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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aboo 詩

우리들만 모르는 무시무시한 원전 그림 동화

by 마음heart 2011.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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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수의 라푼첼






아름다운 라푼첼은 숲 속의 탑에 갇힌다.


"라푼첼 라푼첼, 머리카락을 늘어트려 주렴."

 

마녀의 목소리를 듣고 라푼첼이 긴 머리카락을 창문 밖으로 늘어트리면 마녀는 그 머리카락을 붙잡고 탑으로

올라온다.
그 날도 라푼첼은 길게 땋은 머리카락을 창문 밖으로 늘어트리고 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탑에 갇힌지 며칠이 지났을까.

 그동안 그녀의 노랫소리에 이끌려 긴 황금색 머리카락을 붙잡고 탑으로 올라온 남자는 모두 몇 명이나 될까?

남자들은 모두 라푼첼의 아름다운 얼굴과 늘씬한 몸매에 현혹되었다.
그리고 똑같은 밤이 이어졌다.

달콤한 향기가 배어 있는 침대로 안내 받은 남자들은 부드럽고 깨끗한 시트 위에서 라푼첼의 능숙한 애무에 취했다.

정신 없이 이어지는 관능의 밤. 그리고..날이 밝아오면 고텔 아주머니가 찾아왔다.

남자는 라푼첼이 먹인 수면제 때문에 죽은 듯이 잠들어 있었다.

아주머니와 라푼첼은 남자의 몸을 가죽자루에 넣어 밧줄로 묶은 다음 탑 아래로 내려보냈다.

 그렇게 마차에 실린 남자는 아주머니에 의해 어디론가 운반되었다.

라푼첼은 아주머니가 그 남자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몰랐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다.



"오늘은 강물이 너무 차가웠어." "오늘 남자는 처리하는데 좀 번거로웠단다.

강물에 버리기 전에 깨어나서 잠시동안 소란을 피웠거든. 그래서 몽둥이로 흠씬 두들겨주었지."



아주머니가 그런 식으로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말을 들어도 라푼첼은 고개만 끄덕거릴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남자들이 어떻게 되든 나는 알바가 아니야.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야..' 아주머니는 늘 이런 말을 되풀이했다.

 

"남자는 사랑할 만한 존재가 아냐. 남자는 모두 똑같애. 일단 여자가 몸을 주면 마치 손바닥을 뒤집듯 갑자기 사람이

변하거든. 자신의 야심이나 욕망을 위해서라면 여자 따위는 무참히 희생시켜도 된다고 생각하는 무정한 존재야..


매일 밤 같은 시간이 되면 귀에 못이박힐 정도로 되풀이되는 그 말은 라푼첼로 하여금 남자에 대한 꿈을 가질 수 없도록

만들어버렸다.
몇 년전 일이었다.

 

그때 아직 어린아이였던 라푼첼은 우연히 고텔 아주머니 방에서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웨딩드레스, 웨딩베일, 부케..새하얀 색깔로 만들어진 그 물건들이 모두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는데, 고텔 아주머니는

그것들을 몸에 걸친 채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라푼첼은 소리 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인기척을 느낀 고텔 아주머니가 고개를 돌렸다.

 

"왔니?" "네, 아주머니. 저.." "어떠니? 아름답니? 이 웨딩드레스, 웨딩베일.."

"네? 아, 네. 정말 아름다워요." "거짓말하지 마라. 누렇게 변색되어버렸는데 아름답기는..

내 젊음도 이것들과 함께 시들어버렸어. 단 한번도 꽃을 피워보지 못한채...."


아주머니가 슬픈 듯 한숨을 내쉬었다.


"내게도 젊고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단다. 네게 보여주고 싶구나. 젊었을 때의 내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이 웨딩드레스가 내게 얼마나 잘 어울렸는지.. 하지만 결국엔 이걸 제대로 입어보지도 못한 채 내 청춘은 끝나버렸어."


고텔 아주머니는 그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결혼 날짜가 잡히자마자 웨딩드레스도 맞추고, 신혼여행지도 고르고, 결혼식 청첩장도 돌렸다.

 아주머니의 마음은 구름처럼 들떠 있었다. 그리고 결혼식 당일, 하늘도 맑았고 아주머니 기분도 맑았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신랑은 나타나지 않았다.

 게다가 결혼을 축하하러 온 사람들도 신부측 하객들뿐이었으며, 신랑측 하객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한쪽에 줄지어 앉아 있는 신부측 하객과 한쪽에 늘어서 있는 빈자리들.

 그 광경을 보자마자 신부는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 쓰러졌고, 그 바람에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다음날 고텔 아주머니

집의 시종이 약혼자를
찾아 가보니 그 집은 이미 텅 비어있었다.

남자는 고텔 아주머니를 버리고 전부터 사귀던 여자와 어딘가로 도망쳐버렸다.

아주머니가 남자를 위해 준비한 거액의 돈까지 챙겨서..아주머니는 처음부터 철저히 속았던 것이다.

나중에 아주머니는 모든 것이 교묘하게 조작된 함정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고텔 아주머니의 부친은 라이벌을 희생시키거나 함정에 빠트리는 일을 서슴치 않는 상인이었다.

그런 부친 때문에 망해서 자살한 라이벌이 있었는데, 고텔 아주머니의 약혼자는 바로 그 사람의 아들이었다.

그가 가명을 사용했기 때문에 고텔 아주머니 집안에서는 그것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모든 것은 그 청년의 계획적인 복수극 이었다.

그 결과 고텔 아주머니는 정절을 빼앗기고 몸과 마음을 희롱 당한 끝에 결국엔 수건처럼 버려지고 말았다.

그때부터 아주머니는 남자를 믿지 않는, 남자를 사랑 할 수 없는 여자가 되었다.

어떻게 해서든 세상의 모든 남자들에게 복수를 해야겠다는 생각만으로 세상을 살게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고텔 아주머니 옆집에 한 부부가 살고있었다.

 

그들은 아이가 없어 고민이었는데, 하나님에게 정성스럽게 기도한 보람이 있었는지 드디어 아내가 임신을 하게 되었다.

아주머니 집에는 높은 돌담이 둘러쳐진 넓은 마당이 있고, 그 마당 한쪽에는 밭이 있었다.

밭에는 여러 종류의 꽃과 야채가 심어져 있었는데, 그 부부가 사는 집에서도 잘 보였다.

어느 날, 아내가 창가에 서서 밭을 내려다보니 싱싱하게 자란 상추(라푼첼)가 눈에 들어왔다.

임신 중이었던 아내는 갑자기 그 싱싱한 상추가 먹고 싶어졌다. 충동을 느끼는 경우가 흔히 있는데, 아내도 그런 경우였다.

상추를 먹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아내는 시간이 흐를수록 얼굴색이 창백해지고 몸도 야위어갔다.

아내의 변화에 깜짝 놀란 남편이 그 이유를 물었다.

 

"이웃집 밭에 심어져 있는 상추가 먹고 싶어요. 그걸 먹지 못하면 죽을 것 같아요."

 

아내는 애원하듯 그렇게 대답했다.

그 당시 혼자 살고 있던 고텔 아주머니는 주위사람들로부터 '마녀'로 불리고 있었다.

사람들과의 접촉이 전혀 없는데다가 가끔씩 이상한 행동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부부도 가능하면 고텔 아주머니를 상대하려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남편은 어떻게 해야 그 상추를 구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사랑하는 아내를 죽게 할 수는 없어. 그래, 저 상추를 뽑아 오는 거야.

들켜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건 나중 일이야.
지금 내게는 아내가 중요해."


그날저녁, 고텔 아주머니 집의 돌담을 넘은 남편은 서둘러 상추를 한 움큼 뽑아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즉시 그것으로 샐러드를 만들어 정신 없이 먹어댔다.

 상큼하고 시원한 그 맛.. 그래도 또 아내는 그 상추가 먹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아내를 위해 남편은 한번 더 상추를 훔치기로 결심하고 저녁이 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돌담을 넘어간 순간 남편은 깜짝 놀랐다. 눈앞에 마녀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 뭐 하는 짓이에요?" 고텔 아주머니가 남편을 노려보며 말했다.

 

"도둑놈처럼 남의 밭에 들어와서 상추를 훔치다니."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떨리는 목소리로 남편이 말했다.

 

"사실은 아내가 임신을 했는데, 부인의 밭에 심어져있는 상추가 먹고 싶다지 뭡니까.

다른 음식은 먹지 않고 꼭 그 상추만 먹고싶다고 해서 그만..." 그 말을 들은 고텔 아주머니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래요? 그렇다면 마음대로 가져가세요. 하지만 그 대신 조건이 있어요.

 
부인이 낳은 아이가 여자아이일 경우에는 그 아이를 내게 맡기세요.

 

내가 그 아이를 친딸처럼 소중하게 키워서 행복하게 해줄게요." 두려움에 떨고 있던 남편은 만약 싫다고 말하면 마녀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좋아요, 약속을 잊으면 안돼요." 그렇게 해서 남편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날이후 그는 마녀와의 약속 때문에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 사실을 알았을 경우 아내가 받게될 충격을 생각하니 아내에게는 도저히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일이 뜻밖의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얼마후 귀여운 여자아이를 낳은 아내가 다량 출혈 때문에 곧 세상을

떠나버린 것이다.
남편이 혼자서 아이를 키워야한다는 비탄에 잠겨 있을 때, 이웃집에 사는 마녀가 찾아왔다.

마녀는 갓 태어난 여자아이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약속대로 이 아이는 내가 데려가겠어요.

아내도 없이 당신 혼자 아이를 키우기는 어려울 테니까 잘됐네요. 걱정하지 말아요.
 
아이는 행복하게 키울 테니까." 남편은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약속이라고는 하지만 자식을 어떻게 마녀에게

넘겨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망설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래, 그렇게 하는 쪽이 아이에게 행복할 거야.

이 마녀는 부자니까 그 집으로 가면 풍족한 환경에서 행복하게 살수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한 남편은 고텔 아주머니의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고텔 아주머니는 즉시 아이에게 '라푼첼'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소중하게 키웠다.

산양의 젖을 먹이고 최고 품질의 밀가루로 구운 빵과 과자를 먹였다.

은수저와 금테를 두른 컵으로 식사를 하게 했다. 비단으로 만든 예쁜 신발을 신기고 가장 화려한 옷만 골라 입혔다.

매일 장미꽃을 띄운 향기 나는 욕조에서 라푼첼의 몸을 씻어주면서,

 

"아름답게 자라야 한다. 예쁜 공주로 자라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주머니의 일과였다.

 

그리고 그녀가 욕조에서 나오면 고텔 아주머니는 옛부터 전해 내려온 미용법을 바탕으로 만든 약초 크림을 얼굴과 몸에

발라주고, 아름다운 금발을 정성스럽게 빗어주었다.

이렇게 보물처럼 소중하게 자란 라푼첼은 장밋빛 얼굴, 풍만한 가슴, 잘록한 허리, 매끄러운 하복부, 늘씬한 두 다리를 갖춘

아름다운 소녀가 되었다.
목욕을 끝낸 뒤 빛나는 태양 아래에서 알몸을 드러낸채 들판을 뛰어다니는 라푼첼을 바라보면서

고텔 아주머니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더없이 순진하고, 더없이 관능적이며, 더없이 청순하고, 더없이 음란스러운 완성품에 감격하면서..

이 완성품을 이용해서 남자들을 유혹하는 것이다. 그래서 순간적인 쾌락에 젖게 한 다음 미련 없이 죽여버리는 것이다.

진심으로 사랑하여 모든 것을 바쳤지만 결국엔 아무것도 보상받지 못하는 고통을 맛보게 하는 것이다.

어느 날, 볼일이 있어서 고텔 아주머니의 방에 들어간 라푼첼은 먼지투성이의 낡은 편지들을 앞에 두고 상념에 잠겨 있는

아주머니를 발견했다.

 

한참 후에 아주머니는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는 듯 한 통의 편지를 집어들더니 성냥불을 켜서 그 편지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불꽃이 피어오르면서 순식간에 편지를 재로 만들어버렸다.

아주머니는 편지를 난로 속에 던져 넣고 그것이 완전히 재로 변한 것을 확인한 뒤에 또 한 통의 편지에 불을 붙였다.

그것이 끝나면 다음 편지, 그리고 또 다음편지.. 한동안 그런 행동을 되풀이한 뒤에야 비로소 정신을 차린 아주머니는

라푼첼을 돌아보고서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남자에게서 받은 러브레터야. 온갖 달콤하고 아름다운 말들이 쓰여 있단다.

 세상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순진한 소녀를 유혹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아름답고 달콤한 말이지."

 

아주머니는 라푼첼에게 자기를 버린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남자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버림을 받게 될 때까지 이야기를 한동안 늘어놓은 후 아주머니는 라푼첼을 끌어안고

이렇게 애원했다.

 

"네가 내 대신 복수를 해주렴. 상처받은 내 마음이 치료 될 수 있도록 네가 좀 도와주렴."


아주머니의 눈은 남자에 대한 증오와 복수에 대한 집념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때마다 라푼첼은 아주머니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왠지 가슴이 답답하고 불쾌한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라푼첼이 소녀 티를 벗어나자 고텔 아주머니는 그녀에게 육체적인 쾌락을 가르쳐주었다.

그녀를 알몸으로 만들어놓고 온몸 구석구석을 애무하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라푼첼은 어린 나이의 몸으로 이미 쾌락을 알게

되었다.
어디를 어떻게 자극하고 어디를 어떤 방법으로 키스하면 쾌락을 느끼는지, 라푼첼의 육체는 그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그 어떤 남자도 아주머니의 애무보다 능숙한 테크닉을 구사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성급하고 둔감하고 단순했다. 아주머니만큼 라푼첼의 육체를 잘 알고 있는 남자는 없었다.

어디를 어떻게 자극해야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지, 어느 곳을 어떤 방식으로 애무해야 쾌락에 젖어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는지, 그것은 누구보다도 고텔 아주머니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라푼첼을 그런 육체로 만든 사람은 바로 고텔 아주머니였다. 또한 고텔 아주머니는 어떻게 해야 남자를 유혹 할 수 있고

무릎 끓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정성스럽게 가르쳐주었다.

라푼첼은 그런 것에 별로 흥미가 없었지만 아주머니가 시키는 대로 순순히 따랐다.

 

"남자는 단순한 존재야." 고텔 아주머니는 틈만 나면 라푼첼에게 그렇게 말했다.

 "여자가 약간의 애무만 해주어도 남자들은 마치 응석을 부리는 어린아이처럼 정신을 잃고 몸과 마음을 내맡긴단다."

이렇게 해서 15세가 된 라푼첼은 숲 속에 세워져 있는 탑에 갇히게 되었다.

커다란 돌을 쌓아올려 만든 탑은 출입구도 없이 작은 창문만 하나 뚫려 있을 뿐이었다.

예전에는 전망대로 사용되었던 그 탑은 지금은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 황폐한 모습이었고, 안에 나선형 계단이 있기는 하지만

계단으로 통하는 통로가 큰돌로 막혀있어 들어갈 수가 없었다.

긴 사다리를 사용해서 탑 꼭대기로 올라간 고텔 아주머니는 스산한 모습으로 방치되어 있던 방을 오랜 시간에 걸쳐 청소하고,

간단한 가구와 조명기구를 옮겨와 쾌적한 방으로 꾸며놓았다.
그리고 그것에 라푼첼을 가둔 다음 사다리를 치워버렸다.

그 후 라푼첼은 고텔 아주머니의 명령대로 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지나가는 남자들을 탑으로 유혹하였다.

육체적인 매력을 이용해서 남자들에게 쾌락을 안겨준 다음 그들을 파멸의 늪으로 인도하기 위해서였다.

고텔 아주머니는 바로 그런 결과를 노리고 지금까지 라푼첼을 정성스럽게 키워준 것이었다.


탑을 지나던 남자들은 라푼첼의 노랫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

 

"여보세요, 거기 누구 있어요? 누가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거죠?"

 

남자가 탑 위를 향해 소리치면 라푼첼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라푼첼이에요. 제게 볼일이 있으면 이 머리카락을 붙잡고 올라오세요."

 

그러고 나서 그녀가 길게 땋은 황금색 머리카락을 창문 밖으로 늘어트리면 남자는 대부분 그 머리카락을 붙잡고 탑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눈앞에 서 있는 아름다운 여자를 보고서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라푼첼은 달콤한 말로 남자를 유혹해서 맛있는 음식이 진열되어 있는 테이블로 안내했다.

남자는 입안에서 살살 녹는 듯한 음식을 먹고 향기로운 술을 마시면서 스르르 마음을 풀었다. 남자가 어느 정도 만족하는

모습을 보이면 라푼첼은 달콤한 목소리로 남자를 침실로 유혹했으며,
완전히 흥분해버린 남자는 침실로 들어가자마자 라푼첼을

침대 위에 쓰러트렸다.

 

라푼첼은 남자의 거친 손길과 애무에 몸을 내맡기면서도 맑은 정신으로 상대의 표정을 관찰하였다.

자신은 전혀 흥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남자의 욕망을 부추기고, 자신은 전혀 즐겁지 않은 상태에서 남자의 욕망을

만족시켜주었다.
그런 테크닉은 모두 고텔 아주머니에게 배운 것이었다.

 

"오늘 남자는 너무 끈질겨서 지겨웠어요."


"오늘 남자는 좀처럼 절정에 이르지 않아서 너무 힘들었어요."

 

언제부터인가 라푼첼은 마치 창녀처럼 행동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점차 닳고닳은 여자로 변해 가는 듯한, 점차 타락의 늪으로 빠져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라푼첼은 자신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남자들은 그녀의 육체를 바람처럼 스쳐 지나갈 뿐, 그 육체에 어떤 각인도 새겨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라푼첼은 여전히 태어났을 때의 순진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세상에 태어났을때, 아직 남자를 몰랐을 때의 그녀와 지금의 그녀의 본질적으로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자신이 점차 더렵혀지고 있다는 생각에 초조해하면서도 사실은 더렵혀질 수 없는, 타락하고 있다는 생각에 초조해하면서도

사실은 타락할 수 없는 그녀였다.

 

그런 이중적인 심리를 갖고 있는 그녀는 아무런 감정 없이 다른 사람을 속이고 아무런 감정 없이 다른 사람을 함정에

빠트리고 싶었다.
아니, 자기 자신을 함부로 다루고 싶었다.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속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사랑이란 이런 것일까?" 만약 사랑이 이런 것이라면 너무 허무했다.

라푼첼은 눈이 부실 정도의 젊음으로 가득 차 있는 자신의 육체를 주체할 수 없었다.

남자에게 육체를 내던지고 남자의 애무에 흐느적거리면서도 라푼첼의 마음은 허무 하기만했다.

 

늘 같은 패턴으로 반응하는 육체, 늘 같은 패턴으로 반응하는 신음소리.. 행위가 끝나면 고텔 아주머니는 탑 위로 올라와

라푼첼을 발가벗겨 침대 위에 눕혀놓고 온몸 구석구석을 철저하게 조사했다.

 

"오늘 남자는 어땠니? 너를 만족시켰니?" "네 몸을 어떤 식으로 애무했니? 이렇게? 아니면 이렇게?"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라푼첼의 온몸을 정밀하게 탐색했다.

 

"이 풍만한 가슴, 매끄러운 하복부, 그리고 이 귀여운 수풀..." 고텔 아주머니는 능수 능란하게 손을 놀렸다.

 

라푼첼이 자기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흘리고 몸을 비꼬며 쾌락의 고통에 몸부림칠 때까지.. "이건 내 거야. 이것도. 너의

모든 것은 내가 정성 들여 만든 완성품이야."
그렇게 말한 뒤에 아주머니는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너는 내 거야. 넌 영원히 내 곁에서 벗어날 수 없어.." 고텔 아주머니의 손길에 몸을 맡긴 채, 몽롱한 의식 속에서 라푼첼은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서는 갈 곳이 없었다.

이유도 없이 남자들의 목숨을 희생시킨 그녀가 도대체 어디로 갈 수 있겠는가?

이제 와서 어떤 남자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겠는가? 그녀의 마음속엔 허무감만 쌓여갔다.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은 고텔 아주머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젊음을 이용해서 남자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도록 만든 사람은 고텔 아주머니다."


 
라푼첼은 오늘도 길게 땋은 머리카락을 늘어트리면서 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랫소리에 남자가 걸려들기를 바라면서.. '나는 결국 이런 식으로 늙어 가는 것일까?

이렇게 헛된 꿈만 부풀리면서? 이렇게 육체와 젊음을 주체하지 못해 신음하면서?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정말로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라푼첼의 내부에서는 밤이 찾아오고 허무한 꽃이 피고 날이 밝는 일이 끊임없이 되풀이되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덧없는 꿈을 꾸었다. 누군가와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을 통해서 무엇인가가

탄생하는 꿈을, 그리고 몇 번이나 태어났다가 죽어 가는 허무한 꿈을..

 
남자들은 가끔 침대 안에서 라푼첼에게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아내와 자식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남자들은 한결같이 쑥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내에게는 미안하게 생각해." 라푼첼에게 마음을 열게 되면 남자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오랜세월 동안 함께 살아온 아내에게서는 더이상 여자로서의 매력을 느낄 수 없거든."

"그럼 왜 헤어지지 않아요? 왜함께 살죠?" "그야, 다들 그렇잖아. 보통사람들은 다 그렇게 살아."



남자는 오히려 라푼첼의 질문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어떤 가정이든 대부분 그런 식으로 사는 거야. 모두들 자기를 적당히 가장하면서 사는 거라구."

 "이해할 수가 없어요.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죠?"

 

어째서 자신을 가장하면서까지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일까.

어째서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사랑도 없는 가정을 지키려는 것일까. 라푼첼은 도저히 남자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고독한 존재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남편도 없다. 나에게는 고텔 아주머니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비록 외톨이라고 해도 나는 편안하고 자유롭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났을때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잃어버릴 것도 없다.

그것은 편안함과 자유를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가슴 깊숙이 느껴지는 외로움은....'

"당신은 이상한 여자야." 탑 위로 올라와 라푼첼을 상대한 남자들은 틀에
박힌듯 그런 말을 했다.

 

"정말 자유로운 사람처럼 보여. 나도 당신처럼 자유롭게 지냈으면 좋겠어. 그렇게만 될수 있다면..."


하지만 남자에게는 일이 있고 가정이 있기 때문에 자기만의 자유를 누릴 여유가 없는 듯했다.

 

"이곳에 있으니까 왠지 진정한 내 모습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들어." 그렇게 말하는 남자도 있었다.

 "사람이 벌거숭이가 되면 모든 문제는 사라져버린다고."

 

알몸이 되어 서로의 몸을 끌어안으면 사람은 누구나 마찬가지라고, 어떤 남자가 말했었다.

그때 라푼첼은 정말로 그런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도 했다. 남자가 요구하는 여러 가지 자태를 연출 할 때에도

라푼첼의 정신은 맑았다.
여러 종류의 남자가 있었다.

 

라푼첼에게 그냥 보고 있으라면서 자기 손으로 스스로를 애무하여 절정에 이르는 남자, 라푼첼의 몸을 밧줄로 묶고

채찍질을 하는 남자, 라푼첼의 항문을 선호하는 남자, 라푼첼에게 자위를 해보라고 명령하는 남자,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 끈질기게 라푼첼의 육체를 원하는 남자..

 그러나 아무리 무리한 요구를 해도 라푼첼은 한마디 불평도 하지 않고 그 요구에 응했다.

 

남자가 무리한 요구를 강요하면 할수록 오히려 그녀는 더욱 과감해졌다.

그것은 잠시 후에 죽게될 남자의 고통스런 표정을 상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당신은 이제 곧 죽게 될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마치 그 순간만을 위해 살고 있는 것처럼 느낀 적도 있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라푼첼의 애무를 받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죽어도 좋아." "행복해. 이렇게 행복한 기분은 처음이야."

 

그것은 남자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인것 같았다.

아마 남자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말을 한 적이 한번도 없었을 것이라고 라푼첼은 생각했다.

남자는 어쩌면 이렇게 죽어 가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감싸고 있던 가식이라는 튼튼한 갑옷을 벗어 던지고, 자유로워진 상태에서 행복을 맛보며 저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을 오히려 기뻐하지 않을까?
이번 청년은 지금까지의 남자들과는 달랐다.

그는 다른 남자들처럼 성급하게 달려들어 라푼첼을 침대 위에 쓰러트리지 않았다. 마치 그런 일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이야기만 했다.

아직 여자를 모르는 사람 같았다. "당신은 누구지? 어디에서 온거야?" 청년이 라푼첼에게 물었다.

라푼첼은 청년의 품속에서 순진한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나를 키워준 사람은 고텔 아주머니예요.
나는 이곳에서 자랐고, 이 탑 외에는 아는 곳이 없어요."


그 말을 들은 청년은 라푼첼이 아직 남자를 모르는 순진한 여자라고 믿는 듯했다.

 

"당신은 이상한 여자야, 보통 여자들과는 전혀 달라." 청년은 점차 라푼첼의 이상한 매력에 이끌리고 있었다.


"당신은 착하고 순진한 여자인 것 같아. 당신 같은 여자와 함께 살수 있다면..

나는 무뚝뚝하고 아무것도 모르지만 여자를 행복하게 해줄 자신은 있어.

 

내가 일을 끝내고 돌아오면 아내가 아이를 등에 업고 나를 맞이해주는 거야. 작은 마당이 있고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는 집에서.." 라푼첼은 순진한 청년에게 정성을 다해 쾌락을 가르쳐주었다.

청년이 그녀의 육체안에서 안타깝게 몸부림치는 것을 보며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그 진지하고 순수한 표정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복수나 증오 같은 어두운 감정 속에서 자란 라푼첼은 늘 가슴이 답답했다. 뭔가 편안한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이 청년과 함께라면 어쩌면 행복해질 수 있을지도 몰라. 부와 영광은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조용한 행복은 있을 것 같아.'

"당신은 마음이 착한 사람 인것같아.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어. 나는 당신 같은 여자를 찾고 있었어.

 그런데 마침내 이렇게 만나게 된거야.."

 

여자가 이런 장소에 혼자 있다는 점에 대해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는 청년을 라푼첼은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증오나 복수 같은 이 숨막히는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솟구쳤다.

 

'그래, 이 청년에게 인생을 걸어 보는 거야. 과거의 모든 것을 버리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조용하고 평온한 삶을 사는 거야. 이 청년과 함께라면 새로운 인생을 시작 할 수 있을지도 몰라."

 
라푼첼의 방에 그 청년이 정기적으로 드나든다는 사실을 고텔 아주머니는 곧 알아차렸다.


"그래, 새로운 게임을 생각해냈구나. 이제는 하룻밤이 아니라 충분히 데리고 놀다가 죽이자는 거지?"

 

남자를 데리고 논다고? 솔직히 말해서 라푼첼은 더이상 그런 일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물론 여자 경험이 없는 순진한 남자에게 정열적인 쾌락을 하나하나 가르쳐준 다음에 목숨을 빼앗는 것도 상당한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허무한 일이었다. 아무리 반복해도 남는 것이 없는 무의미한 일이었다.

 

너, 설마 그 남자에게 빠진 것은 아니겠지?"

"왜요? 그 남자를 좋아하면 안 되나요?"

설마, 너..." "그래요. 맞아요." "너, 나를 배신할 생각이니?"

"저를 이렇게 키운 사람은 아주머니예요."

'나를 피도 눈물도 없는 여자로, 마음도 없는 여자로 만든 사람은 당신이 아닌가요?'

 

사실 라푼첼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어요. 저는 아주머니가 바라는 대로 자랐어요.

 이제 와서 그것을 바꿀 수 는 없어요."

 "나를 배신하겠다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귀여워해 준 나를?

네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해준 나를?"

 "그래요. 저도 아주머니의 명령을 어긴 적은 없어요.

하지만 이제는 싫어요. 아주머니가 바라는 대로 저는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 되었어요.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 무슨 뜻인지 아주머니는 모르실 거예요.

제 주위에는 고독만이 있을 뿐이에요. 저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어요. 사랑 받을 수도 없구요.

처음부터 내 자신을, 그리고 남자를 무조건 거부해왔던 저는 구원받을 수 없는 여자라구요."

 

라푼첼은 신에게 버림받은 존재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주머니를 원망하고 싶었다.

 

"저를 이런 여자로 키운 사람이 누군가요?

꿈조차 가질 수 없는 여자로 키운 사람이 누구지요?

청춘 따위는 제게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어요.

 처음부터 저는 시체처럼 살아왔어요.

저는 남자들의 시체가 굴러다니는 무덤이에요.

거기에는 꽃도 피지 않아요. 열매도 맺지 않는다구요."

"마음대로 해라. 하지만 틀림없이 후회하게 될 거야."

 

그리고 며칠 후, 라푼첼이 옷을 입으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요즘 왠지 옷이 줄어든 듯한 느낌이에요.

특별히 살이 찐 것 같지는 않은데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아주머니의 얼굴색이 갑자기 바뀌었다. "이 수치도 모르는!" 고텔 아주머니의 손이 허공을

가르면서 라푼첼의 뺨을 때렸다.
라푼첼은 얻어맞은 뺨을 만지며 어이없는 표정으로 아주머니를 바라보았다.

 

"임신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그렇게 주의를 줬는데도."

 

"임신?" 라푼첼은 너무 놀라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내가 임신을?" "어차피 그 녀석 자식이겠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어.

 

즉시 지워버려. 설사 낳는다 해도 어차피 너처럼 다른 집으로 보내거나 버릴 것이 뻔하니까.

 

더 이상 불행한 사람을 만들지 마라."

 

"싫어요. 낳을 거예요." 라푼첼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예요. 낳고 싶어요."

"사랑하는 사람? 그 녀석 말이냐?

흥, 그 한심한 녀석이 너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녀석이 가진 것이 뭐가 있니?

돈? 권력? 아니면 집안?" "그런 건.."

 

라푼첼은 아주머니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 건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가르쳐준 사람은 아주머니잖아요."
 

뱃속의 아이를 낳고 싶다는 라푼첼의 결심은 강했다.
라푼첼은 주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고텔 아주머니를 버린다는 것이 잔혹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봉사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머니는 다른 여자를 찾으면 돼. 그리고 그 여자를 이용해 다시 남자들을 제물로 삼으면 돼.'

 

이렇게 생각한 라푼첼은 어느 날 밤, 청년의 도움을 받아 고텔 아주머니가 잠든 사이에 긴 사다리를 타고

탑에서 도망쳤다.
그리고 청년과 함께 숲 속에 있는 작은 통나무집에서 살았다.

 

청년은 매일 숲으로 나무를 하러 갔고 틈이 날 때마다 밭을 일구었다. 그 동안 라푼첼은 음식을 준비하고 청년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청년은 라푼첼이 서툴리 만든 음식을 아무런 불평도 없이 맛있게 먹었다.

라푼첼이 권하는 옷도 불평 없이 입고 다녔다. 조용한 미소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청년에게 라푼첼은 더할 나위 없는

편안함을 느꼈다.

 

'이 사람과 함께 있으면 안심할 수 있어.'


라푼첼은 숲 속의 작은 집에서 아름다운 꽃과 풀잎에 둘러싸여 조용한 나날을 보냈다.

 

청년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과자를 굽고 바느질을 했다.

검소하지만 귀여운 자수가 놓여 있는 보자기도 직접 만들어 식탁에 깔았다.

그리고 그 위에 직접 구운 빵을 놓고 남편을 위해 차를 탈 때면 부드러운 바람이 뺨을 스쳤다.

갓 태어난 아이도 별탈 없이 순조롭게 자랐다.

라푼첼이 보듬어 안고 어르거나 이름을 부르면 아이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단단하게 부풀어오른 유방을 아이에게 물릴 때마다 어머니가 되었다. 기쁨이 그녀를 부드럽게 감쌌다.

'행복해...' 라푼첼은 새삼 그렇게 생각했다. 더 이상 바랄게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이 상황이 영원히 이어질 것처럼 시간은 조용히 흘러갔다. 이곳에는 분노나 증오, 격렬한 쾌락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지나칠 정도로 긴장감이 없다는 점이 불만이라면 불만일수도 있겠지만,

그대신 이곳에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행복의 넘쳐흘렀다.

그러나 가끔씩 고텔 아주머니와의 나날이 라푼첼의 머리 속을 파고들 때가 있었다.

그녀의 육체를 스쳐 지나간 수많은 남자들, 그리고 그 우울했던 날들... '

그때 나는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인생을 포기하고, 사랑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었던 것일까?'

 

사실 그런 나날이 라푼첼의 내부에 그림자를 드리운 채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행복으로 가득 찬 나날 속에서도 문득 이런 현실과 융화 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느낄 때도 있었고, 청년과의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이 가로막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경우도 있었다.

늘 혼자서 감정을 처리하는 일에 익숙한 라푼첼에게 청년이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왠지 모르게 당신은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아. 나와 당신 사이에는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투명한 벽이 가로막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나는 당신을 잘 모르겠어."


청년은 때로 그런 말을 했다. 그럴 때마다 라푼첼은 어찌해야 좋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아니, 그 이유와 원인조차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런 방식 외에 남자를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다.

냉정하다는 말을 들어도 열기를 내뿜는 방법을 몰랐다.

거리감이 있다는 말을 들어도 더 이상 상대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몰랐다.

너무 오랫동안 혼자 생활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평화로운 관계를 구축하는 일이 불가능했던 것일까.

그런 방법에 대해서는 고텔 아주머니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평화로운 생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하인츠라는 남자 알아?"


언젠가 일을 끝내고 돌아온 청년이 험악한 표정으로 다짜고짜 물었다.

라푼첼은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지금까지 관계해온 남자들의 이름 따위는 알 필요가 없었다.

다만 청년이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짐작할 수는 있었다.


"몰라요, 그런 사람."


"그럼 요셉이라는 남자는?" 라푼첼은 입을 다물었다.

"어떤 여자를 찾아간 이후 행방불명이 되었다더군.

그 여자가 이 근처에 사는 남자를 유혹해서 잡아먹는 다는 소문이.."

"그만 해요." 라푼첼은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어디서 이상한 소문을 들었군요." "나는 대답을 듣고 싶을 뿐이야."

 

청년은 두 손으로 라푼첼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당신이 아니지?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거지?"

"무슨 말이에요?"

"남자들을 탑으로 끌어들여 쾌락을 즐겼다는 그 여자가 당신이 아니지?"

 

청년의 거친 행동에 몸을 내맡긴 채 라푼첼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을까. "
대답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당신과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대답해 줘!"

"말할 수 없어요. 아무 말도..."

"그럼 당신이 바로 그 음탕한 여자였다는 거야? 당신이 그렇게 더러운 여자였다는 거야?"

청년은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듯 소리쳤다.

 

"나를 속였어. 지금까지 나를 속인 거야. 순진하고 깨끗한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청년이 갑자기 라푼첼을 거칠게 안아서 침대에 눕혔다.


"자, 대답해. 지금까지 도대체 몇 명의 남자들을 속였던 거야.

 그 미모와 능숙한 기술로 몇 명의 남자를 유혹하고 희롱했냐고.

 해봐, 내게도 그 훌륭한 기술을 발휘해봐."


라푼첼의 블라우스를 거칠게 찢으며 소리치는 청년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져 보였다.

그의 눈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의 거친 행동에 필사적으로 저항하면서 라푼첼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소리쳤다.

 

'이제 끝난 거야. 이제 모든 게 끝난 거야...'

 
숲속의 탑으로 돌아온 라푼첼을 고텔 아주머니는 한마디도 꾸짖지 않고 맞아주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비웃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너처럼 자유롭게 살아온 여자는 평범한 주부로 살아갈 수가 없어."

 

아주머니가 말했다. 그리고 이런 말도 했다.
 

"이곳에서 인생의 아수라장을 모두 경험한 여자,

남자의 정체를 모두 알아버린 여자가 그런 생활에 만족할 리가 없지."

 

그랬다. 식사 준비를 하고 아이를 업고 어르며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내.. 그런 평화로운 가정이,

그런 작은 행복이 이미 지옥을 경험한 여자에게 허락될 리가 없었다.
언제가 이렇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행복이 영원히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불안감은 항상 안고 있었다.

 

"너는 너를 속일 수 없는 여자야. 하지만 평범한 인간 사회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거짓으로 이루어져 있어.

자기 자신을 속이고 다른 사람을 속이는 식으로... 네가 그런 거짓에 익숙해질 수 있겠니?"

 
"라푼첼, 머리카락을 내려 줘. 한 번만 만나달라구. 부탁이야. 당신을 잊을 수 없어."

 
귀에 익숙한 그 목소리가 들렸을때, 라푼첼의 마음이 심하게 흔들렸다. 아, 그리운 사람!


"라푼첼, 부탁이야. 한 번만 만나줘. 한 번만 내 말을 들어줘."


라푼첼은 즉시 창문을 열고 내려가 청년에게 안기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을 원래대로 주워담을 수는 없었다. "이런, 또 제물이 찾아왔구나."

아주머니가 그런 말을 했을 때, 라푼첼은 다시 한번 결심하였다.

사랑의 추억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사랑의 추억에서 영원히 벗어나야 한다고..

라푼첼이 남자의 애원에 못 이긴 척 길게 땋은 머리카락을 창문 밖으로 늘어트리자 청년이 즉시 머리카락을 붙잡고

탑 위로 올라왔다.

 

"용서해줘. 내가 잘못했어. 당신에게 심한 말을 해서 마음의 상처를 입혔어. 용서해줘. 미안해."


청년은 눈물을 흘리며 라푼첼을 끌어안았다.



"알았어요. 괜찮으니까 신경쓰지 말아요."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는 청년의 체취가 다시 살아났다.

 

아무리 노력해도 잊을 수 없는 청년과의 생활이 다시 떠올랐다.

 행복했던 통나무집에서의 생활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다시 한번 돌아가고 싶었다.

 

"나를 잊어요."

"잊다니, 내가 어떻게 당신을 잊을 수 있겠어.

 내가 바보였어. 이미 지나간 과거는 중요하지 않아.

나는 지금의 당신이 필요할 뿐이야. 다른것은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아."

 

"지금은 그렇게 말해도 당신은 반드시 다시 기억해 낼 거예요.

그리고 또 나를 원망할 거예요."

 

"그렇지 않아. 절대로 당신을 원망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돌아가자. 부탁이야. 아이에게도 당신이 필요해."

 

청년은 라푼첼의 하얀 가슴 사이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너무나 익숙한 과거의 기억이 라푼첼의 내부에서 꿈틀거렸다.

그래, 시작해야지. 다시 시작하는 거야. 예전처럼 그렇게..' 청년은 라푼첼의 하얀 육체를 안고 침대로 다가갔다.

 

이 침대 위에서 다시 이 청년에게 안기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야말로 공교롭고 슬픈 일이었다.

그러나 라푼첼의 그런 마음을 모르는 청년은 이미 쾌락에 대한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

 

그리고 관능의 한때가 지나갔다. 라푼첼은 허탈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옆에 누워 있는 청년은 라푼첼이 먹인 수면제 때문에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 잠든 얼굴을 바라보면서 라푼첼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안녕. 내 청춘. 안녕. 나의 단 한 번뿐인 사랑.."


그때 창문 아래에서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푼첼, 이제됐니? 올라가도 돼?"



라푼첼이 긴 머리카락을 창문 밖으로 늘어트리자 고텔 아주머니가 그것을 붙잡고 탑 위로 올라왔다.
 

"아주머니, 이제 아주머니 마음대로 하세요."
"정말 괜찮겠니?"

 "그래요. 단번에 끝내버리세요."

 "나중에 후회해도 난 모른다."

 

"왜 이렇게 말이 많아요. 절대로 후회하지 않아요. 저를 괴롭혔던 남자예요. 용서할 수 없어요."

 "그래, 당연하지. 용서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귀여운 너를 괴롭힌 녀석에게 용서라니."

 

고텔 아주머니는 손에 단검을 들고 잠들어 있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라푼첼은 눈을 감았다. 그때 날카로운 비명이 짧게 울러 퍼졌다. 모든 것은 순식간에 끝났다.

라푼첼이 눈을 떴을때 청년은 이미 시체가 되어 피바다 속에 누워 있었다.

아주머니는 부드럽게 라푼첼을 끌어안으며 이렇게 속삭였다.

 

"네가 불행한 것은 더럽기 때문이 아냐. 오히려 그 반대지. 너는 더러워질 수 없기 때문에 불행한 거야."



순진한 불행, 때묻지 않은 불행... 그렇다. 라푼첼은 바로 그런 여자였다.

아주머니는 이런 말도 했다. "너는 한 남자의 소유물이 될 수는 없어.

 

그렇게 되기에는 너라는 존재가 너무 커. 앞으로도 남자들에게 최고의 즐거움을 맛보게 해주고

최고의 불행을
선사 하는거야. 남자들도 사실은 그걸 바라고 있으니까.

남자들이 바라는 건 살아 있는 것인지 죽은 것인지 알 수 없는 미적지근한 인생보다는 진정한 쾌락과 진정한 불행을

맛볼 수 있는 인생이야."

 

이렇게 해서 남자들을 유혹하여 살해하는 라푼첼의 방탕스런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남자들이 가면을 벗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도록 유도하는 행위, 그리고 그런 남자를 받아들이는 행위를 통해서

라푼첼은 자기 자신을 정화 시켜가는 것인지도 몰랐다.

아니면 남자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기 자신의 순결함을 확인하는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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