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왕자들이 미치도록 사랑한 조선의 4대 기생 초요갱
황진이보다 화려하고 어우동 뺨치던 팜므파탈
조선 시대 요부라고하면 장녹수나 어우동이 떠오르고 기생이라하면 그 유명한 황진이이 연상되지만 그 유명한 황진이조차 단 한 번도 이름이 거론된 적 없던 조선왕조실록에 무려 16번이나 이름을 올린 기생 초요갱이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초요갱은 황진이 이전의 조선초 인물로 조선의 유명한 4대기생 중 한명으로 초요갱과 옥부향, 자동선, 양대가 조선 4대 기생이라 하며 넷 모두 가무에 능했다고 합니다. 그 중 초요갱은 세종대왕이 만든 궁중 무용을 홀로 익혀 당대 최고의 지위에 올랐다고 전해집니다.사실 현대인의 뇌리 속에 기생하면 황진이라고 깊이 각인되어 있지만 사실 황진이는 양반집 남자들이나 왕족, 당대 학자들 등과 관계를 맺어온 반면에 오늘 소개할 초요갱의 경우 상대하는 남자들이 일반 왕족도 아닌 왕의 자식들이었던 왕자들이었습니다.그것도 한명이 아닌 세명씩이나 초요갱을 좋아하여 연모했다고 하는데 우리 역사에서 유이하게 광개토대왕과 더불어 대왕이라는 칭호가 붙은 세종 대왕의 아들들이 초요갱을 사모하여 따라다녔고 게다가 세조에게도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사랑받았던 여인이었습니다.
▣초요갱_역모로 첫번째 남편을 잃지만 조선 제일의 기생으로 우뚝서다
우리에게는 흔치 않은 이름인 초요갱의 초요는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 왕이 가느다란 허리를 너무 좋아해서 조정에 굶어죽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는 고사에서 온 말인데 그 후 미인의 가느다한 허리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초요갱은 허리가 가늘고 춤을 잘 추어서 붙은 기명으로 초요갱의 갱은 경으로 읽을 수도 있는데 일반적으로 초요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초요갱은 원래 평범한 집에서 태어나 어느 양반댁의 첩으로 들어갔는데, 그 집안이 역모와 연관되면서 관기가 되고 말았다고 전합니다.초요갱의 첫 번째 남자는 결국 역모죄로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고 합니다.보통 역모에 관련되어 망한 집안의 여인들은 노비가 되기 마련이었는데 초요갱은 춤에 굉장히 뛰어난 재주가 있었던 덕분에 노비 대신 관기가 되었던 것이었습니다.얼마나 재주가 대단했냐면 나중에는 세조가 궁에서 여는 연회 때만 되면 항상 불려가서 춤을 출 정도였다고 합니다.궁에서 미모도 뛰어나고 허리 잘록한 여자가 눈앞에서 멋진 춤까지 추니 아무리 왕의 아들들이라 할지라도 초요갱을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처음 초요갱에게 빠져버린 왕자는 세종대왕의 일곱 번째 아들 평원대군 이임이었습니다.이임은 워낙 인품도 훌륭하고 총명했기 때문에 세종과 조정 대신들에게 사랑을 받는 대군이었는데 초요갱에게 푹 빠지게 된 평원대군 이임은 초요갱을 첩으로 삼고 글도 가르쳐주고 나라에서 새로 만든 춤도 가르쳐줬으며 경제적인 지원도 아낌없이해주었으며 여기에다 궁중 악사 박연의 수제자가 되어 궁중악의 전수자가 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초요갱_세종의 아들들이 사랑한 여인,평원대군 이임을 잃다
이정도면 당시 기생 원탑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데 초요갱이 기생으로써의 레벨이 올라가게 되자 각종 궁궐 행사에 불려가 궁중 악무 등의 춤을 출수 있었는데 하지만 평원대군이 19살에 천연두에 걸려 사망하게 되면서 역모로 죽은 첫번째 남자에 이어 두 번째 남자 평원대군의 사망으로 초요갱은 과부가 되어버렸습니다.과부가 된 초요갱에게 다가온 세 번째 남자는 바로 세종대왕의 아들 중 한 명인 화의군 이영이었습니다.이영은 세종대왕과 영빈 강씨의 아들로 평원대군 이임과는 이복형제 관계였는데 제수씨인 초요갱을 마음에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이영은 초요갱을 쫓아다니며 적극적인 구애를 했고 그 마음에 감복한 초요갱과 깊은 연인 관계가 되었습니다.하지만 이것은 제수씨와 간통을 한 패륜적인 일이었고 형제가 한 여자와 깊은 관계를 맺은 것이었습니다.그것도 왕의 아들들인 왕자들끼리 저지른 패륜이기도 했습니다.이영과 초요갱은 몰래 연애질을 했지만 비밀은 금새 밝혀지게 됩니다.
▤초요갱_화의군 이영과의 간통으로 곤장 80대의 중형을 받다
단종 3년 1455년 2월 27일,화의군 이영은 금성대군 이유의 집에서 무사들과 함께 활쏘기 경연을 하며 잔치를 벌였는데 수양대군은 이 일이 반역을 일으키기 위해 군사훈련을 하는 것이라며 모함하였고 화의군과 금성대군을 역모죄로 잡아들여야 한다고 단종에게 이야기했지만 단종은 자신의 삼촌들이기도 했고 겉으로 확실하게 드러난 역모의 죄상이 없다며 이 일을 마무리하려고 했습니다.그러자 수양대군은 화의군 이영과 평원대군의 첩 초요갱이 몰래 간통하였으니 처벌해야 한다고 단종을 다시 몰아붙입니다.결국에 화의군은 제수씨와 간통을 한 죄로 지방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고 초요갱은 곤장 80대의 중형을 받게 됩니다.하지만 초요갱은 형벌을 대속한 덕분에 곤장은 맞지도 않았고 그렇게 한양에 머물러살며 조용히 잊혀지는가 싶었는데 세조 3년에 또다시 사고가 터지게 됩니다.초요갱은 세종 말년에 좌의정을 지냈던 신개라는 사람의 세 아들 중 막내이자 세조의 즉위를 도운 인물이었던 신자형이란 인물과 눈이 제대로 맞았고 신자형 역시 초요갱에게 완전히 푹 빠져버려서 본처를 내쫓아버리고 안방에 그녀를 들어앉히고 맙니다.그리고 안방마님 행세하는 초요갱에 대해 뒷담화를 까던 여종들이 신자형에게 발각되어 맞아죽기도 합니다.그런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맙니다.신자형의 7촌 조카뻘이었던 안계담이란 사람이 초요갱을 강제로 겁탈하기 위해 눈이 뒤집혀서 밤에 다짜고짜 나타나 신자형의 안방으로 들이닥쳤는데 놀란 초요갱이 땅에 나뒹굴며 혼비백산 도망을 치게 되고 도망친 초요갱을 찾지 못한 안계담은 초요갱을 내놓으라고 난리 치며 신자형의 노비들을 마구 두들겨 패는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초요갱_네번째 남편의 유배와 다섯번째 남자의 요절
신자형이 본처를 내쫓은 일과 초요갱을 욕하던 여종 두 명을 때려죽인 일이 결국 세조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지만 신자형은 계유정난의 공신이었기 때문에 유배는 가지 않았고 직첩만 빼앗는 걸로 사건이 마무리됩니다.이 일로 초요갱도 멀리 유배를 보내라는 상소가 빗발쳤지만 그녀의 재주를 높게 산 세조는 그녀를 유배 보내지 않았습니다.당시 세조가 4대 기녀라고 부르는 가무에 능한 기녀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초요갱이었습니다.이 4대 기녀들은 궁에서 있던 연회에 불려가 춤을 추던 기녀였는데 특히나 세조가 재주를 아끼던 기녀들이었다고 합니다.세조는 4대 기녀들을 모두 기적에서 풀어주어 양민이 되게 해주기도 했는데 가무가 뛰어나다는 이유로 초요갱을 악적(樂籍)에 올려 궁에서 연회가 있을 때 불러와 궁중 악무를 추도록 했는데 이번에는 화의군 이영의 이복동생인 계양군 이증이 초요갱에게 첫눈에 반해 그녀를 겁탈해버린 것이었습니다.같은 핏줄이라 그런 것이었는지 아니면 초요갱이 그만큼 절세미녀여서인지 세종대왕의 아들들은 이 초요갱에게 홀딱 빠져서 차례대로 초요갱과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이 일을 보고받은 세조는 당장 계양군을 불러 “소문에 듣기로 네가 초요갱과 사통한다고 하는데 사실이냐? 어디 기생이 없어서 하필 그 여자인 것인가. 어찌하여 형제끼리 서로 간음을 하는가” 라며 호통을 치자 계양군은 펄쩍 뛰며 "절대 아닙니다! 하늘에 맹세코 초요갱이라는 기생은 모릅니다 억울합니다"라고 하니 세조는 알겠다며 초요갱이랑 놀지 말라 하고 그를 돌려보냈지만 계양군은 퇴궐하자마자 그 길로 초요갱에게로 달려갔다고 합니다.심지어 초요갱에게 과도하게 집착했는데 변대해라는 남자가 어느 날 몰래 초요갱의 집으로 숨어들어 왔다가 계양군이 배치해둔 경호원들에게 들켜 맞아 죽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그렇게 초요갱에 빠져 색만 밝히고 허구한 날 술만 마시며 초요갱의 치마폭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던 이증은 나이 40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초요갱의 다섯 번째 남자 이증 또한 일찍 요절하게 되는데 이후로도 초요갱의 삶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초요갱_여섯번째 남편이 다시 역모에 연루되다
이증이 죽고 난 이후 초요갱은 어느 권세가의 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하지만 세조가 죽고 나서 예종이 왕이 된 후에 세조의 측근 세력에 대한 대규모 탄압이 시작되었는데 초요갱이 어떤 권세가의 첩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이때 또다시 역모에 연루가 되어 다시 기적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초요갱이 첫번째 남편 역시 역모에 연루가 되어 죽고 초요갱은 기생이 되었는데 수십년이 흐른 뒤 또다시 역모에 연루되어 기생이 되어버린 것이었습니다.하지만 자신을 아끼던 세조도 죽고 궁에서도 불러주질 않았기에 초요갱은 고향인 평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그런데 예종 1년 7월 17일,평양부의 관비인 대비라는 여자가 사헌부에 신고를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평안도 도사라는 벼슬의 임맹지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이 임맹지와 초요갱이 간통을 했다는 신고였는데 이때는 세조의 국상 중이었기 때문에 고위 관리의 이 같은 행위는 국법을 어기는 중죄였습니다.하지만 예종은 초요갱이 임맹지의 방에 들어갔다고 해서 동침을 했다고는 볼 수 없다며 처벌을 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초요갱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이 일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습니다.이후로 초요갱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떻게 사망했는지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초요갱의 남자들은 모두 요절하는 등 그 결말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초요갱은 횡액(橫厄)을 가져다주는 요부'라며 손가락질했다고 합니다.하지만 수백년이 흘러 초요갱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웬지 억울할 수도 있는데 초요갱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몸매와 가무에 능하였던 초요갱은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것입니다.역모로 노비로 살 팔자가 그 재주로 인해 기생으로 바뀌었을 뿐이며 초요갱에 빠져든 것은 모두 왕자들이나 남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초요갱 자신이 남자들을 이용하여 권세를 누리거나 권력을 탐하지도 않았는데 벌들이 몰려드는 꽃처럼 너무 아름다웠던 것이 죄라면 죄였을 것입니다.초요갱은 세조가 조선의 4대 기녀라고 부를 정도로 뻬어난 미색과 궁에서 연회가 있을 때면 초요갱을 불렀을 정도로 그 재능이 남달랐던 여인으로 어쩌면 시대를 잘못 타고난 불운한 여인이었다는 것입니다.초요갱이 1400년대 조선이 아닌,2023년의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한류를 이끄는 스타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입니다.조선시대에 태어나 두 번씩이나 역모죄로 망한 대감댁의 첩으로 살았으며 초요갱을 원하던 왕자들과 권세가들의 여인으로 살다간,어쩌면 황진이보다 더 화려하고 어우동보다 더 요부스러운 기구한 팔자를 타고난 기생 초요갱의 삶을 잠시 들여다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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