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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다 소카쿠의 대동류 합기유술 VS 우에시바 모리헤이의 아이키도 VS 최용술의 합기도

by 마음heart 2023.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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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다 소카쿠의 대동류 합기유술 VS 우에시바 모리헤이의 아이키도

 VS 최용술의 합기도



다케다 소카쿠로 시작한 대동류 합기유술(大東流合気柔術)은 일본의 근대 무술로 메이지 시대에 다케다 소카쿠(武田惣角)라는 무술의 명인이 세상에 전파 했으며,합기(合氣) 계열 무술들의 시초가 되는 무술이기도 합니다.합기(合氣)란, 신체를 효율적으로 써서 힘을 낸 뒤 상대방의 중심(밸런스)을 무너뜨리는 것을 뜻하는데 쉽게 말해 힘을 내는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다만 전문가끼리도 조금씩 개념 차이는 있는데 대동류는 처음엔 '대동류 유술'이라고 칭하였는데, 명칭에 '합기'란 단어가 들어간 첫 문헌은 다이쇼 11년(1922),다케다 소카쿠가 우에시바 모리헤이에게 수여한 목록에서 처음 쓰입니다.대동류 합기유술과 아이키도에서 이야기하는 현대적인 의미의 합기라는 명칭은 다케다 소카쿠가 오모토 본부에 있는 모리헤이의 거처를 방문했을 때 등장했는데 오모토의 성사(聖師) 데구치 오니사부로가 '합기'를 무술의 이름으로 칭하도록 모리헤이에게 권하였고, 모리헤이가 '합기'를 대동류의 이름에 가미할 것을 소카쿠에게 권유, 소카쿠도 동의하여 '대동류 합기유술'이라고 명명했다고 합니다. 다케다 소카쿠는 그 이전부터 합기에 대해 몸으로는 알았지만, 이 개념을 무술의 명칭에 직접적으로 붙이도록 제안한 사람은 우에시바 모리헤이이며 우에시바 또한 아이키도 창시 초기에는 대동류 합기무도(大東流合気武道)라고 명명하려 했으나, GHQ게 지적당하여 아이키도로 했다고 합니다.

유술의 계보


대동류는 한국 합기도(合氣道)와 일본 아이키도(合気道)의 원류 격이 되는 무술이기도 하지만 현재의 시장성 자체는 아이키도에 밀립니다.한국 합기도 1대 도주 최용술의 전성기 때 합기도나 아이키도의 창시자 우에시바 모리헤이,요신칸 아이키도 유파 관장 시오다 고조의 전성기 때 아이키도가 대동류 합기유술과 흡사했지만 다만 세월이 흘러 현대의 한국 합기도는 유술 외에 하이킥 등 타격기, 쌍절곤과 지팡이 등의 무기술 그리고 공중제비, 텀블링 등의 낙법까지 다루는 종합 무술로, 우에시바 모리헤이의 아이키도는 2대인 우에시바 기쇼마루 시기부터 상호 간의 공격과 상해의 위험성을 배제한 아이키도로 변모했는데 아이키도가 기본 원리를 중심으로 (철학성을 포함해) 배우기 쉽게 기술을 대폭 줄였다면, 대동류는 기본 원리에서 나오는 여러 동작들을 죄다 술기로 쳐서 수천가지가 나온다고 합니다.시오다 고조의 요신칸 유파나 한국의 용술관 정도가 그나마 일부 비슷하게 남아있다고 합니다.대동류 합기유술의 경우 아이키도에 비해 보법이 제한적으로 움직이는데 다다미 1척 내 같은 좁은 상황에서 상대를 제압한 뒤 단도 등으로 급소를 확실하게 찌르는 상황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아이키도는 상대를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한 무술이기 때문에 상대의 사각(측면)으로 움직이며 제압하므로 움직임이 대동류에 비해 다이내믹한 편입니다.또한 대동류 합기유술은 주짓수와도 의외로 궁합이 좋은편인데 물론 대동류는 서서 하는 입식 유술이고 주짓수는 누워서 하는 와식 유술이지만, 주짓수의 클로즈, 버터플라이, 스파이더 등 가드 상황과, 탑에서의 레그 드래그나 압박 패스 등 이런 것들이 대동류에 어떤 기술에 해당하는 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 편입니다. 대동류에서 손을 쓰는 경우를 주짓수에선 손 대신 발을 쓴다던지, 대동류에선 다리를 간접적으로 통제하는데 주짓수에선 직접적으로 통제한다던지 등. 어느 정도 상황에 맞게 변형되어 활용되지만, 결국 힘을 쓰는 원리라던지 상대방의 밸런스를 컨트롤하는 원리는 유술이라는 측면에서 비슷하기 때문에 대동류 수련자 중에는 주짓수를 같이 배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동류 합기유술의 기원과 역사_①문외불출(門外不出)고류무술설

대동류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지만 대표적인 설 세가지를 소개하지면,첫 번째는 다케다 가문에 전해 내려온 문외불출(門外不出)의 고류무술이라는 설입니다. 이 설에 따르면 대동류는 미나모토노 요시미츠(新羅三郎 源義光, 1045–1127)를 시조로 하여, 아이즈 번 내에서만 대대로 전해 내려 오다가 메이지 시대에 와서 타케다 소카쿠(武田惣角, 1859–1943)가 세상에 내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근현대 일본 무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 무술이 소카쿠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의문이 생기는데 이 때문에 가전(家伝)으로만 전승되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원래 아이즈에는 오토메(御留)라 불리는 타 지역(藩)으로의 유출을 금지 하는 유술 유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타케다 소카쿠의 제자로서 타케다 소카쿠로부터 종가의 자리를 자칭하던 사가와 유키요시(사가와 유키요시는 대동류를 타케다 소카쿠보다 더 뛰어나게 구사했다는 설도 있을만큼 일본 무술 역사상 최후의 달인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개인 도장인 사가와 도장(佐川道場)을 운영했지만 세력을 확장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후에 타케다 소카쿠의 셋째 아들 다케다 토키무네(武田時宗)에게 '종가'라는 타이틀을 양보한 뒤 토키무네로부터 '종가의 사범'이라는 뜻인 종범(宗範)으로 추대되었습니다.사가와 유키요시가 숨을 거두면서 외국인을 제자로 받지 말라고 유언했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비밀스럽게 기술을 전수한다)는 대동류는 소카쿠가 창시한 무술이라고 생각한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특히 그는 대동류가 무장 정도나 배울 법한 무술이었다고 주장했는데 물론 최악의 상황이라는 경우가 존재하지만, 상식적으로 집단의 대표가 그 옆에 호위 수행원을 거느리지도 않고 불시에 기습하는 자들과 업치락뒤치락 싸울리가 없기 때문이며 참고로 많은 유술 유파들이 자기네 시조가 미나모토 요시미츠라고 주장하는데 소카쿠는 무호(武號)로 원정의(源正義:미나모토마사요시)를 사용했으며, 오쿠야마 류호는 자신의 가문이 奥之山源(오쿠노야마 미나모토)에서 비롯됐다고 하며 타케노우치류(竹内流) 또한 미나모토 요시미츠(源義光)가 시조라고 합니다.

▣대동류 합기유술의 기원과 역사_②타케다 소카쿠 창시설

두 번째는 대동류가 타케다 소카쿠가 창시한 무술이라는 설로 소카쿠는 오노하일도류,시부카와류, 직심영류 검술, 혹은 경심명지류 검술을 배웠다는 추측적인 이야기가 있는데 암튼 여러 무술을 배운 듯하며, 대동류는 소카쿠가 배운 이러한 기술을 종합해 창시한 신흥무술이라는 주장으로 야규신카게류나 혹은 그에 파생된 천심류 병법의 유술기에서도 앉아 사방 던지기와 비슷한 술기가 보이지만 신카게류에서 파생된 텐신류는 오래 전에 절전되었고, '천심류병법'이라는 유사한 이름을 사용하는 유파는 신카게류와는 전혀 다른 보여주기식 발도술 위주의 기술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천심류측에서 고류 무술이라고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실상은 일본의 액션 전문 배우들이 창시한 신생유파입니다. 따라서 해당 유파가 대동류나 아이키도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훨씬 큰데 빠르게 날아오는 BB탄, 테니스공을 베어내는 영상으로 해외에서도 유명해진 마치이 이사오(町井勲) 사범도 이 가짜 고류에 대해 여러차례 비판적인 글도 썼을 정도입니다.대동류가 타케다 소카쿠가 창시한 무술이라는 설을 뒷받침하는 근거 중에는 1967년에 발행된 <아이즈 검도지>가 있는데 <아이즈 검도지>에 따르면, 당시 옛 아이즈에 존재했던 무술을 모두 조사하였으나 합기나 대동류라는 이름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또한 제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소카쿠의 가르침에는 여타 고류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예법'이 일절 포함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는 사가와 유키요시의 증언에 따른 것이고 아들 다케다 토키무네(武田時宗) 계열은 예법을 매우 강조하지만 연구자들은 이를 근거로 사실상 소카쿠 당시에는 '독립된 유파로서 성립되는 과정'에 있지 않았는가 보기도 합니다.현재 일본 무술계에서는 '타케다 소카쿠가 창시한 무술'로 보는 시각이 유력한데 타케다 소카쿠는 10대 후반 무렵부터 무사수행으로 전국을 정처없이 떠돌아 다녔고 30대 이후엔 자신이 머물렀던 여러곳에서 대동류 합기유술을 교습하였습니다.

▩대동류 합기유술의 기원과 역사_③신라무술 유래설

세 번째는 한국 합기도 단체에서 말하듯 신라에서 유래된 무술이라는 설입니다. 이 설의 시초는 최용술의 증언으로 그는 생전에 다케다 소카쿠가 이 무술은 본래 너희나라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이후 지금까지 이어지는 논란을 낳았는데 그는 임종시에도 이 발언이 사실이라 증언했다고 합니다. 이에 합기도 한국 기원설은 여러 다양한 떡밥을 낳았는데 신라에서 화랑이 수련하던 무술이'화랑도'라는 별개의 무술로 발전했다고 주장하는데 당연히 근거는 없지만 이 무술이일본으로 건너가 대동류 합기유술로 발전했고 그 대동류를 다시 최용술 도주가 한국에 가져와서 합기도로 재탄생시키게 되었다라는 이야기 등으로 발전했는데 합기유술 관련 서적(제목 불명)과 도미키 켄지 교수(유도의 창시자와 아이키도의 창시자에게 각각 유도와 아이키도를 배운 인물로 유도 8단, 아이키도 8단이다. 스포츠화에 성공한 유도를 보고 아이키도의 스포츠화를 시도했으며 시합이 존재하는 쇼도칸(도미키) 아이키도 유파를 설립했다.)의 논문에서 원씨 성의 신라인이 왜로 넘어와 무술을 가르쳤는데 이것이 발전하여 대동류가 되었다고 언급됩니다. 신라삼랑원의광(新羅三郎源義光), 즉 미나모토 요시미츠는 사실 신라인이라고 보는 견해로 도미키 켄지가 대동류가 다케다 스승의 주장에 의하면 신라 사부로 미나모토 노 요시미츠를 시조로 하는 무술이니(다만 현대창작설에 따르면, 걍 다케다가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뻥카를 쳤을 가능성이 크다. 당장 다케다는 본인의 가문도 신분세탁한 정황이 연구자들에게 언급되고 있다.) 대륙에서 건너온거 아닌가 비슷한 가설을 논문에 썻는데, 한동안 한국 합기도계에서 이 가설을 열심히 인용하여 입맛에 맞게 여러개를 첨가했지만, 지금은 모두 사장됐습니다. 첨가한 내용들은 판타스틱한 내용들이 다채롭게 존재하는데 미나모토 요시미츠가 성인식때 신라 사부로 라는 이름이 붙었기 때문에 신라인의 양자라던가, 아예 현해탄을 넘어와 신라에서 활동한 신라인이라던가하는 설로 신라명신(新羅明神) 앞에서 성인식을 치루어서 붙여진 이름일 뿐, 신라인 운운은 낭설에 불과한데 애초에 미나모토라는 성은 덴노 가문에서 신적강하한 사람들에게 주는 탑클래스 귀족의 성이었는데 물론 당시 일본 열도에 살던 사람들에게 통일신라와 백제가 대단한 곳으로 보였던 건 사실이지만,신라계 원씨가 일본에서 활동했다 쳐도 모계만 신라인이라던가 무시무시한 공이라도 세웠다면 모를까, 꼴랑 같은 한자로 된 성을 가졌다고 해서 다른 나라 사람을 인정해줬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실제로 맏형 요시이에는 하치만궁에서 성인식을 치루어서 하치만타로,둘째 요시츠나 또한 카모지로라고 불렸습니다. 삼랑(三郎)은 셋째 아들이지, 단군신화와 관련이 없습니다. 게다가 신라시대부터 소가쿠가 활동할 메이지 시대까지 화랑도가 아무 유명세도 없었다는 것이 의심스러운데 이 설은 '태권도 전통무예설'처럼 합기도의 유래를 우리 것으로 위장하기 위한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며 용술관을 방문해 술기를 겪어보고 칭찬한 대동류 성심관의 관장대리 후쿠오카 마사미도 이런 설에 대해 일제의 잔재라 할 수 있는 영광사관을 한국인들이 따르는 것은 안타깝다는 견해를 내비친 바 있습니다.최용술 도주나 장인목 선생은 각자의 스승으로부터 대동류가 한반도에서 건너왔다는 걸 자주 들었다고 언급했는데, 반일 정서가 심한 한국에서 교육하기 위해 뻥을 쳤거나 아님 대동류의 시조에 신라(新羅)라는 이름이 들어있는 부분을 과하게 해석한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대동류 합기유술 유파
●대동류 합기유술 종가(宗家);

현재 종가를 주장하는 단체가 다케다 토키무네의 이복형제의 후손인 다케다 무네미츠(武田宗光)와 토키무네의 친동생인 동명이인 다케다 무네미츠 그리고 다케다 토키무네 노제자들의 성심회 계열, 다케다 마사노부 등등, 혼돈의 도가니이다.

다케다 토키무네에게는 아들이 없고 딸만 둘이었다. 토키무네의 말년에 차녀 요코야마 노부코(横山信子)가 단증발급 등의 문서 작업을 하였고, 콘도가 대동류 강습과 심사를 지속하였다. 요코야마 노부코는 이 사태에 대해 관여하길 거부하며 자기 아들에게는 대동류를 가르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빠지자, 장녀 오시마 요코는 남편 오시마 마사노부의 성을 타케다로 바꾸는 강수를 두며 종가의 대표로 인정을 요하는 법적 행동을 취하지만, 패소하고 만다. 후쿠오카 부관장에 따르면, 그 손자는 성심회에서 수련하였다고 한다.
●대동류 합기유술 탁마회(琢磨会)

현재 탁마회(타쿠마카이)의 지부였던 야마토카이는 기술의 동영상을 활발하게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야마토카이는 현재 독립하였다.
●대동류 합기유술 행도회(幸道会)
●대동류 합기유술 연심관(練心館)

연심관(렌신칸)은 타케다 소카쿠 - 마츠다 토시미 - 마에다 타케시 - 타카세 미치오로 내려오는 소위 '마츠다 덴' 계보로, 연심관이라는 이름은 마에다 타케시 선생이 붙인 것.
●팔광류(八光流) 유술

타케다 소카쿠의 직제자인 마츠다 호사쿠, 즉 마츠다 토시미의 제자 오쿠야마 류호가 설립한 유파로 합기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금강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서향파(西郷派) 대동류 합기무술

타케다 소카쿠의 대동류 합기유술과는 역사적 접점이 없고 이름만 같다. 이전에 이 단체가 타쿠마카이(琢磨会)에서 수련을 했기 때문인데, 아이즈(会津)의 최고위직인 가로(家老)였던 사이고 다노모(西郷頼母)가 다케다 우에몬 (武田右衛門)에게서 아이즈 지역의 오토메 유술(御留柔術), 그 중에서도 오시키우치(御式内)와 음양술을 배워 후일 우에몬의 손자인 타케다 소카쿠를 가르쳤던 것과, 그의 양자인 사이고 시로가 강도관에서 파문당한 이후, 잠시 유술을 가르쳤던 것을 이용하여 사이고 시로를 시조라 하여 법적 분쟁에서 회피하려 한 것.현재는 독립된 단체임을 표방하기 위해 유(柔) 대신 무(武)를 사용한다고 한다. 특히 타쿠마카이에서 서향파에 대해서 매우 언짢게 생각한다. 대동류 종가에서도 서향파가 타쿠마카이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베꼈다며 한동안 법적 분쟁이 발생할 뻔했다.실력만큼 직설적인 화법으로도 최고의 달인이라 할 수 있던 사가와 유키요시에 따르면 사이고 다노모는 무력(武歷)이 신통찮았을 것이라며, 지금의 대동류 합기유술은 온전히 타케다 소카쿠 증흥조 덕분이라고 확언한다.

■다케다 소카쿠의 대동류 합기유술과 우에시바 모리헤이의 아이키도 및 최용술의 합기도 관계와 차이점

아이키도의 시조 우에시바 모리헤이는다케다 소가쿠에게 면허개전은 못받았지만 교수 대리는 받았는데 고류에서 이야기하는 개전이란 모든 것을 다 가르쳤다는 뜻이고 면허개전은 졸업증서로 보면 됩니다. 다만 타케다 소카쿠는 제자의 실력과는 별개로 면허개전을 쉽게 발행하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수제자로 꼽히는 사가와 유키요시는 물론, 임종을 지킨 야마모토 카쿠요시나 자기가 후계자로 인정한 아들인 다케다 토키무네까지 모두 교수 대리만 허가하였을 뿐 면허개전을 발급하진 않았습니다. 타케다 소카쿠에게 면허개전을 받은 인물은 1930년대 아사히 신문사 직원 수련 교육할 당시 전수받은 히사 타쿠마(久琢磨)와 토네다치 마사오(刀祢館正雄) 두 사람뿐인데 이때 히사 타쿠마는 다케다 소가쿠한테 집 세 채 정도 되는 돈을 지불했다는 소문도 돌았는데 덕분에 대동류 졸업증 소유자를 두 명 소유한 언론사가 되기도 합니다.하여튼 우에시바 모리헤이는 대동류 합기유술과 자신이 배운 다른 여러 무술 키토류 유술(유도의 모체 중 하나), 신카게류 검술, 야규신카케류 검술(면허개전), 가토리신토류 등 여러 무술을 배웠으며 당시 유명한 신흥종교 오모토(大本)의 사상을 결합하여 아이키도를 창시했습니다.다만 종교성은 2대 우에시바 기쇼마루 도주로 내려오면서 많이 희석됩니다.
대동류 합기유술과 아이키도의 대표적인 차이점이라면 대동류는 발놀림 즉, 보법(스텝)이 아이키도에 비해 매우 제한적이며 아이키도에는 사바키라는 상대의 측면으로 돌아들어 가는 보법이 존재하는데, 사실 대동류에도 사바키가 있습니다.다만 선호하질 않을 뿐. 정확히 말하면 아이키도의 타이사바키는 몸 전체의 움직임으로 회피하면서 패링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법이 존재하는 것이고, 대동류는 상반신의 움직임 위주로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발의 움직임이 작거나 별로 없는 것인데 이런 차이가 나는 이유는 아이키도는 대도(긴 칼)를 가정했을 때의 움직임에 가깝고 대동류는 소도를 가정했을 때의 움직임과 비슷한 부분이 있기 때문으로 참고로 아이키도는 고류 검술을 병행 하며 수련 하지만, 대동류는 검술 수련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 라는 유파들이 많으며 또 다른 차이점으론 아이키도에는 수신이라는 구르는 낙법이 있지만 대동류에는 낙법이 원래 존재하지 않았지만 현재는 대동류가 여러 유파로 나뉘었기 때문에 낙법을 도입한 유파들도 있습니다.기술적인 부분에선 아무래도 대동류에서 아이키도가 파생되었기 때문에 같은 기술들도 많지만 같은 기술이라도 디테일적인 부분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2019년 한국의 대동류합기유술, 아이키도 사범들이 만나 나눈 아이키도 VS 대동류 합기유술 썰전에 의하면, 기술적으로 큰 차이는 없지만 디테일에선 차이를 보이는데 상대를 배려 하며 기술을 거는 아이키도에 비해 대동류는 과격하게 거는 편입니다.대동류는 그 기본 원리에서 나오는 수많은 동작들을 다 술기로 쳐서 수천가지가 나온다고 아이키도 입장에선 머리 아프다고 말했으며 대동류 사범들은 아이키도의 종교적인 부분이 무술 자체와는 큰 연관이 없어보인다고 지적했고 아이키도 사범도 자기 무교라며 동의했습니다.오늘날 일본에서 대동류 합기유술은 아이키도보단 시장성이 밀리기 때문인지 대동류 관련 학계 연구도 아이키도 연구자들에 의해 원류격 무술 형태로 이뤄지는 측면도 있습니다.한편, 한국에선 또다른 의미로 주목받는 무술인데, 왜냐하면 한국 합기도 1대 도주 최용술이 직접 다케다 소가쿠한테 대동류 합기유술을 배웠고 심지어 양자, 수제자로 지냈다는 식의 말도 했기 때문이지만 이에 대해선 오늘날까지도 갑론을박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배우긴 했다까진 인정되고 있는 분위기. 다만 오늘날 한국 합기도는 최용술이 전파한 무술과도 형태가 많이 달라져 대동류 합기유술과는 거리가 많이 먼 한국 창작 무술 비슷하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또한 아이키도는 일본의 국기 유도와도 큰 차이점을 드러내는데 아이키도와 달리 유도는 서로간 대치상황일 때 간합(자신과 상대방의 거리)이 다르다는 점인데 둘 다 배운 도미키 켄지(각 창시자들에게 배웠다.각각 8단. 쇼도칸(도미키) 아이키도 유파를 본인이 직접 설립도 했다.)유도를 '가까운 아이키도', 아이키도를 '떨어진 유도'라 하여 상호보완하는 관계라고 말했는데 현대 유도는 시합과 대련을 중심으로 커리큘럼이 짜여져 있고 이에 숙달되면 대부분의 대체 상황에선 그냥 유도 기술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굳이 중요하게 가르치지 않지만, 의외로 강도관의 호신술 카타는 아이키도의 그것과 흡사한데 특히 손목에 거는 기술이.아이키도의 시합은 유도와 달리 간합이 멀기 때문에 거리 개념이 있으며 스텝이 존재합니다. 기술적인 차이점은 유도는 주로 상대의 품안으로 들어가서 거는 기술이 많지만, 아이키도는 상대가 무기를 들었다고 가정하기 때문에 상대의 품이 아닌 팔 바깥쪽으로 가서 거는 기술들이 많습니다.

아이키도의 유도의 차이점

●유도 수련에서는 준비운동 과정에서 앞구르기부터 뒤구르기,옆돌기 등 기계체조 과정을 같이 하는 경우가 많으나, 아이키도는 발움직임과 수신연습만 한다.

●유도의 낙법은 전방낙법,후방낙법,측방낙법 순으로 배우고 이 3가지 모두 능숙하게 할 수 있을때까지 기술을 가르치지 않으나 아이키도는 수신이 서툴러도 기술을 알려주는 편이다. 물론 1교와 같이 고착기로 마무리짓는 기술로 시작하는 편이며, 던지기를 하더라도 초심자이므로 매우 살살 던진다.또 초심자는 시간이 남으면 계속 수신연습을 해야 한다.수신을 못하면 아이키도는 못하는 것이다. 아이키도는 전방회전낙법과 비슷한 형태의 수신을 배운다

●유도는 옷깃에 손가락을 걸어 던지는 기술이 많지만 아이키도는 대체로 그런 기술은 없다.

●유도는 무기술을 일체 배우지 않으나 아이키도는 검과 장을 배운다.

●유도 커리큘럼에서는 합기라는 개념이 없다. 버피나 튜뷰 당기기 등 체력운동을 거의 매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키도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유도는 상대를 넘어트리는 과정에서 '8방 기울이기'라는 개념에 대해서 배우나 아이키도에서는 그러한 개념을 가르치지 않는다.

●아이키도 기술이지만 '허리 던지기'와 같이 유도기술과 매우 비슷한 느낌이 나는 기술도 있다

도복의 경우 대한 합기도회에서는 유도복에 왼쪽 어깨 쪽에 이름을 자수하고 등뒤에 협회 마크를 달아 입으며 유단자는 그 위에 하카마(袴)를 입습니다.검도는 아무것도 입지 않고 하카마만 착용하지만, 아이키도는 일반 도복 바지를 입고 하카마를 착용하며 유도는 청색도복, 주짓수는 청색 외 검정색 등 다양한 색상의 도복착용을 허용하지만 아이키도에서는 흰색 도복만 허용됩니다.유단자가 아니면 하카마를 입지 못하는 이유는 발의 움직임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선배나 지도자가 잘못된 발놀림을 바로잡아주기 위해 하카마를 입지 않는다는 설이 있습니다. 아이키도는 타이사바키(体さばき)라는 움직임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대동류 합기유술과 아이키도는 다른 무술에서처럼 승부를 겨루는 시합의 개념은 없으나 '연무대회'라는 것이 있어 자신의 기술과 기량을 여러 사람 앞에서 시연하는 행사가 있습니다. 또 고단자에게 기술을 배우는 세미나가 있는데 이런 교육에 참여하는 것이 자기 기량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되며 아이키도 기술이란 게 겉으로 보면 사람마다 비슷해 보여도, 실제로 잡아보면 오래한 사람일수록 숙련도에서 차이가 느껴진다고 합니다.예외적으로 스포츠 형태를 지향하는 도미키(쇼도칸) 아이키도(우에시바의 제자였던 도미키 켄지가 설립한 유파로 도미키 자신은 도미키 아이키도라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기존 도미키 아이키도의 협회인 일본 합기도협회와 여기서 독립한 쇼도칸 아이키도로 분열된 상태이다)처럼'스포츠화' 시켜서 시합과 대련을 하는 유파도 있습니다. 맨손 시합 뿐만 아니라 맨손 vs 단검을 가정한 시합까지 있기 때문에 도미키류를 최고로 인정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그 보다 더 규모가 작은 아이키도SA(Shoot-Aikido)와 하텐카이 아이키도 등이 있는데. 하텐카이 유파는 '풀컨택트 아이키도'를 표방하며 머리에 보호구를 쓰고 안면 타격까지 허용하는 룰도 있습니다.그외에도 타인과의 조화와 배려를 중요시하는데
연무 중 기술을 사용하는 이를 나게(投げ),기술을 당하는 이를 우케(受け)라고 부르는데 주로 나게는 파고 들어오는 상대방의 힘을 억누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제압하는 데 초점을 두며 우케는 들어오는 기술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컨트롤해서 수신(낙법)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수신은 유도의 낙법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데 특이한 점은 '무술시연'이라고 하면 보통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은 기술을 받는 사람을 괴롭게 하면 할수록 잘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아이키도에서는 그러한 행동을 좋지 못한 것으로 평가하며 아이키도는 다른사람과의 조화를 중시하며 다른 사람에게 큰 고통을 주면서까지 자신의 기량을 뽑내고 싶어하는 것을 미숙하다고 봅니다.대동류 합기유술이나 아이키도는 한국의 합기도,유도나 씨름 그리고 택견에서처럼 자신의 다리를 상대방 다리에 걸거나 발을 낮게 쓸어차거나 하는 기술이 없는데 이는 아이키도가 검술을 체술화하여 만든 무술이기 때문으로 칼이 있는 상대로 발차기를 하지 않듯 이러한 동작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입신,전환,회전,좌반신,우반신 등 발 움직임 같은건 초심자 때 많이 연습하는 편이기는 합니다.아대동류 합기유술이나 아이키도와 한국 합기도와의 커리큘럼의 차이를 들자면 한국 합기도에서는 발차기를 포함해 여러 맨손 타격기술을 배우지만 아이키도에서는 발차기를 수련하지 않고, 맨손 타격기 역시 일종의 아테미로서 어떤 상대의 움직임을 유도하려는 것일 뿐 수련과정에서 중요하게 다루지는 않습니다. 수련 내용에 많은 차이가 있다 보니 한국 합기도를 잘한다 내지는 오래 했다고 해서 아이키도 역시 잘한다고 볼 순 없으며 심지어 아이키도에서는 한국 합기도에 합기가 없다고 이야기하는데 90년대에 몇년간 합기도를 수련하며 검은 띠까지 받았던 필자의 기억으로도 한국 합기도는 종합무술의 형태이고 술기가 단계를 거쳐 올라갈수록 무궁무진해지기는 하지만 합기라는 개념 자체는 없는 것이 맞습니다.결국 국내 합기도를 잘한다고 아이키도를 잘한다고 볼 수는 없다는 의견이 맞으며 검도와 고류 검술 유파들과의 관계와 같은데 현대의 고류 검술 유파들도 검도 유단자라고 대우해주는 경우는 없다고 합니다.
아이키도를 배우는 과정에서 한국 합기도에서 익혔던 움직임을 모두 바꿔야 하며 또 아이키도에서 한국 합기도 유단자라고 해서 승급, 승단 심사를 좀 더 일찍 치르게 하지도 않습니다. 또 한국 합기도의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한 용술관 김윤상 도주도 아이키도와 합기도는 완전히다른 무술이라고 인터뷰하기도 했습니다. 

 

▤대동류 합기유술을 수련한 무술인들

극진공수도의 창시자인 최영의는 요시다 코타로에게 대동류를 배웠었다고 합니다.사실 최영의는 정통 가라테(송도관, 강유류)를 익혔을 뿐 아니라 유도귀신 기무라 마사히코와 교류하며 유도를 배우기도 했을 정도로 여러 무술을 섭렵한 무도인이었습니다.가범석은 유심회,극진공수도, 대동류 합기유술, 강유류 공수도 등 다양한 무술을 수련했습니다.김기태는 대동류 합기유술 연심관 한국지부장으로 대동류 비전목록을 받은 세 번째 한국인으로 첫 번째는 장인목, 두 번째는 김태욱. 이 두 사람은 일본에서 수련하여 목록을 받았으니 순수하게 한국에서 대동류를 수련한 인물로서는 김기태가 처음입니다.탁마회 전(前)간사장 코바야시 키요히로 선생(8단)도 사사하여 초단을 받고 탁마회 기술연구회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김태욱은 대동류 합기유술 한국인 최고단자이자 거의 모든 대동류의 계열을 수련하고 있으며 합기라는 단어만 들어가면 구매하는 대동류 매니아로 여담으로 대동류를 배우는데 검술을 익혀두면 좋겠지만 굳이 익힐 필요는 없다는 지론을 밝힌 바 있습니다.마츠다 토시미,본명은 마츠다 호사쿠(松田豊作)로 타케다 소카쿠의 제자로 대리교수를 받았는데 시기에 따라 대리교수 또는 교수대리로 면장을 발급했는데, 마츠다 토시미에게 발급한 면장은 비교적 초기의 것으로 '대리교수'로서 발급했다고 합니다. 마츠다 토시미 또한 제자들에게 '대리교수'로 면장을 발급했습니다.한국인 제자로는 장인목이 있으며, 현재 한국에 정식으로 지부가 들어와 있는 유일한 계열인 연심관이 마츠다 토시미 직전(直傳) 계열로 한국과 인연이 깊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사가와 유키요시는 타케다 소카쿠의 제자로 교수대리를 수여했습니다. 일본 무술계에서는 뛰어난 실력으로 일본 최후의 달인이란 칭송 되며 대동류가 쉽게 공개되는 것을 꺼리면서도, 남긴 어록이 많아 합기의 연구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호리카와 코도의 제자 오카모토 세이고,오쿠야마 류호 는 마츠다 토시미의 제자로 이후 팔광류 유술을 창시했는데 팔광류에서는 합기를 금강력이라 칭합니다.요시다 코타로는 소카쿠에게 아이키도 창시자인 모리헤이를 소개한 인물이자 흑룡회 출신으로, 최용술이 이 사람한테 대동류를 배운거 아니냐는 추정도 있습니다.요시마루 케이세츠는 사가와 유키요시의 제자로 합기의 과학,발경의 과학 책을 저술했으며 합기연체회란 단체를 만들어 따로 독립하였습니다.우에시바 모리헤이는 교수대리,즉 사실상의 수제자로, 각종 자료나 증언에 따르면 소카쿠는 모리헤이에게 유파의 대를 잇게 할 생각이었던 듯 합니다.장인목은 최용술 외에 한국에서 대동류를 가르친 또다른 인물로 생전에 대구에서 몇 차례 만났는데 첫 만남이 우연찮았는데, 장인목에게 지압을 받던 노파의 주선으로 만나 술기를 주고 받으며 놀랐다는 후문이 있습니다.마츠다 토시미의 제자로 홋카이도에서 대동류를 배운 뒤, 해방후 대구에 국무관을 설립하여 대동류를 가르쳤습니다. 합기도 통합 당시에도 참여하였으며 70년대 이후부터는 하카마를 제외하고 수련을 하도록 하였는데 다만, 대동류의 적극적인 전파보다는 접골원을 운영하는게 주 생계 유지였기 때문에 지압과 같은 건강유지에 집중하는 편이었다고 합니다. 제자로 장목구, 이성창, 박병관, 한종렬, 허일웅 등이 있는데 박병관은 최용술과 장인목 모두에게 배운 바가 있으며, 현재도 대구에서 활동 중인데 검도를 오랫동안 수련하였고 최용술의 곁에 끝까지 남은, 몇 안 되는 제자입니다. 특히 최용술 도주의 주먹지르기는 전부 검술에서 비롯된 자르기와 찌르기 형태임을 증명하기도 하였습니다. 최용술이 대동류를 언급한 적이 없으므로 대동류를 배운 것이 아닌 것 같다며, 스승이 까막눈이라 역사 왜곡을 하던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휘둘렸다고 주장하며 오히려 최용술의 스승은 '스님'이었다면서, 최용술의 소림사 권법 수련설을 퍼트리는데 큰 일조를 합니다.장인목의 비전목록은 현재 한국 명지대학교(明知大學校) 체육학과 명예교수로 재직 중인 허일웅이 소장하고 있습니다.한국 합기도의 1대 도주 최용술 본인은 매체에 따라서 타케다 소카쿠의 수제자 혹은 양자라고 주장하였지만 이에 대해선 갑론을박이 있기도 합니다.콘도 카츠유키는 다케다 토키무네의 제자로 토키무네에게 입문하기 전에는 타케다 소카쿠의 제자 호소노 츠네지로, 요시다 코타로에게 대동류를 배웠습니다.타케다 토키무네는 타케다 소카쿠의 셋째 아들로 기술은 호리카와, 면허는 히사, 실력은 사가와 라고 평을 한 바 있는데 후사를 콘도 카츠유키 관장에게 맡기고(사실상 3대 관장) 그에게 유일하게 면허개전을 허락하였습니다.말년에 아버지의 노제자들을 규합하여 대동류를 하나로 통합하려 시도하였으나, 무위에 그칩니다.호리카와 코도는 타케다 소카쿠의 제자로 교수대리를 수여했으며 제자들로부터 '영세명인(永世名人)'으로 추대되었습니다.히사 타쿠마는 타케다 소카쿠의 제자로 면허개전을 받았습니다. 원래는 1930년대 본인이 다니던 아사히 신문사에서 우에시바 모리헤이에게 아이키도를 배웠으나, 타케다 소카쿠가 신문사에 쳐들어가 "내가 우에시바의 스승이다. 기초는 그에게 배웠을 테니 이후부터는 내게 배워라." 하여 타케다 소카쿠 문하에 입문하였다고 합니다.그래서 탁마회(琢磨会)의 초전 술기는 아이키도,이후의 술기는 대동류의 형태가 되었는데 사실 히사는 이후에도 우에시바와 교류를 이어나가 아이키도 8단도 됩니다.

대동류 합기유술과 검도와의 실제 대련 영상

위의 동영상에서 입신을 활용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입신이란,사바키의 종류 중 하나로 상대의 공격선에서 벗어나는 전진 동작을 말합니다. 즉, 상대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는게 아니라 바깥쪽 사각으로 돌아 들어가는 것입니다.다만 대동류 합기유술을 굳이 검술과 엮어서 배워야 하냐에 대해선 사범간에도 의견이 엇갈리는 편으로 특히 소도가 아닌 대도는 굳이 유술과 엮일 필요 없다는 사범도 많습니다.

대동류 합기유술과 입식 격투기 선수와의 스파링 영상

한국의 종합격투기 팀인 팀매드의 양성훈 감독이 개최했던, 천하 제일 무술대회에 참가했던 최창희 선수와의 스파링 영상.

 

안면 펀치에 대한 대처법

이런 개념을 따르는 펀치 트래핑은 UFC챔피언이였던 랜디 커투어가 자주 활용했었는데 랜디 커투어가 사용한 기술은 스티키 핸즈(Sticky Hands). '끈적끈적한 손' 이란 뜻으로 랜디가 자신의 저서에 기재 했는데 상대방이 펀치를 내밀고 회수하는 중간에 상대방의 팔을 잡은 뒤, 자연스럽게 따라 들어가 상대를 잡는 기술이다.다만 보통의 UFC 선수들은 복싱,무에타이 같은 타격계를 베이스로 하기 때문에, 상대의 펀치 공격으로 부터 상대를 잡고 싶다면 클린치를 사용 하는게 더 자주 나오긴 합니다.대동류는 기본적으로 창시자가 오노하일도류를 배웠고 검술이 근본입니다. 그렇지만 현대 격투기의 빠른 펀치에 대처하는 원리도 연구되고 있으며, 다른 타격계 무술을 병행하며 펀치에 내성을 키우는 것도 필요한데 펀치란건 평소에 스파링을 통해 많이 맞아 보고 막아본 사람만이 실전에서 대처할 수 있게 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대동류의 기초적인 연습으로 상대가 자신의 손목을 못움직이게 구속 했을때, 합기로 상대의 중심을 통제한 뒤 기술을 쓰면 된다.여기에서 합기란,상대방이 자신의 몸이나 손목 등을 단순히 잡고 있기만 하면 잘 안걸리며 상대가 힘을 줘서 말그대로 자신을 못 움직이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세게 구속 하면 기술 걸기가 더 편하다고 합니다. 힘겨루기 한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한데 애당초 합기는 과거 무사들이 서로간의 힘겨루기 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상대의 중심을 무너뜨릴까 하는 고민 속에서 탄생 하였다라는 추정이 있습니다. 손목이 잡혔을때 상대의 중심까지 힘을 전달해 무너 뜨리는데 자신과 상대가 톱니바퀴 처럼 맞물린 구조가 만들어 졌기 때문에 자신의 중심으로 상대 중심을 움직이는 것입니다.그런데 만약 손목을 잡혔을 때 단순히 팔의 완력으로만 상대를 띄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애당초 무술 같은거 배울 필요가 없는 인자강이라 할 수 있습니다.무술은 보통 약한 사람이 강해지고 싶어 입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인자강이 무술을 배우면 초인자강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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