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SMALL

한국고대사8

주몽이 계승한 숨겨진 고구려의 전신 고대국가 구려_700년 역사의 고구려가 아닌 900년 역사의 고구려를 발견하다 700년 역사의 고구려가 아닌 900년 역사의 고구려를 발견하다 주몽이 계승한 숨겨진 고구려의 전신 고대국가 구려 동부여서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과 내려온 고주몽은 고구려를 창업한 뒤 강력하게 성장합니다.이런 고구려 성장의 비밀은 기존에 존재했던 고대국가 구려에 있습니다. 고주몽의 고구려는 맨손에서 출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구려의 왕권과 영토를 그대로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고구려의 건국자인 고주몽은 부여의 망명 정치세력의 대표자로 망명한 지 2년 만에 고구려를 건국했습니다. 고주몽이 빠르게 새로운 나라 고구려를 건국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고주몽이 구려왕의 사위가 되어 구려 왕이 죽자 구려의 왕권을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주몽은 구려의 왕을 물려받으면서, 구려라는 나.. 2023. 12. 2.
위대한 태양의 나라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_추모왕이 국호를 고구려라 이름 지은 의미와 뜻 추모왕이 국호를 고구려라 이름 지은 의미와 뜻 위대한 태양의 나라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 한국의 고대사를 비롯하여 한국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가장 진취적이면서 대외적으로 가장 활발한 정복 전쟁을 펼쳤던 국가가 고구려입니다.물론 고구려 멸망이후로 한국의 역사는 점차 한반도로 영역이 축소되었고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은 만주 벌판을 내달렸던 고구려인들의 기상을 잃어버린지 오래지만 한류가 전 세계를 휘몰아치는 현상을 목격하는 21세기에 들어서 군사력으로 중국과 동북아 영토 전쟁을 벌였던 고구려인들의 기상이 문화적인 기상으로 부활한듯한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고구려는 기원전 37년, 22세 되던 해에 주몽이 건국한 고대 국가입니다.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졸본 땅은 말갈에게 자주 약탈을 당하고 있.. 2023. 12. 1.
고구려 추모왕의 롤모델 부여시조 始祖 동명왕東明王 고두막한_잊혀진 부여왕국 두막루 고구려 추모왕의 롤모델 부여시조 始祖 동명왕東明王 고두막한 잊혀진 부여왕국 두막루 동명왕 고두막한은 논형(論衡) 길험편에 전하는 부여의 시조입니다. 또한 고려시대 이후의 문헌에서 고구려의 시조 추모왕을 지칭하는 명칭이기도 하나 현재 역사학에서는 추모와는 다른 인물로 삼국유사에서는 북부여의 시조라고 전해지는 해모수를 계승한 인물로 묘사되었으며, 졸본에 도읍을 정해 부여를 건국하고, 훗날 고구려 건국에 영향을 준 인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삼국사기에서는 고구려를 건국한 동명성왕 고주몽이 졸본부여를 계승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는 해석상의 차이로서 논란이 있는 부분이기는 한데 졸본에 도읍을 정해 부여를 건국한 인물은 일반적으로 주몽(추모)과 동일시되지만 주몽을 부여의 건국자로 보는 이유는 단순히 이름이 동명으로 같.. 2023. 11. 22.
고구려와 백제,발해는 모두 부여의 별종이다_고조선 계승국 부여 이야기 고구려와 백제,발해는 모두 부여의 별종이다 고조선 계승국 부여 이야기 ▒고조선 멸망 후 열국시대에 접어들다 우리 나라 상고사는 단군조선 이전의 국가부터 고조선의 멸망이후 고구려가 등장하기 전까지 부여라는 고대 국가를 비롯하여 많은 기록이 유실되어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비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우리 한민족의 최초의 국가라고 말하는 고조선 멸망이후에 대한 기록 자체도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에서 고조선은 기원전 4세기경 진조선辰朝鮮(만주), 불조선卞朝鮮(요서), 말조선馬朝鮮(한반도)의 삼조선으로 분립하였으며 이후 열국 시대가 전개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신조선 지역에는 해부루解夫婁가 동부여東扶餘를 건국하여 후에 동북부여, 동남부여로 분리되었고, 해부루와 .. 2023. 11. 21.
고-한(漢)전쟁·최후의 왕험(검)성 전투 그리고 고조선의 패망_역사학자들이 비정한 한사군 실제위치와 단군조선를 계승한 부여의 탄생 역사학자들이 비정한 한사군 실제위치와 단군조선를 계승한 부여의 탄생 고-한(漢)전쟁·최후의 왕험(검)성 전투 그리고 고조선의 패망 고-한(漢)전쟁 최후의 왕험(검)성 전투는 한나라와 총 2차례 펼쳐졌습니다.당시 한나라는 정점으로 치닫는 황금기의 한무제 시기였고 인구나 국력이 고조선을 크게 압도했습니다. 또한 한무제는 주변국 정복에 의욕이 넘쳤는데 한나라 건국 시점부터 골칫덩이였던 흉노를 막북전투 끝에 제압하는 데 성공했고 베트남의 남월도 기원전 111년에 멸망시킨 상황이었습니다. 흉노에 복속되어있던 서쪽 실크로드 도시국가들도 한나라의 영향력에 들어왔으니 중국의 서남북이 평정된 상황에서 한무제에게 남은 건 오로지 동쪽의 고조선 뿐이었습니다.고조선에 갔던 사신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자 한무제는 이를 빌미로 고.. 2023. 11. 20.
일제 어용사가들이 왜곡한 낙랑군 재평양설_낙랑은 고조선 문화이다! 일제 어용사가들이 왜곡한 낙랑군 재평양설 낙랑은 고조선 문화이다! 우리 한민족의 고대사는 중국의 동북공정 뿐 아니라 일제에 의해 왜곡되고 일제의 가르침을 신성처럼 떠받드는 일제 어용사가들에 의해 확대되어 현대 국사 교육에 활용되어 오고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낙랑군 재(在)평양설의 경우 일제 때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닙니다. 문제의 발단이 된 것은 중국 한서 지리지에서 부터였는데 한서 지리지 저자 반고(32~92년)가 낙랑군의 위치를 아리송하게 만들어 놓은 데서부터 시작됐지만 결정적으로는 수경주의 저자 역도원(466?~527년, 북위의 지리학자)이 낙랑군이 평양 일대에 있었다고 주장하면서부터였습니다.이후 낙랑군 위치문제에 대한 논쟁이 세기와 세기를 거듭하면서 계속돼 왔으며 조선시대에도 대체로 낙랑군.. 2023. 11. 18.
우리 고대사에 기자조선은 없었다!_기자조선의 허구성과 5천년전 중국의 동북공정 기자조선의 허구성과 5천년전 중국의 동북공정 우리 고대사에 기자조선은 없었다! 우리 한민족의 기원이라할 수 있는 단군 조선과 위만조선 사이에 기자조선이 존재했다는 설이 있었습니다.흔히 기자동래설이라 하는데 고대 중국 주나라 초기인 BC 1122년에 은나라 왕족 출신인 기자라는 인물이 주나라 무왕의 책봉을 받고 우리나라에 와서 나라를 세우고 조선을 문명개화하였다는 설이 바로 기자동래설입니다. 사대주의에 물들은 고려와 조선시대 지배층들은 기자동래설을 사실이라 믿고, 기자숭배 사상을 퍼뜨렸습니다. 과연 기자가 우리나라에 와서 중화문물을 전달했고, 그 결과 우리나라가 문명개화했는가?이것은 마치 일제가 조선을 문명개화시키기 위해 조선합병을 한 이유와 무척이나 흡사한데 이 기자동래설이 문제로 되는 것은 중국 역사학.. 2023. 11. 17.
남당유고 박창화의 고구려사초(高句麗史抄) 고구려사략(高句麗史略)제2대 광명대제_고구리 왕조 900년의 기틀을 다지다 남당유고 박창화의 고구려사초(高句麗史抄) 고구려사략(高句麗史略)제2대 광명대제 고구리 왕조 900년의 기틀을 다지다 ◆남당유고 박창화의 고구려사초(高句麗史抄) 고구려사략(高句麗史略) 제2대 광명대제 광명대제의 원년은 임인년(BC19)이다. 추모임금을 룡산(龍山)에 장사지냈으며 추모임금의 명에 따라 순장을 하지 않았다. 아이비가 아들 도절을 낳았고 예후를 태후로 승격시켰다. 이해 12월에 오이를 황룡왕으로 삼았고 마리를 비리왕으로 삼았다. 2년은 계묘년(BC18)이다. 정월에 연호를 유리광명으로 바꾸었다. 재사를 태보로 삼았다. 협보를 좌보와 주민대가로 삼았다. 부분노를 우보와 주군대가로 삼았다. 고구를 주궁대가로 삼았다. 옥지는 곡물을 담당하게 했다. 구추는 형벌을 담당하게 했다. 도조는 의약을 담당하게.. 2023. 10. 24.
반응형
BIG

.myredbtn{ -webkit-text-size-adjust: 100%; word-break: break-word; background-color: #e00d0d; border-radius: 28px; border: none; display: inline-block; cursor: pointer; color: #faf8f8 !important; font-family: Arial; font-size: 20px; font-weight: 550; text-align: center; 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 white-space: nowrap; padding: 10px 35px; box-shadow: 2px 4px 6px #646363; text-shadow: 0px 1px 0px #bb2154; width: 80%; height: 40px; line-height: 40px; overflow: hidden; transition: background 0.3s, transform 0.3s; text-decoration: none; } .myredbtn:hover{ transform: scale(1.05); background-color: #fc6565; text-decoration: underlin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