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복선과 맥거핀이란 미끼들로 관객들을 현혹시킨 한국공포영화의 수작/
나홍진 감독의 관객현혹 영화 곡성哭聲
나홍진 감독이 연출한 영화 곡성은 영화 곳곳에 관객들의 시선과 정신을 현혹시키는 다양한 미끼들이 덫처럼 포진해 있습니다.곡성 자체의 시나리오가 일반적인 시나리오의 기승전결의 나열이 아니라 퍼즐처럼 이곳저곳 끼워 맞추도록 해놓았기 때문에 어떤 이들에게는 치밀한 연출의 승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떤 이들에게는 난잡한 편집의 산물처럼 비치기도 합니다.우리가 곡성을 연출한 나홍진 감독은 영화가 흔한 미스터리 스릴러나 공포영화일 거라는 추측과 선입관으로 영화에 접근하게 만들지만 실상 곡성은 선과 악의 대립과 우리 고유의 토속신앙과 가톨릭, 꿈과 현실 등 오컬트적인 요소를 모두 담아내며 가볍게 극장 문을 찾은 관객들의 시선을 온통 의구심과 의아함으로 현혹시킵니다.영화 곡성은 종구(곽도원 분)부터 일광의 황정민, 외지인 쿠니무라 준, 무명의 천우희, 효진의 김환희 등 배우들 한 명, 한 명이 톱니바퀴 가 맞물려 돌아가듯 한치의 오차도 없이 영화적 장치이자 그들 한 명, 한 명이 나홍진 감독이 연출해낸 미끼들로 존재합니다. 영화 곡성 인트로 부분의 성경 구절은 어쩌면 영화 곡성이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나타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가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누가복음 24장 37절-39절)
미끼 하나, 살인사건의 원인과 진실, 독버섯이라는 합리와 불합리의 경계선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주요한 원인으로 사람들 입과 입 사이를 오고 가며 심증적으로 대두되는 독버섯의 환각에 의한 살인사건이라는 믿음은 곡성이 영화가 아닌 현실 속에 일어난 사건이라면 신빙성 있는 추론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사이코패스에 의한 살인사건은 대개 인간의 악마성에 기인하지만 몇십 년을 잘 지내오던 이웃이나 친지들이 어느 날 살인사건의 피의자가 되고 피해자가 된다면 사람들은 초자연적이고 과학으로 증명되지 않는 허황된 추론보다는 좀 더 합리적이고 그럴듯한 원인을 찾게 됩니다. 나홍진 감독이 관객에게 던지는 미끼는 기괴한 살인사건의 원인을 그나마 가장 중립적이고 냉정한 시선으로 봐야할 경찰들의 눈과 입을 통해 독버섯에 대한 환각일지도 모른다며 무심한 듯 관객들에게 던져 줍니다.이런 추론들은 관객들을 오컬트적인 요소보다는 미스터리 한 제3의 인물 혹은 원인에 의한 살인으로 추정하게 이끌어가려는 의도이며 독버섯에 대한 환각이라는 추론은 매우 눈앞에 진실인 것처럼 보이는 팩트로 다가오기 때문에 영화 곡성에서는 충분히 현혹될 수 있는 아주 1차원적인 미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끼 둘, 외지인 쿠니무라 준과 일광 황정민의 정체와 상관관계
낚시꾼 복장을 하고 살인사건 주위를 서성이는 한 외지인이 보입니다.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닌 존재로 투영되는 외지인은 무명과 일광의 대사 속에 그 단서가 잘 드러납니다. 원래는 인간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며 숨 쉬고 말하고 움직인다 해서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는 대사들의 단서를 쫓아가다 보면 외지인은 살아있지만 산자가 아닌 존재, 즉 악마이거나 악마에 준하는 존재 정도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겪게 되는 기괴한 살인사건들이 모두 외지인이 던져놓은 미끼를 물게 됨으로써 벌어지는 일이며 종구가 처음 외지인의 숙소를 찾아갔을 때 발견한 염소 머리로 장식된 제단(염소 머리는 악마의 상징으로 추정됨)과 엔딩 부분에서 죽은 줄로 알았던 외지인이 본 모습인 악마의 형상을 드러내는 장면 등은 외지인이 처음부터 목적을 가지고마을 전체를 제물로 삼고 미끼를 던졌던 것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효진을 살릴 굿판을 벌이기 위해 곡성으로 내려온 일광(황정민)은 장독대 속 죽은 까마귀(마을의 수호신 무명이 쳐놓은 결계)를 무력화 시키고 종구에게는 효진을 살릴 굿판을 한다 말하지만 실상은 자신들을 방해하는 마을의 수호신인 무명에게 살을 날리는 굿판을 벌입니다. 감독은 이 대목에서 교묘한 편집으로 관객들을 현혹하며 일광이 무명에게 살을 날리는 굿판과 외지인이 죽은 자를 살리기 위한 주술 장면을 교차 편집하며 마치 둘이 주술로 대결하는 듯한 장면으로 연출합니다. 외지인 쿠니무라 준과 일광은 원래부터 알던 사이거나 같은 계파의 일원으로 종구와 효진을 지키려는 마을의 수호신 무명과의 싸움이 주된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끼 셋, 무명 천우희가 지닌 존재의 모호함
존재 자체가 불분명한 무명의 천우희는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의 현신이자 우리나라 고유의 토템 신앙의 서낭신, 성황당, 당산나무와도 일맥상통하는 존재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순수한 존재(영화에서는 마을의 바보로 나오죠)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영화 전체를 통틀어서 본다면 가장 선한 존재이자 악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합니다.그러나 여기에서도 선악의 경계는 모호합니다. 딸 효진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종구의 시선에는 절대 악인 외지인을 제외한다면 무명이나 일광등 자신의 편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인물은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외지인과 일광이 효진을 제물로 삼으려는 것과는 달리 무명은 그런 황정민과 쿠니무라 준의 행동을 막으려 하거나 종구에게 막을 방법을 암시해 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감독은 여기서 철저히 관객들의 시선을 현혹시키며 마지막까지 누가 종구의 편에 서있는지 의심과 의혹만을 던져주며 혼란스럽게 한다는 것입니다. 무명이 일광을 항해 여러 경고들(코피를 터뜨리고 죽은 까마귀를 보내는 등)을 하여 일광을 겁에 질려 도망치게 하지만 결국 일광은 고속도로에서 나방의 존재를 확인하고 다시 돌아와 종구에게 닭이 세 번 울기 전에 집으로 가서 딸을 찾으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무명인 천우희는 종구에게 앞집의 닭이 세 번 울기 전까지 집에 들어가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딸을 지켜야 하는 종구로써는 일광의 말도 무명의 말도 확신할 수 없는 혼란만을 가중시킵니다. 누구의 말이 딸을 지키는 최선의 선택이 될지 알 수 없고 누가 선이고 악인지 알 수 없을 만큼 감독은 미끼들을 영화 곳곳에 뿌려놓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무명 천우희가 던진 말은 의심을 지우고 믿으라는 경고와도 같았으며 일광은 무명에게 호되게 당한 이후 다시 돌아와 무명이 처놓은 덫을 깨트릴 역습을 가하고 맙니다. 무명 천우희가 쳐놓은 덫이 종구의 의심으로 말미암아 파괴되면서 외지인과 일광이 완성하려던 의식은 성공하고 맙니다.여기에서 일광이 무명에게 큰 두려움을 안고 도망치다 고속도로 차안에서 나방의 존재를 확인하고 차를 다시 마을로 돌리는 이유는 나방이 주는 의미,바로 변태와 부활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일광은 나방을 보고 악마가 부활한 것을 알게되면서 다시 마을 종구집으로 향하여 그들 자신이 이루려는 목적을 완성시키게 됩니다.
기묘한 복선들과 수많은 미끼들로 관객을 현혹시키며 그 어떤 결말도 허락지 않지만 그만큼 다양한 해석을 만들어 내기도 하는 영화 곡성,인트로의 성경 구절인 누가복음 24장 37절-39절 말씀처럼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영화이며 한국 영화에서 쉽게 다루지 못하는 오컬트적인 요소들이 응축된 영화이기도 합니다. 영화 곡성을 우리 현실에 대입하여 말해보자면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살인이나 사고 등 너무나 많지만 원초적인 인간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우리 인간 사회에서는 결정적인 요소이기도 합니다. 가장 믿을만한 친구나 가족에게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가장 사랑하는 연인에게 배신을 당하면서 믿음이라는 부분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곡성은 기묘한 살인사건의 배경에 초자연적이고 영적인 존재를 배합하며 오컬트적인 요소로 눈을 현혹시키지만 근복적인 메세지는 인간의 믿음이 얼마나 허약하고 나약한지를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현실세계에서는 영화나 드라마처럼 절대악이나 절대 선의 개념은 흐릿해지고 주위의 모두가 절대적인 악이 될 수도 있게 만드는 것이 믿음을 잃고 의심과 의혹을 남게 되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워낙 다양하게 숨겨진 복선과 맥거핀(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관객을 의문에 빠트리거나 긴장감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사건, 상황, 인물, 소품)으로 인해 시선을 떼놓을 수 없었던 영화 곡성은 소름 돋도록 잘 만들어진 한국 영화 오컬트의 수작이라고 감히 말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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