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한국 프로야구 역대 홈런왕 강정호/
한 시즌 40홈런의 슬러거들
강정호는 2014년 상징적인 기록과 함께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기록들을 수없이 만들어냅니다.유격수로써 40홈런을 최초로 기록하고 한국 프로야구 야수 출신으로 메이저리그에 최초로 진출한 강정호는 스타란 어떤것인지 한국에서뿐 아니라 스타들이 즐비한 메이저리그에서도 그 빛을 잃지않고 반짝이는 한국의 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처음 우리나라에 프로야구가 태동되던 1980년대를 지나 TV에서 프로야구에 반했던 시기는 호쾌한 안타와 홈런이 아니라 날렵하게 내야를 빠져나가는 안타성 타구를 캐치하여 아웃시키는 유격수의 빼어난 수비에서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1세대 유격수의 한명인 김재박은 크지 않은 덩치만큼 재치 넘치는 플레이로 그라운드의 여시라는 별칭으로 유격수 골든글러브를 83년도부터 89년도까지 한차례만 제외하고 독식하였고 1990년대 들어서 바람의 아들이라는 화려한 수식어와 함께 등장한 이종범에 의해 유격수라는 포지션은 수비 뿐 아니라 타격도 막강할 수 있다는 점과 함께 내외야 전 포지션을 막론하고 가장 스타플레이어가 득실 되는 곳이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종범은 출루가 목적인 1번 타자로 나오면서도 3할의 타격과 20개에서 30개를 때리는 장타력, 50~60개의 도루를 할 수 있는 도루 능력 등 전천후 타자의 상징과도 같았지만 이종범의 일본 진출 후 더 이상 유격수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자리가 아니게 되었습니다.이종범 이후로 더 이상 유격수라는 포지션이 수비와 공격력을 함께 갖추기 힘든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 강정호라는 걸출한 유격수가 등장하게 됩니다. 유격수 최초로 28개의 아치를 날리며 홈런왕에 오른 장종훈(이후 공격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1루수, 지명타자로 포지션을 바꾸게 됩니다)을 선두로 한 시즌 30개의 홈런을 최초로 때린 이종범(최초의 30홈런-60도루를 달성한 해)이후 유격수는 역시 수비가 최고이다는 것처럼 시선을 잡아끄는 공격과 수비를 모두 갖춘 유격수 계보가 나오지 않다가 2014년 한 시즌 40홈런을 때려내는 유격수가 나오고야 말았습니다. 바로 넥센 히어로즈의 강정호였습니다. 1990년 장종훈의 유격수 최초의 홈런왕 등극과 1997년 이종범의 유격수 최초의 한 시즌 30홈런 기록 그리고 만 17년 만인 2014년 강정호가 한국 프로야구사에 기념비적인 유격수 최초로 한 시즌 40홈런을 날리며 그 명성을 이어가나 싶더니 2015년 메이저리그로 진출,가성비 대비 빼어난 성적을 2016년까지 기록하지만 음주운전 물의를 일으키며 2020년 KBO 복귀를 선언하지만 본인 스스로 키움 히어로즈 복귀를 철회하면서 KBO 리그는 물론 프로야구선수로서의 인생이 마무리될듯 보입니다.
류현진이 투수로써 한국 프로야구 출신으로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최초의 선수였다면 강정호는 야수 출신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KBO 리그 첫 번째 사례이기도 합니다. 특히 강정호가 메이저리그 포스팅을 신청할 당시 우리나라의 좌완투수 김광현을 비롯하여 양현종과 일본 프로야구 최고 유격수 도리타니 다카시 등이 포스팅 신청을 나란히 내놓았는데 강정호 이외에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은 선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강정호 입찰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필라델피아 필리스, 피츠버그 파이리츠 등이 입찰하여 현 소속 구단인 피츠버그가 4년간 보장금액 1100달러에 강정호와 계약했는데 피츠버그는 강정호의 성공을 확신하며 포스팅 금액 500+2015달러를 적어내어 상징성까지 더했다는 후문이었습니다.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백업으로 시작한 강정호는 수비와 타격 모두 안정감 있는 실력을 선보이며 102마일(164km)을 던지는 특급 마무리 트레버 로젠탈을 상대로 데뷔 첫 홈런을 기록하였고 4~5월의 적응기 이후 7월에는 성적이 폭발하여 타율 0.379, 출루율 0.443, 장타율 0.621, OPS 1.064와 장타 14개(2루타 9개, 3루타 2개, 홈런 3개)를 기록하며 7월의 신인상(최희섭 이후 역대 두 번째)을 수상하는 등 리그 전체 유격수들 중에서도 WRC+,Fwar가 1위, 3루수들 중에는 6위를 기록하기도 하며 강정호는 메이저리그에서 성공 스토리를 써 내려가던 중 불의의 부상을 당하게 되며 시즌을 조기에 마감하게 됩니다. 부상전까지 강정호는 126경기에 출장 421타수 121안타 타율. 287 15홈런 58타점 60득점 출루율. 355 장타율. 461 OPS.816의 성적으로 메이저리그 데뷔 첫해 연착륙에 성공합니다.2016년에는 103경기에 출장,아시아 내야수로는 최초로 20홈런을 달성하기도 하는등 한국선수로는 30홈런의 기대감도 안겼지만 이후 불미스러운 사건,사고로 메이저리그에서 퇴출됩니다.
한국 KBO 프로야구에서의 강정호를 알아본다면, 현대 유니콘스에 2차 1순위로 지명되며 2006년 프로야구에 첫발을 디딘 강정호는 초등학교 때부터 외야수, 3루수는 물론 포수와 투수도 겸업하며 모든 포지션을 도맡을 만큼 재능 자체가 뛰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광주 일고 시절에는 원투펀치 에이스로 활약하다 3학년 때는 포수로 전향하는데 팀 내 또 다른 에이스 나승현의 공을 제대로 받는 포수가 강정호 이외에는 없었다는 것이 포수로 전향하게 된 이유였지만 투수로써도 시속 148km를 뿌릴 만큼 정상급의 강속구 투수였으며 포수로써도 어깨뿐만 아니라 공빼는 속도와 능력은 당장에 프로 와서도 주전 포수를 할 수 있을만큼 최상급 수준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일본프로야구의 오타니 쇼헤이가 투수와 타자를 겸업하며 이도류로 관심의 대상이지만 강정호 역시 투수부터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할 만큼 다재다능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강정호는 2005년 황금 사자기 결승전에서 8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며 광주일고와 우승에 기여를 하며 우수투수상과 타점상을 받았고 같은 해 제6회 아시아청소년야구 선수권 대회에는 주전 포수이자 주장으로 출전하기도 했습니다. 강정호는 주 포지션인 유격수부터 3루수, 투수와 포수는 물론 2루수와 1루수까지 내야 모든 포지션을 맡을 수 있는 만능 유망주로써 이름을 알리며 현대에 포수로 입단하지만 이후 내야수로 전향합니다. 당시 최고의 유격수로 평가받던 박진만보다 낫다는 평가를 김재박 감독에게 듣기도 했던 강정호지만 2006년에는 10경기 정도에 밖에 출장하지 못합니다.당시 현대 유니콘스가 상위권에서 순위경쟁을 치열하게 하던 중이라 신인을 기용,실험할 상황 자체가 안되었고 2007년 역시 김재박 감독의 재임기간 마지막 해에는 성적을 내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유망주 강정호에게 기회 올 수 없어서 겨우 20경기에 출장하며 좀처첨 기회를 잡지 못하며 힘든 시기를 보냅니다.
강정호에게 있어 2008년은 도약의 시기이기도 합니다. 유망주라는 꼬리표만 달고 출장의 기회를 얻지 못하던 강정호에게 현대의 해체와 함께 현대를 인수한 넥센 히어로즈(당시 우리 히어로즈)의 116경기에 주전으로 출장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강정호는 초반에는 2루수로 출장했는데 당시 최고의 2루수 고영민의 뒤를 잇는 재목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팀 내 유격수 황재균의 수비가 평균 이하였고 강정호의 수비가 2루수로 머물기에는 글러브에서 공을 빼는 속도가 가장 빨랐으며 어깨가 강하여 유격수로 전향시킵니다. 강정호의 재능은 유격수로써도 대성공하는데 당시 이광환 감독뿐 아니라 이순철 수석코치와 타 팀 감독인 김성근, 김경문, 조범현 감독으로부터 넥센의 내야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강정호는 유격수로써 적응하는 단계를 넘어 한국 프로야구 최고 유격수로서의 첫발을 내딛습니다.또한 당시 배터리코치였던 장채근 코치가 포수로 키우면 엄청난 선수로 성장할 것이라고 장담할 만큼 포수로서의 재능 또한 남달랐지만 이광환 감독이 반대하고 붙박이 유격수로 키워버립니다. 유격수로서의 강정호는 유지현뿐 아니라 박진만보다 훨씬 낫다는 평가를 받으며 꾸준히 기용되지만 5월까지 1할대의 타격 성적이 문제였는데 수비용 전용 유틸 플레이어라는 비아냥까지 듣던 강정호는 6월 들어 반등에 성공하며 후반기 타격 지표를 3할 8푼 6홈런 30타점으로 마감하며 2008년 시즌 최종 성적. 271 8홈런 47타점으로 수비와 타격 양쪽에서 최고의 한국 유격수로 도약하는 계기를 잡습니다. 2009년 시즌은 논란의 한 해이기도 한데 백업조차 없이 133 전경기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강정호는 476타수 136안타 타율. 286 23홈런 81타점 73득점 출루율. 349와 장타율. 508를 기록하는 등 공격력은 물론 수비력에서도 자살, 보살 압도적 1위와 유격수 war 1위, 전 경기 출장이라는 기록을 세웠으며 공격에서는 2003년 홍세완 이후 6년 만에 유격수 20홈런을 기록하는 등 이종범 이후 최고 유격수의 자질을 갖춘 선수라고 언급될 만큼 빼어난 한 해를 보냈지만 이해 유격수 골든글러브는 손시헌(손시헌조차 강정호의 수상을 당연시하여 꽃다발을 들고 있다 자신의 골든글러브 수상에 어리둥절했다고 합니다)에게 넘어갑니다.
9월 18일 시카고 컵스전에서 크리스 코글란의 악의적인 슬라이딩 충돌로 인하여 왼 무릎 내측 측부 인대 및 반월판 파열, 정강이뼈 골절이라는 중상을 입고 수술대에 오르며 레이스를 조기 마감하게 된 강정호, 내셔널리그 신인왕 투표에서 2위 표 4장 3위 표 16장을 얻어 크리스 브라이언트와 맷 더피에 이은 3위를 차지할 만큼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강정호가 메이저리그 레이스를 끝까지 완주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하지만 이 사건으로 메이저리그에는 강정호룰이 탄생하게 된다.제2의강정호와 같은 사태를 방지하기위해 신설된 조항으로 병살을 막기위해 고의적으로 야수에게 향한 슬라이딩을 금지하는 규정이 탄생하게 된것이다.
강정호는 2010년 시즌 역시 133경기 출장에 생애 첫 3할과 12홈런, 58타점을 기록하지만 고질적인 손목 부상과 기타 잔부상 등으로 전년도의 홈런 수에 미치지 못하였는데 성적 자체의 수치상 기록으로는 측정할 수없는 고군분투가 2010년에 묻어나 있습니다. 팀내의 브룸바, 황재균, 덕 클락, 이택근 등의 이탈과 부상 등의 악조건 속에서 홀로 팀 타선을 이끌며 기록한 성적인데다 2년 연속 유격수 전경기 출장이라는 대기록과 함께 전년도의 미스터리한 골든글러브 탈락을 이해에는 달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애 첫 유격수 골든 글러브를 안은 강정호는 광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팀에 선출되어 13타수 8안타 3홈런 8타점의 맹타를 휘둘렀으며 특히 중국과 맞붙은 결승전에서는 2홈런 5타점을 기록하며 국가대표팀의 금메달 획득에 큰 기여를 하고 병역 특례를 받게 됩니다. 강정호의 경우 타이완 킬러라던지 가장 경계해야 할 대한민국 타자 등으로 주목받으며 이때부터 찬스에서 강한 강심장이었음을 여실히 보여주기도 합니다.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강타자이자 통산 500홈런을 넘긴 게리 세필드로부터 엄청난 손목 힘과 천부적인 야구 재능을 가진 한국 최고의 유격수라는 찬사와 함께 팀의 4번 타자에 중용되었으나 부진한 타격과 더불어 본헤드플레이를 저질러 문책성으로 2군에 내려간 뒤 다시 1군에 올라온 뒤에는 4번 타순을 박병호에게 넘겨주고 5,6번 타순에서 점차 기량을 회복, 2할 8푼 2리 9홈런 62타점, 유격수 war1위로 시즌을 마감하지만 이대수(한화)가 3할 타율을 달성하는 활약과 연습생 신화로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게 되면서 2년 연속 유격수 골든글러브 수상에 실패하게 됩니다.
평화왕, A-로드(알렉스 로드리게스 별칭)를 본떠 K-로드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시기가 2012년 시즌입니다. 이해 강정호는 이택근, 박병호와 강력한 클린업트리오를 형성하며 이들의 이니셜을 본떠 일명 LPG 트리오라는 애칭으로 불리는데 강정호는 대형 유격수 답게 엄청난 페이스를 자랑하기도 합니다. 강정호는 6월 19일까지 19홈런을 몰아치기도 했으나 부상임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출전을 감행하다 봉와직염이 악화되며 2달여 간 홈런을 때려내지 못하는 등 언론에서는 강정호에게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슬럼프가 상당히 심각했었습니다.(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이란, 1971년 피츠버그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이끈 오른손 투수인 스티브 블래스의 실제 예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1968년부터 5년 연속 10승을 넘겼고, 1972년에 19승을 거둔 스티브 블래스는 1973년에 갑자기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였다. 88이닝 동안 84개의 볼넷을 내주며 3승에 그쳤고, 1974년 5이닝 동안 7개의 볼넷을 던진 뒤 방출되어 은퇴하였다. 당시 블래스는 수차례 정밀 검사를 하였고 심리 치료까지 받았지만 원인을 밝히지 못하였다. 이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의 대표적인 사례는 릭 엔키엘이 있으며, 그는 지난 2000년 시속 155km 대 강속구로 11승을 기록하였지만, 그해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서는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인 1이닝 5개의 폭투를 던진 뒤 강판되었다. 강정호에게 따라붙었던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이란 결국 야구 선수가 갑자기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등 제구력 난조를 겪는 증후군을 뜻한다)그러나 강정호는 거짓말처럼 시즌 마감 후에는 25홈런을 기록하며 유격수로는 이종범에 이어 두 번째로 20-20클럽에도 가입하기도 합니다.평화왕이란 애칭은 이해 모든 유격수들의 성적이나 war를 합쳐도 강정호 성적을 전혀 못 따라잡거나 2위권 유격수들과는 OPS 차이가 4할~5할 이상 나는 등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압도적인 성적을 남기면서 붙은 별칭이며 RF(레인지 팩터), 수비율 1위에 올라 ADT 캡스 최고 수비왕, ADT 캡스 베스트 수비수, KBO 베스트 나인으로 선정되었으며 총 투표수 351표 중 324표라는 가장 많은 차이의 득표로 2번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등 2012년 유격수에게서 받을 수 있는 상이란 상은 모두 휩씁니다.2013년도 역시 22홈런 타율. 291 타점 96개를 기록하며 2008년부터 2013년까지 6년 연속 유격수 WAR 1위를 기록하는 등 RF(레인지 팩터), 수비율에서도 1위에 올라 수비에서도 탑이라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이런 압도적인 성적을 남기며 총 321명 중 294명의 표를 받아 큰 차이로 2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으며, 전년도에 이어 2년 연속 ADT 캡스 최고 수비왕, ADT 캡스 베스트 수비수, KBO 베스트 나인을 싹쓸이하였습니다.메이저리그로 진출한 첫해를 비롯하여 부상이후로도 강정호는 파워는 물론 내야수라는 이점을 잘살려 메이저리그에 안착한듯 싶었지만 사건,사고에 휩싸이며 절제하지 못한 재능 넘치는 프로야구 선수의 대표적인 몰락 사례로 남아버립니다.
강정호 한국프로야구 수상내역
골든글러브 4회 (2010년, 2012년, 2013년, 2014년)
플레이오프 MVP : 1회 (2014년) 장타율 왕 : 1회 (2014년) 최고 OPS : 1회 (2014년)
유격수 한 시즌 최다 홈런 : 40개 (2014년) 한 시즌 최다 타점 : 117타점 (2014년)
한 시즌 최고 출루율 : 0.459 (2014년) 한 시즌 최고 장타율 : 0.739 (2014년) 한 시즌 최고 OPS : 1.198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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