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한국 프로야구 역대 홈런왕 장종훈/
한 시즌 40 홈런의 슬러거들
한국 프로야구는 일본과 미국에 비하면 역사가 짧지만 그럼에도 그 짧은 프로야구 역사 속에서도 기라성 같은 선수들이 배출되고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파행을 맞은 미국 메이저리그에 처음으로 KBO 프로야구 중계권을 계약, 미 메이저리그 팬들에게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의 플레이를 감상할 수 있게 되었으며 단순한 관람이 아닌, 타자들의 빠던이라던지, 응원문화 등 미 메이저리그와는 다른 환경으로 인해 더욱 많은 사랑을 받기도 합니다. 오늘은 KBO 리그에서 한 시즌 40 홈런 이상을 때려낸, 그야말로 프로야구의 꽃 홈런과 홈런왕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대한민국 프로야구의 출범은 1982년 OB 베어스, MBC 청룡, 해태 타이거스, 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 삼미 슈퍼스타즈 등 6개 구단의 출범으로 시작된 후 1986년 빙그레 이글스가 뒤늦게 합류하면서 7개 팀으로 늘어나 지금 2016년 현재에는 10개 구단 단일리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현재 두산 베어스(서울), 한화 이글스(대전), SK와이번스(인천), LG 트윈스(서울), KIA 타이거즈(광주), 롯데 자이언츠(부산), 삼성 라이온즈(대구), 넥센 히어로즈(서울), NC 다이노스(창원), KT 위즈(수원) 등 10개 구단에는 각 구단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들부터 대한민국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한국형 베이브 루스들이 즐비합니다. 이제는 메이저리그조차 약물의 시대가 지나가면서 2015년 내셔널리그의 홈런왕의 경우 브라이스 하퍼(워싱턴 내셔널스)와 놀란 아레나도(콜로라도 로키스)가 42개의 홈런으로 공동 1위를 차지했고 아메리칸리그의 경우 크리스 데이비스(볼티모어 오리올스)가 47 홈런으로 아메리칸리그는 물론 메이저리그 전체 1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배리 본즈가 한 시즌 최다 기록인 73 홈런을 기록한 2001년과도 같은 몬스터급 기록은 한동안은 요원할 것 같습니다. 60개를 넘어 70개도 때려내며 메이저리그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거물급 타자들이 약물 복용과 함께 몰락의 길을 걸으며 이제 메이저리그에서조차 50 홈런을 기록하는 강타자들을 만나기는 한동안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물론 메이저리그에서는 2017년 뉴욕 양키즈의 애런 저지가 신인 최다 홈런인(종전 마크 맥과이어의 49개) 52 홈런을 기록하며 새로운 거포의 시대를 알렸고 2019년엔 피트 알론소가 애런 저지의 신인 최다 홈런 기록을 경신(최종 성적 53개)하며 새로운 거포 탄생을 알리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KBO 한국 프로야구는 어떠할까요? 초창기 한국 프로야구의 기틀을 다진 홈런왕들은 초대 홈런왕 김봉연(22 홈런)을 필두로 1983년(27 홈런),1984년(23 홈런). 1985년(22 홈런. 김성한과 공동 1위) 홈런왕 3연패를 달성한 삼성 라이온즈의 이만수와 김봉연의 1986년을 지나(역대 최소 홈런왕 21 홈런) 1987년 22개로 김성래, 1988년과 1989년 김성한이 다시 홈런왕 2연패를 달성합니다. 특히 김성한은 1988년에 KBO 리그 최초로 한 시즌 30 홈런을 달성하기도 합니다. 1990년도에는 드디어 본격적인 홈런왕의 시대가 도래하는 출발점이기도 한데 이때에 연습생 출신의 장종훈이 28개의 홈런으로 내야수(유격수)로써 최초의 홈런왕(타점왕과 함께 타격 2관왕)을 차지합니다. 당시 장종훈의 유격수 수비는 평균 이하 이거나 평균 정도로 평가받기는 했지만 공격형 유격수로써 이종범과 강정호의 출연 전까지는 가장 강력한 공격형 유격수의 탄생을 알리는 계기가 됩니다. 물론 장종훈의 공격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빙그레가 1루수로 포지션을 바꿔주면서 거포 탄생을 알리는 신호가 되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연습생으로 입단한 장종훈은 1987년 19살의 나이에 1군 경기에 첫 출장하여 94게임 8 홈런으로 대포의 가능성을 인정받으며 1988년에는 108게임 12 홈런, 1989년엔 112게임 18 홈런을 치며 차세대 거포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습니다. 그리고 3년간의 담금질 끝에 독수리로써 날아오른 미운 오리 새끼의 비상은 그야말로 인간승리의 대표적인 사례로 많은 국민들에게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습니다.
1990년대 초반 일본 야구만화 4P 타나카군이 아이큐 점프에 4번 타자 왕종훈이라는 이름으로 둔갑되어 인기를 누린 적이 있었습니다. 이 일본 만화의 기형적인 인기 원인에는 바로 1990년대 막강한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빙그레 이글스(지금은 한화 이글스)의 4번 타자인 등번호 35번 장종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필자가 야구를 처음 접한 계기(야구를 좋아하게 되고 눈 뜬 시기라는 말이 정확하지만)는 대포 한방의 매력이 아니라 김재박으로 시작하여 이종범, 유지현으로 이어지는 환상적인 유격수 수비에서부터입니다. 하지만 이내 한 시즌 최다 홈런인 41 홈런을 날린 1992년도의 장종훈을 보며 완전히 홈런타자에 열광하게 되었고 이때의 장종훈이 대형 거포의 스타트를 알리는 시기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장종훈은 흔히 말하는 엘리트 출신의 선수도 아니고 될성부른 떡잎도 아닌 지금으로 말하면 신고선수인 연습생으로 연봉 300만 원에 빙그레 이글스에 1986년 입단합니다. 여기에서 신고선수 혹은 연습생이라는 신분은 한마디로 일반사회로 말하자면 비정규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식 드래프트에서 선발되지 못한 선수들을 대상으로 선수를 뽑는 방식이기 때문에 선수 각자가 구단의 테스트에 응시해서 합격하면 입단을 하게 되지만 계약금 없이 형식적인 수준의 월급에 만족해야 하며, 지속적인 신분 보장도 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선수들이 정규 시즌의 선수에 등록되기도 힘들지만 한국 프로야구의 기록적인 업적을 만든다는 것은 그만큼 낙타가 바늘을 통과하기만큼 힘들지만 장종훈은 모든 연습생과 신고선수의 모범이 되어가며 자신만의 역사에서 한국 프로야구의 각종 기록들을 고쳐나가 프로야구 최초라는 맨 앞에 이름을 적어나가기 시작합니다. 장종훈은 19년간의 프로선수 생활 동안 빙그레 이글스 한 팀에서 선수 생활을 끝마친 프랜차이즈 스타이면서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홈런왕으로 각광받습니다. 19년간의 선수 기간 동안 홈런왕은 단 3회를 차지했지만 그 임팩트가 워낙 강렬하여 지금도 오른손 거포로써 장종훈이 차지하고 있는 이미지는 막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격수라는 포지션으로 나온 1990년 수비 부담이 큰 압박감에도 28개의 아치를 날리며 첫 홈런왕을 차지한 장종훈의 등장은 단순히 홈런왕을 차지한데 그치지 않고 원년 프로야구의 쟁쟁한 선배들과의 세대교체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기도 했습니다.
장종훈의 등장과 더불어 프로야구는 담장을 가르는 호쾌한 야구로 진일보합니다. 1991 시즌은 장종훈에게 있어 가장 드라마틱하고 강력한 타자로써 완성되어가는 시즌이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 시즌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1988년 김성한이 작성한 KBO 리그 역대 최다 홈런 기록인 시즌 30개를 넘어 장종훈은 담장 밖으로 35개의 아치를 넘겨버립니다. 이때 당시의 장종훈은 홈런 신기록만 쓴 것이 아니라 각종 타격 지표를 모두 자신의 이름으로 도배해 버립니다. 경기 수가 처음으로 126경기로 늘어난 탓도 있지만 장종훈이 기록한 당시의 시즌 넘버원 기록은 최다안타 160개(종전 기록은 같은 팀 이강돈이 달성한 1990년 146개)이며 달성 당시에서 25년이 지난 지금도 역대 한 시즌 기록 상위에 랭크되어 있을 만큼 당시 장종훈의 기록은 몬스터급이었다 말할 수 있습니다. 게임당 1.2698로 지금 경기 수 144게임으로 환산하면 182.85개의 안타수를 뽑아낼 수 있는 경기력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단순히 수치상의 가정일 뿐이기는 합니다. 거기에 더해 114타점을 기록하여 한 시즌1 백타점을 돌파한 최초의 선수이기도 하며 전년도에 91타점을 올리며 김성한이 1988년도에 작성한 89타점을 경신한 장종훈은 바로 자신의 기록을 114점(이듬해 다시 119타점으로 기록을 경신함)으로 늘렸으며 출루율. 450에 장타율. 640 OPS 1.090를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강타 자급의 타격의 신기원을 보여줍니다. 또한 득점 104개, 볼넷 76개, 몸에 맞는 볼 15개를 비롯한 고의사구 8개 등 장종훈에 관한 투수들의 공포심은 기록에서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공식적인 타이틀만 해도 홈런 1위(35개), 최다안타 1위(160개), 타점 1위(114개), 득점(104개), 장타율. 640으로 타격 5관왕을 거머쥡니다. 특히 이만수 이후 타격 3관왕인 트리블 크라운을 목적에 둘만큼 홈런과 타점은 안정권이었으나 타율은 같은 팀 이강돈과 엎치락뒤치락할 만큼 2~3리 정도밖에 차이가 지지 않았는데 쌍방울전에서 투수 김원형이 던진 2구를 통타 한 장종훈의 타구가 김원형의 얼굴에 정통으로 맞자 장종훈은 1루가 아닌 마운드로 달려가 그만 아웃되고 맙니다. 이런 경우 타자는 그냥 1루로 뛰면 내야 안타로 세이프가 되지만 타격왕 경쟁을 이강돈과 하던 장종훈의 경우 결국 시즌 타율이. 345로 마감되며. 348의 이강돈에게 3리 뒤지며 타격 3관왕의 영예를 놓치게 됩니다. 그러나 평균 20개 안팎에서 홈런왕이 결정되던 시기 연습생으로 시작하여 엄청난 파워로 한 시즌 홈런을 35개로 늘린 장종훈은 리그 사상 처음으로 타율 3할 이상과 30 홈런 100타점 100 득점을 동시에 달성한 첫 타자가 되었으며 시즌 MVP 역시 당연히 그의 몫이었습니다. 5관왕을 한 다음 해의 성적을 묻는 질문에 40개의 홈런을 넘기고 싶다고 답하고 1992년도에 기어코 41개를 치며 한국 프로야구사에 있어 역사적인 한 해를 만들어 버립니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있어서 1992년도는 기념비적인 한 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종훈은 전년도 5관왕으로 몬스터의 시즌을 보냈지만 그 영광스러운 한 해가 부담이 되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으리라는 염려도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우는 기우일뿐, 장종훈은 한국 타자로는 최초로 한 시즌 40개 이상의 홈런을 기록하며 이후에 등장하는 모든 홈런타자들의 바로미터가 되어줍니다. 이승엽이나 이대호 및 박병호, 강정호와 같은 대형 홈런타자의 밑바닥에는 한 시즌 41호 홈런을 기록한 장종훈이라는 KBO에 대형 홈런타자의 등장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장종훈은 1992년도에 홈런왕(41개)을 비롯하여 타점 1위(119개). 득점 1위(106개). 장타율 1위(. 659)를 기록하여 타격 4관왕을 차지하였고 OPS는 무려 1.105를 기록하며 시즌 MVP 역시 2 연속 제패하고 맙니다. 1987년 유격수로 데뷔한 이래 1992년도까지 6년간 장종훈은 685경기에 출장하여 2.187타수 632안타 타율. 289 409 득점 461타점 114 2루타 13 3루타 142 홈런을 기록했는데 장종훈의 최전성기이자 먼치킨 시즌이라 할 수 있는 1990년에서 1992년인 3년으로 좁혀 들어가면 371경기 출장에 1306타수 408안타 타율. 312를 기록하고 283 득점 324타점 68 2루타 9 3루타 104 홈런을 기록합니다. 홈런은 연평균 34.66개를 때렸으며 12.557 타수당 1개꼴로 홈런을 날렸습니다. 직접적인 비교는 힘들지만 이승엽이 통산 타수 비율로 볼 때 21.66타수당 1개꼴로 홈런을 치고 있고 약물 대마왕으로 변질되고 퇴색하기는 했지만 배리 본즈의 누적 스탯을 살펴보면 762개의 홈런을 때리는 동안 9847타수를 들어선 배리본즈는 12.92타수당 1개의 홈런을 때렸다 할 수 있는데 적어도 장종훈의 3년은 배리본즈 급으로 홈런을 양산해 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물론 누적 스탯으로 들어가면 장종훈의 기록은 의미가 퇴색해지기는 합니다. 장종훈은 1993년 이후부터 뚜렷한 하향세를 타며 예전만큼 명성을 보이지 못하고 이승엽, 심정수 등에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됩니다.
통산 340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기록의 사나이로 불렸던 장종훈의 기록들은 이미 누적 스탯에서 이승엽뿐 아니라 양준혁에 추월당한 상태입니다. 양준혁은 통산 351개의 홈런뿐 아니라 통산 타점 및 득점 등 각종 타격 지표에서 장종훈을 추월했지만 타격의 임팩트 면에서는 장종훈이 가진 상징성은 추월할 수가 없었습니다. 19년 통산 340 홈런을 기록하며 은퇴한 장종훈의 기록은 사실 아쉬운 면이 많은 기록이기도 합니다. 연간 17.89개의 홈런을 때리며 몬스터 급 성적을 기록한 3년간의 기록을 유지할 수 없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1994년 팔꿈치에 공을 맞아 부상을 당하고 나서 배트 스피드가 감소하면서 전성기 수준의 기량을 끝내 회복하지 못합니다. 또한 다이너마이트라고 불리던 빙그레 이글스 타선의 핵심인 이정훈과 이강돈 몰락 이후 투수들이 장종훈을 집중 견제하였고 팀 리빌딩의 목적으로 기용한 신인 타자들을 홀로 이끌어야 하는 부담까지 가중되기도 합니다. 강력한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이글스와 홈런왕 장종훈이 이끌었지만 우승은 1999년이 유일합니다. 장종훈의 한 시즌 41개의 최다 홈런의 기록을 깨는 타이론 우즈와 같은 용병들의 시대에 들어선 댄 로마이어와 제이 데이비스 등 용병 선수들과 축을 이룬 장종훈은 주로 5번 타자로 이들과 클린업 트리오를 이루고 27 홈런. 81타점을 기록하며 우승의 기록을 맛보고 2000년에도 28 홈런 81타점을 기록하며 마지막 불꽃을 불사르지만 이후론 완전한 하향곡선을 타다가 김태균에게 1루수를 내준 채 지명타자로 주로 기용되다 2005년 은퇴를 선언하며 그의 등번호 35번은 영구 결번됩니다. 장종훈은 연도별로 급격한 기량의 차이를 보여주는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연습벌레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장종훈은 오버 트레이닝의 전형적인 피해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손바닥에 물집이 터지고를 수천번을 반복하는 등 지금과는 달리 스포츠 물리학이나 체계적인 트레이닝이 없던 시절 반복적인 엄청난 연습량이 장종훈을 최고의 자리로 이끌기도 했지만 부상이라는 양날의 검으로 선수생활 내내 괴롭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 시즌 41 홈런을 기록하며 한국 프로야구사에 기념비적인 기록을 달성하는 등 장종훈이 선수 시절 내내 보여준 활약은 이후의 한국 프로야구의 발전에 지대한 밑거름이 되어 이승엽과 이대호 박병호 등 거포의 탄생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어줍니다. 연습생 신화를 일군 장종훈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한 시즌 40 홈런을 개척한 타자이며 비록 부상의 여파로 예전만큼의 파워를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통산 340 홈런을 기록하며 한국 거포의 역사에 한 획을 긋습니다. 이후로도 한국과 일본, 미국의 거포들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장종훈의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기록들
1990년 유격수 홈런왕 단일 시즌 3할 - 30 홈런 (1991년) 단일 시즌 100타점 100득점 (1991년)단일시즌 40 홈런 (1992년) 3년 연속 홈런왕(1990년~1992년) 3년 연속 타점왕(1990년~1992년) 3년 연속 최고 장타율(1990년~1992년) 3개 포지션 골든 글러브 수상 (1992년)=유격수. 1루수. 지명타자 부문, 단일 시즌 최고 장타율 4회 수상(1990~1992년, 1995년)=장종훈만 기록함, 통산 300 홈런 (2000년) 통산 900타점 (1999년) 통산 900 득점 (2000년) 통산 1000타점 (2001년) 통산 1000 득점 (2002년) 통산 1700안타 (2002년) 15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 (1988년~2002년) 통산 1900경기 출장 (2004년)
장종훈의 연도별 수상내역
1988년 골든글러브 유격수 부문 수상 1990년 프로야구 홈런왕 골든글러브 유격수부문 수상 1991년 프로야구 시즌 MVP 프로야구 홈런왕 골든글러브 지명타자 부문 수상 1992년 프로야구 시즌 MVP 프로야구 홈런왕 골든글러브 1루 부문 수상 1995년 골든글러브 1루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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