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뉴월드 호텔 앞 살인사건
결혼식장에서 피의 복수를 감행한 깡패들
뉴월드 호텔 앞 살인사건은 1994년 12월4일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뉴월드 호텔 앞에서 일어난 조직폭력배 간의 보복살인 사건으로, 이 사건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조직폭력배들의 세력이 위축됩니다.
▦뉴월드 호텔 앞 살인사건_사건 발생
이 사건의 배경은 1991년 10월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박진수가 이끄는 목포파의 조직원들이 영산파의 조직원인 최창호를 살해한 팔레스호텔 살인사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18명이 맞붙어 1명이 흉기에 찔려 사망하고 3명이 중상을 입었는데 이에 영산파 측에서는 우호 조직인 그랜드파 두목의 차량을 빌리는 등 보복 준비를 치밀하게 진행했습니다.12월 4일 영산파는 박진수 두목을 주 표적으로 계획을 진행하기로 했는데 때마침 그가 소속된 목포파는 조직원의 결혼식 때문에 뉴월드 호텔에 모인 상태여서 회칼과 몽둥이를 휴대하고 호텔 밖에 잠복했으며 그 뒤 하객으로 참석했던 목포파 조직원 박신이 조직원 몇 명과 함께 호텔을 나오는 순간 박신을 박진수로 오인한 영산파 조직원들이 일행을 습격해 박신과 다른 목포파 조직원 유재수가 그 자리에서 숨지고 김훈석과 신원미상의 조직원 1명이 중상을 입었는데 신원미상의 조직원은 자신의 신변 노출을 꺼려 응급실에서 몰래 빠져나갔다고 합니다.
▦뉴월드 호텔 앞 살인사건_사건 수사
경찰은 이 사건을 지휘한 영산파 두목인 이하영과 범행에 이용된 포텐샤 차량을 제공한 그랜드파 두목 김 모씨를 지명수배했으며 10일 후 사건에 가담한 조직원 3명이 검거되었고 이후 다른 3명의 조직원이 자수를 했습니다. 또한 조직원들을 숨겨준 윤정섭씨 역시 범인 은닉죄로 구속되었고 다음날 이하영이 검거되고 다른 관련자들 일부가 검거되면서 일단락됐습니다.이후 다른 영산파 조직원인 이성식과 조진표마저 구속되면서 관련자 전원이 검거되었습니다.
▦뉴월드 호텔 앞 살인사건_28년간 도피를 하던 공범 서씨 체포
2023년 28년 동안 도피행각을 벌인 공범 서씨를 체포했는데 서씨는 사건 직후 중국으로 밀항했고 2022년 3월 중국 공안에 자수하여 한국으로 압송된 뒤 해경에서의 조사에서 공소시효가 완성된 후인 2016년에 밀항을 했다고 주장하여 결국 불법 밀항 혐의만 적용돼 불구속 상태로 입국해 검찰로 넘겨진 뒤 전남의 한 지역에서 일반인들과 다름없는 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해경으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광주지검에서 서씨의 밀항시기에 대해 조사에 들어갔는데, 서씨와 관련자들의 계좌 정보는 물론 공범들의 14년 치 교도소 접견 녹취록 등을 분석해 2005~2007년 중국에서 서씨를 봤다는 다수의 목격자 진술과 공범들의 교도소 접견 발언 등을 증거로 확보해 서씨를 조사한 결과 2003년에 밀항했다는 자백을 받아내었습니다.또한 수배범 정동섭이 8월 11일 오후 4시 30분경 서울 관악구의 한 호텔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는데 외부 침입 흔적이 없고 현장에서 정동섭의 자필 메모가 발견된 것으로 미뤄 사인은 자살로 추정되며, 그의 사망으로 인해 관련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처분이 되었습니다.
▦뉴월드 호텔 앞 살인사건_재판 및 여파
1995년 2월27일 1심 재판이 열렸는데 두목 이하영과 행동대장 안영구에게는 살인죄로 사형을 선고했지만 최종적으로 무기징역으로 결정되었고 또한 주요 행동대원인 김광과 이상기 역시 무기징역을, 나머지 행동대원인 박광은, 서재문, 김태영에게는 징역 10년~22년 6개월을 선고했으며 1년 후인 1996년 이성식과 조진표는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습니다.사건으로 조직폭력배 세력이 크게 위축되었는데 그것도 대낮에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회칼과 회칼과 몽둥이를 들고 떼로 몰려가서 살인쇼를 했으니 전국적충격을 인 선사했으며 정부 및 사법당국에서도 조직범죄에 대해 강경한 태세를 취했습니다. 또한 이 시기 폭력배가 구의원을 해먹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여론이 더욱 악화되어 조직폭력배들은 설 곳을 잃어가고 있었는데 이후 간헐적으로 폭력조직을 재건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일제단속 등으로 큰 타격을 입어 재기불능의 상태에 몰렸고 더 이상 예전과 같은 거대조직의 형태를 취한 조직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유명무실화되었는데 물론 이 와중에도 사업모델을 바꿔 근근히 세를 유지하는 조직이 있긴 해도 과거에 비해 세가 약해졌습니다.경찰청 사람들에서 이 사건을 두 번 다뤘는데 첫 번째는 1994년에 방영된 해당 사건 용의자 공개수배였고 두 번째는 1996년 에피소드인 '피의 보복'으로 해당 사건을 직접 다룬 것이었으며 2023년 8월 궁금한 이야기 Y 방영분의 세 번째 꼭지로 이 사건이 다루어졌는데 해당 방송에서는 범인들이 기소되기까지의 과정에 더해서 이들이 국내법을 잘 아는 사람들(법조인 등)의 조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문을 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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