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기경 전략가 상앙의 법치제도가 천하통일의 기틀을 다지다/
중드 추천 대진 제국大秦帝國
법이 정부의 주인이고 정부가 법의 노예라면
그 상황은 전도유망하고,
인간은 신이 국가에 퍼붓는 축복을 만끽할 것이다.
중국 드라말 추천하는 대진 제국은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 진나라의 초석을 다지는 과정부터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 하기까지를 풀어낸 대하 역사 드라마입니다. 대진 제국 시즌 1의 경우 변법가 상앙의 활약이 눈부신 드라마인데 상앙을 보다 보면 플라톤이 그의 저서 법률(Laws)에서 말한 내용이 생각납니다. 플라톤은 철인에 의한 지배가 이상적이지만 법의 지배는 차선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사상을 이어받아 법의 지배 사상을 강조했으며, 가장 훌륭한 사람일지라도 욕망의 지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법으로 하여금 지배하게 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법의 지배를 “욕망 없는 이성의 지배”로 규정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법 위에 서있다 못해 군림하고 조종하는 수많은 초인超人들이 그 영역에서 내려와 인간의 법을 지키고 받들며 살기를 간곡히 바라는 마음과 아직도 무전 유죄 유전무죄가 통용되는 사회를 생각하며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법이란 것은 어렵고도 쉽습니다. 지킬 것을 지켜야 하는 서민에게는 늘 어렵고 불편한 것이며 쉽사리 법이라는 테두리를 빗겨 나가는 이들에게 법은 그들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최소한의 장치가 된 지 오래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중국 드라마 대진 제국의 상앙은 춘추전국시대에 가장 약소국이었던 진나라를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는데 초석을 다진 인물이며 만리장성보다 더 견고한 법치국가를 실현시킨 사나이입니다. 2002년 대한민국을 월드컵 4강에 올려놓은 히딩크와 비교한다면 어폐가 분명 있지만 아시안컵 대회에서 한국이 일본에 승부차기 끝에 패하는 것을 바라보며 얼마나 개혁이라는 것이 힘든 것인가, 일개 축구 국가 대표를 세계 클래스에 올리기도 이리 힘이 드는 것인데 상앙이란 인물은 지금의 북한 같은 위치의 나라인 진 나라를 초일류 국가 진시황의 대진 제국으로 변모시킨 인물입니다. 그 기초에는 악습을 폐지하고 기득권을 물갈이하며 나라의 새로운 인재를 등용하는 등 히딩크와 같은 외부 인사로써 과감한 개혁을 통한 국가의 미래상을 제시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국가에 한 사람이 몰고 온 바람은 이다지도 큽니다. 또한 이제는 법이 법의 구실을 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기능뿐인 법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법으로 재정비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보며 법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상앙의 최후
한 사나이가 입에 재갈을 물리고 수족을 단단히 결박당한 채로 혜문왕 앞으로 끌려 나왔다.
사나이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그렇게 끌려 나온 사나이는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진나라에서 가장 막강한 위세를 떨치던 상앙이었다. 상앙은 상 군이라고도 불린 진나라의 재상이었다. 효공이 임금이었을 때 삼고초려로 모셔온 상앙은 효공과 의기투합, 강력한 법질서를 마련하여 춘추 전국시대 열국 중 가장 국력이 미약한 진나라를 재정비하여 막강한 나라로 키웠다. 그러나 강력한 법 정비를 위해서 수많은 희생자가 속출했고 공자 건과 공손가등 위협적인 정적들은 늘 호시탐탐 상앙을 노려 왔었다. 효공이 죽고 그 뒤를 이어 혜문왕이 뒤를 잇자 드디어 막혀 있던 둑이 터지듯 상앙을 향한 공세가 물밀듯이 들이치기 시작했다. 상앙은 끝없는 공세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효공과 이룩한 진나라의 권세에 미련이 많았다.
상앙이 결국 재상 자리를 내려놓고 낙향을 가는 마당에서도 그 위세를 드러 내며 수십의 말과 수레, 병사로 자신을 호위하며 내려가자 정적들은 그런 그를 죽이기로 결심하여 자객을 보낸다.
미리 첩보를 입수하고 죽을 자리에서 빠져나온 상앙은 위나라로 피신하여 위나라 임금 혜왕으로부터 큰 환대를 받자 상앙은 위나라의 힘을 이용하여 진나라에 복수할 수 있다 여겼다. 그러나 위나라 조정 대신들과 백성들의 반감이 극심하였다. 한때 상앙은 위나라 영토를 노략질하고 살육한 원흉이었으니 뭐라 달리 말하겠는가? 결국 상앙은 자신의 동조 세력을 규합하여 비교적 약소국인 정나라의 변방을 공격해 그곳에 터를 잡고 기회를 보아 다시 진나라로 복귀하기로 결심하였다. 상앙의 이런 움직임에 내심 불안 해진 혜문왕과 그의 측근들은 정나라로 군대를 보내 상앙을 잡아 오도록 하였다. 결국 자결할 틈도 없이 급습당한 상앙은 비참한 모습으로 혜문왕 앞에 놓여 버린 것이다. 혜문왕은 상앙을 만백성이 보는 앞에서 거열형에 처하라 명하였다. 거열형은 네 개의 마차에 사지를 묶고 사방으로 당겨 온몸을 찢기는 무서운 형벌이었다.
진나라를 춘추전국시대에 가장 약소국에서 부강한 나라로 만든 장본인인 상군 상앙의 말로는 이리 비참하였다. 많은 이들은 상앙의 잔혹한 법률에 치를 떨기도 했지만 국가를 부강하게 만든 능력은 인정하였기에 냉혹하도록 인정 없는 정치 논리에 치를 떨며 상앙의 죽음에 눈물 흘리는 이들도 상당하였다.
드디어 말들에게 채찍이 가해져 왔고 사지에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주마등처럼 지난날의 여러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상앙의 온몸은 속절없이 허공에 흩어져 갔다.
중국 드라마 대진 제국에서의 상앙의 아름답고 거룩하기까지 한 최후와는 달리 역사서에 기록된 상앙의 최후는 그야말로 잔혹합니다. 상앙은 진의 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기 이전인 100여 년 전 춘추전국시대의 인물로 엄하다 못해 가혹하기까지 하다고 알려진 진시황의 법가 사상은 상앙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앙의 법이 만들어지고 나서 진은 국가를 중앙 집권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부국강병의 기틀을 마련했었습니다. 그리고 상앙의 법치주의의 사상을 이어받아 진나라 통일의 영광을 이어받은 인물이 이사였었습니다. 중국 역사에서는 분서갱유에 대해 이사를 상당히 사악한 인물로 그려내고 있는데, 이는 유가에서 법가사상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말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분서갱유가 이루어진 것은 시끄러운 유학자들이 사사건건 중앙 정부의 일에 반기를 들어 일의 진행을 느리게 만드는데 대한 협박이었고, 책들을 불태운 것도 제자백가의 그 많은 사상들 중 대다수는 국가를 운영하는 데 있어 오히려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불태운 것입니다. 실제로 진이 모든 책을 태운 것도 아니며, 진귀하다 판단되는 책들은 관가에서 보관하게 했으며 농경 술어 대한 책은 태우지 않게 했었습니다. 물론 정적들에게 빌미를 제공한 것은 분명하지만 말입니다. 이사가 한비자를 죽인 것 역시 해석의 차이는 있지만 복마전 같은 정치 싸움의 결과물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같은 법치주의자이지만 서로 생각하는 바가 다른 이사와 한비자 중 한 사람은 진에서는 필요가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사는 자신이 먼저 선수 친 것에 불과합니다. 상앙은 진이 국가의 기틀을 다지는데 큰 틀을 이룬 인물이고, 이사는 진이 지리상에서뿐만 아니라 사상적으로 통일을 하는데 자신을 희생한 인물입니다. 진나라가 춘추전국시대에 가장 약한 국가에서 강력한 패권을 가져갈 수 있는 법치국가의 틀을 마련한 상앙, 그는 대체 어떤 인물이었을까?
상앙(商鞅: BC 390~BC 338)은 전국 시대 정치가이며 법가(法家)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전국시대 위 나라의 몰락한 귀족의 후예였습니다. 왕실의 혈통을 이어받았다고 해서 공손앙(公孫鞅)이라 하기도 하고, 위 나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위안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상앙의 상(商)이란 성씨는 후에 상읍(商邑)의 땅에 봉해졌으므로 붙여진 칭호이며 상 군(商君)은 바로 그의 존칭입니다. 상앙은 BC 338년 진 나라에서 거열(車裂: 죄인의 사지를 다섯 대의 수레에 묶어서 찢어버리는 혹형)이라는 극형에 처해짐으로써 52년의 생애를 마감하였습니다. 상앙이 활약했던 시대는 자산(子産)이나 안영(晏婴)으로부터 약 2백 년 후인 춘추전국시대 중기 무렵입니다. 상앙은 어릴 때부터 형명학(刑名學)을 좋아하였는데 "형명학"이란 법가 학설의 하나로, 관리를 등용하는데 그 사람의 의론, 곧 명(名)과 그의 실제의 성적, 곧 형의 일치 여부를 살펴 상벌·출척을 하여야 한다는 설입니다. 젊은 시절에 상앙은 위 나라에서 법가사상을 깊이 연구하여 이회(李悝)·오기(吳起)의 변법 경험을 종합하여 자신의 법가 이론을 완성하였습니다. BC 361년에 진 나라 효공(孝公: 재위 BC 361~338))이 "초현령(招賢令)"을 반포하여 널리 인재를 구한다는 말을 듣고 진나라로 들어간 후 효공의 측근 환관 경감(景監)의 주선으로 효공을 알현한 상앙은 효공에게 먼저 '제도(帝道)'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효공이 별 흥미를 보이지 않자 '왕도(王道)'를 설파하였습니다. 하지만 효공은 여전히 그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는 기색이 없자 이에 상앙이 '패도(覇道)'를 이야기하자 효공은 크게 기뻐하며 관심을 가졌습니다. 패도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자 효공은 여러 날을 듣고도 싫증 내는 기색이 없었으니 당시 진나라 임금 효공에게 가장 급선무는 부국강병이었으며, 이것은 결코 '제도'나 '왕도'의 범위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때 상앙이 주장한 변법의 핵심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낡은 봉건 영주제를 폐지하고 중앙집권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
둘째, 농전(農戰) 정책을 추진하여 진나라의 농업생산을 발전시키고 군사력을 증강해야 한다.
상앙이 실시한 변법이 현시대에 모두 통용되고 이치에 맞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썩어빠지고 낡아빠진 법에 개혁을 가했다는 점입니다. 농전은 백성들에게 평상시에는 농업에 종사하게 하고, 전시에는 모든 백성이 군사가 되어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었으니 오늘날의 예비군이 성격이 짙었습니다 다. 국가가 병력을 양성하는 목적은 오직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인데,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대에 병력을 유지하려면 국가적으로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겠지요. 그러나 만약 그들에게 평상시에는 농사에 전념하게 하고 전시에는 나라를 방위하게 한다면, 국가는 그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당연한 것처럼 여기던 것들도 당시에는 하나, 하나 쉽지 않은 것들이었습니다. 강력한 왕권이 형성되기 전이었으니까요. 이 법을 시행하기 위해진 효공은 BC 356년에 상앙을 좌서장(左庶長)이라는 요직에 발탁하여 법치, 부세 및 병법 등의 변법(變法)을 실시하게 했습니다 다. 상앙의 변법 내용은 당시 진나라의 경제발전과 군사 확장이라는 두 가지 요구를 모두 충족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진나라는 10년도 안되어 막강한 군사력과 부를 갖춘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상앙의 변법은 두 단계로 시행되었는데 제1차 변법은 진 효공 6년(BC 356)부터 시작되었는데 첫째 호적을 작성하고 '십오(什五) 연좌제'를 시행. 십 오연 좌제'란 다섯 가구를 오(伍, 5인조), 열 가구를 십(什, 10인조)으로 하는 제도를 정하고 인민을 서로 감시 고발케 하여 조(組)끼리 연좌제를 실시하는 것입니다. 즉 범죄인임을 알면서도 고발하지 않는 자는 요참형(腰斬刑)에 처하고, 고발한 자에게는 적의 목을 벤 것과 같은 상을 내리기로 한다는 것입니다. 또 어느 집에서 범죄인을 숨기면 그 집에 속하는 '십오(什伍)'는 똑같이 죄에 연좌하고 적에 항복한 것과 같은 벌을 내리기로 하였고 또 여관에 숙박할 경우에는 누구든 증명서가 있어야 했습니다.(후에 상앙이 진나라에서 도망쳐 여관에 묶으려 했으나 증명서가 있어야 숙박이 됨을 알고 자신의 가혹한 법 집행에 후회했다는 말도 전해지나 정적을 몰아낸 위정자들의 책략일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둘째 신상필벌(信賞必罰) 제도를 반포. 전공을 올린 자에게는 그 정도에 따라 작위를 부여하고, 개인적인 다툼에는 그 정도에 따라 형을 부과하고. 공족이나 귀족과 같은 명문 집안일지라도 전공이 없는 자는 그 신분을 박탈하였습니다. 모든 작위의 등급을 전공에 의해 규정하고 그 등급에 따라 전답과 가옥의 넓이나 가신, 노비의 수, 의복 등도 단계적으로 정하였으니 이것으로 상앙은 기존 귀족계급의 세습 특권을 박탈하여 전공을 기준으로 새로운 등급제도를 확립하려고 한 것입니다. 셋째 농경(農耕)을 장려하고 황무지 개간에 관한 법령 등을 제정. 개혁의 완벽을 기하기 위하여 효공 12년(BC 350)부터 제2차 변법을 시행하였는데, 이때는 제1차 변법보다 더욱 진취적이고 강력하였습니다.
첫째 봉건 영주의 토지 소유제를 폐지. 즉 농지개혁을 단행하여 정전제(井田制)를 폐지하고 원전제(轅田制)를 채용하였습니다. 정전제란 사방 1리의 토지를 '정(井)'자로 9등분 하여 그 경계에 논두렁을 만들어 구분한 것인데, 한가운데의 1 구획은 공전(公田)으로 수확을 왕후에게 헌납하고, 주위의 8 구획은 전부 노예주 귀족계급이 영유하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원전제는 서민들이 직접 경지를 소유하고 자유 매매도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둘째 현제(縣制)를 시행하여 군왕 직속의 현급 행정기구를 설치. 종래의 향(鄕), 읍(邑), 취(聚: 촌락) 등의 지방 행정단위는 각각 노예 주인 귀족계급이 영유하여 그들의 자의적인 통치에 맡겨져 왔었지만 상앙은 그러한 제약을 무너뜨리고 현급 행정기구를 신설함으로써 중앙집권을 강화하였습니다. 셋째 조세를 직접 징수하고 호구에 따라 병역세를 징수. 넷째 도량형을 통일. 다섯째 오랑캐의 풍속을 개혁. 즉 서쪽의 오랑캐 민족의 풍속인 부자 형제의 동실 거주를 금지하였습니다. 상앙은 두 차례에 걸친 변법의 시행을 통하여 진나라를 중앙집권 국가로 변모시키는 전기를 마련하였으며, 이로써 봉건 영주의 경제력은 점차 약화되고 중앙권력이 나날이 견고해졌으며, 농업 노동력이 증가하고 경지가 확충되어 농업생산이 날로 발전하였고. 뿐만 아니라 재정이 중앙으로 집중됨으로써 국가의 재정수입이 풍부해지고, 농전 정책의 추진으로 군사력이 크게 증강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상앙의 변법이 지향하는 바는 바로 중앙집권체제의 확립에 의한 부국강병이었으며, 그것을 내용적으로 보면 농본주의와 법치주의를 두 개의 기둥으로 삼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신상필벌 정책은 법가의 가장 기본적인 주장으로, 모든 것을 법으로 다스려 법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법을 어기는 사람에게는 벌을 준다는 원칙을 공평하게 견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앙은 이러한 법을 시행하기 전에 먼저 높이 30척의 나무를 함양의 남문에 걸어두고, 그 옆에 만약 누구든지 목패를 북문에다 옮기면 상금으로 금 열 돈을 준다는 방을 붙였다. 아무 영문도 모르는 백성들은 모두 이상하게 여길 뿐 선뜻 나서서 그 목패를 옮기려는 사람이 없었다. 이에 관에서는 다시 상금을 금 50돈으로 올렸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그 나무를 북문으로 옮겼고, 상앙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 사람에게 금 50돈을 상금으로 주었다. 이 소식은 빠르게 전국으로 퍼졌고, 백성들은 조정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현시점의 우리나라에도 무척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누진세만 보더라도 국가와 정치인들이 나서서 불합리한 요소를 바꾸어주지는 못할망정 국민의 소리가 불길 같아도 미봉책만으로 국민의 불만을 억제하려다 보니 국민들이 정치권에서 하는 일들을 믿지 못하는 일들이 반복됩니다. 한번 가진 불신은 아무리 진정성 있게 다가와도 쉽게 의심이 걷히지 않습니다. 국민이 불신하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이 신뢰하는 정치를 펴야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다고 믿는 상앙의 지혜를 요즘의 정치가들도 느껴야 할 것입니다
국내의 법률을 확고히 다진 후 국외로 시선을 돌린 상앙은 진 효공에게 세력이 약해진 위(魏) 나라를 정벌할 것을 건의하여 이에 상앙이 군대를 인솔하여 위나라를 공격하자 위나라는 공자 앙(央)이 5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오성(吳城)에 주둔하고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때 상앙은 공자 앙에게 화의를 청하는 거짓 편지를 보낸 다음 방심한 틈을 타서 그들을 공격하여 일거에 오성을 점령하였습니다. 이 공로로 상앙은 열후(列侯)로 봉해져 상군(商君)으로 칭해지고, 옛 위나라 영토였던 하남성 상읍(商邑)을 비롯한 15개의 읍을 봉토로 받습니다. 상앙이 각종 개혁을 엄격하게 집행하면서 진나라의 정치는 점점 본궤도에 들었으나, 반대로 그의 개혁에 의해 피해를 입은 수많은 사람들의 원한을 사기도 하였습니다. 상앙이 법을 집행함에 있어 가혹할 정도로 엄정했기 때문인데 ≪사기≫의 작자 사마천이 상앙을 일러 "그 천성이 각박하여 복이 적다"라고 평하고 있는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 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법에 엄격하지 않으면 그 누가 그 법을 무서워하고 따르겠습니까? 또 누구누구는 이러이러해서 봐준다면 그 법이 무슨 힘을 발휘하겠습니까?BC 338년 진나라 효공이 병으로 세상을 뜨고 태자가 혜왕(惠王)으로 즉위하였습니다. 그러자 변법으로 피해를 입은 많은 왕족과 귀족 대신들은 일제히 상앙이 반란을 도모한다고 비난하였고 혜왕도 태자 시절 자신의 잘못을 질책하여 사부의 코를 벤 상앙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상앙을 바로 파면하였습니다. 상앙이 사직하고 상읍으로 돌아가는데 혜왕은 다시 군대를 보내어 그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이 소식을 들은 상앙은 재빨리 국경의 함곡관(函谷關)에 도망쳐 어떤 여관에 들어갔습니다. 물론 여관 주인은 상대방이 누구인지 전혀 모른 채 "상앙 어른께서 정하신 법률에 따라 증명서가 없는 사람은 재울 수가 없습니다. 저까지 죄책을 면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제야 상앙은 자신이 제정한 법률이 너무도 가혹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상앙은 위나라로 도망가려고 하였으나, 위나라 사람들은 그가 공자 앙을 속임수로 격파한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으므로 그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고 결국 상앙은 자신의 봉토인 상(商)으로 가서 세력을 규합하여 재기하려 했으나 뒤를 추격해온 공손가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진 혜왕은 상앙을 그가 정한 법률에 따라 거리에서 사지를 찢는 거열(車裂)이라는 극형에 처하고 구족(九族)을 멸하였습니다. 상앙의 주요 사상은 후세인들에 의해 ≪상군서(商君書)≫ 29편으로 편집 정리되었는데,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그러한 기록이 보이기는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것은 24편뿐입니다. 총 51편으로 방영된 중국 드라마 "대진 제국"속의 상앙은 매우 의롭고 정의롭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상앙의 최후에서는 실제 역사서에선 도망쳐 나오다 잡히지만 드라마는 상앙을 미화시키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 드라마도 마찬가지지만 중국 드라마도 왜곡이 심하다 할 수 있는데 중국 드라마 대진 제국 자체가 상앙이 주인공이므로 그 정도는 애교 수준으로 넘어갈 수 있을 수도 있지만 중국의 동북공정을 떠올려보면 결코 가볍지 않은 역사적 왜곡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입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력하고 모두가 수긍하고 따를 법이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법이 굉장히 존귀하고 신성하다는 의식이 깔려 있어야 합니다. 중국 역사에 법치주의의 상징이라 불려도 손색없는 상앙을 내 세우고 그의 최후가 마치 예수나 소크라테스의 그것처럼 미화된 것은 중국 인민들의 무의식에 법이란 무조건 따르고 지켜야 할 사상적 기반으로 삼으려는 일환으로 보이기까지 하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법 위에 돈과 권력이 있고 위로는 정치가와 경제인 등이 법위에 군림하고 아래로는 일반 국민들이 법의 존엄함에 대해 의심하고 법을 지키면 손해를 보고 바보가 되어 버리는 세상입니다. 우리나라에 상앙 같은 인물이 나와 정치 권력자이건 일반 국민이건 간에 법을 어기면 처벌받는다는 믿음을 줄 때 진정한 법치국가의 완성이 도래한다 믿어집니다. 중국 CCTV에서 방영한 대하드라마 대진 제국(프로듀서 황건중)은 진시황의 진나라가 만들어지기 전의 우리가 잘 몰랐던 진나라에 대한 이해와 책략가이자 전략가이며 위대한 사상가이기도 했던 상앙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작품이며 드라마 자체도 완성도가 무척 높습니다. 거기에 우리가 잘 몰랐던 여러 중국 배우들 진효공 역을 맡았던 허우용이라던지 상앙역의 왕즈페이, 백설 역의 고원원 등을 한자리에서 만나실 수 있는 수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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