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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속 환국과 배달국은 실존여부와 요하문명 홍산문화와의 상관 관계에 대한 고찰

by 마음heart 2023.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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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속 환국과 배달국은 실존여부와 

요하문명 홍산문화와의 상관 관계에 대한 고찰

 



한국의 고대사는 역사 속에서 완전히 지워져 버렸다고 할 정도로 그 자료라는 것이 전무하다시피 합니다.우리 나라의 고대사의 시초는 고조선으로 상정하고 있지만 그것조차 신화의 영역에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그러다가 고등학교 시절 교과서 역사공부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환단고기라는 책을 접하게 됩니다.물론 말도 안되는 고대사라는 생각과 위서라는 전문가들의 말에 그냥저냥 책장 속에 쳐박아 둔 책이기도 합니다.하지만 중국 대륙에서 발견된 제 5의 문명이라 일컬어지는 요하문명 홍산 문화를 접하면서 환단고기 속 말도 안되는 환국과 배달국이 실존했을 수도 있으리라는 상상을 가져보기도 했습니다.환단고기(桓檀古記)는 1979년에 이유립이 출간한 유사역사학 서적으로, 한민족의 상고사를 왜곡, 날조, 과장하여 기술한 위서(僞書)로 분류된 서적입니다. 환단고기 및 그 추종자가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사이 열풍을 일으켜 학문과 민간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에, 오늘날 주류사학계에서는 환단고기를 인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연구 부정행위(research misconduct)로 직결될 수 있어 매우 금기시되며, 소수 재야 민족주의 논단이나 역사학자 집단에 의해서만 향유되고 있습니다.환단고기의 저자 이유립과 그 추종자들은 이 책이1911년 계연수라는 인물에 의해 저술되었으며, 소위 환국이라고 하는 단군 이전의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의 역사를 모아 편찬한 귀중한 책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주류 학계에서는 저자 자신이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 창작하고 수정을 반복하며 교묘하게 만들어낸 창작서적이라 주장합니다.

환국의 강역 (7197 BC-3898 BC)
환국과 배달국 영토와 몽골제국 영토

환단고기에서 비정하는 국가인 환국(혹은 한국)과 배달국은 우리 민족의 시초인 고조선의 모체이자 강력한 대제국과 문명이 우리 민족의 시원이라 주장하고 있지만 너무나 허황되고 말도 안되는 사실 때문에 창작 논란과 위서 논란에서 자유롭지도 못합니다.또한 지나친 민족주의 개념으로 인해서 한반도에 갇혀사는 우리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환단고기는 일제의 조선 강점과 패권주의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 필요했던 개념이고 지나치게 자국의 역사를 축소하는 우리들의 반면교사와도 같은 유사역사 정도로 치부받았지만 요하문명 홍산 문화의 발견으로 인해,환단고기의 역사가 실재했을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만들었습니다.

요동과 요서 요하 모두 우리에게는 고구려로 인해 친숙한 땅이면서 이제는 중국의 땅이기도 합니다.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요동 요서의 위치는 과거에는 좀 더 베이징 근처로 이동할 수 있으며 고조선 및 고구려와 백제,신라 역시 대륙에 존재했다는 설도 있습니다.중국이 대륙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사실 중국 공산당이 들어서고 채 몇십년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우리 민족의 영토는 분명 좁은 한반도에 갇혀있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것입니다.세계 언어 역사 문화학계 연구 결과 요하 지역은 고조선이 멸망하기 전까지 그리고 멸망 후에는 선비족과 고구려,거란(요),여진(금과 청)등이 지배하던 땅으로 우리 한민족이 다스리거나 우리 민족과 뗄 수 없는 유목민족들이 지배하던 곳이 요동으로 요하의 동쪽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요동의 북서쪽에서 기장으로 농사를 짓던 이들이 퍼져나가면서 한국어,일본어,몽골어,터키어 등 다양한 언어로 바뀌었고 유전적으로도 공유할 만한 특성을 갖게 됩니다.실제로 몽골과 터키는 흉노부터 자신들의 역사 교과서로 싣고 있지만 우리들만 반도식민사관이 장악하며 일본의 주장을 반복적으로 앵무세처럼 내뺃을 뿐 아니라 역사 교과서를 자신들의 입맛대로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통 환국과 배달국은 삼성조 시대라고 하여 9212년전(BCE 7197~BCE 3897)7대 환인:3301년간 다스렸으며 배달국은 BCE 3897~BCE 2333간 1,564년간 다스려 환국과 배달국의 역사만 합쳐도 무려 4,865년이라는 엄청난 역사와 함께 우리의 역사는 일만년의 역사를 가지게 됩니다.그리고 단군이 세운 고조선은 BCE 2333에서 BCE 238년 2095년간 나라를 다스렸다고 합니다.분명 모두 전설과 신화 영역에 있는 나라들로 분명한 역사에 존재하는 신라가 기원전 57년에 세워져 935년까지 총 992년을 존속했던 것을 제외하면 전설과 신화의 영역에 있을만큼의 오랜 존속 기간을 보여줍니다.보통 세계 각국의 나라들의 평균적인 존속기간이 230년 안팍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고대 한국의 국가들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엽기적인 국가 수명을 자랑한다는 것입니다.그런데 환국이던 배달국이던 그 시작점은 요하였다는 것이며 그 요하에서 문명이 발생하고 국가가 탄생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시작은 그리스처럼 도시국가로 시작되어 점차 세력을 확장해 나갔을 것이지만 환단고기의 환국과도 같은 영토는 사실 후세사람들의 바램이 만든 환상일지도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고조선의 시작을 알린 단군이 고도의 문명을 지닌 무리들에 의해 새로운 문명을 받아 들여 문명인으로 새로이 탄생하게 됩니다.환인의 아들 환웅이 바람과 비,구름을 다스리는 무리들을 이끌고 세상을 다시리기 시작하고 그 중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고 싶다 환웅에게 간청하니 100일간 햇빛을 보지 않고 동굴에서 마늘과 쑥만 먹고 지내라고 하니 호랑이는 버티지 못하고 뛰쳐나갔지만 곰은 끝까지 버텨 사람인 웅녀가 되어 환웅과 결혼,단군왕검을 낳게 됩니다.곰과 호랑이는 토템신앙을 믿는 토착 원시부족이며 하늘을 다스리는 환인은 환국의 지배자이자 요하문명의 지배자를 뜻하는 것이며 환웅은 그 아들로 바람과 비,구름을 다스리는 무리들은 농경문화 기술을 전파한 수장들이었을 것입니다.단군의 신화 자체에 이미 그 해답이 있었다는 것입니다.환인의 아들 환웅이 환국 혹은 배달국을 떠나 신세계를 개척한 여러 이유로 일만년전 기후 변화를 예로 들기도 합니다.중국 대륙은 현재도 풍요로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지만 일만년전에는 더더욱 풍요로운 땅이었을 것입니다.그리고 지금과는 달리 요하 역시 기후가 따뜻해서 문명이 발전하며 인구 유입이 늘고 번성하지만 기후 변화로 땅이 척박해지면서 좀 더 따뜻하고 토양이 풍부한 곳으로 이주하게 되었으며 그 속에서 환웅은 자신들에게 개화된 토착세력과의 결혼으로 그 세력을 더욱 단단하게 만듭니다. 요하 문명 홍산문화가 그 증거인데 1980년대 우하량에서 나온 천제를 올리는 제단이라든지 여신을 모신 사원, 제사장의 무덤에서 나온 옥기류, 상당히 발전된 축성술을 보여주는 석성 등의 기술등은 이미 당시 국가 성립의 모든 기반이 확고히 자리잡고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왜,단군조선조차 신화에 영역에서 받아들이고 있을 것일까라는 의문이 드는데 그것은 그 동안 일본 식민사학의 전통적 해석을 그대로 추종해온 한국의 강단사학계의 만행 때문입니다.환국과 신시배달, 단군조선에 대한 기록을 신화로 애써 부정해 왔으며 왜곡시켜 왔다는 것입다.하지만 요하문명 홍산문화의 발굴은 왜써 신화와 전설로 치부하고 있던 고대 한반도의 국가와 문명의 존재가 고고학적,역사적 사실로 드러났다는 것입니다.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침략한 후 고대 한반도 역사를 왜곡하면서 한반도에는 구석기 시대가 전혀 없었다고 하였지만 일제가 물러난 이후 수만년 전의 구석기 유물들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어 한국에는 분명히 구석기시대가 존재했다는 점이 밝혀집니다. 최근에는 1만 2천년 전의 볍씨 알갱이도 발견되어 한반도에서 매우 오래 전에 벼농사가 지어졌음이 입증되었습니다. 이는 한반도에서 신석기 시대가 1만 2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분명한 증거로 일반적으로 신석기시대로부터 인류 문명의 개화가 시작된다는 것이 학자들의 생각이기 떄문에 지금으로부터 5천여년 전에 요하문명 홍산문화와 같이 발전된 문명이 출현한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사실 고대인들이 몇백살을 살았고 몇천년을 통치했다는 환단고기의 기록이 중요치 않은 것은 현재와 과거의 나이 및 시간,날짜 계산법의 차이 때문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알타이어(트랜스유라시아어) 분포도. 그림 출처=네이처

여기에 더해 언어의 기원을 살펴보면,한국어나, 일본어, 몽골어, 투르크어 등 '알타이어족'(트랜스유라시아어)의 기원이 기존 중앙 아시아 초원지대 유목민이 아니라 9000년전 동북아시아 랴오허강(요하) 일대 농경민들의 언어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는 것입니다.당시 랴오허강 일대는 동이족의 터전으로, 동이족의 언어가 동,서쪽으로 뻗어 나가면서 90여개 알타이어족의 토대가 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해당 연구 논문을 보도하면서 국내 일부 언론들이 요하 지역을 중국으로 명시해 자칫 오해가 생길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중국 당국이 동북공정으로 요하 일대와 만주를 자신들의 역사에 편입시키려 혈안이 된 상태에서 언어까지 중국산으로 포장이 가능해진 것입니다.국제학술지 네이처에는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주도 하에 한국, 일본, 미국 등 10개국 언어학자,고고학,유전자학자들이 참여해 트랜스유라시아어의 기원에 대해 이같은 결론을 내린 논문이 실렸는데 연구팀은 고대의 농업,축산 관련 어휘들을 분석하는 한편 동북아시아의 255개 신석기,청동기 시대 유적지의 고고학 조사 결과, 한국과 류쿠, 일본의 초기 농경시대 농부들의 유전자 조사 결과까지 참고했는데 이 결과 연구팀은 트랜스유라시아어는 신석기 초기인 약 9000년 전 요하 지역에서 기장을 재배하던 농경민들이 대륙을 가로질러 이동하면서 언어도 함께 확산됐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기존에는 약 4000년전 중앙아시아 대초원에 사는 유목민들이 트랜스유라시아어의 뿌리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었습니다. 9000년 전에는 요하 지역에 신석기 문명이 자리잡기 시작할 때라 소국들이 성립하던 때로 특히 요하 일대는 동이족의 주된 세력권으로, 시기적으로 한국 고대사에서 고조선의 터전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역사학계에선 이번 연구 결과 알타이어족의 뿌리가 동이족이었음을 확인한 성과를 거뒀는데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9000년 전 요하 지역의 문명은 신석기 시대라 나라를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고고학 발굴 조사 결과 등을 보면 민족적으로 동이족의 지역이었음이 분명하고, 이번 연구 결과 동이족의 언어가 알타이어족이 됐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했습니다.

요하(랴오허)강의 위치와 신석기 시대 빗살무늬토기 문화권
신석기 청동기 유물의 분포도 및 쌀과 수수의 전래 루트. 요하지역에서 한반도로 뻗어가되 중국 본토의 중원을 거치지 않는다.

우리는 고대부터 현재까지 만리장성 북쪽은 야만족이며,장성 이남 지역 황하문명 지역이 중화의 중심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습니다.현존하는 중국의 사기 등 많은 역사서만을 의존해왔기 때문이지만 21세기에는 부족한 역사서를 보퉁하는 과학을 바탕으로 한 고고학이 발달로 새로이 과거의 역사를 재발견하고 해석해야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요하문명에서 요순임금이 나왔고 이로 인해 황하문명이 만들어졌다는 역사 왜곡 작업을 하고 교과서 등을 통해 고구려 뿐만 아니라 고조선도 중국 문명이고 단군도 중국인이라는 교육을 하고 있지만 우리 역사계는 반론은 커령 동조까지하고 있는 실태로 일본의 역사왜곡과 더불어 중국의 역사왜곡도 결국에는 영토 전쟁에 이은 문화전쟁의 일환이며 현재 혹은 가까운 미래에는 우리 나라도 빼앗긴 역사와 더불어 티벳같은 운명이 될 수 도 있다는 것입니다.분명한 것은 요하문명 홍산문화는 중원의 황하문명과 전혀 다른 북방 유목 계열의 문명이자 문화이며 단군 조선의 모체이기도 합니다.그 증거를 시대순으로 나열해보면,

1. 소하서 문화 (BC 7000~6500) : 최초 빗살무늬토기 발견, 황하 중원엔 없고, 중앙아시아와 만주에서 발견되었으며 한반도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됩니다.

2.흥륭와 문화 (BC 6200~5200) : 최초 적석총 (피라미드식이 아닌 그냥 무질서 하게 쌓은 형태) 발견, 황하 중원엔 없다. 대규모 취락지 발견. 부장품으로 신분의 상징인 옥귀걸이(옥결)가 발견되는데 한반도 고성 문암리에서도 발견, 또한 옥의 원료도 요하의 동쪽 신의주 쪽인 수암에서 얻음.

 

3.사해 문화 (BC 6000) : 흥륭와와 앞선 시기를 다투는 곳으로 대규모 취락지와 빗살무늬 토기 발견, 최초 용 무늬 흔적 발견.

4. 부하 문화 (BC 5200~5000) : 최초 복골(점치는 뼈) 확인, 중원엔 갑골 문자로 전해지지만 주나라에서 사라지고 대신 볏과 식물 줄기 50개로 행해지는 주역으로 교체, 한반도에는 복골이 통일신라까지 사용됨.

5. 홍산 문화 (BC 4500~3000) : 요하 문명 중 가장 중심이 되는 문화. 최초로 피라미드식 적석총 발견, 시베리아-요동반도-한반도에서만 발견되었으며 황하 중원엔 없음.한반도에는 고구려(장군총, 국내성), 신라(황남대총 흙 제거하면), 백제(석촌동 고분)에서 거의 동일한 모습이 모두 나타남, 제단은 원형으로 나타난다.우하량에서 제단 뿐만 아니라 여신상 및 부장품으로 다량 (한 사람 무덤에서 20개)의 옥기가 발견된 것으로 봐서 당시 족장 중심의 강한 중앙 집권적 초기 국가 단계가 성립했을 것으로 봅니다.역사적으로나 시기적으로나 문헌상으로나 이 시기 이 위치를 점령하던 사람들은 고조선을 건국한 사람들의 초기 사람들이라고 밖에 볼 수 없으며 곰 토테미즘의 형상의 옥기 등 유물이 발견된 것도 이를 반증합니다.

6.소하연 문화 (BC 3000~2000) : 청동은 아직, 순동 사용 확인

7. 하가점 하층 (BC 2300~1500) : 성벽에 중간중간 돌출된 치 최초 발견, 황하 중원엔 이런 성벽 구조 없는데 공성 방어 능력이 뛰어나 수나라,당나라가 고구려 성을 함락 못 시킨 이유이기도 합니다.요순황제의 흔적인 도사유적과 시기가 일치하며, 중국 학자도 이 시기 요서에 하나라에 앞서는 문명국 존재 인정했는데,아마도 고조선이지 않을까. 추정합니다.삼국유사에도 '요임금 즉위 후 50년에 고조선 건국'이라 나와 거의 시기 일치하는데 요임금 시기 중국 쪽 국가명은 비정이 안되어 있지만,이미 고조선으로는 비정되어 왔다고 합니다.

고구려 공성 치는 이미 고조선때부터 존재한 기술이었음

8.하가점 상층 (BC 1500~300) : 최초 비파형 동검 (BC 10세기경)발견, 황하 중원엔 일직선 동검만 일관되게 나타난다. 비파형 동검이 만약 하층에서도 발견된다면 고조선 중심지의 위치는 더욱 확실해집니다.

중국도 사실 만리장성 이북의 중앙아시아 유목민족과 왕래한 요하문명이 고조선 그 자체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역사학자들이 존재하고 존재했지만 중국의 동북공정을 통해 역사 왜곡을 자행하면서 요하문명 홍산문화를 중국의 자생문화로만들어 버렸습니다.지금의 요하지역을 가보면 중,하류는 사막화(커얼친 사막, 한반도 넓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황하문명보다 더 앞선 문명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힘들지만 지금으로부터 7~8000년전에는 이곳은 사막처럼 건조하지 않고, 온도도 지금보다 더 높고, 비가 많아 강이 넓어 살기 좋은 곳이었다는 것입니다.중국은 동북공정으로 세계의 눈을 속이고 없던 것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던 것을 왜곡하여 자국의 문화로 만들고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있던 것도 없었다 말하고 자국의 영토 및 역사도 없던 것이라 주장하는,중국 동복공정의 역사 지우기 및 말살 정책에 동조하는 세력이 된지 오래입니다.분명 요하문명 홍산문화는 옛 고조선의 강역이자 문명이었으며 더 올라가면 화나국 및 배달국의 문명의 수혜를 입은 국가라는 것입니다.전설이나 신화 속 왕조가 아니라 실존하고 우리 역사 속에서 무려 2천년을 넘게 중국 왕조와 함께 동북 아시아를 빛낸 국가였다는 것입니다.후손들이 할 일은 현재 잘먹고 잘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화 강국으로써 자국의 고대사를 재대로 정립하고 바로 세우려는 노력이 있을때 중국의 아전인수격 역사날조에 맞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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