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03년 김동주
두산베어스의 원클럽맨 두목곰
김동주는 고교 시절엔 천재 야구선수로 유명했으며, 포수를 제외한 전 포지션에서 뛰었으며 주 포지션은 유격수였습니다. 유격수로 뛴 경험을 바탕으로 벌크가 붙은 프로시절까지 3루 수비를 소화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같은 시기 신일고에서 맹활약하던 김재현과 라이벌 관계를 구축하기도 했습니다.고교 졸업 당시 대학이나 프로나 할 거 없이 김동주와 김재현을 잡으려고 구단들과 대학의 물밑작업이 치열했으며 결국 프로로 직행한 김재현이나 대학을 거친 김동주나 모두 잠실을 홈으로 쓰는 팀에 입단했고 각각 팀의 주축이 되었습니다.투수로서는 최고 145km/h에 이르는 강속구를 던질 수 있었고,타자로서는 정교한 컨택능력과 강력한 파워를 모두 갖춘 대형 내야수감으로 각광받았습니다. 고려대학교에 입학한 1학년 애송이 김동주를 당시 고려대학교 투수 인스트럭터였던 김인식은 투수로 키우려고 했으나, 본인은 타자 쪽으로 의향을 굳혔다고 합니다.그리고 감독의 결정에 따라 김동주는 최고의 아마추어 타자로 이름을 높였는데 1학년때 우익수, 2학년 이후로는 2루 및 3루수로 출장했습니다.아마추어 시절 그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몇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김성근 감독이 고교야구를 보러갔을 때 김동주가 당겨서 홈런 치는 모습을 보고 감탄하자 당시 배명고 감독이 "밀어서 치라고 해볼까요?"라고 하고 김동주에게 밀어치라고 말했더니 다음 타석에 바로 밀어서 홈런을 쳐냈다고 합니다. 2학년땐 충암고와의 경기에서 8-0으로 지는 경기를 만루홈런 두 방으로 동점을 만들더니 끝내 연장에서 쓰리런 홈런을 쳐서 혼자 11타점으로 경기를 11-8로 뒤집어 버린 적도 있습니다. 고려대 4학년 시절이던 1997년 대만에서 열린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국가대표로 참가해 중앙 전광판을 깨트리는 159m짜리 초대형 홈런을 쳐냈고, 당시 일본의 에이스이자 후에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게 되는 우에하라 고지를 상대로 대회기간 동안 3홈런을 뽑아냈습니다. 이 대회에서의 최종 성적은 26타수 14안타 9홈런 19타점.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한국팀을 우승으로 이끌면서 대회 MVP까지 차지했던 정말 무시무시했던 4번타자가 김동주였습니다.
김동주는 1998년 고려대(체육교육과 1994학번)를 졸업하고, 배명고 졸업 당시 1차 지명권을 행사했던 OB 베어스에 입단,개막전부터 연타석 홈런을 치는 등 데뷔 첫해부터 심정수,타이론 우즈와 우동수 트리오를 구축하며 베어스의 전성기를 연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친구 심정수가 현대로 트레이드된 이후에는 심재학,타이론 우즈와 우동학 트리오, 혹은 우재주 트리오를 구축하여 두산의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프로 입성 첫 해에는 좌익수로 뛰었고 그 다음해부터 3루수로 전향하였습니다. 프로에 와서도 그 활약상은 계속 이어져서 통산 타율 .309을 자랑했고, .405의 통산 출루율, 0.514의 통산 장타율을 기록한 대타자로 거듭납니다.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고 2000년대 초중반부터 투고타저 성향의 시즌이 많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뛰어난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김동주는 타격 포텐이 만개된 99년부터~2004년 3할과 20개 이상의 홈런을 때려내는 타자로 타격과 파워를 겸비할 정도로 대단했는데 물론 홈 구장이 잠실야구장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 수치는 대단한 기록으로 국내 토종 타자 중 3할 30홈런 및 장외홈런을 기록한 타자는 김동주 밖에 없습니다. 물론 팀 후배 김재환이 40홈런을 넘겼지만 그에게는 과거 약물 도핑 반응이 있기에 대부분의 팬들은 그냥 약런이라 부정하고, 성적의 일관성 부분에서도 김동주같은 꾸준함은 없었기에 진정한 잠실 홈런타자는 김동주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김동주는 비록 홈런 숫자는 이승엽에 비하면 많지 않지만 넓은 잠실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면서도 한 시즌 20여개의 홈런을 쳐낼 수 있는 장타력을 갖췄으며, 2000년 5월 잠실구장에서 최초로 장외홈런을 기록한 일도 있습니다.통산 기록만 보면 홈런을 제외하곤 양준혁의 기록과 비슷한데 김동주는 부족한 홈런 수에 대해 넓은 잠실을 홈으로 쓰기에 타격 어프로치를 다르게 가져간 데 기인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나이가 들면서 노쇠화가 진행되긴 했으나 3루 수비 또한 매우 안정적이었으며 벌크를 불린 탓에 좌우 횡 수비 폭은 그렇게 넓은 것은 아니지만 안정적인 포구와 순간적인 대쉬능력, 투수를 볼 수 있었을 정도의 강력한 어깨를 바탕으로 좋은 3루 수비를 보여주는 선수였습니다. 2010년 시즌부터는 이원석이나 윤석민 등에게 3루를 맡기고 지명타자로 주로 나왔습니다.또한, 의외로 주루 플레이도 거포라는 이미지에 비해 뛰어났는데 벌크업에 의해 스피드가 막 빠른 것은 아니었지만 꽤 괜찮은 편이었고 주루 센스가 매우 뛰어났습니다. 2007년도에는 두자리수 도루를 기록할 정도였으며 그의 뛰어난 주루 센스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베이징 올림픽 일본전 김현수의 역전 적시타 장면이기도 합니다.단점이라면 신인시절부터 잔부상이 많은 유리몸이라서 경기에 빠질 때가 많았는데 17년 프로 생활 내내 어깨, 손목, 허리, 발목 등에 부상을 달고 살았고, 전 경기 출장 시즌은 한 시즌도 없으며 2009년 여름에는 봉와직염으로 2군으로 내려갔던 적도 있습니다. 공/수에서 모두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1998년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국제대회가 열리면 꼬박꼬박 차출되었는데 베이징올림픽을 기점으로 1998년부터 2006년까지 부동의 국가대표 4번타자는 김동주였습니다.반대로 이승엽은 부동의 3번 타자로 출장이 많았는데 4번 타자 치고는 몸이 너무 말라서 3번에 붙이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이승엽이 4번의 이미지가 굳어진 건 일본진출후 교진의 4번타자가 되면서 부터이며 그 이전까지는 국내에서도 주로 3번으로 활약했습니다.삼성 라이온즈 김한수와 함께 최고의 3루수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였는데 타격 성적에서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으나 기자단 인기투표라는 특성상 골든글러브 부문에서는 2000년에만 김동주가 수상하였고, 이후 2001~2004년까지 모두 김한수가 수상합니다.김한수가 노쇠화를 보이며 1루수로 포지션을 변경한 후엔 이렇다 할 경쟁자 없이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나 했지만 2005, 2006년에는 3루수로 탈바꿈한 젊은 선수 이범호가 수상하였으며, 2009년에는 시즌 중 트레이드 되어 당해년도 최고 성적을 찍은 김상현이, 2010년에는 7관왕 이대호가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였습니다. 그리고 2011, 2012년에는 신예 최정이 수상합니다.하지만 골든글러브를 제쳐두더라도 김동주의 커리어는 역대 한국 3루수 중 단연 최고이며 3루수뿐만 아니라 박재홍/이대호/김태균 등과 함께 역대 우타자 최고를 논할 정도입니다. 단지, 인기투표로 인한 골든글러브는 받지 못했는데 역대 골든글러브 수상은 2000년/07년, 08년 시절의 3루수 및 2003년 타격왕을 먹던 시절 지명타자로 받은 것이 전부입니다.
김동주는 김진욱 감독이 부임한 2012년 시즌에는 부진과 부상 때문에 1군 경기에서 뛰는 모습을 좀처럼 보기 힘들었는데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2012년 시즌 두산 타선의 무게감이 많이 줄었습니다.9월 이후로 부상은 다 나은 듯했으나, 여전히 1군으로 올라오지 못하였고 포스트시즌에서도 그의 이름은 엔트리에 없었습니다.2012년 시즌 후 두산 구단이 팀의 구심점이 될 선수가 필요하다는 언플과 함께, 팀분위기를 어지럽히고 롯데로 떠났던 홍성흔에게 오버페이마저 안겨주는 삽질과 함께 다시 영입한 이유로, 김동주가 프론트나 코칭스탭들에게 찍힌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았고 2011년까지만 해도 팀내 최다 홈런을 기록하며 팀을 이끌었던 4번타자가 바로 다음 해부터 벤치도 아닌 2군에만 머무르는 모습은 과거 그의 모습을 아는 두산 팬들에게는 안타까움 그 자체였습니다.
김동주는 당뇨로 인해 체중 관리가 힘들어진 것이 급격한 부진의 원인으로 추측되는데 본인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2014년 시즌 초부터 다시 2군을 폭격하기 시작,2014년 5월 3일 기준 퓨처스리그에서 22경기에 출장해서 타율 .463 출루율 .516 장타율 .722 3홈런 14타점 OPS 1.238의 맹활약을 하였지만 송일수 감독은 시즌 초 부진한 홍성흔을 꾸준히 5번타자로 기용하면서도 김동주를 1군에 콜업하지 않았는데, 급기야 7월 5일 인터뷰에서 김동주는 필요없다는 발언을 하였고 이에 두산팬들은 단 한 타석 만이라도, 제발 단 한 타석만이라도 김동주를 보게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또 높였으나,송일수 감독은 냉랭했으며 아예 김동주라는 선수를 없는 선수로 생각하고 있는 셈인듯 싶었는데 아무래도 팀의 레전드인 김동주와 이렇게 이별을 하는 것은 팬 입장으로서는 상당히 아쉬울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결국 2014년 구단과 본인의 합의 하에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어 김동주는 두산을 떠나게 됩니다.김동주는 두산베어스의 원클럽맨으로 활동하며 16시즌 동안 1625경기에 출장하여 5540타수 1710안타 타율 0.309,293 2루타,273 홈런,1097타점,851득점,961볼넷,장타율 0.514,출루율 0.405를 기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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