몇 구단이 이대호를 탐내기도 했습니다.이 해가 이대호 커리어에서 유일하게 WRC+가 100 미만이 시즌이기도 합니다.(85.9)양상문 감독이 취임한 2004년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낸 이대호는 풀 타임 출전을 하면서 점차 타격이 성장세를 그리게 되면서 타율은 낮았지만 파워가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타율 0.248 20홈런 68타점을 기록하며 조금씩 가능성을 보여 주었지만 문제는 병살머신이어서 치면 무조건 병살, 홈런 정도여서 교타력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 주진 못했습니다. 2005 시즌 2년 연속으로 20홈런을 기록했으며 타율 0.266 21홈런 80타점을 기록하며 전년도 대비 교타력에서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고 KBO 올스타전에 동군 1루수로 선발되어 경기에서는 역전 투런홈런을 날려 올스타전 MVP를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합니다.2006 시즌 이대호는 실력이 일취월장합니다.15kg가량 감량하고 돌아온 이대호는 선구안이 비약적으로 개선되면서 타율, 타점, 홈런 세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였는데 이는 1984년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이만수가 세운 이후 22년 만의 트리플 크라운 달성으로 이때서부터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강타자로 인정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괴물 신인 투수였던 류현진도 투수 트리플 크라운을 석권했던 터라 MVP는 류현진에게 뺏기게 됩니다.2006년은 프로야구 사상 최악의 투고타저였던 해로서, 이대호의 홈런이 26개로 역대 최저 2위의 기록이기도 했습니다.
2007 시즌 이대호는 타율 0.335(리그 3위),29홈런,87타점,출루율 0.453(3위),장타율 0600(1위)를 기록하는데 이 시즌의 wRC+는 194.2인데 이대호 커리어 하이시즌인 2010시즌(192.4)이나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한 2006시즌(192.4)보다 높았습니다.2008년에는 초반 타점머신으로 잠깐 군림하였으나, 여름에 들어서자 타격 감각이 급격히 떨어지는 현상을 보였고 2007년에 비해 크게 불어난 체중과 당시 홈런과 장타율에서 리그 선두를 달리던 김태균과 포지션이 겹치는 문제 등으로 올림픽 대표 선발에 여러 잡음이 있기도 했습니다.그러나 올림픽 직전 올스타전에서 기적적으로 타격 감각을 회복한 이대호는 2008 베이징 올림픽 경기에서 홈런 3개, 10타점, 0.360의 타율을 기록하였고, 특히 장타율이 0.760에 달하는 등 큰 활약을 보여주며 한국 야구팀을 준결승으로 이끌었으며 준결승까지 극도의 부진을 보이던 이승엽의 상태를 고려해 봤을 때 이대호의 활약이 아니었으면 준결승 가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지만 준결승과 결승에서의 이승엽의 결정적인 홈런으로 인해 묻힌 감이 있습니다. 사실 올림픽을 비롯한 각종 국가대표 성적에서 이대호가 이승엽보다 홈런은 적었지만 타율은 월등히 좋았습니다. 2008년 이대호는 데뷔 최초로 포스트 시즌을 경험하지만, 경험 부족을 드러내며 4위 팀 삼성에 3연패를 당해 탈락하고 맙니다.이대호의 2008 시즌은 타율 0.301, 18홈런, 94타점(리그 3위), OPS 0.879(리그 7위)를 기록했습니다.2009 시즌은 타율 0.293, 홈런 28(리그 4위), 타점 100(리그 3위), OPS 0.908(리그 11위)를 기록했으며 개인 통산 150홈런을 달성하기도합니다.2010 시즌은 이대호 개인 뿐 아니라 KBO 리그를 거쳐간 타자들 중 역대급으로 손꼽히는 커리어하이 시즌으로 무려 타격 7관왕 달성, 9경기 연속 홈런 등 이 모든 기록이 2010년 단 한 시즌에 나온 기록으로, 이대호의 많은 커리어하이 시즌 중에서도 가장 최고의 커리어를 남긴 시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21세기 최고의 타자 시즌으로 2015년의 테임즈와 함께 꼽히기도 합니다.2011 시즌 역시 이대호는 타격 7관왕을 차지한 2010 시즌에 이어 타율, 최다안타, 출루율에서 1위를 차지하였는데 타격왕 타이틀은 2010년에 이어서 2연패. 타격왕 2연패는 1992년 빙그레 이글스 이정훈에 이어 19년만에 나온 기록으로 오른손 타자로는 최초의 기록이었습니다.시즌 최종성적은 133경기 493타수 176안타(2루타 26, 3루타 1) 27홈런 113타점 2도루 63볼넷 60삼진 타율0.357 .433 .578을 기록했습니다.
2011 시즌을 끝으로 이대호는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 버팔로즈와 2년간 총액 7억엔(105억 원)에 계약을 하고 일본으로 진출합니다.이대호는 NPB 무대 데뷔 시즌부터 완벽히 적응한 모습을 보이며, 전 경기 출장에 리그 OPS 1위를 달성했는데 시즌 개막 후 4월이 지날 무렵까지 한국산 먹튀의 계보를 잇는다는 말이 나왔으나, 5월부터 페이스가 오른 이후로는 실질적으로 오릭스 타선을 거의 혼자 이끌었으며 오죽하면 이대호와 여덟 난장이의 재림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팀내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중 득점과 도루를 제외한 전부문 1위를 달렸으며, 주자가 나가기도 힘든 상황에서 퍼시픽리그에서 압도적인 타점왕을 달성하였습니다.2012년 최종 성적은 525타수 150안타(5위), 타율 0.286(10위), 24홈런(공동 2위), 91타점(1위),볼넷 64개(3위), 출루율 0.368(4위), 장타율 0.478(2위), OPS 0.846(1위).그것도 일본야구 교류전을 포함한 144경기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 뛰고 거둔 성적입니다.2013 시즌 일본 프로야구 2년차 성적은 141경기 521타수 158안타(리그 8위) 2루타27(리그 8위) 24홈런(리그 6위) 91타점(리그 6위) 70득점 사사구70(리그 8위) 타출장 0.303(리그 9위)/0.384(리그 8위)/0.493(리그 7위) OPS 0.878(리그 6위) WAR 4.2,시즌 초반부터 맹타를 휘두른 덕에 전체적으로 2012년보다 살짝 더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비록 시즌 막바지에 스탯을 많이 까먹었지만, 최정상급 성적을 거뒀습니다.이대호는 2013년 12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3년 19억엔 계약을 체결했습니다.오릭스에서의 2시즌의 활약에서 보면 알수 있듯이 일본 리그에 상당히 적응된 모습을 보여준데다가, 소프트뱅크 역시 이대호가 항상 말했듯이 우승을 노릴 수 있는 강팀이었기에 많은 팬들을 기대하게 하였지만 시범경기 초반 1할대의 타격 부진에 시달리며 불안감을 안겼으나 막판에 홈런을 치는 등 살아나는 조짐을 보였으며 시범경기 최종 성적은 0.250 1홈런 4타점. 이번 시즌부터는 타격 집중을 위해 1루수 대신 지명타자로 출장하는 비중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2014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0.300(6위), 안타 170개(2위), 2루타 30개(5위), 홈런 19개(공동 8위), 68타점(12위)를 기록했으며, 소프트뱅크가 정규리그 최종전을 이기면서 커리어 처음으로 정규시즌 우승 경력을 추가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타점 부분에서 기대 이하라고 할 수 있었는데 소뱅이라는 강팀에서 뛰는 중심 타자가 타점이 68점 밖에 안되는 것은 분명 아쉬운 성적이었습니다.
일본 프로야구 4년차 소뱅 2년차에 접어든 이대호의 2015 시즌 성적은 타율 0.282 31홈런 98타점 OPS .892로 마무리하게 되었는데 8월까지만 하더라도 타율 3할 30홈런 100타점 OPS 0.9대는 충분히 기록할 것으로 보였으나, 9월에 4월을 능가하는 부진을 겪으며 성적을 깎아먹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대호는 이후 펼쳐진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지바 롯데 마린스와 붙게되는데 시리즈 3경기에서 5번 타자로 출장하여 2경기 연속 홈런과 멀티히트를 기록하면서 다시한번 PS의 사나이임을 증명. 우치카와와 함께 팀의 2년 연속 일본시리즈 진출에 큰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파이널 스테이지의 종합 성적은 0.417(12타수 5안타) 2홈런 4타점을 기록하며 일본시리즈에서는 야쿠르트 스왈로즈와 맞붙게 됩니다.이대호는 일본시리즈 5경기에서 16타수 8안타 2홈런 8타점을 기록하며 불방망이를 휘둘렀으며 이대호의 8타점은 5경기로 끝난 일본시리즈 가운데 최다타점 신기록으로 2차전, 4차전, 5차전까지 결승타 3개를 날렸고, 이는 단일 시리즈 최다 타이 기록으로 1990년 세이부 쿠바출신 데스트라데 이후 25년만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결승 홈런 2개는 2004년 와다 가스히로 이후 11년만에 6번째 기록이었습니다. 결국 소프트뱅크가 2년 연속 우승에 성공했고, 이대호는 일본시리즈 MVP로 선정되었는데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이며, 외국인 선수로서는 1996년 오릭스의 트로이 닐 이후 19년만의 일이며 역대 8번째였습니다.이대호는 일본 퍼시픽리그 4년 통산 타석 1위, 타율 4위, 홈런 3위, 안타 2위, 타점 2위, OPS 1위(출루율 3위, 장타율 1위), wOBA 2위, WRC+ 2위, OPS+ 2위를 기록하는 등 역대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 한국 타자들 중 가장 수준급의 성적을 거두고 일본시리즈 MVP까지 차지하며 꿈을 위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하게 됩니다.
일본 시리즈 제패와 시리즈 MVP 수상 등 이대호에게는 돈방석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꿈을 위해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택한 이대호의 상황은 녹록치 않았으며 결국 시애츨 매리너스에서 플래툰 시스템으로 시작하게 됩니다.이대호는 시범경기에서 24경기 53타수 14안타 2루타 4개 1홈런 12득점 7타점 4볼넷 9삼진, 타율 0.264 출루율 0.328 장타율 0.396 OPS 0.724의 성적을 거두었고 정규 시즌에서는 전반기 35세 신인왕 후보라는 평가를 받을만큼 전반기 타율 .288 OPS 0.844 wRC+ 130으로 비록 플래툰이긴 해도 전반기는 매우 잘했다고 볼수 있지만, 후반기 부진(타율 .200 OPS 0.582)으로 상당히 깎아먹었으며 메이저리그 최종성적은 317타석 292타수 74안타 14홈런 49타점, 볼넷삼진 20/74,타율 .253 출루율 .312 장타율 .428 OPS .740, wRC+ 103, OPS+ 102. fWAR 0.3 bWAR 0.3을 찍습니다.애초에 이대호는 늦은 나이와 신뢰성 때문에 플래툰 계약을 맺고 1군 백업 멤버라는 패널티와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들쑥날쑥한 기용 속에 활동했으며, 플래툰이었던 이대호에게 WAR 수치만 놓고 본다면 큰 오류인 것이 1루수란 포지션 특성상 조금 더 임팩트를 강하게 보여줘야 했으나 엄청났던 전반기에 비해 손목 부상등을 당한 후반기에 부진했으므로 아쉬운 뿐입니다.이 시즌을 끝으로 2017 시즌 4년 총액 150억으로 계약하고 고향 롯데 자이언츠로 돌아온 이대호는 3할-30홈런-100타점이라는 4번타자로서는 좋은 성적을 거두고 개인 통산 6번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습니다.2018시즌 총 144경기에서 타율 0.334,181안타,37홈런,125타점(2위)의 성적을 찍으며 시즌 후 지명타자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면서 개인 통산 7번째 황금장갑을 손에 넣었으며 동시에 장종훈,양준혁 이후 세 번째로 3개의 포지션에서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선수가 되었습니다.2019 시즌에 이대호는 타율 0.285,16홈런,88타점의 성적을 거두고 팀은 15년만에 꼴찌를 달성하면서 최악의 시즌을 보냈습니다.2020 시즌 이대호는 불혹을 앞둔 나이임에도 전 경기에 출장하면서, 작년보다 확실히 나아진 성적을 기록하였으나, 나이는 속일 수 없는지 파워가 천천히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습니다.최종성적은 144경기에서 타율 0.292,20홈런,110타점을 올립니다.2021 시즌은 2년 총액 26억(연봉 8억, 계약금 8억, 우승 옵션 매년 1억)의 FA계약의 첫해로 노쇠화에 따라 114경기에서 타율 0.286,19홈런,81타점을 거두며 에이징 커브에 따른 타격 저하 우려가 현실화됩니다.2022 시즌 결국 이대호는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지만 은퇴 선언이 무색하게 은퇴하는 선수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맹활약하며 나이를 거꾸로 먹은듯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최고령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한, 본인의 마지막 시즌에 자신의 또 다른 커리어하이를 만들며 마지막 불꽃을 제대로 태웠는데 시즌 최종성적은 143경기 출장 타율 0.331(4위),179안타(4위),23홈런,101타점(4위)를 기록합니다.그렇게 온퇴시즌을 화려하게 장식한 이대호는 예능 프로 최강야구에서 다시 4번타자를 맡아 또다른 재미를 선사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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