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브 루스와 오타니 쇼헤이의 이도류가 한국 KBO 리그에도 있었다/
투타겸업의 전설 김성한의 1982
베이브 루스와 오타니 쇼헤이,100년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국적이 다른 이 두 선수는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바로 수준높은 투타 겸업-이도류-을 겸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특히 오타니는 베이브 루스가 한시즌에 기록한 10승-10홈런 이상을 정조준하고 있는데 작년에는 홈런은 46개를 쳤지만 투수로는 단 1승이 부족한 9승을 거두었지만 올해는 21홈런에 벌써 9승을 거둬 베이브 루스 이후 최초로 10승-10홈런 이상을 기록할 것이 거의 확실시 됩니다.여기에 우리나라 KBO 리그에서도 프로야구 원년이었던 1982년 10승-10홈런을 기록한 투타겸업 선숙 있었습니다.바로 오리궁뎅이 타법으로 유명한 김성한 선수입니다.그렇다면 한미일 세 국가의 투타겸업 선수들을 살펴보기에 앞서 가장 오래된 선구자 베이브 루스부터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메이저리그 역사를 통틀어 베이브 루스가 갖고 있는 위상은 그야말로 전설과 신화의 영역에 놓여 있습니다.타자로만 714개의 홈런을 때려냈으며 각종 지표들도 수십년간 깨지지 않아 메이저리그의 각종 천재들이 베이브 루스의 기록들을 깨기 위해 쉼없이 달려오기도 했습니다.2022년 현재 베이브 루스의 많은 기록들은 깨져 버렸지만 타자로 이룩한 기록만큼 돋보이는 기록이 투수로써의 기록이기도 합니다.베이브 루스는 본격적인 타자 전향을 하기 전까지 투수로써도 일급 좌완투수였습니다.베이브 루스는 보스턴에서 6년 양키즈에서 4년 정도 타자와 겸업하여 투수생활을 이어갔는데 투수로써의 괄목할만한 성적을 쌓은것은 보스턴에서의 6년간의 기간이었습니다.
베이브 루스는 1914년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 아메리칸 리그 최고의 좌완 투수들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승승장구하나, 그 당시 남다른 타격의 재능을 보여 투타겸업을 하게 됩니다.투수로 뿐만 아니라 타격의 재능을 숨기지 못한 베이브 루스는 1918년 시즌, 투수로서 13승을 올림과 동시에 타자로서도 단 95경기만을 뛰고도 11개의 홈런을 쳐내 아메리칸 리그 홈런왕에 등극하게 됩니다. 당시 최고의 좌완 투수로서 투수로 뛴 기간 동안 승률 1위(.659), 피안타율 1위였는데(9이닝 당 7.07개). 같은 기간 아메리칸 리그에서 베이브 루스와 비슷한 성적을 낸 사람은 단 한 명,월터 존슨뿐이었습니다. 심지어 1916년에는 그 월터 존슨을 제치고 아메리칸 리그 평균 자책점 1위를 한 적도 있었으며 좌완투수로서 10연속 완봉승기록을 세우기도 했는데, 이 기록은 후에 샌드 쿠팩스가 깨기 전까지 좌완투수 최다 연속 완봉승 기록이었습니다.야구 기자 제이슨 스타크는, 역사상 가장 과소평가된 좌완 투수 1위에 베이브 루스를 선정했는데 레드삭스 시절 월드시리즈에서 14이닝 1실점 완투승(1916년), 9이닝 완봉승(1918년), 8이닝 2실점으로 3경기 선발 등판해 31이닝을 던지며 3승 평균자책점 0.87을 기록했는데, 이것은 월드시리즈 역사상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기도 합니다.베이브 루스는 양키즈에서 타자 전향 이후에도 투수로 1년에 1, 2경기 정도 등판한 적이 있는데 특히 선수 말년인 1930년과 1933년에는, 등판하여 9이닝을 던지고 완투승을 거둔 적도 있습니다.베이브 루스는 투타겸업을 흉내낸 수준이 아니라 타자로는 홈런왕을 밥먹듯 했으며 투수로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좌완 투수인 윌터 존슨도 이겼던 제구를 가진 투수였다는 것입니다.베이브 루스는 투수로 총 10여년간 활약(성적의 90%는 보스턴 시절)하며 163게임 출전하여 94승 46패 4세이브,승률 0.671,방어율 2.28,1,221 1/3이닝,492 탈삼진 등을 기록하였습니다.
일본에서 메이저리그 야구하면 안타제조기 스즈키 이치로가 떠올를만큼 야구 그 자체인 선수인데 그런 이치로가 은퇴하자마자 소위 이도류를 장착하고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선수가 바로 오타니 쇼헤이입니다.투수로는 160km의 강속구를 뿌려대며 타자로는 46개의 홈런포를 터트릴만큼 투타에서 베이브 루스이후 가장 강력한 캐릭터가 바로 오타니 쇼헤이입니다.초기에는 이도류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만만치 않았지만 작년 시즌 9승과 아시아 타자로는 최초로 40홈런 이상을 때려대며 올해는 베이브 루스이후 처음으로 10승과 10홈런 이상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모으고 있습니다.
재능이 넘치는 이도류 오타니 쇼헤이는 작년 타자로 46홈런과 투수로 9승을 거두며 만장일치 MVP에 선정되었으며 2022년 현재도 22개의 홈런과 9승을 거두며 올해는 10승-10홈런 이상을 거둘것이 확실해 조심스레 MVP 2연패도 가능하다는 여론이 일기도 합니다.물론 양키즈의 저지가 67홈런 페이스를 달리고 있어 약간의 변수는 존재합니다.1994년생인 오타니는 이제 28살이기 때문에 타자의 전성기를 35살 안팎으로 잡으면 6~7년간 이와같은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면 투타겸업 선수로서 아성에 가까운 성적과 입지를 다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습니다.그렇다면 미국 메이저리그의 베이브 루스와 일본의 이도류 오타니 쇼헤이의 투타겸업에 대항할만한 한국 프로야구의 투타겸업은 지금으로선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일단 우리나라의 경우 선수층이 너무 얇다는 것입니다.포스트 류현진이나 김광현만 나와도 다행이랄까,하지만 프로야구 원년이었던 1982년 오타니가 그렇게 염원하는 10승-10홈런을 이미 달성한 한국 프로야구의 레전드가 있으니 바로 김성한 선수입니다.
김성한은 군산상고를 거쳐 동국대에서 활약하던 중 1982년 한국프로야구 출범과 동시에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합니다. 당시 해태의 선수는 15명으로 타 팀에 비해 상당히 부족했던 탓에 팀 창단 초기에는 투수와 타자를 겸업하면서 활동하였는데 이러한 팀 사정으로 인해 투타겸업을 하면서, KBO리그에서는 유일무이한 10승-10홈런을 기록하게 됩니다.당시 김성한의 투수로도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해태의 선수층 부족 때문만은 아니었는데 원래 김성한은 투수 출신으로 고교 때는 김시진과 투수로 맞대결하기도 하며 대학시절까지 투수로서 활약했었습니다.다만 타격에 더 재능을 보였고, 팔꿈치 부상의 여파로 프로 데뷔 후 3년만에 타자로 완전 전향했습니다.(그만큼 투타겸업은 프로선수들에게 신체에 무리를 주며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임) 데뷔 초에는 선수층이 얇았던 팀이었던 해태의 팀 사정상 투수까지 겸업하면서 휴식없이 타자와 야수로도 계속 출장했는데, 그 결과 팔꿈치에 뼛조각이 떨어져나오며 이후 기량하락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김성한은 투수로서 4시즌 동안 활약하며 총 167이닝,통산 방어율 3.02를 기록했는데 1982년에는 무려 106.1이닝을 소화했습니다. 1982년 타자로서 타율 0.305, 13홈런, 69타점, 10도루라는 빼어난 성적을 기록했는데 투수로서도 규정이닝을 넘기면서10승(5패 1세이브), 방어율 2.88을 기록합니다.현재까지 KBO에서 김성한 한 명밖에 없는 한시즌 10승 - 10홈런 - 10도루 - 3할 타율 - 타점왕이라는 진기록 보유자이기도 합니다.한국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투타 10-10-10클럽을 개설하고 유일한 회원이며, 투수도 타석에 서는 일본 센트럴리그나 미국의 내셔널리그식으로 경기운영을 바꾸지 않는 한 앞으로도 이 기록은 깨지기 힘들 것입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10홈런-10승은 루스만이 달성(1918년, 11홈런-13승)한 기록으로 다만 세간에서 당시 선발 투수로 활동했다고 인식하는 것과는 달리 26경기 출장 중 5경기만 선발로 나왔다는 것입니다. 물론 80경기 체제 중에 5경기를 선발로 나온 것이 생각보다 적은 비율은 아니었겠으나, 주로 나온 포지션은 구원 투수로 보는 것이 맞지만 문제는 구원 투수라도 80년대 야구 특성상 마구잡이로 등판하였고 규정이닝을 넘기는 이닝을 소화해냈다는 것입니다.현재의 오타니처럼 체계적인 관리를 받지 못했던 김성한은 투수가 아닌 타자로 명성을 더해나가는데 1985년 첫 홈런왕을 기록한 시점부터 마지막 전성기였던 91년까지 7년간 기록을 보면 타율.301(3위)홈런 145개(1위), 타점 483개(1위), 안타 803개(1위)도루 99개(8위), OPS.902(2위),WAR 30.97(2위), +wRC 157.5(2위)를 기록하면서 또 다른 전설인 삼성 이만수와 함께 리그를 양분했던 어마어마한 타자로 이름을 남기게 됩니다.개인 타이틀 역시 이 기간동안 홈런왕 3회(1985, 88, 89),타점왕 1회(1988), 최다안타 2회(1985, 88), MVP 2회(1985, 88)를 기록하면서 화려함과 꾸준함을 갖춘, 당시 프로야구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이었는데 김성한은 이 전성기 시기에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한 시즌 30홈런과 20-20클럽을 달성했다는 것인데 김성한 은퇴 후, 홈런 1위와 타점 1위는 2009년 김상현이 홈런 1위와 타점1위에 오를 때 까지 누구도 오르지 못했으며 또한 리그에서 한시즌 30-30을 최초 달성한 선수는 1996년의 박재홍이지만 100경기 남짓한 한 시즌에 30홈런과 한 시즌 30도루를 한번씩은 달성해본 최초의 선수는 김성한이라는 점에서 그의 천재성을 여실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그러나 그런 김성한도 1991년을 기점으로 서서히 노쇠화가 오기 시작,1991년 3할에 가까운 타율(.294)과 리그 3위의 홈런(23개)을 기록하던 방망이는 1992년 15홈런으로 꺾이더니 1993년부터 다시는 두자릿수 홈런을 치지 못합니다. 은퇴년도인 1995년에 잠실에서 홈런을 기록했을 정도로 펀치력은 그대로였으나 노쇠화로 인해 본래 자신의 약점이던 스윙스피드가 더욱 떨어지게 된 탓입니다. 결국 1995년 투고타저와 맞물려 시즌 타율이 1할까지 떨어지게 된 김성한은 그 해에 은퇴를 결정하게 됩니다.김성한이 남긴 통산기록은 14년간 타율 .286 1389안타, 207홈런,781타점, 762득점, 2루타 247개, 2285루타, 143도루. 은퇴를 선언한 95년 당시 도루를 제외한 타격 모든 부분의 1,2위에 랭크되어 있었습니다.이상으로 한미일 삼국의 이도류 오타니들을 알아보았습니다.역사가 짧은 우리 프로야구에서도 김성한이라는 걸출한 타자 이전의 투타겸업이 있었다는 것입니다.베이브 루스나 김성한은 당시 시절 부족한 인프라도 한몫했겠지만 오타니의 경우 스스로 투타를 따라가며 성과를 내는 것이니만큼 오타니 쇼헤이의 이도류의 발걸음을 따라가는 것은 어쩌면 이번 생에서는 다시 만나지 못할 발걸음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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