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탈리 포트만의 이스라엘 히브리어 연출작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잃어버린 꿈이 가져온 영혼의 파괴와 종말
아모스 오즈의 원작 소설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를 각색하고 연출한 나탈리 포트만의 첫 장편영화 연출작으로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는 국내에서는 쉽게 접하지 못하는 이스라엘 영화입니다. 영화 가득 낯선 히브리어가 귓전을 맴돌고 유려한 영상미를 자랑하지만 음울한 분위기가 영화 전반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다 우리에게는 익숙지 않은 이스라엘 독립이라는 배경 자체는 영화의 몰입도를 방해하기 일쑤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예루살렘으로부터 나탈리 포트만으로부터 이어지는 잔잔하다 못해 고즈넉한 영화의 흐름은 유려한 문체를 자랑하는 소설책을 읽듯이 흡입력 있게 진행되기도 합니다. 홀로코스트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20세기 초 유대인들의 수난사를 모르지 않지만 이후 그들의 행보는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 독립이라는 신천지를 향해 달려가게 됩니다. 영화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는 1948년 이스라엘 독립선언 등 이스라엘의 역사를 오롯이 따라가면서 그 속에서 무참하게 영혼이 파괴되어가는 파니아(나탈리 포트만 분)를 그녀의 아들 아모스(원작 소설작가 아모스 오즈가 나이 든 후 자서전적인 소설로 구성한 내용입니다)의 시선을 따라 차분하지만 음울하게 뒤따라가며 바라보는 내용입니다. 소설가 아버지(길라드 카하나 분)와 아름답고 지적인 어머니 피아나와의 사이에서 마냥 행복할 것만 같은 나날들이 조금씩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솔직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에 관해 뉴스로 종종 접하기는 하지만 그 심각성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영화를 보면서 나탈리 포트만이 자국어인 히브리어를 영화 전체에 왜 집어넣고 대중성을 포기했는지는 이스라엘에 대한 애정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알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파니아는 종종 아들인 아모스에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파니아 자신이 작가가 꿈이었지만 급변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육아와 작가를 동시에 할 수 없었기에 꿈을 포기해야 했던 파니아는 아이에게 종종 옛날이야기처럼 꾸민 자신의 꿈을 이야기해줍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세계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홀로코스트에서 수백만의 유대인이 목숨을 잃었으며 이후에도 이스라엘 독립전쟁을 펼치며 사회 전체는 격변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상황과 대비해 본다면 일제 강점기와 6.26 전쟁통 속에서 한 여성의 꿈은 부질없고 날개를 펼 수 없는 꺾인 날개와도 같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굳이 여성뿐 아니라 당시의 시대에 놓인 많은 사람들이 꿈조차 꾸지 못하고 그렇게 자의던지 타의던지 파괴되어 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은유적인 표현으로 에둘러 말하지만 파니아의 꿈을 깨는 존재는 전쟁 속 사회적 분위기와 가난, 지독히도 예민했던 그녀 자신에게 있었지만 또 하나의 이유는 사랑하는 아모스 때문이기도 합니다. 난리통의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은 자신의 꿈을 접는 대신 자식들에게 그 꿈을 이식시켜주며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고는 했습니다. 친구들과 식탁에 모여 "결혼하면 모든 게 끝이야"라며 수다를 떨던 자리에서조차 묵묵히 듣고만 있던 그녀는 우연찮게 식탁 밑에 있던 아모스를 발견하고서 더욱 자신의 의견을 닫아겁니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자의식이 강했던 파니아는 그렇게 점점 사랑을 잃고 어둠 속으로 스러져만 가게 됩니다.
나탈리 포트만이 처음 원작 소설 "사랑과 어둠이 이야기"를 보고 10여 년간 구상하며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으며 파니아 역까지 소화해낸, 그야말로 1인 3역을 해낸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는 초보 감독인 나탈리 포트만의 시행착오도 엿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 영화를 찍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리고 나탈리 포트만의 차기 연출작에 대한 기대감도 가지게 됩니다. 영화를 연구하고 한 여자의 인생과 이스라엘 이란 민족의 아픔을 영화 곳곳에 투영하고 싶어 했던 그녀의 열정이 영화 군데군데 나타나고 있었으며 꿈을 잃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 파니아와 결국 어미니 파니아가 꿈에 그리던 삶을 살아보겠다며 어린 시절의 단편적인 기억들을 모아 어머니 파니아의 이야기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아모스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죽음으로 절망을 이끌어 내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남의 이야기를 표현해내는 배우 나탈리 포트만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와 생각을 표현해내는 감독으로서 그녀를 더욱 오래, 자주 만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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