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과 망상이라는 함정 속에 빠져버린 난해한 살인의 기억/
조진웅 주연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 해빙解氷
조진웅, 신구, 유세아 등이 출연한 영화 해빙은 4인용 식탁, 가족시네마를 연출한 이수연 감독의 스릴러 영화로 조진웅을 비롯하여 신구나 김대명,이청아,유세아 등 티켓파워 배우는 전무하지만 영화는 촘촘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배우들의 연기력에 기댄 채 제법 쫄깃한 스릴러물을 만들어냅니다. 특히 배우로서 최초로 원톱으로 만들어낸 해빙의 주인공 조진웅은 불안과 의심이라는 기조를 밑바탕에 깔아 놓은 채 스토리를 풀어 나갑니다. 영화 해빙의 시놉시스는 한때 미제 연쇄살인사건으로 유명했던 지역에 들어선 경기도의 한 신도시에 병원 도산 후 이혼, 선배 병원에 취직한 내과의사 승훈(조진웅 분)은 치매 아버지 정노인(신구 분)을 모시고 정육식당을 운영하는 성근(김대명 분)의 건물 원룸에 세를 들게 됩니다. 어느 날, 정노인이 수면내시경 중 가수면 상태에서 흘린 살인 고백 같은 말을 들은 승훈은 부자에 대한 의심을 품게 되고 한동안 조용했던 이 도시에 다시 살인사건이 시작되고 승훈은 정육점 부자를 의심하며 공포감 속에 휩싸이는데 승훈을 만나러 왔던 전처가 실종되었다며 경찰이 찾아옵니다. 영화 리뷰를 진행하는 동안 상당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영화를 보시기 전인 분들은 포스팅을 삼가 되돌려주시기 바랍니다.
의심으로부터 시작돼야 하는 영화 해빙의 심리적 배후는 일단 조진웅이 연기한 승훈은 서울에서 운영하던 병원이 망한 후 쫓기듯 선배 병원으로 내려온 내과의사입니다. 그리고 영화 해빙에서 승훈에 대한 정보는 영화 막바지까지 전혀 노출되지 않으며 조진우의 의심하고 불안해하는 심리의 밑바탕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배제합니다. 이로 인해 영화 해빙은 자칫 지루하거나 루즈한 느낌으로 다가오지만 실상 조진웅이 맡은 승훈에게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이기도 합니다. 조진웅은 실상 자신에게 돈을 빌려준 사채업자를 죽인 살인범이며 그 죄책감에 영혼이 파괴되어가고 있는 상태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와 의사의 신분을 이용해 병원 내 프로포폴을 상습적으로 손을 대기도 합니다. 영화 초반 정육점 부자를 연쇄살인범으로 의심하면서도 정상적이지 않은 조진웅의 행동들에 단서들이 보이며 그런 조진웅의 의심스러운 행동들은 영화 말미에 모두 설명됩니다.
정육점 부자를 향한 의심은 복선에 복선을 깔아 두는데 조진웅은 정육점 부자를 연쇄 살인범으로 의심하게 되는데 바로 병원에서 치료받던 정 노인(신구 분)의 가수면 상태에서의 고백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후 펼쳐지는 시체의 머리를 발견하거나, 범행 현장을 목격하는 장면들은 매번 조진웅의 꿈과 같은 상태로 처리되는데 영화 설정상 긴장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도리어 이런 설정들이 영화 해빙을 루즈하게 만들고 몰입감을 해치기도 합니다. 조진웅은 정육점에 있었다가 침대 위에서 깨고, 뜬금없이 지하철에서 깨어나는 등 영화 해빙에서 끊임없이 현실과 망상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어지러운 상태로 표현되는데 이 모든 것이 승훈의 불안정한 상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영화 해빙은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망상적 기억 조작이 영화 해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데 과거 미제 사건으로 남겨진 연쇄살인의 진범으로 묘사되는 정노인이 연쇄살인의 진범이라고 생각하게 된 시발점은 수면 내시경 중 정노인이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들 때문입니다. 물론 정노인이 가수면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살인을 고백한 것과 그가 진범이라는 것은 승훈의 망상과 사실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승훈의 조진웅에게서 사실은 그의 죄책감이 만들어낸 모든 것일 수 있지만 관객은 사실과 망상을 가려내야 하며 수면내시경 중 가수면 상태에서의 정노인의 고백과 살인의 중거인 머리는 냉장고에 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며 대상포진 예방 접종을 맞으면서 처음에만 어렵지 또 하게 된다는 뉘앙스의 말을 하는 정노인은 조진웅의 망상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조진웅은 망상과 실재 사이에서 혼돈을 겪으며 자신이 보고 싶거나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사실로 믿게 됩니다.
사채업자의 시체를 유기하고 시체 머리를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던 승훈은 살인이라는 죄책감과 함께 찾아온 정신이상과 착란은 머리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나며 정육점의 정노인이 냉장고 속에 머리를 숨기고 있다고 믿게 됩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시체 머리는 조진웅의 냉장고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즉, 정노인이 과거 연쇄 살인마이기는 했지만 실제로 시체 머리를 보관까지 하진 않았다는 것입니다. 병원이 망하고 빚 독촉에 시달리던 승훈은 답이 없는 세상에서 답을 찾고 있었으며 그의 답은 결국 살인이 되고 맙니다. 승훈이 추리 소설을 좋아한 이유로 추리소설에는 답이 있으며 그 답은 범인이라는 말을 남깁니다. 여기에 이수연 감독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조진웅 이 처음 신도시로 내려와 정육점 부자와 만나고 가수면 상태에서 정노인의 고백을 들었을 때 자연스럽게 관객은 범인이 정노인 임을 알게 됩니다. 범인이라는 답을 영화 초반부터 정해놓으면서 또 다른 답을 숨겨놓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스릴러 영화 해빙은 티켓파워 가득한 배우 한 명 없이도 촘촘한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열연으로 의외의 재미를 선사한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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