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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폐라뮤지엄/연애뮤지엄

시체를 아내로 맞이한 왕의 선택_페드로와 이네스의 사랑(포르투칼 돈 페드로1세와 카스틸 공녀 이네스 데 카스트로)

by 마음heart 2011.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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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를 아내로 맞이한 왕의 선택/

페드로와 이네스의 사랑


우리 일생에서 얼마나 우리가 꿈꾸는 사랑을 할 확률은 얼마나 될것인가?아니 우리 또는 자신에게 그런 사랑이 온다면 온 열정을 다하여 그 사랑을 지켜내고죽는 순간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하는 마음 또한 든다.수많은 연인들이 불같은 사랑을 하다가도 원수처럼 헤어지는 경우를 종종 봐왔기에 열정적인 사랑조차 유통 기한이 채 2년도 안된다고 말들 한다.하지만 지금 소개하려는 페드로와 이네스는 영화보다 불같은 사랑을 하였으며 죽는 날까지,아니 죽어서도 사랑하는 이를 품에 안았던 그야말로 영원불멸한 사랑 그 자체이다.하지만 한편으로는 섬뜩할 정도의 광기와 집착이 엿보이기도 하는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연인이었다 

포르투칼의 돈 페드로1세와 카스틸 공녀 이네스 데 카스트로

 

 


첫 눈에 반한 완전한 사랑

1340년 포르투갈의 왕위 계승자였던 돈 페드로는 결혼상대자였던 페나피엘 대공의 딸 콘스턴스를 맞이하였다.콘스턴스는 시녀 이네스 데 카스트로와 동행을 하였는데, 페드로는 아름다운 이네스를 보자 마자 첫 눈에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서로의 감정을 속일 수 없었던 둘은 비밀연애를 하였다. 하지만 결국 소문은 퍼지어 둘의 이야기는 궁정에 파다하게 퍼졌고 콘스턴스의 귀까지 들어갔다.하지만 콘스턴스는 물러설 수 없었다. 자신은 자신의 남편 페드로의 후계자 페르디난드까지 낳았기때문에 둘을 떼놓을 명분은 충분히 있었다. 콘스턴스는 이네스를 페르디난드의 대모로 지정하여 둘의 사랑을 불법으로 만들어버렸다. 물론 둘의 사랑이 금지 되었다 하여도 둘은 계속 사랑을 이어나갔다.(아마도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둘의 사랑이 도덕적으론 비난 받을 지언정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었던 듯 하다.이네스가 페르디난드의 대모가 되기까지는 말이다)

무릎을 꿇은 이네스 데 카스트로

 사랑의 도피를 하다

결국 추방을 당한 이네스는 여러 경로를 통해 페드로와 비밀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이어 나갔다(사랑이라는 것은 장애물이 생기면 뛰어 넘으려 하고 갈라 놓으면 붙으려하는 성질이 있다.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결국 코임브라시에서 이네스와 페드로는 해후하여 가정을 꾸려나갔으며 그녀는 네 아이를 낳았지만 장남 알폰소는 어린나이로 사망하고 말았다. 페드로는 이네스의 친정인 카스트로가의 남자들과 어울리면서 카스티야의 왕위까지 탐내게 되어 나라에 위험을 조성하였고 페르디난드의 왕위 계승이 밀려날 것을 우려한 콘스턴스와 측극들은 이네스를 죽이기로 결심하였다.1355년 페드로가 귀족친구들과 베이라지방으로 사냥을 떠났을 때, 왕은 왕정의 고문관들을 집합시켜 이네스의 살해를 도모하였다.

 

살해 당한 이네스

 

1월 7일 이네스와 아이들이 같이 있는 집으로 왕과 고문관이 찾아갔다. 왕은 손자들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져 밖으로 나왔고 사형 집행인들만 칼을 꺼내 들고 난입하여 이네스를 잔혹하게 살해하였다. 뒤늦게 이를 안 페드로는 격분하여 이네스를 죽인 자들을 찾아 다녔다.페드로의 심장은 복수심만으로 가득했고 이네스와의 사랑은 추억속에서만 존재 했다.그러나 사형집행자들은 째빨리 카스티야로 도주하였고 페드로는 카스티야 왕에게 그들의 인도를 부탁하여 결국 이네스의 복수를 할 수 있었다.솔직히 여기까지야 중세의 귀족 여느 사랑과 별반 다르지 않다.산 사람은 산다고 어떻게든 죽이 이를 잊고 살아 가기 때문이다.그러나 페드로는 달랐다.페드로는 살아 생전 이루어 주지 못한 이네스와의 결혼식을 선포하고 그녀의 자식들을 왕위계승자로 올리려 했으나 주위의 반대가 심하자 페드로는 한발짝 물러 서며 포기하는 것 같았다.그러나 페드로는 포기할 생각도 물러설 마음도 없었다.놀랍게도 그는 대관식에서  죽은 이네스의 시신 머리에 왕관을 씌워주고 옥좌에 앉혔다.

이네스 시신을 옥좌에 앉히는 페드로

 

 


사랑인가?집착인가?

  

1360년 늦은 여름, 왕위에 오른 페드로는 코임브라시에서 모골이 송연해지는 의식을 진행했다.왕좌의 앉은 페드로 옆에는 5년 전 죽은 이네스의 시신이 앉아있었다. 왕의 특명에 따라서 고관대작들이 차례차례 앞으로 나와 왕좌에 앉혀 놓은 이네스의 시신의 손에 입을 맞추며 경의를 표하였다.

서로 마주 보고있는 이네스와 페드로의 묘

 

페드로는 왕위에 오른 후 평생 재혼하지 않았으며 죽을 때까지 왕비 자리는 비워두었다.그들의 관은 서로 마주보도록 배치되었는데, 이유는 당시 사람들은 종말이 오면죽은 자들은 무덤에서 일어난다고 믿었는데, 그 때가 와서 자신이 깨어나 일어나게 되면 제일 먼저 이네스와 눈을 마주치길 바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네스의 실제 석관

페드로의 이네스의 사랑의 정점은 둘이 사랑의 도피를 하며 지낸 시간들 이었을까?아니면 이네스를 잊지 못하고 죽은 지 5년 후 이네스를 자신의 옆에까지 두고 싶어한 광기와 집착의 시점이었을까?혹자들은 페드로가 평범한 사람이 아닌 권력의 정점에 있던 인물이었기에 평범한 이들은 상상도 못할 정치적인 술수와 계산이 있었을것이라고도 한다.물론 그럴 수도 있다.자신이 사랑한 이네스를 죽인 인물들(비록 이네스를 죽인 것은 사형집행자들이었지만 페드로가 미쳐 단죄하지 못한 권력가들에게 페드로는 외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에게 그렇게 자신이 마음이 확고하고 단단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것일지도 모른다.솔직히 이 이야기에 버금가는 우리 나라의 한 왕이 떠오른다.바로 고려 말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사랑이다.너무 힘든 건 사랑이 아니라는 노랫말도 있지만 모든 사람의 사랑 방식이 같을 수는 없다.비록 광기와 집착으로 비춰질지라도 한 여자를 향한 마음은 오래도록 회자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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