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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폐라뮤지엄/연애뮤지엄

사랑에 미친 연인들_국가기밀까지 넘겨준 천재 아인슈타인과 마가리타 코넨코바의 미친 사랑

by 마음heart 2011.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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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밀까지 넘겨준 천재 아인슈타인과 마가리타 코넨코바의 미친 사랑/

사랑에 미친 연인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이 우매한 질문에 대답 못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누구나 일생에 한 번은 벼락 맞은 듯 첫눈에 반하는 사랑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만일 아직 당신에게 그런 사랑이 찾아오지 않았다면,너무 늦게만 찾아오지 말아 달라 기도하는 수밖에는 없다. 애인이 있는 사람을 보고 첫눈에 반하는 이도 있고, 이미 임자가 있는 이를 사랑해버리는 운명의 장난같은 사랑도 있다.물론 이런 사랑은 제 3자가 볼적에는 불륜도 되고 철없는 사랑놀음도 될 수 있다.그러나 그 어떤 것도 당사자가 되어보지 않으면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이다.함부로 던진 돌이나 화살에 맞은 이는 커다란 상처와 아픔을 갖게 되는 것이니까,

 

아인슈타인 (1879~1955)과  마가리타 코넨코바 (1896~1980)

 

제목을 보고 짐작한 이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오늘 역시 어제에 이어 아인슈타인의 이야기이다.전편에 불꽃처럼 사랑했던 밀레바와 둘 사이에서 난 두 아들을 버리고 결국 사촌 엘자와 재혼을 한채 미국으로 망명의길을 떠났던 아인슈타인,미국에서 아인슈타인은 명성과 부를 손에 넣으며 승승장구하지만 밀레바는 극심한 셍활고에 시달리다 결국 생을 마감하고 만다.그렇다면 조강지처를 버려두고 미국으로 건너간 아인슈타인의 사람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아내 밀레바와의 15년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나치즘을 피해 미국으로 온 아인슈타인은 그로부터 3년후인 1935년, 자신의 인생에서 운명과도 같은 한 여인을 만나게 된다.그때가 1935년,뉴욕의 한 아틀리에에서였다.자신이 재직하던 프린스턴대가 의뢰한 초상화를 그리던 화가의 아내에게 첫눈에 반해 버렸다. 아인슈타인을 그리던 화가는 러시아의 로뎅이라는 명성을 얻던 화가겸 조각가 세르게이 코넨코프,그리나 정작 아인슈타인의 눈에 들어온 건  그의 아내 마가리타 코넨코바였다.이때 아인슈타인의 나이는 56세였고 마가리타는 39세였다.첫눈에 그녀에게 깊이 빠져든 아인슈타인은 흥분한채로 그녀에게 자신의 상대성이론을 설명해줬고 마가리타는 매우 흥미깊게 경청했다고 한다.첫번째 부인 밀레바와 헤어진 후 어쩌면 아인슈타인은 지성인다운 여성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마가리타는 여타 여성들과는 달리 아인슈타인의 지루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어줬으며 상당한 식견을 가졌었던 것 같다.이미 둘 사이에 나이의 차는 하찮은 것이었고 남편의 존재는 무의미한 것이었다.세간에 이 둘의 사이는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단순하게 연인이외의 것으로 치부할뿐이었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 마가리타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세상은 경악한다.마가리타 코넨코바가 남편과 함께 미국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3년전인 1923년경,그녀 나이 27살즈음이었다. 뉴욕에서 열린 소련 미술전시회에 참가하러 미국에 온 이후 그녀는 돌아가지 않았다.이후 그녀는 미국 상류층 사교계의 주요 멤버가 된다.

마가리타가 순식간에 호사스러운 미국의 귀부인으로 변신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뉴욕의 사교계를 엿보자마자 그녀는 러시아에서 입던 옷들을 당장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고 했다. 
볼셰비키 문화에서는 증오의 대상에 불과한 은빛 망사스타킹이 미국에서는 경탄의 대상이었으니까. 
그 스타킹은 이내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부드럽게 타고 올랐고, 그녀의 손톱은 진줏빛 매니큐어로 빛났으며, 
그녀의 온몸을 치장한 화려한 보석들은 보는 이의 눈을 부시게 했다.”

그녀를 예전부터 알던 한 여성의 증언은 그녀가 얼마나 빨리 미국 상류층속에 녹아들었는지 말해주고 있다.마가리타와 그녀의 남편은 미국에서 20년이상 머물며 미국 사교계에 없어선 안될  인물로 연신 화제를 몰고 다녔다.그녀가 여는 파티에는 전설적인 성악가 페오도르 샬리아핀이 이들과 함께 독주를 벌컥벌컥 들이켰고, 세계적인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은 이들이 연 파티에서 고삐 풀린 말처럼 거침없이 춤을 췄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가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엇다고 한다.원래 시골출신으로 수줍은 많던 마가리타는 모스크바에서 생활하던 무렵에는 팜므 파탈Femme fatale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뭇 남성들의 애간장을 태우며 명성을 드 높였다고 한다.그녀는 남편이 보는 앞에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손을 이끌고 침실로 거리낌 없이 향해 그 장면을 목격한 남편이 흐느끼며 침실문을 두드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였다고 한다.그러나 이내 남편은 그녀의 그런 방탕한 생활을 감내하기에 이르렀고 마침내 1935년 무렵엔 그런 마가리타에게 반해 버린 아인슈타인을 만나게 된다.아인슈타인의 사촌이었던 부인 엘자는 1년후즈음 세상을 뜨는데 그후부터 마가리타는 자주 프린스턴대로 아인슈타인을 찾아온다.


 

 

마가리타와의 인연이 깊은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와 아인쉬타인

 

사랑하여 아낌없이국가기밀까지 넘겨준 천재의 사랑,


 

 

1941년을 즈음하여 마가리타는 미국에 거주하는 러시아인들에게 연일 화제의 중심에 있게 된다.당시 미국과 소련에게는 공공의 적 독일이 존재하였는데  그녀는"재미 러시아 협력모임"을 조직하며 라흐마니노프나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 엘리너 루스벨트 영부인과 같은 저명인사가 다수 참여하자 그녀는 미국정,재계인사들과 쉽게 접촉할 수 있게 되었다.미국과 소련에게 독일이라는 공공의 적이 존재할땐 문제가 없었으니 종전이 다가올수록 두 국가사이에는 패권을 향한 야욕이 가속화되기 시작하였다.1935년 아인슈타인이 만난 매력 넘치는 마가리타는 의도적인 접근으로 아인슈타인의 혼을 속 빼앗아가는데 성공한다. 구소련 정보기관의 문서들에는 그녀가 KGB를 위해 활동한 베테랑 공작원이었음을 명확하게 밝혔다.그녀의 주된 목적은 미국 프린스턴대에 재작중이던 두 명의 물리학자 존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게 접근,포섭하여 원자폭탄의 개발 상황을 알아오는 것이었다.1945년 7월16일 미국은 뉴멕시코에서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을 성공하였으며 전 세계 주요기관에서는 이 소식을 전해 들으며 경악하였지만 소련의 스탈린만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이미 마가리타로부터 진척 상황을 전해 받았기 때문이었다.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8월 중순 이후, 원폭에 관한 소련의 정보망은 크게 변화한다. 원폭의 위력을 이미 확인한 마당에 연구개발에 관한 주변정보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원자력 기술을 둘러싸고 고차원의 국제경쟁이 시작된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의 주변에 머물고 있던 마가리타의 역할 또한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모스크바가 원하는 것은 비전문가인 마가리타가 보내는 수준의 일반적인 정보가 아니었다. 8월18일, 소련 국가보안위원회는 ‘9887-ss/op’라는 일련번호가 붙은 비공개 명령을 의결한다.국내적으로는 원폭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해외에서는 핵 산업과 원폭생산에 대한 보다 상세한 기술정보를 입수하라는 내용의 지령이었다. 이 시기 소련이 이미 원폭제조와 관련해 적잖은 정보를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무렵 마가리타의 활동을 뛰어넘어 보다 전문적인 내용의 핵 관련 정보를 소련에 제공한 사람은 클라우스 트라우베라는 연구원이다. 미국정부의 핵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트라우베는 고차원의 기술정보를 모스크바로 보내 소련의 핵개발을 크게 도왔다. 트라우베의 활동으로 고급 기술정보를 확보할 수 있게 된 모스크바 정보당국의 최고위층은 더이상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코넨코프 부부에게 본국으로 귀환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코넨코프의 작품들은 스탈린의 직접적인 배려에 힘입어 배편을 통해 소련으로 안전하게 옮겨졌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마가리타는 KGB에 대한 충성심을 입증하기 위한 자신의 마지막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바로 뉴욕주재 소련 총영사와 아인슈타인이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하는 작업이었다. 결국 아인슈타인에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수 밖에 없었던 마가리타의 고백을 전해 들은 아인슈타인은 크나큰 충격을 받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을 어쩔 수 없어 그 부탁을 들어주게된다.훗날 아인슈타인이 마가리타에게 쓴 편지가 공개되었는데

나는 오늘도 당신을 생각하고 있다오.그리고 당신이 기쁘고 담대한 마음으로 새로운 인생에 발을 디디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소. 또한 당신 내외 모두 긴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바라오. 당신이 말한 그 계획에 따라 나는 영사를 만나고 왔소.…사랑의 키스를 전하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마가리타가 아인슈타인을 사랑했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아인슈타인이 그녀를 사랑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아인슈타인과 인연을 뒤로하고 모스크바로 돌아온 마가리타에게 기다리고 있던것은 우울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미국에서의 화려함에 비해 모스크바의 바람은 견딜 수 없는 가혹함이었다.1940대 후반, 마가리타가 미국에서 세운 공들은 떠들고 다닐 수 없는 숨겨진 업적이었고 스탈린의 가혹한 철권통치속에 마가리타의 화려한 날들은 지나간 날들의 꿈일 뿐이었다.1980년, 85세의 노구인 마가리타는 모스크바의 자택에서 영양실조로 외로운 죽음을 맞는다.남편이었던 세르게이는 9년전인 1971년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녀를 보살펴주는 이는 마가리타를 학대하던 여자 조수한 명뿐이었다.  이 조수는 마가리타가 화려한 시절 모았던 값비싼 수집품들을 하나,둘 자신의 소유로 만들었고 남편의 사망이후로 마가리타는 삶의 의욕을 잃은채 살아갔다고 한다.그리고 죽기전에 자신이 받은 편지 대부분을 불살랐으며 그마나 남아있던것은 라흐마니노프나 샬리아핀 같은 당대의 예술가들이 그녀에게 보낸 연서와 아인슈타인이 직접 써보낸 사랑의 연서.상대성이론을 설명하기 위한 방정식, 연애편지만이 남아있었다 한다.아인슈타인이 소련으로 귀국하는 그녀에게 건네준 손목시계는 1998년 런던 소더비에서 경매에 부쳐지며 17년이라는 나이 차이속에서 사랑을 느끼게 해줬던 마가리타와 아인슈타인의 사랑 이야기도 그렇게 추억속으로 사라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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