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연 안개속에서 막장으로 치닫는 인간 본성에 관한 고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제7호 태창호 사건 영화 해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해무는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에서 각본을 맡았던 심성보가 연출한 작품으로 전진호의 선장 철주(김윤석 분)는 더 이상 만선의 수확을 거두지 못하고 감척 사업 대상이 되고 배를 잃을 위기에 몰리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고기가 아닌 인간, 즉, 중국에서 건너오는 밀항자들을 실어 나르는 일을 하기 위해 자신을 따르는 선원들과 함께 낡은 어선 전진호를 출항시킵니다. 빚 때문에 배에 숨어 살지만 인정 많고 사연 많은 기관장 완호(문성근 분), 선장의 명령을 잘 따르는 행동파 갑판장 호영(김상호 분), 돈이 세상에서 최고라고 생각하는 거친 성격의 롤러수 경구(유승목 분), 언제 어디서든 욕구에 충실한 선원 창욱(이희준 분), 갓 뱃일을 시작한 순박한 막내 선원 동식(박유천 분)까지 여섯 명의 선원들은 해무가 몰려오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온 수많은 밀항자들과 생사의 막장으로 몰리게 됩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해무는 제7호 태창호 사건이 모티브이며 제7호 태창호 사건은 2001년 9월 25일 전라도 여수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전라도 여수 봉산동에 있는 다방에서 여 모 씨(54)가 제7태창호 선장인 이 모 씨(43)에게 밀입국자를 태워달라는 제의를 했고 이 씨는 처음엔 거절했지만 3000만 원을 주겠다는 말에 승낙, 배 직원들에게 각각 100만 원을 주겠다고 말하고 29일 새벽 선원 7명과 선장은 평소처럼 10월 1일부터 10월 5일까지는 평범한 조업을 하면서 조기, 갈치 1400 상자를 어획합니다. 같은 시각, 중국 절강성 영포항에서 한국으로 밀입국하는 한족, 조선족 60명을 태운 20톤 급 목선이 출항했으며 10월 6일 제주도 서남방 110마일에서 태창호와 접선, 60명의 사람들이 태창호로 옮겨 탔으며 태창호는 다음날 여수를 향해 갔고 해경의 단속에 걸릴 것을 대비하여 밀입국자들을 물탱크에 35명, 바닥 어구 창고에 25명씩 나눠서 숨깁니다.
태창호는 해경의 단속이 끝나고 숨어있던 밀입국자들에게 물을 주기 위해서 뚜껑을 열었는데 통풍이 잘 돼있던 물탱크 속 35명은 살아났지만 어구 창고에 있던 25명은 전원 사망한 채 발견됩니다. 어구 창고 내부 상황은 너무 처참했고 일부 인원은 손톱이 부러졌거나 지문과 손마디가 사라져 있기도 했다고 전합니다. 나중에 경찰의 발표에 의하면 밀입국자들이 어구 창고에 처음 들어가자마자 숨이 막히다며 문을 열어달라고 했지만 선장 이 씨가 "우리 걸리면 모두 다 죽는 거야!!"라고 소리치며 문을 열어주지 않은 사실이 추가로 밝혀집니다. 선장 이 씨는 밀입국자들의 죽음에 처음 밀항을 제의했던 여 모 씨와의 통화를 하고 "백야도에서 작은 배가 오니깐 그 배에다 밀입국자들을 모두 태워주쇼"라고 말을 했으며 이 씨는 "큰일 났소.. 25명이 죽었다"라고 말하자 여 모 씨는 "일단 생존자들은 태우고 시체는 바다에 버려라"라는 지시를 내렸으며 이후 태창호는 정체불명의 5톤 급 소형어선에 생존한 35명을 태웠고 태창호는 뱃머리를 돌려 여수 남면 소리도 남쪽 10마일에 25명의 시신들을 모두 바다로 던져 버렸다고 합니다.
완전범죄로 끝날 것만 같던 태창호 사건은 그러나 다음날 새벽 6시 대경도 주민들에 의해 대경도에 들어온 밀입국자들을 발견, 신고하면서 살아남은 35명의 밀입국자들이 전원 검거되고 태창호에서 일어난 일들을 조사하던 중 밀입국자 25명이 사망하게 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제7태창호 선원과 선장 모두 구속됩니다. 하지만 선장 이 씨는 살인죄는 인정되지 않고 과실치사와 시체유기,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선원 7명은 모두 시신 유기와 출입국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게 됩니다.
태창호 사건을 모티브로 상당 부분 실화와 유사하지만 영화 해무는 인물들의 감정선에 중심 기반을 두고 전개가 이루어지는데 공간상의 제약 때문에 극의 전개가 따분하게 느껴질 법도 하지만 해무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해무는 상업영화의 공감 코드나 눈길을 사로잡는 CG 없이 배우들 간의 호흡과 연출과 구성만으로도 충분히 영화 해무를 알찬 작품으로 짜 맞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들은 대개 사건의 나열에 그치지만 영화 해무를 연출한 심성보와 봉준호의 철학을 적극적으로 영화에 투영하고 반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 해무는 특히 막장으로 치닫는 인간 본연의 본성에 대한 고찰이 두드러지는데 홍매(한예리 분)와 동식(박유천 분)이 바로 눈앞에서 철주가 기관장(문성근 분)을 죽이는 장면을 목격하고 난 후 성관계를 가지는 장면입니다. 가장 두렵고 공포에 휩싸인 남녀의 감정은 서로를 본능적으로 탐닉하는데 이런 감정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안개의 중심에서 한줄기 빛을 찾아 내달리는 본능처럼 홍매와 동식의 두려움에 휩싸인 본능을 잘 표현해냈다 여겨집니다. 발정 난 수캐처럼 끊임없이 홍매를 탐했던 창욱(이희준 분)이나 침몰해나가는 배를 부여잡고 이미 죽거나 죽은 선원들에게 배를 살려야 한다고 외치는 선장의 외침 등은 해무의 짙은 안갯속에서 끊임없이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내달리다 끝내는 미쳐버리고 함께 침몰하고 마는 인물들의 감정선이 정밀하게 표현되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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