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전설스토리 우승 반지 10개,MVP 3회 수상에 빛나는 뉴욕 양키스의 심장 요기 베라 경기는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로렌스 피터 "요기" 베라(Lawrence Peter "Yogi" Berra,1925년 5월12일~2015년 9월22일(향년 90세),170cm / 85kg)는 뉴욕 양키스의 영구결번 포수로 그가 양키스의 마스크를 쓰는 기간에 얻은 우승 반지만 10개나 되며, 15회 올스타에 선정되었습니다. 통산 MVP 투표에서 5위 안에 든 횟수만 7번이고, 그 중 3번이나 MVP를 차지했는데 이는 아메리칸리그에서 현재까지 가장 많은 MVP 수상 횟수로, 베라보다 앞서 달성한 조 디마지오와 미키 맨틀,알렉스 로드리게스가 타이를 이루고 있습니다. 양대리그 전체로 범위를 넓혀보면 스탠 뮤지..
메이저리그 전설스토리 루게릭의 후계자 미키 맨틀 역사상 최강의 스위치히터 미키 찰스 맨틀(Mickey Charles Mantle,1931년 10월20일~1995년 8월13일(향년 63세),180cm / 88kg)은 뉴욕 양키스의 원클럽맨이자 사상 최고의 스위치 히터로 MVP를 3회 수상했습니다.미키 맨틀은 베이브 루스의 기록들을 갈아치울 재능이 있던 선수라고 평가를 늘 받아왔던 선수였고 실제로도 그럴 기세였으나 그 놈의 부상으로 여러 번 골골대는 바람에 고작 500홈런을 넘긴 것에 그쳤습니다.선수생활 내내 여러가지 잔부상에 시달리지만 최악의 유리몸이라고 하기엔 18년 동안의 선수생활 중 3시즌을 제외하고는 전부 120경기 이상을 소화하는 미친 근성을 보여줬으며 무수한 잔부상들의 고통을 20년 가까이 버틸..
메이저리그 전설스토리 뉴욕 양키스 원클럽맨 프랜차이즈 스타 조 디마지오 불멸의 56경기 연속 안타와 마릴린 먼로와의 세기의 사랑과 이별 조셉 폴 "조" 디마지오(Joseph Paul "Joe" DiMaggio,1914년 11월25일 캘리포니아 출생~1999년 3월8일(향년 84세)는 베이브 루스와 루 게릭을 잇는 뉴욕 양키스의 원 클럽 맨 프랜차이즈 스타로 보스턴 출신이었던 루스가 아닌, 양키스 팜에서부터 올라온 게릭으로부터 시작되는 원 클럽 맨 프랜차이즈 스타 계보는 이후 미키 맨틀,돈 매팅리,데릭 지터가 이으며, 향후 애런 저지가 이을 수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비록 13시즌밖에 뛰지 않아 누적 성적이 낮지만, 준수한 비율 스탯과 더불어서 뛰어난 전성기를 누린 선수로 실제로 디마지오의 누적 성적은 3..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21·2022 이정후 전 세계 유일무이 부자 타격왕과 리그 MVP 등극으로 날아오르다 이정후는 프로 입단 전부터 이종범의 아들로 일찌감치 주목을 받아왔으며 고교 시절 기본 포지션은 유격수였으나 프로에 와선 타격 능력을 살리기 위해 외야수로 전향하여 2017 년에 10년 만의 순수 신인왕 및 순수 고졸 신인왕이 되었습니다. 정교한 타격과 선구안,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듯한 배트 컨트롤로 안타를 생산해 내는 컨택 능력이 특징으로, 5년 연속 골든글러브, 2년 연속 타격왕, 2022년 MVP 수상을 비롯한 다수의 수상 실적을 보유하고 있습니다.고척 시대 히어로즈 구단을 대표하는 선수이자 김현수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을 이끌어나갈 ‘차세대..
곰의 탈을 쓴 여우,1984년 이만수 이후 35년 만에 포수 타격 1위를 달성하다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19년 양의지 양의지는 두산 베어스 소속 우투우타 포수로 KBO 골든글러브 포수 부문 7회 수상자로 지명타자 부문 1회 수상과 2010년 신인왕, 한국시리즈 MVP 2회 수상의 커리어를 보유하고 있으며 가장 유명한 별명은 '곰의 탈을 쓴 여우'입니다.양의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부 부장 선생님이었던 담임선생님의 제안을 받고 야구를 시작하는데 어린 시절부터 부친이 야구팬이어서 야구 관람도 자주 가고 동네에서 야구도 자주 했었다고 합니다.광주 진흥고에서 정확한 송구 능력과 장타력이 돋보이는 타격으로 나름대로 촉망받는 포수였지만 동작이 굼떠 프로에서 크게 성공하기는 힘들다는..
165cm의 작은 거인,이종범 이후로 23년만의 유격수 타격왕을 거머쥐다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17년 김선빈 김선빈은 KIA 타이거즈의 2010년대 유격수 자리를 책임진 프랜차이즈 스타로 커리어의 대부분을 유격수로 출전하였고, 안치홍이 팀을 떠난 2020 시즌부터는 주전 2루수로 출전 중입니다.타 선수들에 비해 작은 신장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대표적인 KBO 리그 단신라인의 선수 중에 한명입니다.프로필상 키는 165cm이지만 실제로 신인드래프트 때 고교시절의 좋은 활약과 화순의 야구천재라 불리며 2학년때 유일하게 청대에 발탁된 커리어에도 불구하고 하위픽으로 지명을 받은 것도 작은 키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지만 프로 데뷔 후의 활약으로 KBO 리그에서도 키가 작다..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16·2020 최형우 2000년대 좌타자 거포의 명맥을 잇다 최형우는 최정,양의지와 더불어 KBO 리그 2010년대 최고의 좌타자 선수로 자주 언급되는데 특히 타격 기록에 있어선 넘사벽이라 할 수 있습니다.스탯티즈 기준 야수로는 최정이 1위, 최형우가 2위고 타자 기록으로는 최형우가 1위이며 2014년 전에는 수비 스탯이 아예 기록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신뢰도가 매우 떨어지긴 하지만, 일단 외야수 통산 누적 sWAR로는 이미 박재홍을 넘어섰고, 21~23시즌 3년의 계약이 보장된 만큼 이 누적기록은 더 올라갈 것으로 보이는며 최형우가 은퇴할 때에는 최형우보다 4살 어린 김현수가 이 타이틀을 가져갈 확률이 높습니다.최형우는 이전에도 클린업트리오로서 충분한 ..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15년 에릭 테임즈 40-40 클럽과 3할 8푼의 타율로 리그를 폭격한 역대급 외인용병 180cm에 106kg의 당당한 체격의 에릭 테임즈는 비록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단 3년밖에 활동하지 않았지만 그 어떤 외인 용병보다 임펙트 강한 3시즌을 보내고 자신의 꿈을 찾아 메이저리그로 떠납니다.에릭 테임즈는 KBO 리그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타자로 손꼽히는데 에릭 테임즈가 3년간 한국에서 보여준 활약은 폭격 그 자체였습니다. 특히 MLB에서도 통산 4명밖에 세우지 못한 기록이자 2006년 알폰소 소리아노가 마지막으로 달성하고 아시아엣서는 최초로 40홈런-40도루 클럽 가입과 한 시즌 사이클링 히트 2회의 기록은 모두 역대 최초로, NC의 구단 역사는 물론 KB..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14년 서건창 서교수, 리그 사상 초유의 한시즌 200안타 돌파의 신화를 쓰다 서건창은 2008년 LG 트윈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하여 같은 해 6월 정식등록 선수로 전환됐지만 1경기 1타석 1삼진만 기록하고 방출되었습니다. 이후 육군 31사단 일반병(예비군부대 소총수)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넥센 히어로즈 테스트를 거쳐 신고선수로 재입단하게 되었고 2012년 또 하나의 신고선수 성공 사례를 쓰며 신인왕과 KBO 골든글러브를 동시에 수상했습니다.2014년에는 KBO 역대 최초 단일 시즌 200안타 기록을 세우며 MVP까지 차지했지만 이듬해 십자인대 부상을 당하며 수비력이 감소하고 타격 능력에도 영향을 주는 불운을 겪었으나 이후로도 다시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등..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12년 김태균 한미일 프로야구 사상 최다 86경기 연속 출루에 빛나는 출루머신 김태균은 야구 명문 천안 북일고 3루수로 1학년부터 팀의 중심타선에 들어간 초고교급 선수였습니다.대한민국 U-18 야구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2000년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WBSC U-18 야구 월드컵을 재패한 황금 세대의 일원으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3학년 시즌 부진한 모습을 보였으나 한화 이글스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김태균을 1차 지명, 2000년 7월에 계약금 1억 6천만원을 받고 입단했습니다.2001 시즌 초반엔 1군에 자리가 없어 2군에 머물렀으나 5월에 승격 후 주로 대타로 기용되며 날카로운 타격을 보였고, 곧 대선배 강석천의 3루를 빼앗아 버렸으며 김태균의 놀라..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08·2018 김현수 이정후 이전 정밀한 타격기계와 타격천재의 탄생을 알리다 김현수는 LG트윈스 소속 우투좌타 외야수이자 한국프로야구 선수협회 회장으로 신일고 시절부터 뛰어난 타격으로 이름을 날리며 청소년 대표팀에도 뽑혔지만 AAA대회 당시 멤버중 김현수만 혼자 프로구단에 지명을 받지 못했습니다.발탁되지 못한 이유로 발이 느리고 수비를 무성의하게 한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김현수를 가르쳤던 한 코치의 증언에 의하면 "현수는 쳤다 하면 2루타여서 열심히 뛸 필요가 없었다."라고 증언하기도 합니다.미국으로 진출한 신일고 동기 남윤희에 대한 보복으로 각 구단 스카우트들이 담합하여 지명하지 않았다는 설도 있지만 1987년생 드래프트를 보면, 남윤희와 김현수 사이..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06·2010·2011 이대호 트리플 크라운을 두번이나 달성한 조선의 4번타자 조선의 4번타자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이대호는 2001년 데뷔, 2004년 풀타임 출전을 시작으로 KBO 리그의 유일한 타격 7관왕과 두 번의 트리플 크라운 그리고 9경기 연속 홈런 세계신기록을 달성한 롯데 자이언츠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일본 프로야구에는 두 번의 베스트나인과 타점왕 타이틀, 그리고 한국인 최초로 일본 시리즈 MVP를 수상했으며 이후 메이저리그서도 한 시즌을 활약하며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해 최초로 한미일 리그에서 모두 활약한 한국인 타자이면서, 각 리그에서 최초로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한국인 타자라는 기록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KBO 역사상 은퇴 시즌..
만 40세 최고령 사이클링 히트 기록과 최고령 타격왕에 빛나는 트윈스의 적토마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05·2013 이병규 이병규는 장충고등학교 시절에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모교인 장충고등학교가 워낙 약체라 전국대회에서 번번히 고배를 마셨기 때문에 동기인 신일고등학교의 강혁과는 다르게 상대적으로 이름이 덜 알려진 편이었습니다. 당시 LG 트윈스에서 꾸준히 영입을 시도했지만 단국대로 진학했으며 고교 시절과는 다르게 당시 단국대는 대학야구 강호였고,아마 최다 타점 기록인 한 경기 11타점까지 기록하는 등 대학 야구 최고의 타자로 떠오르며 아마야구에서 이름을 떨쳤습니다.당연히 대학 최고의 타자였던 이병규를 두고 서울 연고 구단이던 LG 트윈스와 OB베어스가 서로 이병규를 1차 ..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04년 클리프 브룸바 외국인 용병 중 유이한 수위타자를 달성하다 플네임 클리퍼드 마이클 "클리프" 브룸바 Clifford Michael "Cliff" Brumbaugh,한국에서는 클리프 브룸바로 널리 알려진 전 현대 유니콘스,히어로즈 소속 용병 선수로 외국인으로서 최초이자 유이하게 타격왕 타이틀을 차지한 경험이 있는 선수이며, 그가 세운 2004 시즌 타율 0.343은 한국 프로 야구에서 활동했던 외국인 선수 중 가장 높은 시즌 타율이었으나 2015년 에릭 테임즈가 3할 8푼을 찍으며 경신하였습니다. 당시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이끌어 KBO MVP 후보로 거론되기도 하였으나 다승왕 타이틀을 차지한 배영수에 밀려 수상은 하지 못하였습니다.성적도 좋았으..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03년 김동주 두산베어스의 원클럽맨 두목곰 김동주는 고교 시절엔 천재 야구선수로 유명했으며, 포수를 제외한 전 포지션에서 뛰었으며 주 포지션은 유격수였습니다. 유격수로 뛴 경험을 바탕으로 벌크가 붙은 프로시절까지 3루 수비를 소화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같은 시기 신일고에서 맹활약하던 김재현과 라이벌 관계를 구축하기도 했습니다.고교 졸업 당시 대학이나 프로나 할 거 없이 김동주와 김재현을 잡으려고 구단들과 대학의 물밑작업이 치열했으며 결국 프로로 직행한 김재현이나 대학을 거친 김동주나 모두 잠실을 홈으로 쓰는 팀에 입단했고 각각 팀의 주축이 되었습니다.투수로서는 최고 145km/h에 이르는 강속구를 던질 수 있었고,타자로서는 정교한 컨택능력과 강력한 파워..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02년 장성호 9년 연속 3할에 빛나는 아기 호랑이 장성호는 충암고를 졸업하고 1996년 해태 타이거즈에 지명되어 입단해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서재응도 고졸 우선지명을 받았으나 인하대로 진학한 뒤 뉴욕 메츠와 계약을 맺고 미국으로 가게 됩니다.장성호는 고교 2년을 혼자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며 날려버린 상태에서 고3(1995년) 때 겨우 충암고 야구부로 복귀해 팀의 주장을 맡으며 당시 에이스 박명환과 함께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을 차지하면서 야구판 정대만 실사버전을 완성시켜 버립니다. 그런데 해태에서는 오로지 이 1년도 안 되는 시기의 포텐셜만 보고 2차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지명, 계약금 1억을 안겨주는 등 해태 나름의 초강수를 ..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2000년 박종호 39경기 연속 안타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다 박종호는 성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졸연고 자유계약으로 1992년 LG트윈스에 입단하였는데 입단 때만해도 유격수였으나 당시 감독 이광환이 박종호의 어깨가 약하다 판단하고 2루수로 전향시켰습니다. 그 해 시즌 종료 후 김용달 타격코치 주도로 스위치 히터 전환을 시도하였고, 1993년에 좌우타석 홈런을 치는 등 주전 2루수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 중 한 명으로, 그 해 2할 6푼 타율에 21도루, 56타점으로 하위타선의 해결사 역할을 하며 같은 팀 유지현과 준수한 키스톤 콤비를 이루면서 2루수 골든 글러브 수상하는데 단순히 성적만 보기에는 그다지 뛰어난 성적은 아니었..
최용술과 우에시바 모리헤이의 아이키도를 낳다 대동류 합기유술의 창시자 다케다 소가쿠 다케다 소가쿠는 1859년에 태어난 일본의 무술가로 무호는 源正義이며 대동류 합기유술의 증흥조로 다케다 집안의 고류무술이란 설도 있으나, 현대에 와선 다케다 소가쿠가 여러 무술을 종합해 창시한 당시 기준 신흥 무술이었다는 설이 지배적으로 다케다 소가쿠는 현대 모든 합기 관련 무술의 시조이자, 일본 근대무술의 거장 중 한명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아이즈의 작은 텐구로 불린 다케다 소가쿠 아이즈번사였던 다케다 소키치(武田惣吉)의 차남으로 아이즈번(지금의 후쿠시마현 카와누마군)에서 태어났습니다.스모의 역사이자, 검술에 능했던 다케다 소키치에게 스모(역사로서는 요코즈나(横綱) 다음의 오제키(大関)를 달성했는데 다케다 소가쿠는 ..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1999년 마해영 부산 갈매기 20세기 마지막에 날아오르다 마해영은 프로 데뷔 직후에 잠깐 3루수로 뛰었지만 주 포지션은 1루수였으며,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된 후에는 잠깐 좌익수로 뛰다가 수비 때문에 결국 지명타자로 활약했습니다.전성기 때도 극단적인 오픈스탠스 타격의 반동으로 몸쪽 공에 취약했던 문제점이 노쇠화로 인한 배트 스피드 저하로 극명히 드러났지만 본인의 고집으로 이 점을 개선하지 않았던 점이 급격한 몰락의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마해영은 부산 출신으로 부산 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아마추어 시절 차세대 빅뱃 자원으로 촉망받으며 2년 후배 심재학과 함께 국가대표팀 쌍포로 활약했고, 일부 아마야구에 관심이 많은 롯데 팬들의 기대를 받..
KBO 한국 프로야구 야신의 후예들 역대 타격왕 1997년 김기태 리그 최초 좌타자 홈런왕,타격왕까지 거머쥐다 김기태는 초5 때 투수로 야구에 입문, 광주일고 1학년 때 팔꿈치 부상 때문에 1루수로 전향했으며 중고교 때만 해도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인하대 진학 이후 급성장해 양준혁과 함께 국가대표팀의 붙박이 클린업 트리오로 활약합니다.김기태의 선수 시절의 전성기는 1992(시즌 30홈런 돌파),1994(홈런왕),1997(타격 및 홈런 2관왕)~1998 시즌입니다. 양준혁,이종범,이승엽,박재홍처럼 성적이 꾸준하지는 못하고 격년제 비슷하게 기복을 보였던 것이 아쉬운 타자였습니다.김기태는 1991년 신생 팀 특별우선 지명을 받아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했는데 쌍방울은 구단 차원에서 첫 시즌부터 투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